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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빼앗긴 부시가면을 되찾은 거북이마라톤 |
이주노동자 천막 안 후라이팬에서는 베트남 음식을 만드느라 기름이 지글지글 끓었고, 새만금 주민들은 이제는 새만금에서도 귀한 백합을 가져와 죽을 끓였다. 그리고 노동조합원들이 파는 국밥, 파전에 소주. 사람의 발길을 붙드는 고소한 냄새에 삼색 고깔 하얀 저고리 입은 대추리 아주머니, 아저씨들은 일찌감치 태평소, 꽹매기, 장고로 풍악을 울렸다.
마음 둥실 뜨는 잔치. 미군기지 확장 공작으로 팽성읍에는 국방부 관리들이 내려와 괴소문을 퍼뜨리고 협박을 늘어놓고 있지만 잔치에 모인 평택주민들과 평택 밖에서 온 아시아민중들은 서로의 얼굴을 보는 것이 기뻤다.
"지금 거북이 마라톤을 하는 곳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경찰이 마라톤을 막고 참가자의 부시가면을 뺏어갔다고 합니다. 항의방문 갑시다. 가실 수 있는 분은 정문으로 모여주십시오."

순식간에 모임이 만들어졌다. 인솔자도 안내자도 없이 수십명의 방문단들은 자연스럽게 선전물을 나눠주며 물어물어 행진단에게 찾아갔다. 도착한 곳의 행진단은 각양각색이었고 그래서 아름다웠다. 울긋불긋 용가면에, 교복을 입고 하교길에 들른 여중생들. 별 머리띠로 파병반대를 적은 대학생들.
저마다의 자유로운 행진은 차도를 메웠고, 보도 위의 평화로운 행진도 이에 합세했다. 사복을 입었으나 감시자임을 감출 수 없었던 경찰들. 그러나 같이 행진하는 외에 달리 할 일이 없었다. 평택시민으로서 와보고 싶어 왔다고 했다. 그리고 상점에 들른 시민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물끄러미 바라봤다. 저 일사분란하지 않은 걷기패들은 누구지? 그리고 부시와 노무현의 가면은 강한 항의 끝에 되돌아와 문정현 신부의 손에서 들썩들썩 거렸다. "바보같으니. 돌려줄 것을 왜 뺏어가."
아이들이 참 많이 왔다. 경기도 시흥 샘물공부방에서는 아이들, 교사, 학부모 다해 70명 정도가 왔다. 볏짚으로 새끼를 꼬아 평화기원내용의 판화 찍은 것을 만국기처럼 공중에 달았다. 시흥의 철거촌 아이들이라고 했다. 매일매일 자신들의 삶의 문제인 가난과 끈이 닿아 있는 곳에 관심을 가지려는 아이들. 공부방에서 점심, 저녁 때 먹는 쌀이 떨어질 때도 있지만 아이들은 이 행사에 참가하기 위해 두 달 전부터 평화를 공부하며 마음을 만들어왔다.
그리고 인천에서 온 기차길옆아이들과 간디학교 아이들, 또 미처 확인하지 못한 전국 각지에서 온 수많은 아이들. 아이들 옆에는 부안에서 두루마기와 중절모를 갖춰 입고 올라오신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도 계셨다.

부안의 주민들은 차 넉대를 빌려 반핵의 노란티를 입고 이곳에 왔다. 그리고 전문가수들 틈서리에서 빈통과 막대기 비슷한 것을 들고 무대위에 섰다.
"다툼과 파괴를 몰아내고 평화의 바람을 일으키는 여러분들을 사랑합니다. 우리는 부안의 난타대입니다. 그렇지만 공연을 하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은 아닙니다. 평택시민, 그리고 이땅의 모든 민중의 아픔과 함께 하기 위해 이곳에 왔습니다. 두드릴 것이 없으신 분은 신발을 벗어 두드려도 좋고 옆사람 볼따구를 두드려도 좋습니다. 구호 외치며 두드리면 그게 난탑니다. 우리의 고통과 분노를 이 아스팔트 위에 두드립시다. 우리가 준비해온 것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 빈통과 뜨거운 가슴 하나 가지고 왔습니다."
빈 것은 울림이 크다는 것. 번번이 잊고 살고 있다. 무대에 올라간 이들은 무대에서 두드렸고, 올라가지 못한 이들은 밑에서 두드렸다. 이미 마음은 위나 아래를 구별하지 못했다. 부안을 빙빙 돌며 평택에 함께 가자는 안내방송을 했고 참여하고 싶은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나서 오게 됐다고 했다.
"우리가 해보니까 그래요. 다른 사람들이 연대를 안 해줬더면 우리도 절대 뭉쳐서 할 수가 없었어. 그랑께 왔지. 우리가 1년 내내 아파봐서 이자는 다른디 아픔을 물 건너 볼 수가 없어. 삼척에 핵폐기장 생긴다믄 거기 또 지원갈꺼요. 여기도 본인들이 다 자기 차비 들여가꼬 왔어."
부안사람끼리는 이제 한식구가 되었다고 했다. 그러나 어느 곳이든 상처나 아픔이 있는 곳과는 이미 한식구가 된 것 같았다. 무대에서 마이크를 잡은 부안대책위의 교육부국장 김효중 씨를 만났다.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농사를 짓지 못했지만 그건 괜찮다고 했다.

"평택에서 어렵게 싸우는 문정현 신부님의 품앗이를 해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핵폐기장 문제도 결국은 미국의 무기와 관련이 있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우리 싸움이 미군기지 싸움과 다른 거라고 생각 안합니다."
그런가하면 문화예술인도 무대 위에 섰다. 남들 앞에서 말 하기를 싫어하는 설치미술가 최병수 씨, 팽성읍에 사는 권혁진 시인, 안성달팽이학교 교장인 유현복 판화가, 그리고 정태춘과 박은옥. 이들이 요구하는 것은 무엇인가. 양심적병역거부 인정, 주한미군의 지상군 철수와 대량무기 판매 금지, 남한농토의 전초기지화 반대, 남북군축과 평화협정, 평화협정 이후 미군철수, 미군의 이라크 철수.
박은옥 씨가 노래를 부르기 전 삿뽀르 이야기를 했다.
"삿뽀르에서 일제시대 강제징용당해 유골도 없이 죽어간 이들을 위한 추모공연을 했습니다. 수십만명이 북해도에 끌려가 죽음을 맞아 무덤도 없이 60년이 지난 지금까지 어디 묻혔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양심있는 일본인들은 그분들이 없으면 지금의 북해도는 이뤄질 수 없다고 이야기하며 지금 유골찾기 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제 곡 '봉숭아'는 누군가를 간절히 기다리는 마음으로 만들었습니다. 북해도로 아들과 남편을 보낸 어머니와 누이들을 위한 노래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고향이기도 한 팽성읍 주민들과 끝까지 이 싸움을 같이 할 것이라는 정태춘 씨는 공연금이 부족한 사정을 듣고 자신의 시집을 가져와 문화예술인 부스에서 사인판매하였다. 아픔의 마음으로 달아오르는 잔치. 같이 두눈을 들어 별을 바라본대도 좋았을 잔치.

그리고 잔치가 있는 곳에서라면 어련히 나타나 가려운데를 찾아 긁는 감초같은 어릿광대들.
"앉아서 하는 축제는 없습니다. 일어나세요." 그리고 초반기의 이 말이 있었건 없었건 무대는 계속 달궈져 윤도현 밴드가 무대가 오를 무렵, 많은 이들은 일어서서 열광했다. 그리고 너희들만 무대에서 놀란 법 있냐? 우리모두 잔친데. '파'를 '병'에 담은 이가 윤도현 밴드가 열창하는 무대에 올라가려 했다. 그리고 대다수의 상상대로 스텝들에 저지당했다. 그 저지는 저지당한 이들만이 아는 무대 뒷얘기. 그리고 "웃기는 동요(?)"밴드가 무대에 섰다. 마치 그들의 모토는 '절대 잘하지 말자'인 것 같았다. 어수룩한 기타연주에 어수룩한 노래. 그러기에 그들은 관객을 무대 위로 끌어들일 수 있었다. "올라와, 올라와서 같이 놀아요." 손이 손을 잡아 끌었다. "중앙과 주변이 따로 있는 축제는 축제가 아닙니다." "총은 내리면 안되고 부러뜨려야 합니다." 말이 청산유수는 아니었지만 할 말은 다 하고 내려왔다.
자정이 가까워 밤이 깊을수록 부안에서 온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이 무대 아래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기가 안타까웠다. 팽성읍에서 오신 어르신들도. 다같이 어깨춤도 덩실덩실 추고 했더면 좋았을 것을. 구경하는 잔치는 서너시간 넘어가면 힘들어진다.
그러나 무박의 잔치는 해가 뜰 때까지 계속되었다. 계속 차례가 늦어져 새벽 한시가 넘어서야 무대 위에 설 수 있었던 이주노동자 밴드, 전주에서 온 풍물패와 마당놀이패. 그리고 기억나지 않는 다른 수많은 공연팀들. 무대 위와 아래의 구분은 점차 사라졌다. 논다하는 사람들. 흥에 겨워 잠들 수 없는 이들. 아니 어떻게 모인 자린데 이대로 잠드나 싶은 사람들. 소중함에 가슴 벅찬 이들. 놀다놀다 지쳐 노숙으로 여기저기서 한두시간 눈을 부친 30일, 대추리까지의 행진 현장스케치는 다음 기사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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