"싸움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부안 아주머니들의 군청 앞 1인시위



23일 아침 8시, 부안. 콘크리트 가건물에 둘러쌓여 안쪽이 잘 보이지 않는 군청 앞에 낯익은 노란색의 피켓을 든 여성이 보인다. 부안대책위에서 일하고 있는 조미옥 씨다. 앞면에는 '군민의사 무시한 핵종규 퇴진', 뒷면에는 '핵없는 세상, 아름다운 부안'이라고 쓰여진 피켓. 지난 월요일부터 시작된 부안 아줌마들의 1인시위이다.

평소 사람과 차량 통행이 그다지 많지 않은 길목. 조용한 1인 시위이지만, 다양한 상황이 벌어진다. 학교에 가는 아이들이 길가에 띄엄띄엄 세워진 피켓을 유심히 지켜보다가 가던 길을 재촉한다. 군청 뒤 산에 오르려 발걸음을 옮기던 주민들은 1인시위 모습을 보며 멀리에서 "핵폐기장 결사반대"를 외치고 지나간다. 군청 앞 도로를 지나던 차량들도 잠시 멈추고 차창을 내리고 1인 시위자에게 반가운 인사를 건넨다. 모두 지난 여름부터 주민투표까지 함께 아스팔트에서 투쟁하며 울고 웃었던 낯익은 얼굴들이다.


▲학교가는 길, 아이들이 거리에 세워진 피켓을 유심히 보고 있다. [사진:참소리]

2월 14일 주민투표가 끝난 후 부안의 아주머니들을 주축으로 군민들의 군정참여를 확대하기 위해, 의정활동을 감시하는 '의정지기단'이 꾸려졌다. 의정지기단이 몇 번의 의회참관을 통해 예산과 집행 과정에서의 문제점을 지적했지만 번번히 외면당해야 했고, 주민참여가 보장되지 않는 의정활동에 분노하며 항의활동을 벌이기도 했다. 그리고 72%의 참여율, 91%의 반대율이라는 주민투표의 결과를 바탕으로, 결의했던 '반민주적' 군수퇴진운동의 연장선상에서 아주머니들은 조그만 행동이라도 벌여보자며 1인시위를 기획했다.


▲군청 앞 1인시위 [사진:참소리]

1인시위가 있던 첫날은 집시법에 따라 200미터 간격으로 아주머니 한명씩 피켓을 들고 군청 주변을 둘러섰다. 그러나 경찰은 '200미터 간격이라고 하더라도 동일한 사안으로 시위를 해서는 안된다'며 아주머니들의 시위를 막아섰고, 어떤 아주머니들은 "남편이 (부안시위 건으로) 구속돼 있는 상태인데, 이러면 좋지 않다"는 협박성 발언을 듣기도 했다.

30분쯤 시간이 지나니, 아주머니들 세명이 나타났다. 계화면에서 아침밥 먹고 바로 왔다는 이 아주머니들은, "이른 아침에 1인시위를 하는 게 힘들지 않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 뜨거운 뙤약볕 받고, 태풍 맞고, 눈 다 맞으면서도 했는데, 이 까짓것이 뭐가 힘드냐"고 말하며, 피켓 하나를 들고 군청 옆문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주민투표가 끝난 후 핵폐기장 백지화를 스스로 선언했지만, 아주머니들은 주민투표 결과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정부와 군의 태도에 불안함과 분노를 품고 있었다. 피켓을 옆에 세워두고 두런두런 나누는 대화를 들어보니, 며칠전에 마을 누구누구가 대덕연구단지로 견학을 갔고, 어디 마을 몇곳의 이장들이 단체로 군수와 만났더라는 등 관이 주민회유활동을 하고 있다는 얘기들이다. 아주머니들은 "정부도 빨리 백기들고 나와야 하는데, 총선이다 뭐다 해서 자꾸 시간을 끈다"며, 아직도 끝나지 않았고, 더욱 어려워지게 될 싸움에 대한 불만을 표했다.


▲군청 앞에 선 아주머니들 [사진:참소리]

주민투표 후 몇가지 자치모임 외에는 조용한 부안의 모습에 대해서는 우려를 표명하는 목소리도 있다. "정부가 백지화를 선언하지 않는 이상, 총선 이후에 어떤 태도로 나오게 될지 모르는데 군민들의 움직임이 눈에 잘 보이지 않아 불안하다"는 것이다. 한 주민은 "이러다가 굴업도 싸움처럼, 지금까지 해놨던 게 한순간에 무너지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물론 다른 주민들은 "이미 백지화를 스스로 결정짓고 일상으로 돌아간 주민들을 뒤흔드는 일이 있다면 주민들의 분노는 더욱 극으로 치닫고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것"이라며 군민들의 의지가 변함이 없음을 강조한다. 어쨋건 이러저러한 이유로 정부가 완전백지화 여부를 발표하기까지 또 마냥 기다릴 수밖에는 없다는 것이 아주머니들의 이번 1인시위가 시작된 진짜 계기였으리라.

군청 앞쪽에서 피켓을 들고 있던 조미옥 씨에게 다가가 인터뷰에 응해줄 수 있겠냐고 물었다. 인터뷰는 힘들겠다고 말하며 군청 건물 어딘가를 뚫어지게 노려보는 조미옥 씨. 한마디 덧붙인다. "지금 기싸움 중이예요"


참소리 최인화 기자 tori@icom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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