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쟁과 밥>, 조갑제가 와도 밥해줄 수 있다

한끼의 식사는 대접하지 못할망정 쫓아내지는 말아야죠

▲투쟁과 밥, 5개월간 요리실력은 늘었다고 말할 수 없다


투쟁과! (투쟁과밥 외치고)
밥! (이주농성자 외치고)
투쟁과!
밥!
투쟁과!
밥!
투쟁을 위한 밥을! 밥을 위한 투쟁을!

구호 한번 짧고 화끈했다.

"농성단에게 일주일에 한끼의 따뜻한 식사를 대접하자." 대접하자... 이렇게 말하니 농성단이 이 사람들 집에 놀러온 손님 같다. "식사 대접은 못할망정 쫓아내지는 말아야지요." 말이란 마음을 반영하는 것. 대접하는 마음을 갖고 보면 누가 누군가를 불쌍히 여겨 동정하는 관계란 있을 수 없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일 뿐. 무릇 함께 밥을 지어 먹는 일 속에는 친교의 마음이 들어있지 않던가. 싫은 사람하고는 죽어도 먹기 싫은 것이 밥이고 보면.

하필 비가 내리고 있었다. 5월 18일 화요일. 오후 5시쯤 도착하자 이미 큰 들통에는 생선과 흰무가 가득 담겨 새빨갛게 우러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다행히 천막이 쳐진 노천부엌에서는 집에서는 맨날 라면만 끓여먹을 것 같은 세 총각이 총각 무를 바가지에 넣은 채 홍야 홍야 이야기를 해가며 가위로 썰고 있었고. 한 두 명이면 부리나케 할 수 있는 일을 한 여섯이 모여 이 얘기 저 얘기 하며, 괜히 들통 뚜껑 열어봐가며 시간 죽이고 있었다.(라고 표현해야 딱 들어맞을 상황을 연출하고 있었다.)

시간 죽이기. 아, 실은 내가 얼마나 하고 싶은 일인가. 아무것도 안 하는 것처럼 보이나 실은 모든 걸 다하고 있는 경지... 음, 그건 그렇고.

이렇게 허당이니까 여기까지 왔지

게시판에 누군가 제안을 했고 거기에 한 사람, 두 사람 붙기 시작했다. 그래서 모여서 얘기를 했다. 돈은 어떻게 모으지? 어디서 밥을 하며. 당번은 돌아가면서 해야할까? 그치만 논의내용대로 굴러간 건 별로 없다. 그래서 지금은 밥짓는 사람? 안 정해놓는다. 물론 자발적 책임자 두명이 있긴 하다. 그치만 그렇다고 이 사람들 둘만 모인 적도 없다. 최소 6명 이상 많게는 20명 정도 모인다. 밥 다 먹고 난 뒤에도 어디선가 사람들이 나타나곤 한다. 오늘도 IT 노조 사람이 오겠다고 전화가 왔다. 도대체 뭘 숨겨 논 걸까? 수첩 꺼내 정색하고 이야기듣기가 영 어색할 것 같다.

그래도 아줌마 파마하고, 수염 기르고, 머리 길러 묶고, 티셔츠 뒤집어 입는 이 사람들, 농성시작하자마자 밥 짓기 시작한게 여태 한 주도 거르지 않았다.(딱 한 주 걸렀지만 그때는 농성장에 사람이 없었으니까) 처음에는 농성장에 부엌이 없어 어느 집에선가 밥을 해 스티로폼 박스에 담아, 국도 그렇게 담아 명동성당까지 날랐다.

처음에는 돈도 없었다. 얘기 들어보니 이 사람들 삼만원 가지고 한 달을 사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길거리로 나섰다. 꼬물꼬물 자기 물건 꺼내 들고. 그리고 홍대 앞에 좌판을 벌였다. 장사? 당연히 파리 날렸지. 그래서? 집회장으로 갔다. 모금함 앞에 차고. 근데 돈이 많이 모였다. 집회 끝나고 떼거지로 명동성당 옆 샬롬 커피집으로 갔다. 그리고 기쁜 마음에 당장 돈통 뜯었다. 10명이서 달랑 1500원짜리 토스트 한 개 시켜 놓은 채. 종업원은 눈을 부라렸지만 끝까지 만원짜리 지폐를 세고 또 셋다. 그 뒤 종업원이 한동안 계속 째려봤지만 개의치 않고 줄기차게 그곳에 갔다. 그래도 지금은 10명이 가면 커피 석잔 정도는 시킨다. 무슨 힘으로 여기까지 왔냐고? 더 이상 말이 필요치 않았다.


밥이 다 지어졌는데 밥물이 조금 부족했다. 그리고 생선찌개는 달았다. "맛이 왜이래?"

"이렇게 허당이니까 여기까지 왔지" 그리고 누군가는 '좆도 아니기 때문에 여기까지 왔다'고 말했다. 우리는 대단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아무것도 아닌 인간들이기 때문에.

권위가 어떻게 치장되는지 뼈속깊이 아는 걸까. 유식한 말은 절대로 안쓴다. 그러다가 다시 툭 던진다.

"샤말타파 잡아갈 때, '이주노동자인 네가 왜 반전집회 가냐?'라며 테러리스트로 낙인찍어 잡아갔어요. 그 말이 뭐에요? 외국인노동자는 생각없이 와서 일만 해주는 사람이란 말이잖아요."

"이 사람들과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인간이면 마땅히 누리고 살아야하는 것이에요. 굳이 국가, 자본이라는 개념 빌리지 않더라도 저항하는 것은 당연해요. 내가 아나키스트라고 말하는 것과 조갑제가 휴머니스트라 말하는 것이 뭐가 다르죠? 그런 규정이 도대체 뭘 해주겠어요?"

"인터넷 뒤져보면 안티 이주노동자 사이트도 있어요. 안티라고 미리 규정을 짓고 있죠. 그럼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어요. 그것을 만들기 위해서라도 여기 한번 와 봐."

이들은 며칠 전 화염병과 쇠총(사람을 겨냥해 쇠구슬을 날리니까)으로 무장한 용역이 처참하게 할퀴고 간 풍동 철거촌 골리앗에 아침식사를 조달하기 위해 긴급 임시소집된 적도 있다.

"현실은 처참하죠. 친구가 풍동 현장 안에서 촬영을 해서 봤어요. 그 현장은 전쟁이 진행중인 팔레스탄인 고립 현장과 다를 바가 없었어요. 총만 알들었을 뿐. 아마 총을 들 수 있었다면 총을 들었을 거예요. 도대체 누구를 위해 아파트를 짓겠다는건지... 그치만 우리는 맨날 울고 있는 건 싫어요. 투쟁은 즐거워야 하니까. 일상적인 일이잖아요. 우리는 신나는 게 좋아요."

살면서 정말 필요한 건 새로운 눈이다. 말도 안되는 상황에 길들여지지 않을 새로운 눈. 감각이 살아 있는 한 최소한 속아넘어가지는 않는다. 유쾌하고 진지한 허당들. 말이 짧고 명쾌한 게 내공이 만만치 않아 보였다.

혼자 독박을 쓰는 한이 있어도 '자발'과 '의지'앞에 당당하다

"'공동의 지적 논의'가 있어야 한다. 그거 망상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어느 누가 있어야 일이 잘 돌아간다.' 이런 생각은 자신을 너무 깔보는 생각 아닌가요?"
그래서 이들에게는 전체의 이야기가 없다. 대빵은 당연히 없고. 그래서 아무도 서로를 대변하지 못한다. 그러나 '자발'과 '의지', 순전한 자발적 의지 때문에 일을 벌여놓고 혼자 독박을 쓰는 한이 생겨도 이 두가지 만큼은 어디가서라도 분명히 이야기한다. 음, 엄살의 알량함을 알고 있구나. 쿨하다는 느낌이 이렇지 않을까. 따뜻한 쿨함.

다섯 달이 지났지만 그래도 음식맛은 예나 지금이나 별 차이가 없다. 음식맛 맞추느라 스트레서 받느니 찌개 끓는 동안 옆에서 체스 두고, 딴 사람이랑 장난치고, 처음 온 사람한테도 계속 농담을 늘어놓는다. 처음에는 "뭐 이런게 다 있어" 싶지만 결국 이 분위기에 말려들고 만다. '근데 다음주에 또 와도 되니?' 싶은 심정까지 들면서. "우리는 조갑제가 와도 밥 지어줄 수 있어요."근데요. 대신 꼭 여기 와봐야 돼요."

식사가 끝나자 이주노동자들이 저녁집회를 시작했다. 누군가 "투쟁과 밥" 연대발언하라며 소리질러 부른다. 음, 오늘 이 허당들이 하는 연대발언까지 들어볼 수 있겠군.

"이 사람들 처음에는 자기네끼리 놀았어요. 이주노동자에게 다가가 말걸려고 노력도 안 하고, 친한 척 하지도 않고. 그래서 사람들은 처음에 '이 사람들 과연 얼마나 갈까?'하는 눈으로 바라봤죠. 하지만 한 주도 거르지 않고 계속 오자 사람들이 덩어리로 인정하더군요. 왜냐면 끈질기게 들러붙으니까."

연대발언하러 떼거지로 앞으로 나간다. 누가 발언할지도 정하지 않은 모양이다. 마이크를 잡고서 "투쟁과"를 외치니, 자연스럽게 이주노동자가 "밥"을 외친다. 저 뱃속 깊숙이에서 웃음이 터져올랐다. 이보다 더 간명하고, 분명하고, 모든 걸 압축하면서도 날카롭고 소박한 구호가 있을까. 밥. 이 한 글자 안에는 욕심의 흔적이 들어있지 않다. 누가 와도 밥 한 공기라는 날카로운 진리.


"저희가 여러분들에게 무슨 도움이 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치만 외롭게 투쟁하시는 분들 옆에는 항상 있겠습니다. 우리는 여러분에게 계속계속 관심있고 이주노동자 여러분의 투쟁이 우리의 투쟁이고, 이주노동자의 고통이 우리의 고통이고, 이주노동자의 승리가 우리의 승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열심히 투쟁해서 이주노동자 여러분의 고통과 승리가 우리의 고통과 승리가 될 때 투쟁은 즐거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은 '투쟁을 위한 밥을, 밥을 위한 투쟁을' 이랑 좀 더 긴 구호 하나 외치겠습니다."

"자본가에게 자본을 뺏어 자본가에게도 해방을 안겨주자!"

자기가 생각해도 웃겼던지 설명을 덧붙인다.

"너무 많이 먹어 배때기에는 기름이 차고 넓은 집에 혼자서 자야 하는 자본가들은 얼마나 외롭겠습니까? 그래서 그들에게 민중의 해방을 안겨주자는 의미에서 외친 구호였습니다. 다음 주는 육개장입니다."

목소리가 땅땅하다. 물론 여기 와 밥 짓기 시작하자마자 앞에 나가 지지발언하고 구호외치고 반자본을 이야기하고 그러지는 못했다. 여기서 저녁집회하면 옆에서 북치고 놀고 그랬다. 하지만 이주노동자들이 잡혀가는 것을 실제로 겪고 하면서 자연스럽게 이주노동자의 문제가 이들에게 익어지게 되었다.

"그냥 다른 건 없고. 인간 대 인간이라는 동일선상에서 생각해요. 우리가 싫어하는 건 이주노동자도 싫어하잖아요. 그래서 투쟁을 하는데 뭔가 필요한 게 있으면 우리 방식대로 함께하자. 무리하게 큰 것 하려 하지 말고."

"빡빡하게 살지 말자. 돈 한 푼 없더라도 즐겁게 살려고 하자."이게 이들의 색깔 같았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소수자 문제에 끊질기게 관심을 갖자."

그래서 이곳에 나타나 숟가락이라도 하나 들어주면 다 투쟁과 밥이다. 어느 날 매주 나오던 누군가 말 한마디 없이 증발하더라도 마음이 조금 섭섭할 뿐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절대 권력관계를 집어넣어 연대하지 말기. 이들이 어떤 규정 앞에서 거의 본능과도 같은 거부감을 나타내는 건 이때문인 듯 싶었다. 능률을 내세워 아무도 억누르지 않고 싶어서. 어떤 조직이 만들어지는 순간 자연스럽게 권위가 형성되지 않던가. 뼈속 깊은 젊은 반골들을 만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조롱할 뿐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젊은 반골.

저녁집회가 끝나고 나서도 들머리 광장에서 한참을 놀더니 집에 돌아가기 전 다들 헝겊 한무데기씩을 가방에 챙긴다. 면월경대를 팔아 밥 기금의 안정적 지원을 해주는 '훌륭한' 피자매연대의 일을 나눠갖기 위해서다. 집으로, 샬롬으로, 누군가의 사무실로, 처음 본 나에게도 손을 흔들며 떠나간다.

우리 오늘 처음 만난 거 맞니? 월경대 만드는 젊은 총각들 잘들 돌아가라. 다음주 일 빨리 끝내면 또 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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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자 , 투쟁 , 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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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ob

    재밌는기사 잘 보았습니다.

    그래도 조갑제 한테는 밥주지 마세요

    그런 놈은 굶겨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