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 맨날 진지하고 어려운 소리만 한다"

[인터뷰] '맑스 왜 희망인가?' 준비하는 정병기 맑스코뮤날레 총무

제2회 맑스코뮤날레 학술문화제가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맑스이론의 정신과 방법에 입각하여 우리 시대의 중요한 이론적-실천적 문제들과 전면적으로 대결하는 것은 물론이고, 학술적 작업과 문화행사를 유기적으로 결합시킴으로써 그 동안 서로 소원해진 진보적 연구자들 상호 간에, 진보적 이론과 실천 간에, 그리고 학술연구자와 문화예술가간에 새로운 상호 이해와 소통의 장을 마련하기 위함이다”라는 맑스코뮤날레 결성 취지문의 한 구절은 1회를 지나 2회를 맞이하며 여전히 그 빛을 발하고 있을까?

정병기 맑스코뮤날레 총무는 “맑스가 희망이고 대안이다”라는 말로 그 답을 대신하고 있는 듯 하다. 25일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사무실에서 맑스코뮤날레 조직위원회 총무를 맡고 있는 정병기 서울대 기초교육원 대우 교수를 만났다.

참세상 고정필진이기도 한 정병기 총무는 참세상의 칼럼주장란에 ‘맑스를 다시 불러 변혁의 희망을 노래한다’라는 글을 실어 이미 제2회 맑스코뮤날레를 소개하기도 했다. “맑스, 왜 희망인가?”란 2회 학술문화제의 화두에 대해 정병기 총무는 “자본주의가 존재하는 한 맑스주의가 희망이고 대안이란 것을 얘기하고 싶었다”며 “이 큰 틀 안에서 다양한 이론과 생각들이 구체적 답변을 해 줄 것”이라고 전했다.

정병기 총무는 인터뷰 내내 맑스코뮤날레가 하나의 행사이자 축제임을 거듭 강조했다. “단체가 아닌 이상 다양한 좌파 진영의 목소리가 나오고 함께 토론하는 것 자체가 의미 있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2회 맑스코뮤날레에서 현 정세와의 긴밀성, 현실 운동과의 접점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1회에 대해서 많이 보완됐다고 생각한다”며 “거대담론만 이야기하고 현실적응성이 떨어지는 것이 한국좌파이론진영의 문제라는 것이 개인적 의견이다. 앞으로 코뮤날레가 이런 부분 해결해가야 할 것”이라고 대답했다.

두 번째 맑스코뮤날레 학술문화제가 열린다. 1회 맑스코뮤날레에서 드러났던 의미와 1회의 성과라면

맑스코뮤날레는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일단 한국의 진보적 지식인과 활동가들이 뭉쳐보자는 취지가 가장 컸다. 지금까지 좌파 내에서 여러 개의 통합단체가 생겼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결과적으로 다시 또 하나의 단체로 전락하는 상황으로 흘러온 것이 사실이다.

지금까지 남한의 좌파 운동권은 다원주의적 사고로 논쟁하지 못하고, 자기가 해석하는 방식만 옳다고 하는 경향이 있어왔다. 극단적인 경우에는 자신이 아닌 나머지를 다 부르주아라고 규정하고 비판하는 모습도 보이는데, 그런 부분이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맑스코뮤날레는 ‘통합’에 중점을 두고자 했다. 코뮤날레는 하나의 새로운 ‘단체가 아니라 행사’라는데 의미를 두고 있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같이 할 수 있는 행사이길 바라고.

두 번째 의미는 ‘하나의 축제’로서의 위상을 갖자는 것이다. 코뮤날레는 조직이나 단체가 아니고, 또 이론을 새로이 생산하는 연구소도 아니다. 지식인들만의 활동공간이 아니라 문화활동하는 사람들도 함께 하는, 노동자계급과 민중도 같이 하는 하나의 축제의 형태로 가자는 것이 코뮤날레의 의도다. “좌파 맨날 너무 진지하고 어려운 소리만 한다”에서 벗어나 다함께 놀아보자, 즐겨보자는 얘기를 하고 싶었다. 물론 실천적인 부분을 살려야 하는 것은 당연한 거고. 2회 대회도 그 두 가지 취지는 변하지 않고 있다.

1회 대회가 끝나고 두 번째 의미에서는 좀 비판이 있었던 것 같다. “과연 같이 어울리는 축제였느냐, 그저 보여주는 공연에서 끝났다”라는 얘기가 많이 나왔다. 좌파를 통합해보자고 하는 첫 번째 취지는 일정정도 성공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2회 행사는 1회의 성과와 평가지점 받아 안고 준비됐을 것 같다. 1회 대회가 끝나고 '제국/제국주의'와 ' 계급, 민중, 시민, 대중’이라는 주제로 쟁점토론도 있었던 것으로 안다. 2회에 새롭게 들어간 부분은 없는지

2회 때는 앞서 말한 코뮤날레의 두 가지 의미 측면에서 보자면, 첫 번째 ‘통합’의 의미에서는 발전이 있다고 생각한다. 일단 주관단체가 1회에 비해 많이 늘었고 조직위원도 300여 명으로 많아졌다. 1회 때 비판이 제기됐던 ‘함께하는 축제’를 살리기 위해서 노력했는데, 어려움이 많았다.

보여주는 공연식을 탈피하고 같이 어울리는 행사를 만들기 위해 문화행사 한마당을 기획했는데, 같이 하기로 했던 예술인연대회의가 내부 역량상의 문제로 나중에 빠지게 돼서 문화생사를 전부 새로 조직하다 보니까 좀 늦어졌다. 장소도 노천극장에서 하기로 했는데 여건상 대운동장으로 바뀌어서 솔직히 걱정된다. 그 넓은 데서 ‘함께 하는 쪽’으로 문화행사가 이루어질지 고민이다. 또 1회 행사는 지나치게 포스트모던 하다는 비판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대중적으로 활동하는 예술가는 빼고, 진보적 그룹을 형성해서 활동하는 사람들만 참가하는 것으로 했다.

또 1회 대회가 끝나고 쟁점토론을 했었는데, 쟁점토론의 경우 2년의 텀이 너무 길다는 문제제기에서 나온 것이다. 중간 중간에 중요한 쟁점을 잡아서 정세토론 의미 살리자는 의도였다. 쟁점토론을 하면서 맑스코뮤날레가 정세개입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고. 그래서 2회 대회에서 새로 들어간 부분이 마지막 폐회식 때 선언문을 발표하기로 한 것이다.

이번 행사가 1회와 달라진 점 중 하나가 정치조직의 참여다. 1회의 경우 정치조직을 배제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2회는 정당이 아니라면 정치조직도 참가할 수 있도록 열어놨는데

1회 때 제외했던 것은 코뮤날레가 정치선전의 장이 될까 염려했었던 부분인데. 사실 정치조직들의 요청이 많이 있었다는 게 가장 큰 이유다. 실질적으로 동력이 거기 많기도 하고. 이번에도 주관단체 세션은 열어놨지만 전체주제 쪽에서는 포함시키지 않았다.

이번에 주관단체 주제발표는 전부 열어놨다. 1회 때는 집행위에서 다 관여했는데 2회의 경우 주관단체 세션은 신청하는 단체를 다 받아줬고, 주관단체가 알아서 하라고 했다. 세부주제도 전체주제에 맞춰달라고만 요구했다. 연구 주제는 관계없이 최종적으로 ‘맑스는 왜 희망인가’를 끌어내야 한다고 말한 정도다.

2회 맑스코뮤날레 자체에 대한 얘기로 넘어가자. “맑스, 왜 희망인가?”라는 전체주제는 어떤 의미인가

맑스가 ‘과연 희망인가’가 아니고 ‘왜 희망인가’를 묻고자 하는 게 가장 핵심이다. 일단 희망은 희망인데 그 이유를 밝혀보자는 얘기다. 사실 과연 희망인가도 안 물어 볼 수는 없는데. 코뮤날레를 같이 하는 단체 중에도 전통적인, 여전히 맑스에서 전망을 찾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포스트 그룹은 맑스 자체에서 전망을 찾는 건 아니다.

하지만 맑스에 그 바탕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분모가 있는 것이고, 따라서 과연 희망인가란 물음이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현실사회주의권이 붕괴한 이후에 많은 진보적 지식인들도 좌파 진영을 떠났는데, 이들은 맑스가 희망이 아니라고 판단한 거다. 하지만 자본주의가 존재하는 한 공산주의는 희망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산주의를 제해 놓고 대안이 없다고 얘기한다. 이들에 대해 맑스는 희망이고 그 이유를 제시하겠다는 것이 이번 대회의 취지이자 목표다.

전체 주제 (제1부 맑스의 코뮤니즘, 어떻게 가능한가?, 제2부 맑스와 함께/너머, 제3부 맑스와 현 시기 한국의 좌파운동)는 어떻게 정해졌고, 배치됐는지

전체 주제의 경우 집행위에서 두세 달에 거쳐 토론해서 잡은 거다. 제일 처음이 ‘맑스의 코뮤니즘 어떻게 가능한가’인데. 같은 맑스주의 단체일지라도 중점을 두는 부분이 다르다. 평의회를 중심으로 한다든지, 정당 혹은 국제연대활동에 중점을 둔다든지 다 다르다. 그러한 부분에서 먼저 토론을 끌어내고자 하는 것이다. 자율평론과 빛나는전망 두 단체 대표가 나와서 토론을 열고.

2부로 가면, ‘맑스와 함께’여야 한다는 쪽과 넘어서자는 포스트 그룹이 토론을 이어간다는 그림이다. 여기서 논쟁적으로 토론이 돼야 한다. 맑스를 넘어서자는 쪽과 전통적으로 맑스를 보는 두 사람이 발표를 하는데, 아마 가장 쟁점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첫 번째에서 논쟁 열고 2부에서 지정토론자 나오고, 거기서 종합토론으로 이어지는 식이다. 3부는 한국에서, 구체적인 실천활동에서 어떻게 할지로 넘어가는 자리다.

2회 코뮤날레의 전체주제와 세부 제목들을 봤을 때, 새로울 게 없다는 지적이 있다. 전체적으로 참신성도, 문제의식의 심화도 담보되고 있지 못하다는 비판도 제기되는데

그건 코뮤날레에 가서 발표를 들어봐야 알 수 있는 문제 아니냐. 같은 제목, 같은 주제라 하더라고 내용적으로 심화되고 발전이 있다고 봐야한다. 이들이 개별적으로 흩어져서 내부에서만 비판하고 논쟁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자리에서 다른 입장 가진 단체, 사람들과 같이 토론하면 거기서 뭐가 나온다고 본다. 평의회 공산주의도 2년동안에 빛나는 전망 쪽에서 상당히 많은 이론적 진전이 있었다. 관점은 그 쪽 관점이더라도.

처음에 얘기했듯이 만약 서로 안받아 들이고 자기만 옳다고 한다면 문제가 있는 거다. 토론회 장소가 마련된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하다고 본다. 진보적인 이념이나 사상들은 실천과 항상 결부가 되기 때문에 입장이 다른 사람과 토론 하고, 그를 적용하지 않으면 발전이 없다. 솔직히 맨날 그 그룹에서만 맴돌고 있지 않냐. 그게 문제다. 설사 이미 나왔던 내용, 같은 소리를 하더라도 나와서 함께 토론하면 달라질 수 있고, 또 새로운 이야기들을 끌어낼 수 있다고 판단한다. 그래서 가능하면 더 논쟁적으로 만들고 싶었는데 하는데 까지 한 거다.

사람들이 코뮤날레에 거는 기대가 큰 건 알지만 코뮤날레의 위상을 정확히 봐야한다. 코뮤날레는 하나의 축제이자 행사다. 1회, 2회가 다르고 3회도 또 다를 것이다. 이번 행사에는 어느 쪽 얘기가 좀 더 많이 나오고 또 외부에서 봤을 때 한 쪽으로 치우쳐 보일 수도 있지만 3회는 또 다르게 구성될 것이다. 코뮤날레는 맑스코뮤니즘을 벗어나지 않는 한에서 다양한 이야기들이 풀어지는 행사지 단체가 아니다.

3부 주제가 남한의 좌파운동이긴 하지만, 2회 대회에서는 실제로 현 정세에 대한 긴장, 현실 운동과의 긴밀한 접점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비판도 있다

3부가 그런 거 다루고 있다. 주관단체 분과토론에서 다함께의 경우, 이론적으로 얼마만큼을 다룰지는 모르겠지만, 이라크 문제 던지고 있기도 하고. 따라서 없다고 볼 수는 없다.

현실운동과의 연관성이 중요한 문제라는 것에는 이견이 없다. 개인적으로 한국의 좌파 학자들의 단점이 그야말로 현실적응성이 떨어지는 소리를 많이 한다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미시적인 것은 건드리지 않으려는 점. 이라크 문제만 놓고 봐도, 맑스주의자들은 레닌 이후로 국제적인 문제들을 단순히 ‘계급전선, 계급갈등의 국제적 현상이다’로 얘기하고 끝이다.

맑스주의 이론이 거대담론뿐만 아니라 현실 정세와 운동을 미시적으로 다루고 구체적으로 어떻게 정리되는지 읽어야 한다. 그 부분이 코뮤날레에서 학술적으로 해결돼야 된다고 생각한다. 2회 행사의 경우 지난번에 비해서 그 부분이 많이 들어가 있지만 여전히 부족한 건 사실이다. 이후 쟁점토론 등을 통해 보완해야 할 문제다.

이르지만 2회 평가를 앞서서 한다면, 3회에 대해 잡혀있는 구상은 없는지

그거야 행사가 끝나봐야 알 수 있는 거다. 일단 각 단체별로 평가서를 제출하라고 얘기했다. 코뮤날레가 끝나면 1박2일로 내부 평가를 진행하고, 내부 토론회나 쟁점토론을 해서 점검해나갈 것이다. 3회에는 같은 실수를 반복해서는 안 되니까.
3회가 어떻게 될지 얘기할 수 없지만 개인적으로는 2회까지 큰 얘기를 많이 했기 때문에 좀 더 구체적으로 주제를 잡아가지 않을까 정도로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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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맑스코뮤날레 , 정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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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목록
  • dy

    한심합니다.
    아직도 맑스 얘기를 하다니... 차라리 김정일을 추종하지

  • 하하

    ㅋㅋ.. 김정일을 추종하는 사람도 있고 막스, 레닌을 극단적으로추종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두 부류다 근본주의자에 가깝죠. 이슬람 근보주의처럼 현실의 변화를 인정하지 않고 몆백년이 지난 코란 만을 손에 들고 이것이 진리다라고 외칠뿐입니다. 좌파는 맨날 진지하고 어려운 소리만 한다? 한번도 쉽게 대중을 이해시킬려고 노력한적이 없죠. 대개 대중들이 이해할수 없는 얘기를 할땐 두가지 경웁니다. 머리가 나쁘거나 노력하지 않거나..

  • 건설노동자

    진리는 결국은 빛나게 되어 있다.
    자본주의사회를 살고 있는 한 노동과 자본간의 대립을 피할 수 없듯이 맑스를 비켜서 사회를 분석할 수 없다.
    그리고 노동자들이 그 분석의 칼날을 자신의 것의 받아들일 수 밝에 없다.
    아무리 웃어봐라 역사가 끝이나는가

  • 초코파이

    쓰레기같은 인간들, 살인마, 조폭집단.. '귀족노조'는 이미 식상한 수사법. 저런 사람들을 어떻게 설득할지 참 난감하다. 난감 또 난감.. '우리가 안고 갈 민중'으로 인식해야 하는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