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6일 오전 11시 30분 회현동 우리은행 본점 앞에서는 '우리은행 사무행원 부당해고 규탄집회'가 처음으로 열렸다. 해고 사무행원 17명과 한국노총 등 17명이 참석한 참으로 조촐한 집회였다. 이날 집회는 자동으로 계약갱신이 이루어졌던 사무행원 여성노동자 57명 전원에게 우리은행측이 3월 31일자로 일방적 해고통보한 것에 대한 항의집회였다.
개인메일로 해고 예고
2002년 4월 우리은행측은 공과금 수납 업무를 본부가 통합관리하는 BRS(후선업무)센터 설립을 추진했다. 이에 맞춰 전담계약직 사무행원 126명을 3개월 단기형식으로 채용했다. 그런데 은행측은 물류처리 비용과 비용상의 문제로 센터 추진을 중단하고, 대신 각 지점에 설치된 공과금 납부기계를 통해 공과금 수납 업무를 처리하기로 방침을 변경하였다.
당초 BRS센터 근무를 위해 입사했던 126명의 사무행원들은 수도권 각 영업지점으로 한 명씩 파견되어 자동납부 기계관리와 영수증처리를 담당했다. 갑작스럽게 근로조건이 변경되는 과정에서 대부분의 인원이 중도에서 자진퇴사를 하고 57명만이 남았다. 그런데 공과금 자동납부 기계처리 방식이 정착되었다는 판단이 서자 은행측은 2월 3일 " 3월 31일일자로 사무행원 전원의 계약을 해지한다"는 예고를 했다. 개인메일을 통해서였다. 이에 사무행원들이 반발하자 2월 25일에서 26일 양일간 내용증명우편을 통해 일방적으로 최종 해고 통고를 하였다. 그리고 3월 말경에는 퇴직금 수령을 볼모로 자진 사직서를 쓸 것을 종용하기도 했다.

채용당시 장기근속 근무자 필요하다고 밝혀
"아이가 세명입니다. 채용당시 막내가 4살이었구요. 면접관은 장기근속할 사람을 구하는데 육아문제와 병행할 수 있겠냐고 중점적으로 물었죠. 친정엄마가 가까이 계셔서 업무에 지장이 전혀 없을거라고 말했고 실제로 아이문제로 한번도 월차등을 써본적이 없습니다"라고 한 사무행원은 말했다. 다른 사무행원들도 채용과정에서 장기채용에 대한 확답을 듣고 입사했다고 증언했다. 실제로 이들은 짧게는 1년 6개월에서 1년 9개월씩 별도의 심사없이 자동연장에 의해 전원 지속적으로 업무에 종사한 상황이다.
사상최대흑자, 월급은 85만원
작년 우리은행은 은행권 중 단기수익 1위(1조 3000억원)를 기록했다. 센터 계획이 무산된 이후 지점에 발령받은 사무행원들이 본업무인 고지서 담당업무이외에 창구업무, 문서수발등 은행내의 온갖 잡다한 업무를 도맡으며 수령한 임금은 85만원에서 100만원. 사상최대 흑자를 자축하며 '전직원 140% 상여금'을 정규직에게 나누는 와중에 이들 57명은 '조용히' 정리해고의 길에 내던져 졌다. 그리고 현재 지점에서는 동일한 업무를 피크타이머(일당직 고용)로 대체 운영하고 있다.
선전물 돌리다 정규직 노조에 제지 당하기도
이들 사무행원들은 지점에서 근무를 하면서도 소속은 여전히 본부소속이었다. 지점 직원들과의 소외감이 클 수 밖에 없었다. "지점장부터 정규직 동료들은 같은 지점 식구로 대해주지 않았죠. 비정규직이었으니까요. 그리고 지점의 대부분의 수납직원들이 비정규직이었지만 그분들과도 겉돌았죠. '언제든 본점으로 갈 사람 아니냐'는 거였어요" 이런 어려움 속에 126명에 달하던 초기 인원은 57명으로 감소되었다.
이들 사무행원들이 해고의 부당함에 맞서기 위해 처음 연대를 모색한 곳은 당연히 한 직장내의 정규직 노조였다. 정규직 노조의 입장은 간단했다. "우리 직원이 아니니 노조가 관여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는 것이었다. 오히려 3월 8일 한국노총 전국여성노동자대회에서 유인물을 배포하다 정규직 노조원들에게 강력한 제지를 받기도 했다. "왜 회사내의 문제를 외부에서 풀려고 하냐는 이유였죠.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근데 막상 대화를 시도하면 같은 회사 직원이 아니니 '회사내' 문제가 아니고 그러니 정규직 노조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반복적 대답인거죠"라고 허난주 행원은 답답한 심경을 토로했다.
4만 희망의 실험대
![]() |
| ▲지난 3월7일 여의도에서 열린 한국여성대회에 참가해 선전전을 진행한 우리은행 비정규 노동자들/참세상자료사진 |
2월 3일 은행측의 해고 예고가 있자 사무행원들은 2월 9일 총회를 열고 권혜영 지부장을 선출하였다. 이어 15일 한국노총 금융산업노조 비정규직지부 우리은행지회를 설립하였다. 그리고 3월 4일 서울지방노동청에 부당해고에 대한 탄원서를 제출하고 지방노동위에 제소를 준비중이다. 57명 중 "끝까지 싸우겠다"는 의지를 밝힌 인원은 31명이다
현재 금융권 비정규직은 4만여. 윤애림 철폐연대 국장은 이날 집회의 연대사를 통해 "여러분의 이 싸움은 금융권에서 여성 비정규직 조직화의 가장 소중한 밑거름이 될것입니다. 과연 비정규직지부가 비정규직의 울타리가 될 것인지의 실험대에 선 것입니다"라고 우리은행사무행원들의 투쟁의 의미를 규정했다. 그리고 "스스로 자랑스럽게 느끼십시오. 이제껏 남들을 위해 살았다면 이제는 나의 권리를 찾는 것. 그것이 다시 나의 주변의 권리로 넓어질 것입니다."라고 독려했다.
권혜영 지부장은 "기업이 성장해도 노동자에게 남는 것은 고용유연화와 고용불안 이라고 말들을 할 때 애써 모른 척 외면했습니다. 이제 그 칼날이 우리에게 돌아오고 있습니다. 해고가 되면서 비로소 깨달은 것입니다"라고 말하며 " 더 이상 수레바퀴처럼 비정규직의 자리를 비정규직이 다시 채우는 악순환은 안됩니다. 상시적이고 지속적인 업무를 수행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정규직으로 전환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단지 일을 하고 싶을 뿐입니다."라고 호소했다.
집회이후 권혜영 지부장과 허난주 사무행원이 인사부와의 면담을 시도하였다. 돌아온 것은 "예상하셨겠지만 우리는 그쪽과 할말이 아무것도 없습니다"라는 담당자의 전화한통화 뿐이었다. 그러나 동료 사무행원들에게 이후 계획을 알리는 지부장의 목소리에는 힘이 묻어난다. "이것은 우리 뿐만 아니라 금융권 비정규직 행원들을 대신한 싸움이기도 하다. 우리는 큰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매일 계속 집회를 열고 면담을 시도하자. 힘내자"고 말했다.
봄날 같지 않게 유독 춥던 4월 6일의 첫집회. 처음 배운 파업가를 부르는 음절이 서툴러도, 집에 있는 친척이 볼까 카메라가 부담스럽고 들어올린 손목이 어색해도 "분노로 여기까지 왔다"는 투쟁보고에 끝내 떨구던 그 눈물이, 김밥을 앞에두고 자신의 처지를 한없이 토해내던 그 울분이 이제 막 시작한 그들의 투쟁을 점점 더 강하게 단련시킬 것이다.
이들은 4월 6일 첫집회 이후 우리은행 앞에서의 집회와 선전전을 계속 이어왔고 은행측에 면담요구를 해왔다. 12일 현재까지 은행측의 어떤 입장 변화나 대화자세는 없었다고 윤애림 철폐연대 국장은 전했다. 우리은행 사무행원들은 14일부터 BRS센터 앞에서 집회를 열 예정이다.




![[영상] 현대기아차비정규직 농성..](http://www.newscham.net/data/coolmedia/0/KakaoTalk_20180411_120413041_copy.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