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9평택축제, 숟가락 쥐고 미군 담벼락 뚜등김서 놀꺼여

평화바람유랑단, 흥이 나야 투쟁도 길게 하지

▲평화유랑단 <평화바람>


"본무대 끝나믄 엠프도 안 틀꺼여. 한 손에 숟가락만 있음 되어. 미군기지 담벼락이락도 뚜드림서 신명나게 놀믄 되잖여. 춤도 춰 보고, 꽹매기도 뚜디려 보고. 아 그렇게 흥이 나야 담날 인간 띠 잇기도 혀고, 행진도 할 것 아녀. 흥이 아님 뭔 힘으로 허겄어."

<평화바람>(평화유랑단 '평화바람')에서 만난 보리씨는 사실 사투리를 쓰지 않는다. 구수한 사투리를 쓰기는커녕 너무도 맑은 목소리로 따라 부르기 힘든 엘라니스모리셋의 노래까지 청산유수로 불러제친다. 전북 평화인권연대 사무실에서 일하다가 부안싸움을 거치며 평화바람을 알게 되었다는 보리. 미군문제도 새만금의 삼보일배나 부안 핵폐기장 싸움처럼 일년이면 일년, 끊질기게 사람들과 직접 만나 이야기를 해보자는 평화바람의 뜻도 마음에 들었지만 노래하고 음식을 나눠먹고, 춤추며 사람들과 만난다는 것이 더 마음 설레었다는 보리.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노래와 춤을 좋아해요. 잘 드러내지 않을 뿐. 뒷풀이해봐요. 우리보다 못 노는 사람 아무도 없어요."

하지만 529평택축제를 4일여 앞둔 25일, <평화바람>은 잠시 공연을 접었다. 이들의 엿장수 닮은, 마을에서 마을로 도는 남사당패 같은 공연을 보고 싶었는데 너무 늦게 찾아온 걸까. 단원들도 많이 흩어져 있긴 했다. 누구는 걸개그림 그리러, 누구는 자원활동가 꾸리러, 또 누구는 대책위(미군기지확장반대 평택대책위) 활동하러. 그래서 차려주는 점심부터 얻어먹고, 긴 유랑으로 다소 지친 듯한 이들 곁에 무작정 눌러 앉았다. 얘기야, 얘기야, 풀려나와라.

"테레비는 기본적으로 실수를 안 해. 실수하면 다 편집하잖아. 근데 그렇게 실수 안 하는게 우리 삶이야? 오히려 정 반대잖아. 맨날 실수하며 사는 게 우리라고. 그래서 나는 연극이 좋아. 배우들이 침 튀면 나 한테 다 묻어. 그리고 저 배우들이 실수를 할까 안 할까 조마조마 하기도 하고 말야. 무대와 관객 사이에 이어지는 긴장감이랄까. 그렇게 같이 호흡하는게 좋아."



팔공(팔공산)은 공연 다니며 실수하는 게 더 재미졌던 것일까. 나름의 실수예찬론까지 들어가며 사람들과 직접 만나고 싶은 마음을 드러냈다. 하지만 언제나 만나는 이웃이라도 잠깐 발걸음을 멈추고 우리 얘기를 해보자고 말걸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기껏 노래방에나 가보았던 맹물들이 노래배우고, 기타배우고, 북을 배우지 않았겠나. 그래도 실수를 좋아한다는 팔공 씨는 별 걱정이 없어 보였다.

"내가 가진 것이 없는 만큼 다른 사람을 배려할 수 있다고 생각해. 가진 것이 없으면 그만큼 지킬 것도 없잖아. 한 마디 할 것 두 마디 하고, 한 사람 만날 것 두 사람 만나고. 이 소중한 사람들 어디가서 또 만나겠어."

"다녀보면 유랑하고 다니는 것 자체를 부러워하는 사람들이 참 많아. 도시라는 게 큰 철문으로 차단된 문화잖아. 그래서 우리가 되게 자유로와 보이나봐. 정해진 틀 때문에 많이들 괴로운거겠지."

"죽 다녀보니까, 평화도 다른 게 아니야. 노동자에게는 고용불안이 없는 것이 평화이고, 밥 굶는 사람들은 먹을 것 걱정 없는 것이 평화이고 외국군대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들은 외국군대가 물러가주는 게 평화야. 각자의 영역에서 중요한 평화가 있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같이 할 수 있는 합일점을 찾는 거겠지."

"경쟁과 시기와 질투에 휩싸여 있는 한 내면의 평화는 오지 않는다고 생각해. 이런 마음은 결국 '내가 살기 위해서'로 귀착되기 마련이거든."

이건 너무 어려운 주문이다. 그치만 평화바람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있다. 노동, 생태, 인권, 교사출신에, 종교인까지. 부안싸움을 거치고 나서 교사출신이던 잎싹이 학생들 스스로 현실을 보고 스스로 조직할 수 있는 운동을 만들고자 <학생인권투어>라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고 이 생각이 사람을 직접만나고 싶었던 문정현 신부님을 만나 평화유랑단을 꾸미게 된 것이다. 이 두 사람 곁에 한 사람, 두사람씩 더 모여 총 9명의 유랑단이 만들어졌다. 30여개의 도시를 돌며 투쟁사업장에서는 위문공연단처럼 같이 놀았고, 거리로 나가서는 바쁘게 지나가는 시민들에게 노래를 들려줬다. 밤이면 지역시민사회단체와 간담회를 열어 평화이야기를 나눴고.

운동 안되기로 유명한 대구에서 많이 배웠다

이들은 최대한 말을 자제했다. 왜냐면 사람들의 발걸음을 10분이라도 멈추게 하고 싶었기 때문에. 대구에서 배운점이 많았다고 했다. 운동이 안되기로 유명한 대구. 그래서 역으로 사람들 마음에 직접 다가가는 방법을 가장 선진적으로 고민하고 있었다는 대구. 대구의 '땅과 자유'를 통해 꾸려진 모임들은 유랑단을 기다려 이미 판을 다 만들어 놓고 있었다.



"불어라! 평화바람"이라는 주제아래 다양한 바람개비 만들기, 엽서쓰기, 연극, <군인은 집에 가고 싶다> 퍼포먼스, 아이들이 만든 조형물, 페인팅, 풍선 등 평화바람을 맞아 분에 넘치는 판이 벌어졌다. 낮에는 직장에 나가고 자기 흥으로 밤에 모여 자발적으로 모임을 꾸려가는 땅과 자유가 이 많은 판을 꾸렸다. 이 자리에서 알게된 대구거리문화시민연대는 때론 이슈를 만들지 않더라도 5년째 거리 위에서 놀아오고 있다고 했다.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이미 놀만한 거리가 사라졌다고 했다. 천안 터미널 앞에서는 인도에도 설 수가 없었다. 터미널 건물에 들어선 백화점이 인도까지 자기네가 매입한 땅이라고 쫓아냈기 때문이다. 이렇게 아름다운 꽃차와 기타와 탬버린을 손에 든 사람들을. 옛날에는 역 앞이 광장이지만, 지금은 역 앞이 백화점 앞마당이다.

그저 보고 있어도 좋은 것이 놀이이다. 사람들을 이 놀이의 공간으로 불러내기 위해서는 편안해야 한다. 한참 흥이 오를 때는 지나가던 나이트 삐끼들이 다가와 북을 치고 놀았다고 했다. 비도 부슬부슬 내리는 날이면 막걸리가 몇 순배 오가고 가도가도 그치지 않는 춤판이 이어지기도 했고. 그러고보니 춤과 노래는 만국공통어이다. 나이를 가르지 않고, 직업을 막론하고, 다른 점보다는 비슷한 점을 많이 보게 하는 것.

자신의 정체를 숨기지 않는 축제

그래서 평화바람 중 고철은 축제는 일회성이지만 대화의 단초를 줄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했다. 529평화축제에는 오랫동안 반미, 통일운동을 해온 사람들에 대안교육을 하는 이들, 공동육아하는 이들, 생태주의자, 새만금의 계화도 어민, 부안 핵폐기장 주민, 그리고 좌파 학생 등 다양한 이들이 참석하게 될 것이라고.

"평화를 무엇이라 규정하느냐가 아니라 이 다양한 사람들이 축제의 장에서 어떻게 소통하고 같이 하는 문화를 만들 것이냐가 평화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말해줄거라고 생각해요." 자기의 근본까지 드러낸 후 조정하거나 소통하기. 고철은 자신의 정체성은 드러내지 않은 채 판을 마련한 사람들의 의사와 이미 정해진 내용이 그대로 관철된 탄핵반대 촛불집회는 진정한 의미의 '평화'적인 집회는 아니었다고 말했다.

"'하나'라는 허구에 갖혀 선거로 힘없이 정리가 되고 마는 광장문화. 축제는 분출이요, 애매한 표어로 뭉뚱거릴 수 없는 것이 축제의 본질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이들은 고민한다. 큰 앰프로 전체를 장악하는 유명가수무대와 상관없이 여기저기가 서로 소통하는 축제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 음식값을 할인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여기저기서 벌어질 춤판, 놀이판에 끼기 위해서라도, 내컵, 내 숟가락은 꼭 챙겨가야겠다. 가서 마음의 활달한 기운을 좀 받고 오자. 포탄과 헬기소리가 그치지 않는 그곳에서 우리 소리가 어떤 것인지 듣고 오자. 저 깊숙이에서 올라오는 소리가 무어라고 외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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