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5일 국가인권위배움터에서는 '개인별신분등록제실현을위한공동연대'에서 주최하는 '새로운 신분등록제 마련을 위한 워크샵'이 열렸다. 공동연대가 1년여 동안의 연구를 통해 구체화시킨 '목적별 공부(公簿)에 대한 개인별신분등록제실현을위한공동연대의 안'을 발표하는 자리였다.
사회는 인권운동사랑방의 범용씨, 공동연대안에 대한 발표는 다름으로닮은여성연대의 타리씨가 각각 맡았다. 여기에 호주제 폐지 운동의 중심이었던 한국여성단체연합의 이구경숙 정책부장, 개인별신분등록제를 꾸준히 주장해 온 진선미 변호사(법무법인 덕수), 프라이버시 보호를 위해 활동해 온 이은우 변호사(진보네트워크 운영위원)와 윤현식 정책연구원(민주노동당), 그리고 성적소수자를 대표해 나온 케이씨(한국동성애자연합)가 논평을 했다.
타리씨는 공동연대안에 대한 설명에 앞서 공동연대의 문제의식과 기본취지를 설명했다. 첫째는 여성에 대한 차별 반대, 둘째는 프라이버시권의 보장, 셋째는 가족형태별 차별에 대한 반대다. 호주제가 담고있는 여성에 대한 차별은 호주제 폐지 운동 과정에서 누누히 얘기된 바였다. 따라서 공동연대안의 초점은 프라이버시권의 보장과 가족형태별 차별에 대한 반대를 어떻게 구체화된 제도로 녹여낼 것 인가라고 할 수 있다.
지난 16대 국회에서 끝내 처리되지 못한 '호주제 폐지를 내용으로 하는 민법개정안'이 17대 국회 개원과 함께 다시 제출된다. 지은희 여성부 장관은 지난달 31일 여성정책설명회에서 "17대 국회의 원구성 직후 호주제 폐지를 적극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지 장관은 또 "17대 국회의원 중 90% 이상이 호주제 폐지에 찬성하고 있다"며 강한 자신감을 보인바 있다. 이번 민법개정안은 16대 국회에서 제출되었던 안과 거의 유사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애초에 이 개정안은 민법상에서 호주 개념의 삭제, 가(家) 개념의 삭제, 자녀성의 부성강제조항의 삭제를 포함하고 있었다. 그러나 반대의견을 고려해서 호주 개념은 삭제하되, 가(家) 개념은 부부중심의 현실적인 가족 개념으로 전환하고, 부성승계원칙을 따르되 성의 변경 및 모성승계를 허용하는 안으로 조정되어 지난 16대 국회에 제출됐다.) 이 개정안이 통과된다면, 민법의 절차법으로서의 호적법 개편이 곧 뒤따라야 한다. 그동안 현행 호적부에 대한 대안으로서는 이른바 가족부과 개인별신분등록부가 논의되어 왔다. 이번에 발표된 공동연대안은 기본적으로는 개인별신분등록부로서 기존의 개인별신분등록부 또는 일인일적제라고 통칭됐던 조대현판사안에 대한 반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다음은 현행 호적부의 특징을 통해서 각각의 안을 비교 정리한 표이다. ![]() 한국여성단체연합을 비롯해 그동안 호주제 폐지 운동에 중심에 있었던 여성단체들은 원칙적으로는 조대현판사안을 지지하지만 현실적 여건을 고려해 가족부와 조대현판사안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다. 한편 대법원 안은 제출된 바 없지만, 대체로 조대현판사안과 유사한 것으로 알려져있다.(물론 민법개정안과 마찬가지로 정부측 안이 반대에 부딪혀 후퇴할 가능성은 충분하다.) |
타리씨는 기존에 호주제에 대한 대안으로서 논의되었던 가족부와 조대현판사안에 대해 비판했다. 가족부는 호주를 대리인으로, 가(家)의 개념을 이성애적 핵가족 개념으로 대체한 것인데, 이는 현실적으로는 여전히 성인 남성이 가족을 대표하도록 하고 있으며, 이성애적 핵가족을 정상적인 가족의 모델로 삼고 있다는 것이다. 조대현판사안은 인적 편재 방식을 따름으로써 개인의 신분변동사항이 모두 기록되고, 개인의 신분사항에 가족사항이 담긴다는 점에서 여전히 이성애적 핵가족만을 정상가족으로 인정하는 결과를 갖는다. 또한 타리씨는 양쪽 모두 지나치게 많은 정보를 담고 있어 개인의 프라이버시 침해를 막을 수 없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비판했다.
공동연대안은 호적제도가 가족제도 혹은 가계계승제도가 아닌 개인의 국가신분등록제도임을 명확히 한다. 이에 따라 개인의 모든 신분과 그 변동사항을 하나의 공부에 기록하는 인적편재방식을 버리고, 목적별 공부를 도입한다. 목적별 공부는 신분등록부, 신분변동부, 혼인등록부, 혼인변동부로 나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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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분등록부는 출생과 국적취득을 확인하는 것으로서 대한민국 국민임을 증명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신분등록번호/이름/생년월일/출생적/신고일/부기번호만이 쓰여질 뿐이며, 성별이나 가족관계를 인지할 수 있는 어떠한 내용도 담기지 않는다. 부기번호는 부모의 혼인등록번호가 기입되는 란으로서 가족관계를 증명할 수 있는 고리로 쓰인다.
또한 신분변동이 있으면 그 변동기록은 신분변동부에 따로 기입되어 별도로 관리되어 신분등록부에는 항상 최근에 갱신된 내용만 담기게 된다. 즉 신분등록부는 대한민국 국민임을 증명하는 것 이외에는 어떠한 차별의 소지가 있는 정보도 담기지 않게 되는 것이다.
혼인등록부는 개인의 혼인여부를 증명하는 것으로서, 혼인시에 각 개인에게 발급된다. 여기에는 혼인등록번호/이름/신분등록번호/혼인연월일/신고일/이 기재된다. 혼인의 당사자는 같은 혼인등록번호를 갖기 때문에 혼인관계가 증명될 수는 있지만, 개인의 혼인등록부만으로는 배우자에 대한 어떠한 정보도 알 수 없다. 그리고 혼인사실의 변동은 혼인변동부에 별도로 기록, 관리됨으로써 혼인등록부는 신분등록부와 마찬가지로 최근의 사실만을 기록하게 된다. 그리고 혼인등록번호와 형태상 구분되지않는 가혼등록번호를 도입함으로써 비혼모나 비혼모의 자녀, 고아의 경우에도 신분등록부 상의 차별이 없도록 했다.
각 공부는 하나의 검색번호로는 동시에 검색되지 않으며 서로간의 연동을 원칙적으로 금지함으로써 프라이버시 문제를 최소화한다. 타리씨는 이에 덧붙여 프라이버시권의 보장을 위해서 호적제도와 주민등록제도의 연동, 신분공시제도를 거부한다고 밝혔다.
타리씨의 발표가 끝난 후 범용씨는 호적의 필요성을 ▷대한국민임의 증명, ▷가족관계의 증명, ▷개인신분변동의 증명으로 정리하고 "공동연대안은 이러한 목적에 필요한 최소한의 것만을 담으려고 한 노력의 결과다"라고 부연했다.

타리씨의 발표가 끝난 후 토론자들은 각자의 의견을 개진했다. 이은우 변호사와 윤현식 연구원은 공동연대안에 대해 전적인 지지를 표한 반면, 이구경숙 부장, 진선미 변호사, 그리고 논평문을 보내 온 조대현 변호사(전 판사)는 취지는 환영하면서도 다소 비판적인 시각을 보여 대조를 이뤘다. 한편 케이씨는 공동연대안 자체는 긍정하지만, 성적소수자에게는 이와 "함께 변화해야 할 현실이 너무 크다"는 점에서 어려움을 토로했다. 이러한 입장의 차이는 이어진 토론에서도 지속적으로 확인됐으며, 그 주된 논점은 ▷비용, 시간, 편의성의 문제, ▷입력과 출력의 문제, ▷성적소수자의 문제 등이 있다.
이구경숙 부장은 "조대현판사안으로 전환하는데만도 540억과 2년 반의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공동연대안은 10년이 걸릴지도 모르는 일이다"며 "호주제 피해자들의 절박한 요구에도 좀 더 기다리라고 말할 것인가"라고 말했다. 진선미 변호사와 조대현 변호사 역시 목적별 공부로 전환하는데 따르는 과다한 비용과 시간, 그리고 네 개의 공부를 독립적으로 관리하는데 따르는 불편함에 우려를 표명했다. 이에 대해 이은우 변호사는 "호적부 전산화가 거의 끝난 현 상황에서 비용과 시간은 의외로 적어질 수 있으며, 행정 처리 과정에 변화가 생길 뿐 국민들은 예전과 똑같이 하면 된다"고 반박했다.
진선미 변호사는 인적 편재와 목적별 편재는 역사적 문화적 차이에 기인한다면서 "인적 편재의 전통이 있는 우리나라에서 목적별 편재로 전화하는 것은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다"고 주장했다. 또한 신분기록의 전산처리에서 입력과 출력을 구분하면서, "입력 단계에서 우리가 개입할 것은 별로 없다. 출력 단계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이는 이구경숙 부장이 조대현판사안에 기재된 내용이 모두 공시되는 것은 아니며 충분히 공시범위를 제한할 수 있다고 말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에 대해서 이은우 변호사와 타리씨는 "국가가 일방적, 일괄적으로 '정상'을 규정하는 것이 큰 문제이며, 기존의 가치관을 변화시키지 않고 단지 출력의 문제로 한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윤현식 연구원도 "많은 정보를 갖고 있으면서 출력만을 제한하는 것은 사기"라고 강하게 반박했다.
케이씨는 호주제 폐지의 의미를 "호주제가 내포하고 있는 가부장주의, 핵가족주의, 이성애주의 등 모든 억압을 차례차례 제거해나가는 과정"으로 규정하고, "'현실적'이라는 이유로 '일단 이거 먼저'라는 식의 태도는 성적소수자의 주장을 가리는, 또 다른 억압"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케이씨는 "존재를 인정받아야 권리를 가질 수가 있는데, 존재를 드러내는 것이 두렵다"는 성적소수자의 딜레마를 제시하며 "존재를 드러내되 위험하지 않을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성적소수자의 현실과 프라이버시 보호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윤현식 연구원은 "소수의 문제제기로 인해서 호주제 폐지 운동이 지연되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편해질 수 있다"고 주장하며 호주제 폐지 운동의 중심에 있는 사람들이 공동연대안에 대해 숙고할 것을 촉구했다. 그리고 그는 공동연대안이 주민등록제도과 무관하게 완결성을 갖는다는 사실이 "개인정보보호에 더욱 충실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장점인 동시에 주민등록제도를 허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약점"이라고 지적하고, 추후에 주민등록제도와의 관계를 좀 더 논의하자고 제안했다.
호주제 폐지라는 당면한 과제를 둘러싼 지난한 싸움 속에서 대안에 대한 논의는 상대적으로 부족했다. 호주제 폐지가 현실로 다가온 이상 대안에 대한 논의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호주제로 인해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의 다양한 현실이 충분히 반영되어야 한다. 공동연대안은 지금껏 제시된 어떠한 안보다도 여성과 성적소수자의 인권과 프라이버시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담겨있는 것으로 보인다. 공동연대의 이번 워크샵이 호주제 철폐 운동의 전환점이자 새로운 출발점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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