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지도’ 안에 담긴 대추리 고통의 역사

8일 평택 팽성에서 열린 ‘구(舊)대추리 심리지도’ 제막식

  주민들이 둘러쳐진 천막을 거둬내자 심리지도가 모습을 드러냈다.

미군 K-6부대(캠프 험프리)와 철책 너머로 바로 인접해 있는 평택시 팽성읍 대추리 마을. 대추리 마을 입구에 '구대추리심리지도'가 첫 공개됐다. 지도 안에는 외국군기지에 억눌려 살아왔던 대추리 마을의 애달픈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기자가 대추리 마을을 찾아간 8일 ‘구대추리심리지도’ 제막식이 열렸다. 현장에는 주민들과 시민단체 회원 50여명이 참여했다. ‘구대추리심리지도’ 제작에 주요한 역할을 해왔던 주민들이 둘러쳐진 천막을 거둬내자 심리지도가 모습을 드러냈다. 어버이날을 맞이해 자녀들이 준비한 카네이션을 가슴에 달고 참석한 주민들은 공개된 구대추리심리지도에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꼼꼼히 살피다가도 움직임을 멈추고 회상에 잠긴 모습들도 엿보였다.

1952년 전 미군기지 확장으로 강제로 빼앗긴 마을. 그리고 현재 똑같은 이유로 반복되고 있는 마을의 존폐위기에 주민들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미군기지 활주로에 사라진 고향 '구대추리'

지난 3월 말부터 제작에 들어간 '구대추리 심리지도'는 이곳 원주민들 중에서도 노인들의 기억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구대추리는 50여년 전 미군기지 150만평에 포함돼 흔적도 남지 않고 통째로 사라졌기 때문이다.

미군기지 확장을 이유로 주민들은 보상 한푼도 없이 생활터전에서 강제철거 됐을 뿐만 아니라 정부로부터는 국민으로써의 권리도 보호받지 못하고 외면받아 왔다. 이렇게 세월이 흐르면서 사라진 마을은 '구대추리', 현재 새로 정착한 마을을 '대추리'라고 부르고 있다.

이에 공공미술작가 김지혜씨는 이러한 마을 주민들의 한 맺힌 역사적 경험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고, 묻혀진 사실을 알리기 위해 구대추리를 지도위에 다시 살리는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정부가 다시 미군기지 확장을 이유로 일방적인 토지수용을 밀어붙이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 작업은 주민들에게 더욱 의미있게 다가갔다.

지도제작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노인들은 당시 골목대장이었던 옛 소년축구단인 '대추리 소년단' 출신 할아버지 7명이다. 때문에 작업공간도 작업실이 아닌 대추리 노인정이었다. 할아버지들은 손에 직접 그림도구를 들고 파편적으로 연상되는 마을의 기억을 도화지 위에 옮겼고, 서로의 기억을 비교하면서 검증해 나갔다. 이렇게 구체화된 그림은 컴퓨터에 입력시켜 지도의 모양으로 완성됐다.

이렇게 제작된 지도에는 할아버지들 손길이 묻어나는 그림과 마을 주민들의 생생한 증언내용이 담긴 글귀들이 새겨있어 마치 구대추리를 되살려 놓은듯한 생명력을 느끼게 했다.

  한 주민이 50여년 전 추억을 떠올리며 지도 위를 가르키고 있다.

대추리 주민들 외국군기지에 의한 피해 한 세기가량 이어져

구대추리 마을지도는 어린 시절의 애틋한 추억보다는 군기지 주변에 살면서 겪어왔던 주민들의 애달픈 역사가 더욱 강하게 드러난다.

주민들의 고통은 단지 미군기지만으로 시작된 것은 아니었다. 한 주민에 의한 증언내용에는 인근마을 주민 200백여명이 일본군에게 강제징용돼 활주로를 만들었다고 기록돼 있다. 지도를 살펴보고 있던 할아버지는 당시 기억을 떠올리며 “우리는 사람 목숨으로 취급되지도 않았어. 일하다 죽으면 그 자리에서 끝이었지”라며 생각만 해도 몸서리 쳐진다는 듯 손사레를 친다.

그림과 함께 새겨져 있는 글귀 중에는 “52년 8월 10일 미군이 불도저로 담 뒤에 산, 밭, 흙을 밀어놓고 다음날 저녁에 집까지 밀고 들어와 주민들은 밀려나갔다”라는 증언내용이 적혀있다. 주민들은 미군들이 당시 사람이 살고 있는 집을 막무가내로 허물어 아무것도 챙기지 못하고 맨발로 쫓겨나왔을 정도라고 공통적으로 이야기했다.

지도 한켠에는 미군으로부터 무단 철거된 후 아무 준비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집을 지을 당시 “보도 없고 설가레도 없어 할 수 없이 일본군이 사용하던 뇌료로 사용하고 설가레라고 하는 것은 겨우 부지갱이 같은 것으로 쓰고 바침대도 할 수 없이 부지갱이로 사용, 그것도 모자라 뻐침대를 몽땅 사용하다가 다지은 집조차 잃어버린 허무한 경험”이 적혀져 있다. 맨손으로 다시 터전을 만드는 과정이 가슴 아프게 담겨 있다.

논과 밭, 고향을 두고 보상 한 푼도 없이 쫓겨날 수밖에 없었던 주민들은 미군기지 둘레에 우선 천막이나 나무 등 주울 수 있는 재료들로 허름한 집을 만들어놓고 정착생활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이곳 마을의 원주민들 대부분은 황무지에서부터 맨손으로 다시 땅을 일궈 기름진 터전으로 만드는데 젊음을 바쳐 왔다.

일제시대의 속국으로써의 억압과 한·미간 동등하지 못한 동맹관계의 모순들 속에서 이곳 주민들은 정부로부터도 암묵적으로 보호받지 못해 온 국민은 아니었는지 의문이 든다.

  지도에는 할아버지들 손길이 묻어나는 그림과 마을 주민들의 생생한 증언내용이 담긴 글귀들이 새겨있다.

지도제작에 참여한 홍창유 씨는 “6.25가 끝나고 미군기지 확장을 이유로 떠나가라고 해서 이주대책도 없이 현 위치로 옮겼다. 50여 년을 소음과 미군철조망 속에서도 큰 불평없이 살았건만 또다시 미군기지 확장이라니”라며 정부에 대한 억울한 심정을 토해냈다. 미군기지를 이유로 고향에서 또다시 쫓겨날 수 없다는 주민들의 이유있는 항변이 더욱 간절하게 울리고 있다.

나는 지금도 미군부대 철조망 안
나의 고향 구대추리에서 열다섯 살이 되어 뛰노는 꿈을 꾼다.

한번 잃어버린 고향인데 또 다시 지금의 대추리를
잃어버려 두 개의 꿈을 꿀 수 없기에
오늘도 간절한 마음으로 우리의 싸움이 이기는 날
그날을 위해 고향을 지킨다’

- 구대추리심리지도 조형물과 나란히 설치된 주민들의 창작글

직접 일군 터전에 대한 주민들의 남다른 애착

지역주민들과의 어떤 상의도 없이 터전 일대가 용산.동두천 미군기지 이전 예정지에 포함되면서 현재 주민들은 살벌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대추리를 비롯한 도두리 마을도 생존터전을 정부의 일방적인 토지수용에 넘길 수 없다며 반대를 적극적으로 천명해왔다.

  마을의 개인 우체통에는 한국토지공사, 대한주택공사 등의 우편물을 거부하는 것을 흔하게 볼 수 있다.

현재 이곳 미군기지 둘레에 펼쳐진 평야에서 생산되는 쌀은 이미 질 좋은 품질과 유명한 브렌드로 인정받고 있다. 황무지에서 기름진 평야가 되는 과정에는 한 평생을 투자한 주민들이 있어왔다. 하지만 고생의 댓가로 얻은 현재의 터전을 정부는 어떤 의견수렴도 없이 내놓으라고 한다. 주민들의 삶의 전부이기도 한 이곳이 보상금으로 대체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에 주민들은 정부의 일방적이고 비민주적인 절차로 마을을 존폐위기에 내몰 수 없다며 매일 밤 촛불집회를 열고 있다. 심리지도가 첫 선을 보이는 이날에는 250일째 촛불이 밝혀졌다.

또 이들 마을의 개인 우체통에는 국방부, 한국토지공사, 대한주책공사 등의 우편물을 거부하는 스티커가 붙어있는 것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주민 대부분이 정부의 지장물검사를 일체 수용하지 않고 있다.

'구대추리심리지도'를 기획한 김지혜씨는 "이 지도제작의 취지는 단순히 옛 고향에 대한 그리움에 관한 것은 아니다. 또 한번 고향을 빼앗길 수 있는 현재의 상황에서 마을을 지키고자 하는 주민들의 간절한 소망을 이야기 하고자 한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주민들의 의지에 비해 주민들의 목소리가 주목받지 못받고 있다는 원망도 비춰지고 있다. 주민들 몸부림이 소외돼 있다는 인식이다.

이에 평택팽성읍대책위는 현재 농번기를 맞아 촛불집회로 약식화되어 있는 활동들을 6월부터 본격적으로 활성화시킨다는 구상이다. ‘전국평화순례’와 ‘평택지킴이 십만인 모집’, ‘7·10 전국규모의 문화집회’ 등의 활동을 통해 미군기지확장에 반대하는 주민들의 목소리와 대추리의 아픈 역사들을 대중적으로 알려나갈 예정이다.

  할아버지들 정부에 억울한 사연을 외치며 학생들과 함께 신명난 풍물을 한판 벌이고 있다.
덧붙이는 말

이 기사는 김효정 '참소리' 기자가 제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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