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구적 반미・반전・반제투쟁의 현황과 과제

“오늘날 미국이 유일한 제국주의 열강이기 때문에, 전지구적 반제국주의 동맹을 건설해야 한다. 그러나 그 반제 전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미국 내의 조직화일 것이다. 가장 효과적인 저항은 항상 국내에서 시작된다. 제국흥망의 역사가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바는 제국의 시민들이 무한전쟁과 영구점령에 대한 믿음을 잃을 때에 비로소 제국체제의 후퇴를 강제할 수 있다는 점이다.” - 타리크 알리, “이라크의 재식민화”, 《신좌파평론[New Left Review]》, 2003년 5~6월호

국제적 차원의 계급적 역관계

21세기 초반 현시점에서 국제적 수준의 계급적 역관계는 노동자・민중에게 대단히 불리한 것이 사실이다. 과거 냉전시기에 비록 내부적으로 많은 문제점을 가졌지만, 소련을 필두로 한 사회주의 진영의 존재는 미국 제국주의로 하여금, 전면적 도발을 제어하고, 대신에 '저강도 전쟁' 전략을 채택하도록 강제하는 힘이었다.

그러나 사회주의진영의 붕괴 이후, 러시아는 더 이상 미국에 맞설 열강이 되지 못했고 특히 연방 해체 이후 미국과 유럽의 포위・압박공세 속에 그 힘이 상당히 무력화되어 있다. 중국과 베트남은 이미 자본주의 체제 내부로 포섭되어 있어, 미국 제국주의에 봉쇄 당한 쿠바 사회주의를 제외하면 어떤 자본주의의 대안도 부재한 것이 현실이다.

지난 1991년 걸프전을 계기로 미국 제국주의는 '새로운 세계질서'를 선포하였고, 9・11을 기화로 '잠재적 위협에 대한 선제공격'을 핵심으로 하는 새로운 지배전략(이른바 부시독트린) 하에서 전세계적 차원의 제국주의 전쟁공세를 거침없이 강화하고 있다.
비록 이라크 전쟁을 계기로, 프랑스・독일의 유럽 축이 미・영 축에 대항하는 제국주의 내부의 모순과 갈등이 존재하지만, 확장된 유럽조차 아직은 미국의 지배구조에 맞서 경쟁할 만한 새로운 대항 축을 구축하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한편, 라틴 아메리카에서도 베네수엘라의 차베스에 이어 에콰도르의 구티에레스, 브라질의 룰라, 아르헨티나의 키르치네르 정권 등 이른바 좌파정권이 연속적으로 등장하고 있지만, 차베스의 볼리바르주의 혁명을 제외하곤, 반미・반제국주의 전선을 제대로 구축하지 못하고 있다. 9・11이후 부시가 지목한 카스트로-차베스-룰라의 남미 판 '악의 축'은 강력한 반제전선으로 구축되지 못하고, 오히려 한편에서 차베스에 대한 제국주의의 공세로 소환투표 정국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 룰라와 키르치네르는 아이티의 제국주의 쿠데타에 '평화유지군'을 파견하기에 이르고 있다.

반세계화 운동과 반전 운동의 흐름

세계무역기구(WTO)-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WB)의 3대 국제금융기구에 의해 주도되는 세계화공세에 맞선 강력한 반세계화 운동의 흐름이 형성되고, 세계사회포럼(WSF)이 광범위한 반신자유주의 세력과 운동의 구심이 되고 있으며, 또 9・11 이후 이 운동이 광범위한 국제반전 운동의 중심 축을 이루어 제국주의의 경제・군사 공세에 맞선 것은 대단히 중요한 사건이다.

특히 시애틀, 워싱턴, 프라하, 퀘벡, 제네바, 바르셀로나, 칸쿤에 이르는 반세계화 투쟁, 브라질 포르투 알레그레와 인도 뭄바이의 세계사회포럼 그리고 대륙별 사회포럼과 수많은 사회포럼들, 그리고 2003년 1월 15일과 2004년 3월 24일의 강력한 국제반전투쟁…. 이와 같은 대규모 동원은 제국주의에 맞선 전세계 노동자・민중들의 아래로부터의 투쟁을 대변한다.

그 결과, 신자유주의의 거대한 대세가 한풀 꺾이고 전세계 곳곳에서 다양한 형태의 저항에 부딪히면서 그 정당성이 의심받고 있다. 더불어, 이라크 침략은 전세계적 차원에서 제국주의를 정치적으로 고립시켰다. 9・11 테러를 빌미로 무차별적 전쟁공세를 주도했던 네오콘 세력은 미국의 제도정치 내에서 자기방어에 급급하고 있으며, 부시정권 역시 안팎의 공세 속에 정권 재창출이 사실상 불가능해 보인다. 더불어 국제적 차원에서도 부시에 동조했던 스페인의 아스나르 정권이 붕괴했으며, 이번 유럽의회 선거에서 영국 토니 블레어와 이탈리아의 베를루스코니도 참패해 조만간 아스나르의 뒤를 이을 것으로 보인다.

이라크의 경우, 부시정권에게 제2의 베트남이 되었고, 특히 점차 강화되던 무장저항투쟁이 지난 5월 팔루자 봉기를 계기로 전국적 차원의 민족해방투쟁으로 발전함에 따라 미국을 필두로 한 제국주의 연합 점령군은 전면적인 정치・군사적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국제적 반전・반제운동 - 성과와 한계

반세계화 동원투쟁과 사회포럼운동의 성과에 기반한 반전・반제 운동은 국제정세에서 주요한 규정력으로 성장했으며, 제국주의 전쟁공세에 위협적인 장애물이 되고 있다. 특히, 2・15 투쟁에서 정점에 올랐던 국제적 반전공동행동은 비록 올해 3・20 투쟁에서 다소 조정국면을 맞이했지만, 제국주의 전쟁공세에 맞서는 중심축의 역할을 수행해 왔다.

이라크 반전투쟁은 이라크 민족해방투쟁의 고양과 함께, 시리아, 이란, 북한 등에 대한 제국주의의 추가공세를 사실상 불가능하게 묶어내는 중대한 성과를 이루었다. 더불어, 국가권력의 매개없이 제국주의에 직접 대항하는 현재의 대립구도에서 제국주의 전쟁공세를 저지하거나 무력화시킬 수 있는 물리적 동원력을 확보한 것이 역시 중요한 성과일 것이다.

그러나 주요한 동원과 투쟁이 주로 아래로부터의 자생적 동력에 기반한 것이기 때문에, 정세와 국면의 미묘한 변화에 대처함에 있어서 일정한 한계를 보여주고 있다. 사실, 작년 3월 20일 침략전쟁이 시작되면서, 반전운동의 대중적 풀이 급속히 위축되었다. 반전투쟁이 점령반대투쟁으로 전환함에 있어, 활동가 층의 대응은 별 무리없이 진행되었지만, 이라크에서 저항투쟁이 강화되고 미군의 야만적 학살과 학대행위가 폭로됨에도 불구하고 아직 점령반대투쟁이 대중적으로 확산되지는 못한 것이 현실이다.

이 과정에서, 국제적 반전운동의 정치적 지도력은 제대로 확보되지 못했다. 특히, 세계사회포럼에서의 국제반전총회는 다양한 경험의 공유를 넘어선 전략적 논의로 발전하지 못했고, 경쟁하는 네트워크들의 일정 박기 양상에 머물렀다. 그리고 미국과 영국의 주요한 반전 연대체들 역시 효과적 전략창출을 위한 건설적 논쟁보다, 특정 정파의 영향력 확대를 염두에 둔 소모적 논쟁으로 역량 자체를 약화시키는 우를 범하기도 했다.

이런 한계는 특히 미국의 대선 문제와 맞물리면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기 어렵게 하고 있다. 미국 반전운동의 정치적 스펙트럼은 대단히 폭넓은 관계로, 공동의 적 부시에 대한 전술적 입장이 민주당의 대한 전폭적 지지, 비판적 지지, 독자후보, 운동으로서의 개입 등 다양한 진폭 속에서 반전운동진영 전체의 정치적 합의도출이 불가능해졌다. 그 결과, 반전운동의 정치적 표현은 분산될 수밖에 없고, 이는 9・11 공안정국 속에서의 영웅적인 투쟁에도 불구하고, 반전・반제 투쟁의 방향 실종 또는 전망의 위기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현 단계 반제국주의 전선

20세기 후반, 특히 2차 대전 종전 직후, 새롭게 재편되는 세계질서 속에서 미국 제국주의는 영국으로부터 주도적 지위를 인계받았지만, 강력한 사회주의 진영과 거대한 민족해방투쟁의 물결에 직면해야 했으며, 무자비한 반공주의 전선을 통해 자본주의 체제수호를 위한 전방위적 반혁명투쟁에 나섰던 바 있다.

이 시기, 반제국주의 진영은 자본주의진영에 맞선 사회주의진영, 제국주의 중심부에서의 반자본주의 세력, 식민지・반식민지의 민족해방운동으로 구성되었으며, 특히 소련의 지위는 거의 절대적이었다. 그러나 중・소 분쟁으로 인한 사회주의 진영의 분열, 제국주의 중심부에서 반자본주의 세력의 정치적 고립, 독립 이후 민족해방운동의 동요 및 분화 등으로 반제국주의 전선은 서서히 균열의 조짐을 보였다. 그리고 마침내 소비에트 연방의 해체로 자본주의 체제를 전지구적 차원에서 지양하려는 20세기 변혁프로젝트는 막을 내리고 말았다.

그리고 21세기 새로운 반제국주의 투쟁전선은 이런 폐허 속에서 재건되어야 했다. 현 시점에서 반세계화 운동의 급속한 고양과 반전 운동으로의 확장은 한편에서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내적 모순이 가져온 다소 때 이른 급진화 현상이지만,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 21세기의 새로운 반제국주의・반자본주의 운동의 가능성과 전망을 제공해주는 계기이기도 하다.

물론, 현재의 반제국주의 투쟁은 대단히 초보적 수준이며, 아직은 전지구적 차원에서 이 운동을 현실의 반자본주의적 대안으로 연결시킬 주체형성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다양한 형태의 투쟁과 운동이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와 제국주의 전쟁공세에 대한 투쟁으로 수렴되고 있지만, 전지구적 차원에서 초국적・일국적 독점자본을 무력화시킬 구체적 전략과 그에 입각한 대중적 계급투쟁으로 나아나고 있지는 못하다.

더불어, 제국주의 중심부에서의 반제국주의・반자본주의 운동의 상대적 취약성은 그 결정적 한계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반부시 정서의 대중적 확산 속에서도 미국의 노동운동과 좌파는 실질적 대안을 제출하지도, 광범한 투쟁을 조직하지도 못하고 있다. 설사 민주당의 케리 후보가 올해 말 대선에서 승리하더라도, 미군은 이라크에서 철수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케리의 대안이란 더 많은 미군을 이라크에 파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1980~90년대 민족해방운동의 퇴조는 남아공 ANC정권, 브라질의 룰라정권 등 부분적인 정권창출에도 불구하고, WTO-IMF-WB가 강제하는 신자유주의의 틀을 넘어서지 못함으로써, 신자유주의 공세가 가져온 광범한 빈곤과 실업, 임금과 노동조건의 악화 등 총체적인 생존권 위기에 대한 민중적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더 나아가, 신자유주의의 하위 파트너로 전락하고 있다.

전략적 반제국주의 동맹의 구축을 위하여

따라서 현 시기 계급투쟁의 조건을 고려하면, 전세계 노동자・민중운동 진영은 전략적 반제국주의 동맹의 구축을 위한 조직적 모색을 해야 한다. 물론, 사회포럼운동을 포함한 반세계화 운동과 반전 운동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지만, 아직 어떤 전략적 구심형성에는 이르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지난 1월 뭄바이 세계사회포럼에 맞선 뭄바이 리지스턴스 2004(MR 2004)의 경우처럼 원칙적 반제진영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의 영향력은 상대적으로 미약하며, 그들의 정치적 입장도 원론적 수준에 머물고 있다. 따라서 사회포럼이 원칙적으로 정치운동을 배제하는 만큼(사회포럼 헌장의 정당 및 군사조직 배제조항), 포럼의 안팎에서 전략적 반제동맹을 구축할 필요성은 더욱 커진다. 신자유주의에 포섭되지 않은 비타협적 좌파정치운동, 계급적 지향을 분명히 하는 노동운동과 민중운동, 급진적 사회운동의 수평적 네트워크를 뛰어넘는 조직화가 필요하다. 이 전략적 동맹은 현 시기 반제투쟁의 구체적 전략을 논의하고, 이를 집행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동맹은 일국적 계급투쟁과 긴밀히 연결되어야 하며, 특히 광범한 다수의 노동자 계급투쟁과 결합되어야 한다. 따라서 대중적 기반없는 이슈파이팅 류의 반전운동이나 일국적 시야와 민족주의적 관점에 갇힌 반전・반제운동은 일시적 성과에도 불구하고 궁극적으로는 정세의 변화에 따라 해체되거나 제도 내로 포섭될 수밖에 없다.

이와 같은 반제운동진영 내부의 동요와 혼란은 반미・반전・반제국주의 투쟁에 대한 이론적 혼란과 일정한 연관이 있다. 구 공산당 계열의 반제직투론적 경향은 계급적 내용을 결여한 채 반제투쟁을 정치・군사적 차원의 투쟁으로 한정하는 경향이 있는 반면, 비정부기구(NGO)류의 반세계화 운동은 정치・군사적 차원을 배제하거나, 세계화의 제국주의적 본질에 대한 계급적 인식이 불철저하다.

또한 이론적 분석에 있어서도, 새로운 변화를 반영하지 못한 채 원론적 또는 일반론적 차원의 일방적 주장을 되풀이하거나(MR 2004의 경우), 한편에서 잘못된 개념 틀로 투쟁을 왜곡・교란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네그리 류의 제국론). 이런 편향들은 현 단계 반미・반전・반제 투쟁의 전략 자체가 아직 취약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이며, 보다 본질적으로는 일국적 계급투쟁과의 실질적 결합도가 미약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결론적으로, 현재의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공세와 제국주의 전쟁 공세에 맞선 반제국주의적・반자본주의적 투쟁은 국제적 차원에서 반제국주의 동맹 또는 전선의 전략적 구축과 효과적 투쟁의 조직화를 통해서, 또 이런 국제적 흐름과 일국 계급투쟁과의 결합을 통해서 이루어져야 하며, 바로 그럴 때에만 자본주의의 지평을 뛰어넘는 새로운 미래의 계급적 대안에 한발 더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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