씩씩이들은 권리 찾기 중

하나.
점심을 마치고 아이들과 비디오를 보는 시간.
일찍 점심을 끝낸 희수, 종현이, 승우, 현성이는 큰뫼반방에 들어와 비디오를 보잔다.
어떤 비디오를 볼지 결정하는데 다수결로 하기로 했다. 요즘 우리 아이들과 무엇을 같이 결정할 때 여러 방법을 쓰지만 대부분은 다수결의 방법을 아이들이 원한다.
종현이는 '둘리'를 보자고 제안했고 희수는 '알라딘'을 보자며 의견이 갈렸다.
그래서 다른 아이들의 동의를 구하는데 그 사이 두어 명이 점심을 마치고 비디오 표결(?)에 합류했다.
4명의 아이들은 '둘리'에 찬성하고 희수와 다른 한 아이만 '알라딘'을 보자고 했다.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둘리'로 결정 된 것이다.
그 때, 희수는 아이들이 모두 모이지 않았다며 이의(?)를 제기하더니 다른 아이들이 조잘거리며 밥을 먹고 있는 거실로 나가 다른 아이들에게 일일이 묻고 다녔다.
"야, 너 알리딘 볼거야? 둘리 볼거야?"
그러더니 알라딘을 보겠다는 아이들에게 "밥 빨리 먹고 알라딘에 손들면 그거 볼 수 있어. 밥 빨리 먹어." 한다.
그 얘기에 다른 아이들은 우-우- 밥을 먹고 후다닥 이닦기를 마치고- 교사들의 끊임없는 잔소리와 먹여주기 보다 희수의 그 한마디는 식사시간을 빨리 마치는데, 그리고 자발적으로 밥을 먹게 하는데 정말 엄청난 효과가 있었다.-, 그 사이에 희수는
"다른 애들은 알라딘 본대요. 이모! 잠깐 기다려요."
나는 이 소동에 넋을 놓고 비디오를 켜지도 못하고 있고 둘리를 보기로 한 4명의 아이들도 분위기에 휘말려 나에게 비디오를 틀어달라고 요구하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러기를 몇 분. 아이들은 득달같이 모여들었고 다시 표결하니 압도적으로 알라딘이 우세했다. 둘리를 보기로 한 아이들에게 사정을 이야기하니 걔네들도 양보한다.
드디어 비디오에서는 알라딘이 돌아가고 아이들은 승리에 찬 미소를 머금고 TV를 본다.
희수의 득의양양한 얼굴은 말 할 것도 없고.

그 뒤로도 몇 번 희수는 아이들을 선동(?)했다.

둘.
나는 내가 그러고 있는지 잘 몰랐다.
어느날부터인가 내가 아이들에게 잔소리를 하면 누군가 한 명은 "이모, 나는 안 그랬는데요?" 하고 자신에게 처해진 부당함에 항의하기 시작했다.
처음에 나는 "누가 너보고 한 얘기야? 00보고 한 얘기지." 라고 나도 짜증스럽게 항변.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들은 여전히 나에게 "이모, 나는 안 그랬는데요?" 한다.
나는 '얘들이 왜 이럴까? 뭔 피해의식이 있나?' 싶기도 했다.
그러나 문제가 나에게 있음을 며칠 전에서야 알아 차렸다.
나는 아이들을 나무랄 때 집단으로 모아놓고 훈시하기를 즐겨(?)했으며 자유놀이 시간에 아이들에게 주의를 주거나 할 때에도 그 아이에게 직접 다가가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눈으로만 그 아이를 쳐다보며 이름도 안 부르고 그 사실만 얘기하는 것이었다.
그러면 그 아이는 찔끔하지만 어김없이 다른 아이가 "이모, 나 안 그랬는데요?" 라고 항의하는 것.
물론 사실 중심으로 아이의 행동을 꾸짖거나 환기하는 것에 대해 나는 긍정적인 평가를 한다. 다만, 누군지 직접 가서 얘기하지 않아 마치 다른 아이들에게도 혼나는 기분이 들게 한다는 것이다.
또 한 두 아이의 실수나 잘못을 전체가 모인 자리에서 애돌려서 얘기하는 것도 우리 아이들에게는 불쾌하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나도 예전에 학교 다닐 때 내가 잘못하지 않은 것 때문에 집단 체벌을 받으면 무지 억울하고 그 시간이 지겨웠을 뿐이니....

그렇다고 이런 나의 습관이 금방 줄어들거나 하진 않았다.
다만, 최근 들어 아이들과의 관계에서 드러나는 갈등을 아이들만의 문제로 보지말고 나를 통해 보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러고 나서 보니 "이모, 나는 안 그랬는데요?" 역시 원인제공은 내가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알면 길이 조금씩 보이겠지.

나의 부정적인 모습이 드러나 괴롭기는 하지만 그래도 난 기쁘다.
우리 아이들이 마냥 어른이나 교사의 권위에 눌려 예전의 나처럼 아무소리 못하고 집단으로 벌 벋고 혼나는 게 아니라 자신의 무죄(?)를 주장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에.
그리고 그 항변이 나를 또 깨워주는구나.

.......

푸념 한마디. 괴롭다. 애들 덕에 깨달음은 늘어가는데 몸은 여전히 말을 안 듣고 비인권적이니......

이경녀(씩씩이어린이집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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