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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20장애철폐의 날을 맞아 마로니에 공원에서 종묘공원까지 600명이 넘는 인원이 행진했다 |
4월 20일 마로니에 공원에서 420장애인차별철폐투쟁결의대회를 마친 참가자들은 5시 무렵 종묘공원으로 거리행진에 나섰다. 참가자 600여명이 8차선 도로의 4차선 도로를 차지하고 행진한 후 1시간 정도가 소요된 뒤, 참가자들은 더 이상 행진하지 못했다.
커브를 돈 종로 4가의 거리 위, 일방통행의 도로는 8차선에서 4차선으로 좁아졌고, 행진단은 멈췄다. 경찰은 행진이 2차선으로 좁아지도록 갑자기 대열을 좁혔다. 그리고 동대문경찰서 소속의 경찰은 박경석 위원장의 손을 지그시 잡으며 차 막히는 길을 보라 했다.
"저 차들은 장애인들이 차별받았던 속도나 다름없다. 이 곳은 4차선 도로다. 비장애인들만 다니는 4차선도로에 무슨 의미가 있나. 4월 20일을 맞아 정부는 콩고물을 내 주듯 2013년까지 대중교통수단인 버스의 10%를 저상버스로 운행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장애인이 거리로 나온지 3년이 지났다. 다시 10년을 기다려 10%롤 만족하라는 말이다. 우리는 이 거리 위에서 물러서지 않겠다"
박 위원장과 경찰의 실랑이는 15분 가까이 이어졌다. 그러는 사이 거리 행진단은 15분 동안 한 판 놀이를 펼쳤다. 본무대에 서지 않았던 꽃다지가 즉석에서 서너곡의 노래를 불렀고 박영희 공동대표의 휠체어를 끌던 이혜경 민주노동당 부대표는 즉석에서 특유의 아줌마 춤을 선보였다. 경찰과 대치상황에서 모아졌던 대열의 긴장은 순식간에 활력과 여유의 에너지로 바뀌었다.
그러는 사이 다시 15분 정도가 흘렀고 4차선과 2차선 사이의 접전은 물러섬 없이 계속 이어졌다.
"2003년 모든 비장애인이 타는 버스를 10년 뒤에도 장애인은 10%만 타라는 현실에서 비켜야 할 이유 없다. 차가 막히는 현실에는 그토록 민감하면서 장애인이 평생 쳐박혀 있는 현실에 대해서는 왜 그러지 못하는가. 오늘의 행진은 우리의 차별을 철폐하라는 행진이다. 급할 것 없다. 어차피 집에 가봤자, 또 집구석에 쳐박혀 살아야 할 세월이 놓여 있다"
"2월 28일 13가지 차별철폐안 요구안으로 국무총리 면담을 신청하고 3월 26일부터 오늘까지 계속 노숙농성을 해왔다. 그러나 단 한번의 답변도 없었다. 국무총리가 당장 와 풀 문제이지 경찰이 와 풀 문제가 아니다. 여기서 돌아가야 하더라도 4차선을 지킬 것이다"
"우리를 막으려거든 차라리 지난 3월 26일처럼 다 잡아가라. 합법집회를 하는 우리를 다 잡아가지 않았나"
"그때 우리가 한 것이 아니라 종로경찰서가 했다." "그럼 종로 관할까지만 가게 해달라. 거기가서 싸울테니."

횡단보도 하나가 남았지만 물러서지 않았다
경찰이 한 발 물러섰다. "3차선으로 합시다." 그러기를 다시 10분여. 4차선 도로 전체로 차들은 다니지 못했다. 3차선은 행진단이 차지하고 나머지 1차선은 경찰이 차지했다.
종로 4가에서 종로 3가 정리집회를 하기로 한 종묘공원에 오기까지 한 시간이 넘게 걸렸다. 그리고 관할이 동대문경찰서에서 종로경찰서로 넘어가는 종묘공원 앞 횡단보도 앞에 다다랐을 때 행진단은 다시 멈췄다.
문제는 횡단보도 하나였다. 하나만 지나면 종묘공원 정문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경찰은 정문까지 다시 곡선 형태로 행진의 대열을 줄였다. 행진단은 종묘공원이 코 앞이었지만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다. 종로경찰서 측과의 충돌 끝에 시간은 7시로 향했고 박경석 대표는 "마지막 순간까지 3차선 도로행진을 허용하지 않는다면 이 자리에 앉겠다. 정리집회는 이곳에서 갖겠다"는 말로 정리집회의 장소를 즉석에서 옮겼다.
420장애차별철폐단은 행진의 마지막 한 발자국도 허투로 밟지 않았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2시간 가까이 진행된 거리에서의 정리집회는 그렇게 시작될 수 있었다. 종묘공원을 메우고 있었던 사람들이 거리 위로 쏟아져 나왔다. 술을 한 잔 걸친 할아버지들이 많았다.
"잘한다." "가지 말고 계속 해"
도로 위의 사람도 구경하는 사람도 점점 같은 열기 안으로 섞여들었다. 그러는 사이 해는 이미 졌고 다시 종로경찰서 정보과장이 다가왔다.
"도로문화제는 도로사용허가제를 내야 가능하다. 계속 이렇게 나오면 도로교통법 위반으로 처리하겠다" 라는 한마디 말을 남기고 박경석 대표의 묵묵부답의 반응을 본 뒤 경찰대열로 사라졌다.
그러나 그 자리에는 후끈 달아오른 수백명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고 3월 26일 70여명의 인원을 전원 연행한 종로경찰서라도 어떻게 하지 못했다.
믈러서지 않았기에 얻어낼 수 있었던 거리에서의 소중한 집회라 사람들은 자신이 있는 자리를 사랑하며 거리와 노래와 춤과 이야기를 즐겼고 누군가는 사탕을 잔뜩 사들고 와 저녁을 거른 이들과 사탕 한 알이라도 나누었다.
문화패의 거리공연과 정해진 발언이 끝난 뒤 집회를 자리를 정리하는 박영희 대표의 정리발언이 이어졌다.
"집에만 있던 시절에는 일몰이 지면 식구들이 돌아와 저녁을 먹을 수 있겠구나, 그러면 내일은 또 뭘 하며 지낼까하는 생각을 하며 보냈지만 집 밖으로 나온 지금은 일몰이 지면 거리에서 연행될 꺼라는 협박을 자주 듣습니다. 그래도 지금이 행복합니다."
"한 달 가까이 농성을 이어오며 비도 오고 추운날이 있었습니다. 하필 그런 날 영화상영기기도 고장나 서로 어깨를 기대고 앉아 있을 수조차 없었을 때, 그때 함께해준 노래패나 동지들이 없었다면 오늘까지 이 자리를 이어올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한 과정이 있었기에 오늘, 투쟁은 오늘부터 시작이라는 말을 다시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서로의 힘으로 버틴 지난 시간들을 떠올리며 즉흥으로 '바위처럼'을 불렀다. 문화패가 아닌 사람이 거리투쟁에서 노래를 부르는 모습은 집회 경험 중 흔치 않은 일이었다. 그만큼 거리의 에너지는 넘쳐 있었다. 자신들이 만든 거리문화라는 생각이 가득하지 않았다면 가능하지 않았을 노래였다.

돈도 빽도 없는 우리, 단지 몸뚱어리 하나와 연대하는 동지 믿고 여기까지 와
이어 박경석 위원장의 정리발언으로 넘어갔다.
"방금 정태수추모사업회 일을 하는 동지로부터 문자가 왔습니다. 오늘 노숙농성 여기서 하자는군요." 노숙농성에 함께 결합해본 적 없는 이들도 함께 크게 웃었다.
"돈도 없고, 빽도 없는 우리가 단지 몸뚱어리 하나와 연대하는 동지 하나 믿고 이 자리까지 이어왔습니다. 그런데 정부는 4월 20일 오늘 수억원의 돈 쳐부어 4천명의 장애인을 체육관에 동원해 국내정상급 가수들 불러다놓고 도시락 먹여가며 장애인 차별을 강화시키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이 자리에서 그대로 노숙농성하고, 일년이라도 이 자리에서 노숙농성 해 만약 내년 이 자리에 모인 장애인들이 버스 타고 집에 돌아갈 수만 있다면 우리는 얼마든지 노숙농성할 수 있습니다."
"오늘 정부는, 그리고 일부 언론은 저상버스 도입계획을 발표하며 장애인의 날 장애인 이동권 따냈다고 선전하고 있습니다. 처음 거리로 나섰을 때 정부는 우리나라 도로에서 저상버스 다니기 어렵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3년 동안 싸워 저상버스 3대가 도입된 뒤 정부는 다시 장애인과 함께 한다고 선전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2013년까지 저상버스 10% 도입한다고 발표하며 장애인 이동권 따냈다고 선전합니다."
"장애인들이 거리에서 투쟁에 나설 때마다 경찰은 시민발목 잡는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 사회가 사람이 사람답게 살지 못하는 사회라면 사람 발목 잡읍시다. 오늘은 이동권투쟁으로 구속된 김도현 동지가 받은 징역 8개월이 끝나는 날입니다. 하지만 에바다 투쟁의 집행유예건이 걸려 1년 6개월을 더 살고 나와야 합니다. 법 집행이 이토록 엄혹하다면, 장애인의 인권유린에 대해서도 엄혹해야 합니다. 노무현도 감방가야 합니다."
"아까 누군가 오늘 이 자리에 선 내가 교육을 많이 받은 장애인이라 했는데, 내가 받은 교육은 점거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구걸하지 않고 당당하게 해왔습니다. 앞으로도 여러분과 함께 그럴 것입니다."
그리고 그도 즉흥에서 마이크롤 잡고 노래를 불렀다. 사랑은 구걸이 아니라 쟁취이다라는 말을 끝으로 심수봉의 '사랑밖에 난 몰라.'를 눈을 지그시 감고 뽑았다. 공원에서 쏟아져 나온 아저씨, 할아버지들은 몸을 흔들었고, 멀리서 보고 있던 경찰들도 입가에 웃음을 물었다.
4월 20일 물러섬 없는 거리 투쟁 속에서 피어난 불법 도로점거 문화제는 그렇게 막을 내렸다. 사람들 입에서는 옆사람 수고했다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참가자들은 집회가 자발적으로 해산된 뒤에도 한참동안 거리를 떠나지 못했다. 장애인의 물러서지 않는 투쟁이 만들어준 자리였기에 마음은 더 고맙고 따뜻했다. 오래도록 남는 기억은 행복한 경험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앞에 놓인 훨씬 더 많은 시간을 견딜 수 있는 것은 바로 그 기억의 힘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영상] 현대기아차비정규직 농성..](http://www.newscham.net/data/coolmedia/0/KakaoTalk_20180411_120413041_copy.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