띄엄띄엄 어렵게 말을 하는 안기호 위원장의 체력이 이미 물리적 한계에 다다른 것이 눈에 확연해 보였고, 대의원실 밖 식당 앞에서 농성을 이어가는 정리해고자들과 지지농성자들의 표정 역시 불안과 분노가 역력했다.
정리해고 농성자 의장 석상기씨는 "정말 젖 먹던 힘까지 짜내서 투쟁을 했다. 힘이 있으면 라인이라도 멈출 텐데 결국 마지막 선택으로 위원장님이 무기한 단식을 선택했다. 위원장님 생각을 하면 농성자들도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이 바뀐다. 저분을 저렇게 두어도 되나. 우리도 사람인데 어찌 미안하고 아픈 마음이 없겠나. 그러나 우리의 싸움이 정당하다는 믿음이 있고 위원장님의 의지도 확고하다. 여기서 그만두면 여기까지 버틴 저분의 뜻은 어찌되나 하는 생각으로 또 마음을 추스린다”고 말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저녁이 되자 출근을 마친 2.3공장 비정규노동자들이 농성장으로 찾아왔다. 2공장 2.3차 하청으로 일하는 조가영씨는 “5공장의 조합원들은 누구보다 노조활동에 헌신적이었다. 그것이 해고의 이유였다고 생각한다. 불법파견 문제 회피를 위한 정리해고 시도에 맞서 이긴 선례를 남기고 노조를 지켜내야 한다는 믿음이 이 농성을 유지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조가영씨와 인터뷰 중이던 8시경 안기호 위원장을 지키고 있던 부인 윤현경씨가 다급한 얼굴로 나와 위원장의 맥이 안잡힌다고 말했다. 순간 농성장은 침묵에 잠겼다. 무리한 방문자 면담으로 체력이 급격히 저하되었고 당장 위험한 상황은 아니라는 확인 후에야 조가영씨가 모자로 얼굴을 가리고 숨죽여 눈물을 흘린다.
“저대로 이불에 싸서 본관 앞에 나둬. 사람 목숨을 파리보다 없이 여기는 현대 본관 앞에. 차라리 비정규직 노동자 목숨이 기어이 끊기는 거 보라고 현대 본관 앞에 두고 와” 부인 윤현경씨가 목소리를 높이고는 이내 이를 문다. 안위원장은 다음날 오전 7시에 계획된 원하청 출근투쟁에 안 위원장은 반드시 참석할 의지를 밝혀온 상태였다. "저 상태에서는 내일 집회참가는 절대 안된다"던 조합원들은 윤현경씨의 외마디에 고개를 숙인다.
6일 오전 7시 새벽 늦게까지 인터넷에 호소문을 올리고 눈잠깐 붙이고 일어난 윤현경씨와 본관으로 가기위해 노조 사무실을 나섰다. 윤현경씨는 정규직 노조의 차량에 동승하지 않고는 사내에 들어가지도 나오지도 못한다. 정문 앞에서 얼마를 기다려 서동식 노조 조직강화팀장의 차에 타고 4정문 앞으로 갔다. 경비들이 차를 막아선다. “노조 상집이 노조 사무실 간다는데 차를 막겠다는 거냐”고 언성을 높이지만 “위에서 시키니 어쩔 수 없다”며 길을 내주지 않는다. 식전 댓바람에 휠체어에 앉아 있을 안위원장이 걱정스러운 윤씨의 얼굴에 초조함이 배어나고 한동안의 실갱이 끝에 정문을 통과했다.
본관 앞의 집회는 이미 끝나 있었다. 경비대의 차단으로 항의서한은 전달하지 못했고 농성자들은 5공장에 돌아와 있었다. 안위원장이 누운 옆자리에 망연히 주저 앉는 윤현경씨를 지켜보다 5공장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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