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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29평택축제를 앞두고 |
평화유랑단 '평화바람'은 문정현 신부가 없었다면 장장 6개월에 걸친 거리유랑을 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누군가는 평화를 묻자, 문정현 신부를 빗대 얘기하기도 했다. "마음이 불끈불끈한 사람이다. 그렇지만 다른 이의 말을 주의 깊게 듣고, 스스로 바꿀 수 있는 사람이다. 평화바람이 기타연습을 하고 있으면 신부님은 굉장히 배우고 싶어한다. 그럴 때는 아직도 배우고 싶은 열의로 충만한 어린애 같다."
주말이면 유랑단을 떠나 전주 <작은자매의 집>(정신지체 아이들과 수녀님들이 함께 사는 집)에서 묵고 오시는 신부님은 평화바람 곁으로 돌아오면 꼭 물으신다. "주말 동안 나 보고 싶지 않았니?" 그리고 사내자슥이 식사당번에 걸리면 식탁앞에서 이러신다. "야, 네가 밥을 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내가 과연 저 밥을 먹을 수 있을까 싶었는데, 막상 먹고 보니, 너무 맛있다. 네가 해 준 밥에 감동받았어."
평화바람은 심하게 말해 무대공포증인 사람도 여럿 있다. 그런 이들이 남들 앞에서 놀아보겠다고 나선 것이다. 그래서 바람불고, 비 내리고, 날이 너무 좋아도 흔들릴 때가 많다. 오늘 꼭 무대에 서야 하니? 그런데 신부님이 무대에 서면 이런 마음이 쏙 들어간다. 60대의 신부님이 북도 치고, 노래도 하고 연설도 하는데, 할 때마다 그냥 하는 것이 아니라 온 힘을 다해서 한다는 것이 옆의 사람에게 그대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평화바람에서 만난 두 사람은 문정현 신부는 생각과 행동이 별개로 구별되지 않는 사람이라고 했다. 문제를 느끼는 순간 행동에 나선다고 했다. 어떤이는 이를 두고 판단이 빠른 것이라고도 했다. 군산의 미군기지 반대운동에 나섰던 것도 그것이 대단한 군사전략을 담고 있고, 한반도 평화에 복잡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 아니다. 왜 내 나라 땅의 활주로의 유지비와 사용료를 미군이 대폭 올리고, 그것을 한국군이 다 지불하고 사용하나? 그러니 물러가야 하지 않나? 이렇게 출발해 점점 생각을 확대시켜 나간다.
흔히 평화롭기 위해서는 사는 모습은 점점 단순해야 한다고 말하곤 한다. 문정현 신부에게 그 단순함은 '자주'라는 말로 요약되는 것 같았다. '자주'를 지킬 수 있다면 복잡하게 미군이 이 한반도에 와서 많은 문제들을 일으키고, 나와 너 사이에 제 삼자가 와 어려운 말로 감놔라 배 놔라 할 필요가 없다는 것.
문정현 신부님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신부님의 이야기 속에는 '자주'와 '희생'이 어느 각도에서도 빛을 발하는 유리조각처럼 박혀 있었다.
희생만이 많은 이들의 마음을 울릴 수 있구나
"효순이 미선이 촛불집회, 그리고 엄마 아빠의 무등을 타고 함께 온 아이들, 그들 손의 촛불, 참 아름다웠어. 그리고 그것이 변화를 가져올 듯 했지만, 노 당선자가 그 불을 꺼버렸지. 이후에 삼보일배를 죽 지켜보면서 우리의 희생이 없이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어. 희생만이 많은 이들의 마음을 울릴 수 있구나. 부안 핵폐기장 저지싸움에 남, 녀, 노소, 어떤 신분이 됐건 함께 모일 수 있는 기적을 낳은 큰 힘도 바로 그때문이었구나.
그 영향으로 반미집회에는 빠지지 않았던 내가 유랑이라는 평화바람의 형식으로 각 지역의 주민을 만나러 다녔어. 직접 만나지 않고는 안되겠구나 싶었지.""부안싸움을 보면 70∼80년대 계급운동이 됐든, 민주화운동이 됐든 당시 길을 닦았던 사람들이 있었어. 이후 한계에 부딪쳤건 자발적으로 길을 바꿔보았건 농민, 노동의 운동을 체험을 지니고 있던 그 사람들이 부안, 변산, 줄포, 진서, 곳곳에 박혀서 유기농운동, 생협운동, 또 공동체를 세우고 활성화하는 노력을 하며 좌절하기도 하고 희망을 갖고 있기도 했지. 그 사람들이 핵폐기장 사건으로 마피아를 만난거야."
"한국수력원자력 주식회사인 한수원, 산업자원부와 청와대, 그리고 한수원의 장학금을 받고 연구하는 학계, 그리고 공사를 수주하는 재계업자 이렇게 구성된 마피아 말이지. 태평양을 횡단하는 이 핵잠수함이 멸치떼를 만나 멈춰 선거야. 이 멸치떼가 어떻게 핵잠수함을 멈추게 했는가."
"지역 지역에 박혀 있던 과거 운동가들이 전면에 버티고 서서 끝내 물러서지를 않더라구. 두 개의 큰 덤프트럭이 막고 서서 손이 올라오면 군홧발로 밟고, 얼굴이 올라오면 방패로 찍고, 몸이 올라오면 떠밀고 했는데도, 웃옷을 다 벗어제치고 끝내 물러서지를 않았어. 그리고 그렇게 싸우는 모습을 6천명, 7천명 되는 주민들이 다 지켜봤어. 그러는 가운데 의분이 일어난거지. 누군가는 끝까지 버티는 모습을 보여준거야. 그래서 결국 노약자와 어린이까지 2만명이 모였어. 2만명이면 군민 다야. 한마디로 공분이 난거야. 물반, 고기반의 상황인데 기가 꺽일 리 없지."
"한, 미 관계에서도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겠어? 우리나라 군인 3600명을 일방적 통보로 끌고 갔잖아. 그건 일방적 통보나 다름없어. 그런 사람들은 우리 정부와 관계없이 전쟁을 일으킬 수도 있어."
끝까지 버티니까 저들의 본질이 드러나는 거야. 저들이 말하는 도덕성의 추악함이
"부안의 기가 꺽이지 않는 싸움, 또 이라크 전도 그래, 이라크인들의 희생이 아무리 많다 하더라도, 지금 미국의 일방적인 군사패권에 저항하고 있잖아. 그렇게 끝까지 버티니까 미국의 본질이 드러나는 거야. 저들이 말하는 도덕성이 얼마나 추악한 것인지 말이야."
"노무현 당선자도 당선 전과 후가 다르더군. 당선이 되고 나니 북핵은 생존이고, 소파는 자주인데 생존이 자주보다 앞선다 그러더구만. 그래서 약속이나 한 것처럼 노사모가 다 빠져나가고 자주의 촛불이 사그라졌지."
"그런데 자주를 포기한 생존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 여중생이 죽어나가도 아무말 않고 있는 것이 생존이야? 종속과 굴종은 살아있는 상황이 아니야. 자주는 우리 삶의 시발이야. 북핵문제도 자주할 때 풀릴 수 있다고 생각해. 국제사회에서 우리 목소리를 낼 수 없는 것도 미국에 종속되어 있기 때문이잖아."
"74년 이후 마음에 와 닿는 부분이 있어서 한-미 관계에 있어 약자의 편에 서 왔는데, 이제는 확신도 있고 예감도 들어. 결국 죽어야 산다는 게 맞아. 희생이 없이는 살 수가 없어. 어떠한 희생을 각오하더라도 자주적 국민이 되어야만 후세에 무엇인가를 남겨줄 수가 있어. 이 산천이 되었든, 문화가 되었든. 결국 자주가 우리의 유산이야. 고통받는 사람, 소외된 사람을 위해서 죽을 각오를 한다면 그 삶이 죽을 수는 없어. 목숨은 없어질지라도 결국은 살아남는거야."
"유랑을 하며 시민사회단체와 간담회를 하고 이주노동자의 농성장이나 노동자의 투쟁사업장, 그리고 환경문제로 몸살을 앓는 지역, 그리고 장애인 시설 등을 찾아다녔어. 죽 다니면서 자주를 위한 뜻의 폭이 넓어졌다는 확신을 갖게 됐지. 장애인 시설의 스스로 일어서려는 의지를 봐도 그렇고, 노동자들의 서로 결집하는 강한 힘, 멸종위기인 맹꽁이 군락지의 개발에 맞서는 힘을 봐도 그래. 다양한 활동을 하지만 밑바탕은 같아.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 그런 사람들이라 한-미 간의 이야기를 해도 쉽게 이해를 해. 난개발이라는 것도 결국 가진나라로부터 온 영향이라는 걸 금방 안다구."
"70∼80년대 사회복지를 하는 사람들은 민주화운동 하는 투사를 거칠게 보고, 반대로 운동하는 사람들은 사회복지하는 사람들을 큰 걸 모르고 적은 것만 보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가까이 못했던 그런 벽들이 무너진다고 생각해. 서로 근본을 생각하는거지. 점점 살기는 어려워진다고 말하지만 그럴수록 가야 하고, 생각해야 할 것은 근본이야. 어려운 사람끼리 서로 사랑하고 자주하는 마음. 그래서 이제는 만날 시점이 되었다고 생각해." "평화바람도 참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어. 나이도 20대부터 60대까지. 종교인서부터 생태, 평화, 교육, 노동운동 등 여러 방면에서 모였지. 근데 별로 재능이 없어. 그저 자기가 연습한 것 보여주는 수밖에 없지. 전문가가 아니라서 사방에서 쉽게 서로 어울려지는 것 같애."
"어디를 가든 텐트를 치고 밥도 다 해먹으려고 했는데, 30여개가 넘는 도시에서 모두 숙식을 마련해 줬어.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구나 하는 걸 느꼈지. 그런데 다니다보니, "나도 이런 거 한번 해보고 싶었다."라고 말하는 인사들이 의외로 많아. 그 사람들이 지금 당장은 같이 하지 못하지만 첫발은 떼놨다고 생각해. 바람이야 더 불면 좋겠지만."
사거리, 오거리 어디가 됐든 소리나는 모든 걸 가져다 우리식대로 놀아보자
"처음에는 5.29 축제를 있는 그대로 여태 해온 이들이 이끌어 가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평택 사정상 대책위가 주가 되는 것이 좋을 것 같았고, 그쪽 의견이 더 많은 주민들이 참석하려면 유명가수들을 섭외해야 하지 않겠냐고 해서 그렇게 했어. 그런데 섭외하는 게 하나도 어렵지 않았어. 다행히 그동안 죽 돌고 온 지역들에서도 반응이 좋고."
"시 당국이 끝까지 장소 허가를 내주지 않았지만, 우리는 평택역이 됐든, 시청앞이 됐든, 사거리, 오거리가 됐든 나름의 문화행사를 하겠다고 했어. 부안에서처럼 소리나는 모든 걸 끌어다 어디든 두들기자고. 우리의 이런 의지가 경찰로서는 부담이 됐겠지. 결국 평택종합경기장도 아니고, 주차장으로 장소가 마련됐지만 근데 그 정도 넓이면 족하다고 생각해. 흩어져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개별적으로는 작겠지만, 한 자리에 모이면 천둥과 같지 않겠어? 얼마나 많은 이들이 초대에 응하느냐가 관건이겠지."
문정현 신부님이 틈틈이 강연을 해 모아둔 돈이 다행히 유랑단의 꽃차를 마련할 정도가 되었다. 하지만 5.29 축제에 필요한 경비 2천만원 중 지금 모인 돈이 1천5백만원 정도이다. 비록 가진 것은 없지만 아무쪼록 그날 가서 신나게 놀아보자. 지금 시청, 경찰은 물론 심지어 안기부까지 지역기자들에게 전화를 걸어 5.29 평택축제에 대해 이것저것 캐고 있다고 한다. 다시 복잡한 것을 바라는 이들이 끼어들어 선거운동이니 뭐니 이름을 붙여 사람들의 놀고 싶은 힘을 잘게 쪼개려 하고 있다. 낮고 없는 사람들이 서로 만나 대화를 나누고 힘을 주고 흥을 돋구는 자리이다. 평화바람 중 어떤 이는 나누면 나눌수록 커지는 것이 흥이라 했던가.
놀아보자. 구경만하지 말고 내 판이라 생각하고 놀아보자. 모든 판은 내 판이 될 수도 있고, 네 판이 될 수도 있다. 산수에서 찾을 흥취, 사람들 사이에서 찾을 수 있다면 더 좋겠지. 거칠 것 없어지는 마음이 흥이 아니던가. 외국군대가 농군들의 논과 밭을 점령해 들어오려는 그곳에서 함 질러보자. 우리는 너희들 없이도 자주적으로 잘 놀고 먹고 일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 크게 고함쳐 보자.
*529 평택축제에 참가를 원하시는 분은 홈페이지(www.pt529.net) 참가접수게시판에 글을 남기시거나, 박성희(019-9141-3612)나 문만식(011-9438-0993)에게 직접 연락하셔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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