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년에 하루 식구들과 외출해 냉면 먹는 날이 장애인 차별 철폐의 날로

장애인 차별 철폐단, 25일간의 노숙농성 마치고 4월 20일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600여명의 참가자들과 본대회 갖고 종묘까지 행진

▲420장애 철폐대회에서


4월 20일 2시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는 세종문화횐관 앞에서 25일간의 노숙농성을 무사히 마친 420장애인차별철폐투쟁공동기획단(이하 철폐단)의 '장애인 차별 철폐의 날' 행사가 열렸다.

4월 20일 전두환정권이 정권홍보용으로 만든 '장애인의 날'이 364일 집을 나올 수 없었던 장애인들을 일년에 딱 하루 체육관에 모아 놓고 떡과 음료수를 나눠주고 대중가수의 노래에 박수를 치게 하는 행사로 치장되어 온 사이, 거리에서의 투쟁의 성과를 모아 열린 '장애인 차별 철폐의 날' 행사도 올해로 두 번째를 맞이하게 되었다.

철폐단 추산 600명 정도의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참가 속에서 이뤄진 이날 행사는 17명의 공동대표 중 한 사람인 박영희 대표가 대회사를 여는 것으로 시작됐다.

"지난 4월 1일부터 여러날에 걸쳐 고속철 좌석 중 단 두 개의 장애인 좌석 밖에 마련돼 있지 않은 고속철 탑승 행사를 가졌습니다. 그때마다 번번이 공권력에 의해 저지당하며 우리가 들었던 말은 비장애인이 불편하니 장애인은 집단으로 고속철을 타지 말아야 한다는 답변이었습니다. 이런 현실에서 우리는 고속철 관계자나 정부로부터 단 한번의 사과, 단 한번의 책임있는 답변도 듣지 못했습니다. "

"지난 26일부터 농성을 이어오며 지칠 때도 있고, 힘들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경찰이 방패를 휘두르며 연행하는 것은 좌절스럽지 않았습니다. 유치장에서 하루밤을 보내더라도 당당했습니다. 하지만 고속철을 타려 했을 때 역무원이 비웃는 모습은 견디기 힘든 경험이었습니다. "

"그러나 25일간의 거리에서의 농성을 끝낸 지금 저는 제 자신이 그리고 여러분이 너무 자랑스럽습니다. 우리는 비장애인중심사회를 방안 구석에서만 이야기한 것이 아니라 거리에서 영화, 노래, 목소리를 통해 억압과 차별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365일 차별이 그대로 있는 한 우리는 여기 있을 것입니다. 10년을 두고라도, 평생을 두고라도 여기 이 자리에 있을 것입니다. 단 하루라도 우리는 차별받지 않기 위해 나왔고 그것은 헛된 것이 아닙니다. 25일간을 이어오며 무력적인 힘이 우리를 막았기에 오늘 여기까지 이어올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옆의 자랑스런 동지들에게 힘 주시기 바랍니다."

혼자서는 밥 한술 뜰 수 없는 내 딸, 부모가 없어져야 생계비 지원받을 수 있다

이어 박경석 집행위원장이 25일간의 투쟁경과보고를 시작하며 오늘은 투쟁의 끝이 아니라 우리의 13가지 요구안이 즉각 시작될 수 있도록 투쟁이 시작되는 날이라고 선포했다.

연대발언에 나선 민주노총의 이수호 위원장은 "자신을 포함한 이 사회 전부가 공범자"라는 사과로 연대사를 시작 "이 자리에서 잘나가는 집회에서는 절대로 볼 수 없는 일인 컵에 따른 주스를 대접받았다"며 "그런 일은 사소한 것 같지만 정을 받고 나눠 본 사람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라"며 오히려 가장 차별받는 여러분에게 감동적인 것을 많이 배운다"는 내용으로 연대사를 열었다.

이어 연대발언에 나선 민주노동당 비례대표 1번이었던 심상정 의원은 "민주노동당이 도시빈민이나 농민, 노동자를 원내에서 대변하는 성능좋은 확성기 역할을 하겠다며 임기내 민노당은 장애인예산으로 5조원을 요구사며 법집행을 위한 강제적 조항을 요구할 것이고 그러나 여러분의 투쟁을 대신하지 않고 함께 하겠다"라는 의지를 밝혔다.

신석준 사회당 대표는 "장애인국회의원이 나오는 현재 40%의 장애인이 한달에 한 번도 외출하지 못하며 얼마나 많은 수의 장애인이 시설에 갖혀 있는지는 파악도 되지 않고 있고 장애인의 최종학력은 절반이상이 초등학교일 뿐 아니라 장애인의 실업률은 70%에 육박한다"라며 장애인의 현실을 구체적 수치로 꼬집었다.

연대발언 이후 무대로 나온 민중가수 박준 씨는 유례가 없는 언론단의 사진촬영으로 무대가 참가자들로부터 분리되자, "내년부터는 서로서로 섞여 앉자"라는 말을 하며 직접 무대 아래로 내려가 첫 문화공연의 막을 올렸다. 그의 발언 이후 한 자리에 모여 앉았던 공동대표단들은 여러 자리로 흩어져 새로 자리를 잡았다.

문화공연 이후에는 20여명이 붉은 조끼를 입고 행사의 맨 앞자리를 차지해 준 이주노동자와 KBS방송사 비정규직 주봉희 위원장과 경남여성장애인연합 송정문 회장의 투쟁발언이 이어졌다.

송 회장은 특히 투쟁발언을 통해 여성장애인의 현실을 알렸다. 장애인의 금지된 이동권의 현실을 감안할 때 지역에서 단체로 집회에 참가하기는 어렵다. 송 회장은 경남에서 8명의 장애인이 고속철을 타고 왔지만 장애인을 위한 시설은 갖춰져 있지 않아 제 시간에 역에 도착했음에도 역무원들과 선로를 무단횡단한 뒤에야 가까스로 고속철에 오를 수 있었다고 투쟁사를 시작했다. 하지만 송 회장은 지난 1년간 지자체의 지원거부의 협박 속에서도 지속적인 투쟁을 전개한 결과 경남에서는 지자체에서는 이례적으로 저상버스 30대 도입이 확정되었다며 투쟁의 성과를 알렸다. 이어 그는 출산의 경험을 통해 여성장애인이 처한 차별의 현실을 단적으로 드러냈다.

여성장애인에게는 임신, 결혼, 사랑할 권리도 없다

"여성의 역할이 남성을 보살펴야 하는 역할로만 국한될 때 장애여성은 결혼에서 언제나 배제될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온갖 우여곡절을 겪고 결혼을 했습니다. 그러나 아이를 갖는 순간부터 낳기 직전까지 계속 낙태권유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장애인이라서 받아야 하는 장애인 확인검사를 끝까지 거부했습니다. 임신에서 출산까지 내가 겪은 현실은 결국 장애인이기 때문에 안된다는 현실이었습니다.

또한 결혼한 여성이 성관계를 갖지 못할 경우 남성은 다른 여자와 관계를 가지면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뭐 어떠냐는 반응을 보입니다. 하지만 장애여성은 가슴이 까맣게 타 들어가면서도 이혼 후에 받아들여할 또 다른 고통의 현실이 두려워 이혼하지 못합니다. 장애여성이라해서 결혼도 못하고 아이도 못 갖고 사랑하지 못해야 하는 것입니까? 오늘의 투쟁발언을 구호로 정리하겠습니다. 제 구호는 좀 깁니다. 잘 따라하시기 바랍니다."

"장애인 중에서도 배제되고, 여성으로서도 대우받지 못하는 장애여성의 인권을 보장하라"



문예창작단 "들꽃"과 민중그룹 "젠"등의 문화공연이 이어졌고 끝으로 장애인연금법 제정을위해 전국을 휠체어로 순회하고 있는 류홍주 위원장의 발언이 이어졌다.

"장애인 인생은 흔히 공짜인생이라고 합니다. 50% 세일 인생이라고도 하고요. 또 사회에서는 조건을 뛰어넘는 무한한 능력을 갖고 있고, 뛰어나고 천사같다고 추켜세웁니다. 그러나 그러는 동안 장애인들은 가난과 차별 속에서 죽어 갑니다. 여기 이 자리에나 나올 수 있는 장애인은 돈깨나 있는 장애인입니다. 엘리트 장애인입니다. 내 주머니에도 돈 꽤 있습니다. 박경석 대표도 많이 있는 편입니다. 그래서 부끄럽고 죄스럽습니다.

이땅의 많은 장애인들은 내일 무엇을 먹고 마실까를 고민합니다. 장애인들은 부모가 없고, 찢어지게 가난해야만이 국가로부터 30만원의 최저생계비를 받을 수 있습니다. 노동자는 산업현장에서 몇푼의 돈을 놓고 힘겹게 일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장애인은 그 몇푼의 돈이 없어 싸우고 있습니다. 노 대통령은 대통령이 되기 하루 전날 장애인연금제도를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당선이 된 후 이것은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당장 대중교통을 탈 권리가 없는데 우리에게 무슨 권리가 있겠습니까. 비로소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그날까지 목숨을 바쳐 기꺼이 죽어가야 할 것입니다."

이날 행사에서는 유난히 카메라 세례를 많이 받은 사람이 있었다. 휠체어에 몸을 완전히 의자한 뇌성마비 1급의 딸과 동행한 부모 내외였다. 이들은 문화공연이 있으면 혼자서는 조금도 몸을 움직일 수 없는 딸의 손을 쥐고 조금이라도 같이 호흡하고 싶어 함께 박수를 쳤고 조금이라도 앞에서 보여주려 애를 썼다. 뇌성마비 딸의 아버지 정종훈(46, 영등포구 양평동) 씨는 류홍주 위원장의 발언이 끝나자 혼자서는 대소변도 가릴 수 없는 이 아이에게 부모가 없고 피붙이가 없어야만이 생계비 명목의 지원이 나온다며 저 말 중 틀린 말이 하나도 없다며 빳빳이 굳은 딸의 손을 쥐었다.

그리고 집회 참가자 뒤쪽에서 만난 뇌성마비 1급 장애인 채동수(46) 씨는 오늘 행사를 위해 충남에서 올라왔다며 배운 것도 없고 혼자서는 생계에 나설 수가 없어 여든을 넘기신 부모님의 도움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밝혔다.

이들과 거리행진에서 만난 중증장애인 참가자들은 체육관에서 일년에 단 하루 열리는 장애인의 날 행사는 알고는 있었지만 참가해본 적은 없다고 밝혔다. 성내동에서 온 이정민 씨(38)는 재작년까지 자신에게 장애인의 날은 일년에 하루 식구들과 외출해 냉면을 먹는 날이었다며 그러나 장애인 당사자들의 힘으로 장애인 차별 철폐의 날이 된 뒤 거리에 나와 사람들과 함께 자신의 요구를 이야기할 수 있게 되어 자랑스럽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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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 , 장애인 , 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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