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우리 부안 군민들이 입고 온 옷을 보니까, 작년 가을에 입었던 반핵 노란잠바네요. 겨울잠바는 이제 옷장에 넣어두고 가을잠바가 봄잠바로 바뀌었어요. 이러다가 다시 여름에 입었던 반팔티까지 입으면 안되겠죠?"
부안촛불집회 사회자 김희정 씨의 말이다. 22일 저녁 부안 군민 3백여명은 오랜만에 수협 앞 광장에 모여 '김종규군수 퇴진과 주민자치 실현을 위한 촛불집회'를 열었다. 200일 촛불집회, 주민투표 개표일을 제외하면 약 5개월만에 다시 찾은 광장이다.
2월 14일 주민투표가 끝난 후에도 매주 금요일 부안성당에서 촛불집회가 열렸지만, 지난 해 무더운 여름부터 매서운 눈보라가 몰아치던 겨울까지 지켰던 광장에서 열리는 촛불집회는 주민들에게 '핵폐기장이 완전히 백지화 되기 전까지는 투쟁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결연한 의지를 보여주는 자리이다.

▲시계방향으로. 1) 영광투쟁에 연대참가해서 얻은 주황색 반핵조끼를 자랑스레 선보이는 한 아저씨. 2) 깔개와 추위막이용 덮개를 들고 나온 주민들. 3) 광장에서 열린 촛불집회에는 어김없이 경찰들이 안전선을 치고 나왔다. 4) '뭐하는 거냐고? 핵폐기장 시험 봐~' 고려대 학생이 준비한 핵폐기장 설문조사에 꼼꼼히 문항을 작성하고 있는 주민들. [참소리]

▲수협을 마주보는 도로 한켠에 세워진 간이 무대를 앞에 두고 3백여명의 주민들이 모여들었다. [참소리]
총선이 끝난 후 부안 분위기는 다소 뒤숭숭했다. 대책위의 핵폐기장 찬성 후보 낙선방침, 그리고 다수의 예상을 벗어난 총선 결과 등은 대책위의 책임론을 만드는가 하면, 부안 민심이 분열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낳기도 했다.
그러나 이날 촛불집회에 참석한 주민들은 오히려 총선문제에 대해서는 담담한 분위기였다. "총선은 총선일 뿐이여. 당선된 후보가 선거기간동안 핵폐기장 끝까지 반대한다고 했응게 인제 두고봐야지. 정치권도 부안 주민들 눈이 무서워서 함부로 못할 것이여." 동진면에서 왔다는 한 아저씨는 자신있게 말하며 "그것보담은 군수랑 도지사가 주민투표 또 못하게 막아야지. 주민들이 이미 투표해서 결정이 된 것을 왜 또 일을 만들려고 한당가."라며 핵폐기장 완전 백지화가 중요함을 강조했다.
오후 8시 반경. 주민투표 영상이 상영된 후 촛불집회가 시작됐다. 주민들은 한껏 소리를 높여 핵폐기장 결사반대, 김종규 군수 퇴진 구호를 외쳤다.

▲촛불을 치켜 든 주민들의 표정은 여전히 결연함이 서려있다. [참소리]
부안대책위 공동대표 서대석 씨는 연단에 나서 "며칠전 주민투표관리위원회가 서울에서 해단식을 가졌는데, 부안 주민투표에서 굉장히 소중한 경험을 얻었다고 말하더라."라며 주민투표 결과의 소중함을 강조하고 "주관위원장이었던 박원순 변호사는 다시 주민투표를 치른다면 청와대 앞에서 일인시위를 하는 등 온몸으로 막겠다고 밝혔고, 시민단체들의 연대가 이어질 것이니, 부안 군민들도 자신감을 잃지 말고 끝까지 투쟁하자"고 외쳤다.
반핵투쟁 건으로 구속됐다가 보석으로 풀려난 대책위 집행부 김효중 씨도 연단에 올라, 군민들의 힘이 중요함을 강조하며 "옥에 있는 동지들을 잊지 말아줄 것"을 당부했다. 지난 연말 구속된 김종성 집행위원장 아내의 편지글 낭독이 이어졌다. 김 집행위원장은 총선 이틀전 보낸 편지글을 통해 "총선 시기 동안 주민들이 많이 혼란스러웠을 것으로 안다. 총선이 끝난 후 누군가는 잔치를 벌이겠지만, 부안 주민들의 마음은 편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주민들은 주민투표를 통해 자신의 운명을 자신이 결정짓는다는 교훈을 얻었다. 부안의 미래를 짊어질 일꾼을 스스로 만들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자칫 흐트러질 수 있는 대열을 다시 정비하고 중심을 잃지 말고 투쟁을 해 나가자"고 말했다. 편지글을 낭독한 김 집행위원장의 부인은, "자신한테 보내는 편지는 1장정도인데 부안주민들에게 보내는 편지는 5장이 넘는다"고 말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무대에 오른 연사들. 왼쪽부터 서대석 부안대책위 공동대표, 핵폐기장 반대 투쟁 건으로 수배 중 자진출두 했다가 보석으로 나온 김효중 씨. 구속돼 있는 김종성 대책위 집행위원장의 편지를 읽고 있는 아내. 집행위원장 권한대행 이현민 씨. [참소리]
이어 대책위 보고가 이어졌다. 이현민 집행위원장 권한대행은 "총선 결과에 대해서 여러 곳에서 집행부가 많은 질타를 받고 있고 어려움이 있는 건 사실이다. 주민들도 총선 이후로 주민들간에 분열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그러나 선거는 선거고, 우리의 투쟁은 투쟁대로 한마음으로 뭉쳐서 싸워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4주째 이어지고 있는 김종규 군수퇴진 군청앞 1인시위의 지속적인 진행, 제2의 주민투표 거부 등의 공식입장을 주민들에게 제안했다.
약 1시간 반 가량 진행된 촛불집회가 끝이 나고 주민들은 자리를 정리했다. 저녁 몰아친 소나기로 급격히 날씨가 추워진 탓에 주민들이 적게 나오지 않을까 걱정했다는 한 아주머니는 "목요일날 이 집회를 하는게 아직 많이 안알려져서 그렇지, 이제 주민들이 다시 모이게 될 거여"라며 묻지도 않은 질문을 가로채 먼저 대답한다.
예전에 비해 작아진 무대, 참여 주민들 숫자는 많지 않았지만 자체 주민투표 성사의 자신감과 핵폐기장 백지화를 위한 주민들의 결연한 의지는 여전히 커다랗게 타오르는 촛불집회였다.

▲다시 광장을 놀이터로 삼은 아이들. 언제쯤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참소리]
참소리 편집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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