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국면에 접어든 이라크 저항

이라크 팔루자에서 미군의 대규모 군사작전으로 지난 일주일새 수백명의 사망자가 발생하고, 이라크 전국에서 반미감정이 급격히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영국에서 활동중인 좌파 지식인 타리크 알리는 이라크 파병국 중 하나인 이탈리아 일간지 <일 메니페스토>에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 이라크 저항The Iraqi Resistance: a New Phase"이라는 글을 발표하였다. 알리는 이라크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모든 의미있는 이야기는 사라졌으며 오직 남은 것은 전쟁광들에 대한 처벌과 점령의 종식뿐이라고 강조하고 있다.[옮긴이 주]/[photo-AFP]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 이라크 저항 [타리크 알리]

점령이 시작되고 난 직후, 미국과 미국의 군사/이데올로기적 동맹국들은 이라크 저항세력을 '외국 인자들', '테러리스트' 혹은 '과거 사담정권의 충성파들'이라고 언급했다. 이제 어법이 장황해져서 마치 미국, 영국, 스페인, 불가리아, 우크라이나, 이탈리아, 일본, 남한, 폴란드 군대가 이라크를 대표하고 점령에 저항하는 이라크인들은 반(反)이라크 세력이라는 듯이 미 군사대변인은 게릴라들을 '반이라크군'으로 묘사하고 있다.

기이한 세상이다.

대량살상무기가 발견되지 않으면서 부시, 블레어, 아스나르, 베를루스코니가 사용했던 거짓말이 공개적으로 망신살이 뻗치자, 이 모든 나라의 선전부와 그들이 선호하는 언론인들은 방침을 바꿔 이렇게 주장했다. "무기는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독재자를 제거했고 이라크에 민주주의를 가져다 주었다." 정말? 민주주의를?

지금까지 죽은 그리고 여전히 죽어가고 있는 수천 명의 이라크 민간인들은 제쳐놓고, 의미있는 민주주의에 관한 모든 이야기들은 사라져버렸다. 오래된 제국주의의 이데올로그 새뮤얼 헌팅턴은 이제 '민주주의의 역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 괴물은 무엇인가? 민주주의가 서방이 전달하기 원하는 것을 전달하지 않을 때, 그것은 '역설'이 된다. 그리고 오늘날 자본주의적 민주주의에게는 신자유주의적 경제질서에 대한 어떠한 도전도 역설이 된다. 의료와 교육체계가 민영화되길 바라지 않는 이라크인들은 '과거에 살고' 있다. 점령 이후 이 나라에 들어온 기업들을 경멸하는 이라크 무역업자들은 '후진적인 인자들'이다. 외국 사업가들이 공격목표가 될 때 (부역업자들을 제외하고) 모든 사회계층의 이라크인들은 기뻐한다. 외국기업들은 점령당한 이 나라를 집어삼키려고 온 메뚜기떼들로 인식되고 있다.

만일 이라크에 민주주의가 허용되기만 했다면, 분명히 선출된 대표들은 모든 이라크 군대를 제거할 것, 이라크 석유를 이라크가 통제할 것, 그리고 이란과 장기적인 평화협정을 체결할 것을 주장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중 어느 것도 제국주의의 이익에는 봉사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헨리 키신저를 비롯한 사기꾼들은 이라크를 발칸화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그래서 내전이 임박했다든지, (이라크의 모든 집단이 부인하고 있는데도) 카르발라의 순례자들을 상대로 폭발물이 터질 거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수니파와 시아파 성직자들이든 수니파와 시아파 출신의 세속주의적 무장세력이든 식민주의 점령군을 상대로 이라크는 단결해야 한다는 것 이외의 다른 이야기들은 하고 있지 않다.

아야톨라 시스타니는 전국민이 단결해야 한다는 자신의 신념을 강조하기 위해 수니파 지도자들과 회합을 가졌고, 개인적으로 그는 이란을 모델로 삼아 성직자들이 통치하는 구조는 재앙이 될 것이라는 견해를 피력했다. 모크타다 알 사드르는 시아파가 아니라 이라크 전체를 해방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 2주 동안 쿠르드족 지도자들을 예외로 하면, 이라크 전체가 점령에 반대하고 점령이 즉시 끝나기를 바라고 있다는 사실이 명백해졌다. 시아파 종교집단 내에서는 현재 이라크 남부의 대중을 지지하기 위한 공개적인 투쟁이 벌어지고 있다. 점령군은 팔루자 시민들을 격분시키는 결정을 했다(해병대의 공격으로 민간인들이 사망하고 난 이틀 뒤 미국 용병들이 잔인하게 살해당했다).

왜 점령군은 알 사드르의 신문을 정간시켰을까? 말을 금지시킬 때 폭탄이 말을 대신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라크에서 목격하고 있는 것은 식민점령의 논리이다. 팔루자와 바스라에서 울려퍼지고 있는 종소리를 들어보라. 종은 이탈리아 점령군이 공격당했을 때 저항군을 '테러리스트'라고 비난했던 이탈리아의 자유주의적, 자유주의 좌파적 언론인들을 위해 울리고 있다. 점령군들은 그들이 우리에게 말한 대로 '인도주의적' 목적을 위해 그 곳에 있었다. 이제 가면은 벗겨졌고 이탈리아 국민들이 선출한 지도자는 이라크에서 이탈리아인들이 부시를 위해 싸우다가 부시를 위해 죽고 제국을 위해 사람들을 죽일 거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 상황에서, 민주사회당원들은 의회에서 전쟁 대부를 위해 투표했다. 전쟁에는 반대한다면서, 점령에는 찬성한다고? 중도파 정당으로 보이기 위한 그들의 절박함은 스페인 사회당보다 더 우파적이다. 그들은 세르지오 코페라티를 꺾고 사라지게 해서 매우 행복해하지만, 베를루스코니의 전쟁 참여에 진지하게 도전하는 것을 꺼리고 있다. 그런데도 민주사회당 지도자들은 반전 시위대가 자신들의 분노와 환멸을 드러내자 놀라고 있다.

그러는 동안 이라크인들은 계속해서 고통당하고 있다. 최근 시인 시난 안톤은 바그다드에서 최근의 분위기를 일깨우는 시 한편을 낭송했다.

유프라테스강은
긴 행렬이다
종려나무들이 흐느끼면서
도시는 그 어깨를 두드린다


알 사드르와 그 추종자들이 저항에 합류하기로 한 결정으로 수십만 명이 거리에 쏟아져 나와 점령에 새로운 도전을 취하고 있다. 서방인들이 이라크를 위해 위선적인 눈물을 흘리거나 이라크인들의 저항이 서구 자유주의의 높은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고 불평해봤자 소용없는 일이다. 도대체 어떤 저항이 그럴 수 있을까?

점령이 추하다면, 헐리우드 영화나 이탈리아 코메디가 아닌 이상 저항이 아름다울 수는 없다. 그리고 만일 종교적인 정당이 이라크 남부를 지배하게 된다면 그 이유는 지난 12년간 미국과 영국이 돈과 무기로 그들 중 일부를 후원했기 때문이다.

중도-좌파에 속한 이들 중 다수는 이라크를 유엔에 넘기는 것을 해결책으로 여기고 있다. 이것은 이미 1924년에 영국이 자신이 조직한 국제연맹을 통하여 이라크를 통치했을 때 실현된 적이 있다. 미국은 유엔안보리로부터 이와 유사한 위임통치령을 쉽게 얻어낼 수 있었고, 앞으로 20년 동안 이 나라에서 군사기지를 유지하기를 바라고 있다.

그러나 만일 지배를 유지하면서 세계인에게는 이라크인들이 자신들의 나라를 통치하는 것처럼 꾸미는 이 유서깊은 해결책이 실패로 돌아간다면? 그럼 다시 폭격과 부수적 피해(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보았듯이 서방에게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민간인들의 생명)로 돌아갈까? 한 훌륭한 자유주의자가 주장한대로, 그렇다. 하지만 유엔이 미국보다 더 나을까? 유엔이 하는 일을 누가 관리하고 결정하느냐에 달려있을까?

그렇다면 누가 그 일을 할 수 있을까?

자신의 정부와 지도자들이 전쟁을 지지했던 국가의 시민들에게는 스페인의 모범을 따라 전쟁광을 처벌하는 일이 급선무여야 한다. 만일 아스나르의 뒤를 따라 베를루스코니, 블레어, 부시가 발할라(북구신화에 나오는 전사들의 휴식처. 전쟁터에서 전사한 용사들의 영혼이 모이는 곳 - 옮긴이)로 인도된다면, 중요한 승리가 될 것이다.

그리고 나서 우리는 그들의 후계자들에게 점령을 끝낼 것을 요구하는 캠페인을 벌여야 할 것이다. 유엔은 체면치레용으로 단 한 번 사용할 수 있을 뿐 그 이상은 아니다.

원문 http://www.counterpunch.org/ali0410200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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