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혈액제제에 의한 에이즈 감염’ 첫 인정

제조사, "원인규명 없는 상태에서 내려진 결정" 강력 반발

혈액제제와 HIV(Human Immunodeficiency Virus, 인체면혁결핍바이러스) 감염의 연관성을 인정하는 법원의 판결이 나와 주목된다. 그간 혈우병 환자와 가족들은 치료제인 혈액제제에 의한 HIV와 C형간염의 감염 연관성을 지속적으로 제기해왔다.

서울동부지법 민사 11부는 1일, 혈액제제로 치료를 받다가 HIV에 감염됐다며 이 모(16) 군 등 혈우병 환자와 가족 69명이 녹십자홀딩스 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피고는 이 군에게 3천만 원을 지급하고 이 군 가족에게 2천만 원을 지급하라”고 원고 일부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 “과실과 에이즈에 감염된 혈우병 환자들 간의 인과관계 인정”

혈우병을 앓아오던 이 군은 지난 1990년 11월부터 혈액제제 치료를 받았고, 1991년 2월부터 녹십자홀딩스 사가 제조한 혈우병 치료제를 투여 받았다. 그런데 1991년 2월 당시에는 에이즈 검사에서 음성반응을 보이던 이 군이 녹십자홀딩스의 약을 투여받은지 2년 만인 1993년 3월 양성반응을 보였다.

재판부는 이번 판결에서 "혈액제제의 제조에 필요한 혈액을 채혈ㆍ조작ㆍ보존ㆍ공급하는 업무는 이용자의 생명ㆍ신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므로 적정하게 수행하지 못하면 국민 보건에 중대한 위해를 가한다"며 "따라서 혈액 관리를 위해 최선의 조치를 다해야 할 고도의 주의의무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재판부는 “에이즈 검사에서 양성반응을 보이기 불과 30-45일 전에 채혈한 오 모 씨 등의 혈액을 혈액제제에 사용한 것은 잘못”이라며 “고도의 기술이 집약된 혈액제제의 경우, 제조업자가 손해발생의 다른 원인을 입증하지 못하는 이상 혈액제제와 에이즈 감염과의 인과관계를 추정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또 “회사는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은 혈액만을 사용해야하고 설령 바이러스에 감염된 혈액을 원료로 투입했다 하더라도 엄격한 제조공정을 거쳐 바이러스 등이 활성화하지 못 하도록 해야 할 의무가 있다"며 “피고는 이러한 주의의무를 위반한 데다 피고의 과실과 에이즈에 감염된 혈우병 환자들 간의 인과관계가 인정되므로 이들의 정신적 고통을 금전적으로나마 배상해야할 의무가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 군 이외에 박 모(18)군 등 나머지 원고에 대해서는 손해배상채권 시효(10년)가 소멸했다는 이유를 들어 청구를 기각했다.

녹십자홀딩스, “즉각 항소할 것”

한편, 이번 판결에 대해 녹십자홀딩스 측은 즉각적인 항소 의사를 밝혔다. 4일 녹십자홀딩스는 “혈우병 환자들의 에이즈 바이러스 감염에 대해 아직까지 그 어떠한 원인규명도 명확하게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내려진 것”이라며 “1심 재판부의 판결에 대해 결코 승복할 수 없다”고 밝혔다.

또 녹십자홀딩스는 재판부가 ‘주의의무 위반’ 근거로 제시한 ‘오 모 씨 혈액 사용’에 대해서도 “오 모 씨의 혈액은 1990년 이후부터 본격 생산 공급하기 시작한 국산 혈우병 치료제 제조에 사용된 사실이 전혀 없다”고 반박했다.

한국코헴회, “치료적인 보상 요구했으나, 사실 자체를 인정하지 않아”


이 같은 녹십자홀딩스 측의 입장에 대해 혈우병 환자들의 모임인 ‘한국코헴회’ 김승근 사무국장은 “그간 환자들은 녹십자홀딩스 측에 혈우병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인 만큼 치료적인 보상을 해달라고 요구했다”고 강조하며 “그럼에도 녹십자 측은 사실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고, 결국 소송까지 오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김승근 사무국장은 이번 판결에 대해 “혈액제제와 HIV 감염의 인과관계가 밝혀졌다는 점에서는 큰 의미를 둔다”며 “법원에서 판결이 나온 만큼 녹십자홀딩스 측에서도 이제라도 인정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는 법원이 이 모 군을 제외한 다른 원고들의 청구를 기각한 것에 대해서는 “환자들도 혈우약과 에이즈와의 인과관계를 구체적으로 인지한지가 얼마 되지 않았다”며 “시효를 들어 기각한 것은 아쉬운 판결”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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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즈 , aids , hiv , 혈액응고제제 , 녹십자홀딩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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