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대 국회를 앞두고 국가보안법(이하 국보법) 폐지논의가 일고 있다. 일관성이 없는 자의적 법적용으로 국보법은 그동안 마녀재판에 비유되어 왔지만 국가안보 논의는 아직도 국보법 폐지에 반대하는 단골논리로 등장하고 있다.
게다가 국보법 폐지는 개혁정당을 표방하는 열린우리당의 개혁법안 44개 항목에도 빠져 있다. 국보법은 다만 통일운동을 하는 이들에게만 걸림돌로 작용하는 법률인가. 10년 넘게 국가보안법과 양심수 문제를 중심으로 인권실태보고서를 내 온 민가협의 송소연 총무를 만나 국가보안법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국가보안법 폐지 논의가 활발하다. 국가보안법의 폐지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국가안보 기능은 형법이 대체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형법과 보안법의 차이가 무엇인가.
국가보안법은 사상이나 양심을 문제삼는 것이기에 법 이상의 무력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형법은 행위에 대한 처벌이고, 국가보안법은 내심, 마음에 대한 처벌이다. 송두율 교수 경우는 형법을 적용해서는 처벌할 수 없다. 정치국 후보위원이라는 이적단체 종사죄를 적용했지만 후보위원 활동에 대한 증거는 드러나지 않았다. 국가보안법은 결국 심각한 국가안보의 위협을 문제삼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내심 즉 양심과 사상, 표현의 자유를 문제삼는 것이다.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의 저술이지만, 저술에 대한 법의 판단은 자의적일 수밖에 없다. 자칭 주사파였다고 말한 검찰 증인이 주사파였을 때 송두율의 저술을 읽고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말했지만, 다른 주사파였다고 밝힌 증인은 송두율의 저술을 보고 회색주의자라고 비판했다고 한다. 표현과 저술에 대한 법의 판단이란 이런 것이다. 표현범죄에 대해서는 언제나 처벌근거가 다시 문제된다.
*보안법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인의 양심과 표현을 구속하는가.
송두율 교수의 국가보안법 위반 논의가 불거졌을 때 언론은 김일성 주석 사망 당시 송 교수가 김정일 위원장과 악수하며 우는 모습을 크게 보도했다. 국가보안법 위반 구속은 이렇게 여론재판으로 뒷받침된다. 송교수가 김주석 장례에 참석해 조의를 표명한 것과 이적단체 종사는 전혀 무관한 것이다. 그러나 여론으로 빨간 칠을 먼저 해 친노동당 인사이고 친북인사일 것이라는 추측으로 몰아가는 것이다. 보안법 재판의 전형이 이번에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그런 과정에서 남과 북을 동시에 사고한 경계인이라는 위치는 사라지고 만다. 경계인의 위치에서 김주석 사망에 조의를 표할 수 있다는 것조차 우리에게는 금기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송두율 교수는 노동당에 가입할 수 있다' 라고 말 할 수 있는 사람이 있겠는가.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는 논리 속에서 우리는 경계를 사유할 수 없게 된다. 어떤 가치판단을 내리기 전에 금기가 내재화되어 버린다는 것이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는 송교수 개인 뿐만 아니라 송교수 사건을 지켜본 대다수 사람들의 사상과 양심을 검열하는 금기의 지대를 확장한다
*보안법이 그동안 정권유지용으로 기능했다는 지적이 있다. 이러한 지적은 참여정부에도 그대로 적용되는가.
48년 좌우 이념대립 하의 상황에서 제정된 국가보안법은 여순항쟁, 제주항쟁을 겪으며 남로당의 좌익세력을 척결하기 위해 제정된 법이다. 그러나 전쟁이 터지고 좌익단체가 실질적으로 궤멸된 상황에서 이승만 정권은 정권안보를 위해 58년 강력히 개정하게 된다. 이때부터 군사정권 시까지 국가보안법의 성격은 정권안보법이라고 봄이 맞다. 정권이 정치적 반대자를 처벌하고 의사표현을 금지하기 위해 이적단체 찬양, 고무 라는 7조를 추가하게 된다. 그리고 80년대 전두환 정권 시절 다시 한 번 개정돼 국가보안법은 현재의 모습을 띠게 된다.
실제 군사정권 시절을 조사해보면 정권의 위기상황에서 간첩사건의 수치, 보안법 위반 수치는 증가한다. 그러나 절차적 민주주의가 가능하다는 참여정부에 와 국가보안법은 정권안보라기보다는 정부에 대한 다른 의견은 용납하지 않겠다는 쪽으로 기능하게 된다.
참여정부에 들어와 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된 79명 중 대다수가 한총련 소속 대학생이다. 국가보안법 상 한총련은 이적단체이다. 주한미군 철수, 연방제, 평화협장 체결 등 한총련의 주장이 북한의 주장과 동일하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북한과 동일하다고 해서 북한을 찬양하는것이라고 볼 수 있는가.
통일방안에 대해서는 사회 각계가 모두 다른 의견을 낼 수 있는 것이다. 서로 다른 의견 속에서 국민적 합의가 나오는 것 아닌가. 미군철수 문제만 해도 철수하라는 주장이 곧 국가안보의 위협이 되지는 않는다. 국가보안법 안에서 정부가 원하지 않는 의견은 모두 이적단체 찬양, 고무가 될 수 있다.
주장과 의견을 처벌하겠다는 것은 결국 전국민을 통제하에 두겠다는 말이다. 주장을 처벌하는 것은 처벌의 근거가 모호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내심을 통제하는 기제 속에서 다른 의견은 그동안 좌익이 되고 용공이 되었다. 의약분업, 금융실명제, 정간법 개정 모두 좌익의 논리라는 혐의를 한번씩 거쳤다.
*한참이나 시기가 지난 사건, 공소시효를 얼마 남기지 않은 사건으로 구속되는 사례도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국가보안법이 국정원 등 공안기관의 조직유지로 이용되는 측면도 있는가.
건학투위(건국대학생 투쟁위원회) 사건은 2002년 노동절을 앞두고 일시적으로 만들어진 조직인데 활동 이후 1년이 지난 시점에서 과거행적을 문제삼아 구속시켰다. 진보의련(진보와연대를위한보건의료연합) 사건 역시 실제적인 활동이 없는 단체 회원들을 기소한 경우이다. 진보의련은 2000년 해체를 논의하고 8월 사무실도 폐쇄했음에도 2003년 유죄를 선고했다. 보통 한 명을 구속하기 위해 수사기관의 5명이 수개월간을 붙는다.
아주대 자주대오 사건 역시 총학생회 활동을 같이 한 선후배 학생 14명 가운데 11명을 구속한 사건으로 자주대오가 학생회 조직체계와 다르지 않고 관련자가 자주대오 조직구성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점 등으로 볼 때, 전 현직 학생회 간부들이 총학생회 선거를 논하는 회의체계를 무리하게 조직사건으로 확대한 것이 아닌가 한다. 결국 구속수사를 남발하는 수사당국의 관행이 저지른 일로 여겨진다.
*국가보안법 찬성론자들은 국가안보를 내세운다. 우리사회의 사상과 신념의 조절 장치는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사상과 양심은 법률로 처벌될 것이 아니라 시장 안에서 토론되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보안법 옹호자들이 그토록 수호하고자 하는 자유민주주의는 사상의 자유시장을 보장해야 하리라고 생각한다.
*끝으로 마녀재판 식의 국가보안법으로 심각하게 인권이 침해된 사례를 이야기해달라.
79년 박동운 씨가 간첩혐의로 구속이 되었다가 81년 진도간첩단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98년까지 17년을 살다 나온 사건이 있다. 박동운 씨 아버지가 전쟁 때 행방불명이 되었는데 당국이 월북을 주장하는 것이 유일한 혐의이다. 이 일로 박동운 씨 어머니는 물론 일가친척 피붙이가 모두 감옥살이를 했다. 안기부가 고문을 했음은 물론 재판과정엥서 변호인도 조력할 수 없었다. 그러나 문제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보안법 4,5,6,9 조항 위반으로 3년 이상 징역을 산 경우에는 평생 경찰의 보안관찰 속에 살게 된다는 것이다.
보안관찰 안에서 한 개인의 인권이 보장받을 수 있겠는가. 조작을 호소해도 아무도 나서줄 수가 없다. 명예회복을 하고 싶어도 현재 재심제도가 까다로워 할 방법이 없다. 이것은 국가보안이 아니라 한 개인을 철저하게 파괴하는 무소불위의 국가권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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