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7일 이화여대에서는 ‘반성폭력 네트워크 3년의 성과와 전망’이란 주제로 여성성소수자 커뮤니티 내 성폭력 근절을 위한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는 여성 성소수자 인권운동모임 ‘끼리끼리’ 10주년 행사의 일환으로 여성이반 커뮤니티 내 성폭력 근절을 위한 연대체인 ‘반성폭력네트워크’와 ‘끼리끼리’가 공동 주최했다.
이날 토론회는 한국 사회에서 유통되는 이성애 중심적이고, 성기중심적인 성폭력 개념에 대해 문제제기하고, 여성성소수자 커뮤니티 내에서 발생하는 성폭력 문제의 특수성과 해결 방안에 대해 고민하는 자리로 마련되었다.
"동성 간 성폭력은 동성애자만의 문제 아니다"
‘여성 이반의 목소리로 성폭력을 말한다는 것은’이란 주제로 첫 발제를 맡은 지훤 끼리끼리 활동가는 “사회통념상 성폭력 개념은 남-가해자, 여-피해자 구도로 정형화되어 그동안 동성 간 성폭력은 끼어들 틈이 없었다”며 동성 간 성폭력 문제가 사회적으로 배제되어 왔다고 지적했다.
지훤 씨는 동성간 성폭력을 해결하기 위한 활동이 동성애자에 대한 편견을 강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 “동성 간 성폭력은 동성애자 만의 문제가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지훤 씨는 “동성 간 성폭력 문제 발생시 ‘동성애자들이 성욕을 주체 못해 이성애자에게 가하는 폭력’ 쯤으로 생각하는 것은 동성애자에 대한 편견과 혐오에서 비롯된 오해”라며 “이성애자 남성이 이성애자 남성에게, 이성애자 남성이 동성애자 남성에게, 이성애자 여성이 이성애자 여성에게, 이성애자 여성이 동성애자 여성에게 가하는 성폭력 등 다양한 사례들이 존재한다”며 동성 간에 발생하는 성폭력의 다양한 양상을 지적했다.
이어 지훤 씨는 여성 커뮤니티에서 성폭력을 묵인하는 분위기에 대해 “여성 간 성폭력을 부정하는 것은 여성 이반을 부정하는 것 만큼이나 위험하다”며 “여성 이반 커뮤니티가 ‘유토피아’라는 신념은 동성애에 대한 혐오만큼이나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애중심적인 여성 이반 커뮤니티 문화가 성폭력 유발"
두 번째 발제를 맡은 이화레즈비언인권운동모임 ‘변태소녀하늘을날다’ 나루 활동가는 “여성 이반 커뮤니티의 연애 중심성과 문화의 획일성이 성폭력을 유발하는 환경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협소한 성폭력 개념이 동성 간 성폭력을 이해하는 데 있어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나루 씨는 이어 ”여성이반 커뮤니티가 나이·직업·취미·특기를 매개로 다양하게 분화되지 않고 성정체성 만을 근거로 하는 연애를 위한 공간이 되는 이상 스킨쉽을 유도하는 게임이 마냥 즐거운 놀이문화가 되고, 이를 모두에게 강요하는 일 등은 자연스러운 것이 될 수밖에 없다“며 연애 중심의 여성이반 커뮤니티 문화를 꼬집었다.
그러나, 나루 씨는 “성소수자에게 자신을 온전히 드러낼 수 있는 공간이 커뮤니티를 제외하고는 없다”며 “이런 점들이 여성 이반들이 겪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이라며 제약당하고 있는 여성성소수자들의 인권을 강조했다.
“동성 간 성폭력 관련 법률 전무”
마지막 발제를 한 끼리끼리 활동가 루이루이 씨는 성폭력특별법, 청소년보호법, 가정폭력방지법 등 성폭력 관련 기존 현행법을 검토한 뒤 “동성 간 성폭력 관련 법률은 전무한 실정”이라며 “동성 간 성폭력을 현행법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다만 그 성적인 요소를 제외한 채 폭행만으로 형사 처벌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현행법 중 강간을 처벌하는 형법 ‘제 32장 제 297조(강간)’에는 ‘폭행 또는 협박으로 부녀를 강간한 자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고 되어있다. 이에 대해 루이루이 씨는 “이 서술에서 가해자에 대한 명확한 정의가 없어 여성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 모호할 수밖에 없고, 피해자는 여성이라는 인식이 아직도 팽배해 남성이 성폭력에 대한 피해자가 될 수 없음을 말해주고 있다”며 동성 간 성폭력에 강간은 적용될 수 없다고 밝혔다.
또 강간의 법률적 정의에 대해 루이루이 씨는 “강간은 ‘강제 간통’의 줄임말로서 간통은 ‘배우자 있는 사람이 배우자 아닌 사람과 성교함’을 뜻하고, ‘성교’는 남녀가 성적 관계를 맺는 것을 의미한다”며 강간 개념의 수정과 확대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루이루이 씨에 따르면 현행 법률상에서 동성 간 성폭력에 적용할 수 있는 법률은 형법 제 32장 제 298조 ‘강제 추행’ 조항 정도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도 루이루이 씨는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했다. 루이루이 씨는 “‘강제 추행’이 그 처벌의 강도는 제쳐 두고라도 그 정의에서 추행이라는 단어가 ‘음탕하고 난잡한 짓’으로 정의된다”며 “이렇게 되면 결국 동성 간 성행위 자체를 인정할 수 없다는 의미가 된다”고 토로했다.
루이루이 씨는 “현행 법률을 검토하면서 가장 절실하게 느낀 문제는 확고하게 굳어진 가해자는 남자, 피해자는 여자라는 사회적 인식이었다”며 “모든 법 조항에서 심층적으로 가해자는 ‘남’, 피해자는 ‘여’라는 인식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루이루이 씨는 “하지만, 동성간에서도 엄연히 성폭력이 발생하고 있는 현재, 인식의 변화만을 기다리고 있자는 것은 위험한 생각”이라며 “현재의 법률에 이를 분명히 명시할 수 있는 방안의 연구가 시급한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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