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시청 앞에서 늙은 퇴역 군인들이 경찰버스 앞에서 극렬한 폭력을 휘두를 때 그들은 두려움을 갖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그들은 국가보안법이 없어지면 간첩들이 휘젓고 다니다가 적화 통일이 될지 모른다고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 퇴역 군인들의 눈동자에는 신념이 담겨 있었다. "너와 내가 아니면 누가 지키랴. 기필코 우리가 국보법을 지킨다"
어마한 권력을 가진 보수 기독 세력과 무자비한 권력을 휘둘렀던 과거의 영광을 가진 퇴역군인들의 결의는 이랬다.
"한반도 적화통일을 획책하고 있는 북한의 공산 군사 독재 집단과 이를 추종하는 남한의 친북 공산 세력이 합세하여 국가 안보를 보장하기 위한 최소한의 법적 장치인 국가보안법을 폐지하려고 총공세를 전개하고 있다. "
"자유와 나라를 사랑하는 우리들 자유 애국 시민은 북한의 대남 공작에 따른 일부 친북 공산 세력의 국가보안법 폐지 기도를 저지하여 우리의 자유를 지키고 나라를 지키며, 나아가 우리들의 아들딸들, 그리고 그들의 아들과 딸들이 자유를 누리며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국가 안보를 지키기 위해 결의한다"
그 퇴역 군인들에게 국가보안법 없는 대한민국은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저들은 10만 명이나 모였다. 물론 개중에는 여의도 순복음교회 대빵 목사가 다 모이라 하여 모인 경우도 있고, 군바리 정신을 이어받아 '재향군인회 모이'라는 말 한 마디에 아무생각 없이 모인 평범한 병장 제대 출신들도 있을 것이다. 이들은 국가보안법이 있건 말 건 알 바 아닌 사람들이다.
그러나 마지막까지도 온몸을 바쳐 청와대 진격을 시도하는 퇴역 군인들에게 국가보안법은 일종의 생존의 방식이고 그것을 지키는 것은 생존권 투쟁이다.
그들이 누려온 영욕의 세월은 그렇다 치고 당장 남한이 북한에 의해 적화통일이 될 것이라는 두려움이 그들을 엄습하고 있다는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들이 말하는 적화통일이라는 단어 뒤에는 그들이 누려왔던 항구적인 권력의 자유와 욕망의 좌절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화려한 영광을 재현하듯 곱게 군복을 차려 입고 시청 앞 광장에 모여 자신의 수하를 부리던 그 옛날의 영화를 누려 보고 싶겠지만 누구도 그들에게 경례 조차 붙여주지 않는 늙은이일 뿐이다. 그러니 시청에라도 와서 목소리 높이며 '요즘 젊은이들 철없다' 호통치고 국가보안법 사수나 외쳐되는 것이다.
이들의 조직 동원력이 만만치 않다는 것과 저항이 거세다는 사실은 국보법을 폐지하지 못 할 지도 모른다는 긴장감을 갖게 할 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희망을 잃을 수 없는 건 이들의 극렬 저항은 두려움에 기초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국가 보안법이 사라질 위기에 있다는 반증이다.
두려움 극복을 위한 극렬 행동은 얼마가지 못할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시청 집회의 단상위에 서있던 이들의 지도자들은 정말 국보법이 없어지면 나라가 망하고 모두가 살 수 없게 된다고 믿게 만들고 싶었을 거다. 국보법은 허상이었고 자신들의 권력을 안착화하는 수단이었을 뿐임이 드러나는 순간 50여 년의 영욕은 무너지기 때문이다.
불쌍한 노인네들. 그래서 그들은 떨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 국가보안법 폐지는 대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