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에서 생을 마감한 이들의 추모제 열려

67명의 영정과 함께 추모제와 본행사 진행
"정부는 노숙인의 정확한 통계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



21일 오전 서울역 철도박물관 앞. 몇몇의 사람들이 무언가를 만드느라 분주하다. 종이박스로 무엇인가를 만들고 있어 물으니 ‘박스 집’이라 한다. 또 방으로 보이는 공간을 만들고 있어 물으니 ‘쪽방’이라 한다.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집’의 이미지와는 너무도 달랐지만, 이들이 만들고 있던 것은 한국 사회 최빈곤층인 노숙인들의 주거 공간 역할을 하는 ‘박스 집’과 ‘쪽방’이었다. 또 한 켠에는 영정으로 보이는 사진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노숙인복지와인권을실천하는사람들’(노실사),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노숙인당사자모임 등 노숙인 관련 단체들은 21일 서울역 철도박물관 앞에서 ‘2004 거리에서 죽어간 노숙인 추모제’(추모제)를 개최했다. 2001년부터 매년 밤이 가장 긴 동짓날에 열리는 노숙인 추모제는 올해로 4회 째다.

이날 추모제는 1부 사전행사와 2부 추모제로 나뉘어 진행되었다. 오전 10시부터 진행된 1부 행사에서는 ‘쪽방 체험’과 ‘박스 집’을 짓는 ‘체험마당’, 주민등록말소자 신분복원 상담과 복원비 지원을 위한 ‘권리마당’, 사진으로 노숙인 복지와 인권을 살펴보는 ‘전시마당’ 등 총 5개의 부문마당으로 진행되었다.

“노숙인들, 주민등록말소로 이중고 겪어”

이날 주민등록말소자 신분복원 상담을 위해 차려진 ‘권리마당’에는 100여 명의 노숙인들이 몰려 주민등록 복원에 대한 노숙인들의 높은 관심을 엿볼 수 있었다. 노실사에 따르면 전체 노숙인 가운데 약 50%가 주민등록말소자이다. 고정적인 주거지를 확보하지 못한 노숙인들은 주민등록이 쉽게 말소된다.

문헌준 노실사 대표는 “고용이 극도로 불안한 상태에서 주민등록까지 말소된 노숙인들은 일자리 자체를 구하기가 불가능하다”며 “노숙인들이 공식노동부문에서 일할 수 없다보니, 용역을 나가도 철거 현장 같은데 동원이 된다. 또 사업주 입장에서는 다쳐도 책임지지 않기 위해 노숙인들을 이용하고 있는 것”이라며 주민등록 말소로 인해 노동권을 박탈당하고 있는 노숙인들의 이중고를 지적했다.

또 문헌준 대표는 “노숙인 관련 단체들이 주민등록말소자 복원 상담을 해주고, 필요한 비용도 지원해준다고 하지만 한계가 있다”며 “공공역사 중심으로 주민등록 복원을 위한 상담센터를 운영하고, 말소자에 대한 즉각적인 지원이 이뤄져야 할 것”이라며 정책적 차원의 지원체계 마련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일자리가 있어야 일을 하죠”

쪽방 체험관으로 마련된 모형 쪽방에는 한 사람이 자리를 잡고 누워있었다. 행사를 주최한 노숙인 단체 관계자인 줄 알고 얘기를 건네 보니 실제 쪽방 거주자다. 올해 53세의 박 모 씨는 1년 전부터 서울역 인근 쪽방에서 생활하고 있다. 장애(지체장애 3급)를 가진 그는 30만원 정도의 생계급여를 받아 월세 22만원을 주고 남은 8만원 정도로 한달을 생활한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식사는 서울역 주변의 무료급식소를 통해 해결한다.

박 씨는 “그나마 나는 30만 원이라도 받으니까 살죠. 다른 노숙인들 같은 경우는 어떻겠습니까. 살길이 막막하기만 합니다. 괜히 노숙인들이 죽어나가겠습니까”라며 자신의 상황은 다른 노숙인들에 비해 낫다고 설명했다.

일을 하고 있냐고 묻자 박 씨는 “일자리가 있어야 일을 하죠”라며 짜증 섞인 대답을 내뱉는다. 가장 필요한 게 무어냐고 묻자 박 씨는 또 “일자리”라고만 답한다.

“12월 들어서는 하루 밖에 일을 못 했다”

박 씨 뿐만 아니라 이날 추모제 참여마당에서 만난 노숙인들은 한결같이 일자리 문제를 토로했다. 노숙인 임 모 씨는 현재 시청 역 지하도에서 노숙생활을 하고 있다. 그는 IMF 때 동생의 보증을 섰다가 재산을 모두 잃었다고 한다. 임 씨는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발버둥 쳤지만, 1년 전부터 노숙 생활을 하게 되었다. 여름 동안은 한강고수부지에서 생활하다가 날씨가 추워진 후로 시청 역으로 자리를 옮겨 생활하고 있다”고 말했다.

임 씨 역시 “일자리 구하기가 하늘에서 별 따기”라고 토로했다. 그는 “올 8월 달까지는 그나마 일거리가 간간히 있었는데, 그 이후로 일이 뚝 끊겼다. 매일 용역 사무실에 나갔지만, 12월 들어서는 하루 밖에 일을 못했다”며 “새벽부터 용역 사무실에 나가보지만, 허탕 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가장 필요한 지원을 묻자 임 씨 역시 “안정적인 주거도 중요하지만, 일자리가 가장 시급하다. 일을 나가면 어떻게든 해보겠는데, 수입이 있어야지 쪽방이라도 얻을 것 아닌가”라며 일자리에 대한 절박한 심정을 토로했다.

현애자 의원, “지금에서야 찾아와 죄송하다”

한편, 이날 3시 경에는 현애자 민주노동당 의원이 추모제 사전행사 현장을 방문했다. 지난 달 17일 ‘노숙체험’ 차 서울역을 방문한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과는 대조적으로 이날 현애자 의원은 보좌관 한 명만을 대동한 채 약 한 시간 가량 노숙인들과 대화를 나누고, 추모제 사전행사와 본 행사를 함께했다.

이날 노숙인들은 김근태 장관의 방문 때와 마찬가지로 자신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직설적이고, 다소 거칠게 표현했다. 그러나, 김근태 장관 방문 때와 달리 경찰이 나서 노숙인을 제재하는 등의 사태는 발생하지 않아 노숙인들과의 대화는 원만히 진행되었다.

한 노숙인은 현애자 의원에게 “쪽방이라도 있는 사람은 다행이다. 8년 째 노숙생활을 하고 있다. 일자리도 없다”고 하소연 했고, 또 다른 노숙인은 “정치인들에게 이야기해 봤자 무엇하는가, 말로만 해준다 하고 되는 것 하나 없더라”며 다소 격앙된 어조로 말을 건넸다. 이에 대해 현애자 의원은 “겨울이 다되어 지금에야 찾아와 죄송하다”며 “지금부터라도 더욱 열심히 하겠다”고 말했다. 노숙인들의 다소 거칠은 문제제기 방식에도 현애자 의원은 시종일관 침착하게 그들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정부의 1600명 감소 주장은 죽어나간 노숙인 숫자의 반영일 뿐”

1부 추모제 사전행사가 모두 끝나고, 오후 6시부터 추모제 본행사가 진행되었다. 이날 추모제에는 지난 한 해 동안 차가운 시멘트 위에서 생을 마감한 노숙인 67명의 영정이 차려졌다. 이날 차려진 영정은 67개였지만,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에 따르면 거리 노숙생활 중 사망한 채로 확인되거나 사망 전에 ‘행려자’로 처리되어 병원으로 이송돼 치료 중 사망하는 경우가 300명에서 400명에 이른다고 한다.

문헌준 대표는 “정부는 노숙인에 대한 정확한 통계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며 “정부는 2001년 노숙인 수가 1998년에 비해 1600명 가량 줄어들었다고 얘기했지만, 그것은 한 해 400명 씩 4년간 거리에서 죽어나간 노숙인 숫자의 반영일 뿐”이라며 정부 주장을 일축했다. 또 “사망한 노숙인들은 연고가 없는 경우 ‘행려자’로 처리되어 해부 실습용으로 쓰이게 된다”고 덧붙였다.

추모사를 한 유영우 주거권실현을위한국민연합 사무총장은 “지구상에 모든 생물들이 모두 자기 집을 가지고 있으나, 유독 인간만이 자신의 집을 가지지 못하고 있다”며 “주거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권리”라고 주장했다. 유 사무총장은 이어 “만약 IMF 때 가난한 사람들이 머물수 있는 임대주택이 많았다면, 절대 노숙인이 생기지 않았을 것”이라며 “노숙인의 근본적 권리인 주거권이 확보될 수 있도록 싸워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추모제 후 참석자들은 서울역 지하도를 행진하는 것으로 모든 일정을 끝마쳤다. 한 노숙인에게 새해 소망을 묻자 “새해에는 노숙 생활도 벗어나고, 이런 추모제도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인터뷰] 현애자 민주노동당 국회의원

그 전에 쪽방을 방문한 적이 있는가
처음 봤다. 서울 쪽방 촌에 대해서는 듣기는 했지만, 아직 방문한 적은 없었다. 노숙인 문제에 대한 정책적 대안을 현장에서 직접 찾아보고자 했다. 직접 방문했으면 더 좋았겠지만, 간접적으로나마 체험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더라도 직접 한 번 방문해야 하지 않나
꼭 직접 방문하고, 정책적 대안을 현장 속에서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도 노숙체험 차 서울역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때 김 장관에 대한 노숙인들의 성토가 대단했는데
김근태 장관은 저소득층, 노숙인 등 보건복지 분야의 주무장관이다. 그동안 노숙인 관련 대책이 부재했었다. 이에 대한 노숙인들의 분노와 성토는 당연하다. 받아들여야 하고, 노숙인 당사자들이 표출하는 목소리를 세심하게 들어야 한다.

김근태 장관처럼 경찰이 호위를 하지는 않았다. 노숙인들의 다소 거친 방식의 문제제기도 있었는데 어땠는지? 불쾌하지는 않았는지
괜찮다. 불쾌하지 않았다. 오히려 시간 제약 때문에 길게 얘기 나누지 못한 것이 안타깝고, 죄송하다.

직접 들어 보았듯이 노숙인들은 노무현 정부와 정치인들에 대한 분노 그리고 다양한 요구를 거세게 표출했다. 그러나, 복지부 장관을 비롯해 어느 누구도 노숙인 문제에 대한 명쾌한 해법 내놓지 못한다. 보건복지부 상임위 소속 의원으로서 무력감이 들지는 않는가
그렇지 않다. 이제 막 시작인데 무력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 노숙인 당사자들의 가장 현실적인 요구를 받아 안고, 노동할 권리 보장해주어야 한다. 그것을 당사자들의 현실 안에서 세워 나가야 한다.

앞으로의 노숙인 정책 활동 방향은
노숙인 문제 중에 예컨대 서울시의 의료비 삭감 문제와 같은 것은 즉시 바로 잡을 수 있는 문제다. 자립과 자활의 관점 없이 노숙인을 보호와 숨겨져야 할 대상으로 취급한 노숙인 정책 방향은 잘못되었다. 그런 문제의식과 방향을 가지고 오늘 오게 된 것이고, 앞으로도 노숙인 당사자들이 처한 현실 안에서 고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