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평택 미군기지 담벼락을 끼고 이어진 행진 |
"지금 도로교통법 위반이라 그랬어? 내 군산에서 미군이 어마어마한 탱크를 번호판도 없이 몰고 다니는 걸 수도 없이 봤어. 근데도 안 잡아가. 그러면서 우리 보고는 도로교통법 위반이라고? 그러믄 안돼. 도대체 명분이 없잖아. 이눔의 경찰들 미군탱크 앞에 가 삼배 해. 부시가면은 왜 갖고 가. 부시가면이 지 할아버지야?"
문정현 신부는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 하지만 긴장까지 늦춘 것은 아니었다. 29일 축제서부터 사복경찰이 현장에 많이 와 있었다. 그리고 나무로 만든 모형탱크의 도로진행을 막는 경찰과 대치하고 있을 때도 사복들은 여전히 시위대에 섞여 있었다. 경찰책임자와 이야기를 나누는 문 신부 사이로 사복경찰 하나가 왔다갔다했다. 그리고 문 신부는 순간 때를 놓치지 않고 사복경찰의 뒤통수를 날렸다. "야 이 자식아! 너는 뭔데 여그 와서 알짱거려?"
무서운 할아버지 같은 신부님의 순발력. 사복은 뒤통수를 만지며 그 근처를 떴다.
30일 평택축제에 참석한 이들이 팽성읍 주민들과 만나기로 한 원정리에서 대추리까지의 행진은 사전신고가 되어 있었다. 원정리까지 사람들은 탱크모형을 앞세워 차량으로 이동하려 했다. 하지만 경찰은 탱크모형 차량의 도로주행을 걸고 원천봉쇄했다. 실소를 자아내는 도로교통법 운운. "딱지 끊으면 될 거 아냐."

그러나 시위대는 최대한 충돌을 자제했다. 문 신부님은 아이들과 어르신들 앞에서 비폭력행진을 약속했다고 전했다. 머리에 빨간 두건과 토끼풀꼿으로 만든 화관을 두르고, 대나무로 끝이 뾰족한 막대기를 만들어온 대구의 <땅과 자유> 중 한 명은 그 자리에서 물총을 꺼냈다. 그리고 쇠 방패를 갖고 화이바를 쓰고서 위협해오는 전경에게 쏘았다.
물총을 방패로 찍겠나. 물총을 뺏기 위해서는 방패와 곤봉이 필요치 않다. 맨손이면 된다. 손으로 우왁스럽게 만지면 부러지고 말 나무모형탱크를 만든 이들의 논리는 이랬다.
"번호판도 달지 않은 무쇠탱크가 효순이, 미선이의 몸이 으스러지도록 치어 죽였을 때, 너희 대한민국 경찰은 아무 말도 못했어. 이 나무탱크가 거리에서 행진한다고 누굴 치겠어. 근데 너희들은 사람 죽인 이들은 가만히 놔두고 우릴 잡아가려고 그래. 효순이, 미선이가 그렇게 죽었는데 왜 아무말도 못해. 나는 자존심이 상해 죽겠어. 걔들은 번호판도 없이 활주하잖아. 차라리 이 밑에 깔려 죽자. 그게 낫겠다…… 이건 그저 상징물이여. 미선이, 효순이 장사 지내러 가는 거란 말이여."
문정현 신부님을 이어 경찰과 상대한 문규현 신부님의 이야기였다. 무박의 축제가 끝난 아침 7시, 공설운동장에서 열린 천주교 아침미사에서 신부님은 자리에 앉지 못한 채 말씀을 외고 노래를 불렀다. 경찰에 맞선 신부님의 음성에는 물기가 짙게 배어 있었지만 눈물을 떨구지는 않았다. 다만 신부님과 계속 실랑이를 벌였던 무궁화 4개의 경찰관리는 더 이상 신부님의 눈을 마주하지 못하고 멀찍이 자리를 피했다. 경찰관리는 이후 도로교통법 위반 운운을 행진단 앞에서 더이상 되풀이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제는 신부님이 아닌 다른 행진단원을 상대하며 인원 내보내는 것은 걱정말라는 이야기만 되풀이했다.
행진단은 팽성읍 주민들을 빨리 만나는 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경찰과의 계속되는 대치로 이미 팽성읍 주민들은 두시간 가까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들도 뙤약볕 아래서 빨갛게 익어갔다. 모형탱크 앞에서 연좌농성에 들어간 문규현 신부님 일행을 두고 행진단은 차량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안정리 산골마을로 들어섰을 때는 70대가 넘는 전경차량이 이미 먼저 들어서 있었다. 미군 담벼락을 촘촘히 에워싸기 위해 70대의 전경버스가 필요했다. 경찰차량을 따라 3∼4km정도를 행진한 뒤 도착한 황새울 창고 앞. 평소에는 미군들이 망루에 거의 올라오지 않는다고 했으나 이날 망루에는 미군들이 다 올라와 있었다. 대추리 마을로 들어선 뒤에는 미군기지 담벼락 밑으로 바짝 접근하지 못했다.
대추리 마을에서는 정태춘 씨가 마이크를 잡고 대추리 마을의 형편을 이야기했다.
"예전에 갯벌이었던 이곳은 국방부가 매입하려는 90만평 중 1차 매입지인 20만평이 속한 곳으로 이 땅이 수용되고 나면 팽성읍의 한 가운데로 미군기지가 들어서는 셈이 됩니다. 그리고 마을과 바깥이 통하는 두 길 중 한 곳이 막히게 되는데, 국방부는 그렇게 고립시킴으로써 사람들을 마을에서 몰아내는 방식을 쓰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오늘 이곳까지 왔는데 미리 계획한 것과는 다르더라도 미군담장 바로 밑까지 행진하고 정리집회를 가졌으면 하는 것이 제 개인 소망입니다."
그러나 여러단위에서 미리 합의한 것이라 담장 바로 밑까지의 행진은 진행하지 못했다. 전경은 이미 사전에 허용되지 않은 길목을 막아서고 있었다. 평화적인 행진은 인근 초등학교에서의 정리집회로 마무리되었다. 정리집회는 팽성읍대책위의 김지태 위원장, 20박20일로 평화순례를 마친 간디학교 김태진 학생, 민중연대 정광훈 상임의장 등의 발언으로 진행되었다. 초등학교로 이동하는 사이 김지태 위원장을 만나 그간의 사정을 들어보았고, 정리집회를 하는 동안 마을의 사정을 계속 이야기하시는 마을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마을 주민들의 이야기는 다음 기사로 계속 이어진다.




![[영상] 현대기아차비정규직 농성..](http://www.newscham.net/data/coolmedia/0/KakaoTalk_20180411_120413041_copy.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