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우리당이 29일 발표한 비정규입법 여론조사 결과와 관련, 여론조사 문항에 넣지 말아야 할 가치판단적인 문구가 들어가는 등 "상식이하" "아전인수식 여론조사"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예를 들어 열린우리당은 '비정규직 법안 통과에 대한 찬반'을 물으면서, 객관식 ①번에 '비정규직 고통을 덜기 위해 가능한 빨리 입법·시행'을, ②번에 '법안 통과 늦추고 계속 논의'라는 답변을 배치해 응답자들이 ①번을 선택하도록 유도했다.
국민 73.5%, 비정규법안 '가능한 빨리 입법'?
열린우리당이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의 주된 내용은 이렇다.
1)'비정규직 근로자 증가에 대한 찬반'과 관련해 응답자의 47.3%는 '실업이 늘어나더라도 비정규직이 늘어나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는 반면, 42.9%는 '실업을 줄이기 위해서는 비정규직이 늘어나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다음으로 '비정규직 법안의 방향'에 있어서는 60.9%가 '고용제한보다는 차별적 처우를 금지하는 방향'을 선택한 데 비해, '고용 규제, 실업 늘더라도 비정규직 줄어드는 방향'은 30.7%로 훨씬 낮았다.
3)열린우리당이 이번 여론조사를 실시한 목적으로 보이는, '비정규직 법안 통과에 대한 찬반'에서는 응답자의 73.5%는 '비정규직 고통을 덜기 위해 가능한 빨리 입법, 시행'해야 한다고 답변했다. '법안 통과 늦추고 계속 논의'해야 한다는 답변은 18.2%에 불과했다.
이날 발표된 여론조사 결과만 보면, 열린우리당이 추진하는 비정규법안은 대체로 국민들의 지지를 얻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이는 비정규노동법공대위가 한길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23-24일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와는 정 반대다.
당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81.8%는 '노동계 및 경영계와 먼저 합의를 이끌어낸 다음에 법을 통과시켜야한다'고 답변한 바 있다. 불과 5일도 되지 않아 국민 여론이 '먼저 합의'에서 '가능한 빨리 입법'으로 180도 바뀐 것이다.
"최소한의 객관성도 없는 여론조작"
이는 열린우리당측의 여론조사 문항이 잘못됐기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1)먼저, '비정규직 근로자 증가에 대한 찬반' 문항의 답변 항목을 보면 '①실업 줄이기 위해서는 비정규직 늘어나도 괜찮음' '②실업 늘어나더라도 비정규직 늘어나서는 안됨'으로 되어 있다. 언뜻 보아도 비정규직 감소=실업의 증가라는 등식을 사용해 ①번 항목쪽으로 답변을 유도하고 있다. 이는 위의 2)번 '비정규직 법안의 방향'과 관련한 문항도 마찬가지다. 3)번 '비정규직 법안 통과에 대한 찬반' 문항에 다다르면, '비정규직 고통을 덜기 위해'라는 강력한 가치판단이 개입된 문구를 넣음으로써 여론조사의 금기마저 깨고 있다.
이와 관련 민주노총은 "이번 설문의 문항이 과연 여론조사로서 지녀야 할 최소한의 객관성을 갖추었는지 여론조사전문가들에게 의견을 들어보자"며 "열린우리당은 국민여론을 노골적으로 왜곡하고 호도해서 자신의 정당성을 획득하기 위한 수단으로 삼으려고하는 헛된 기도를 중단하라"고 밝혔다.
열린우리당, 여론조사 '은폐'했나?
한편 민주노동당 의원들의 회의실 점거로 인해 환노위가 파행을 겪던 지난 23일, 열린우리당은 "여론조사를 통해 우리당의 비정규법안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가 확인되면 6월 국회에서 처리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열린우리당은 애초에 약속했던 27일엔 'ARS 기계에 문제가 생겼다'며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하지 않았고, 국회 안팎에선 "여론조사 결과가 불리하게 나오자 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왔다. 이날 열린우리당의 발표에도 불구하고, 여론조사 문항이 극히 허술한데다 비전문가의 눈으로도 공정성을 의심할 만큼 편향적이어서 열린우리당이 회기중에 실시했던 여론조사를 '은폐'했다는 의혹은 사그라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여론조사는 전문여론조사기관인 (주)폴앤폴을 통해 28일 전국의 만20세 이상 성인남녀 807명을 대상으로 전화면접조사 방식으로 실시됐으며, 표본오차는 95% 신뢰구간에 ±3.4%포인트라고 열린우리당은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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