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우정사업민영화, 340조엔의 우편저축액은 어디로?

노무현 대통령이 벤치마킹 하려는 독일, 일본의 ‘신자유주의 개혁’ (3)

9월 11일 일본 총선의 화두 ‘우정사업 민영화’

  농촌지역의 전형적인 특정우체국
독일의 총선이 벌어지기 1주일 전인 9월 11일 일본에서도 총선이 실시된다. 독일 총선의 한 가운데 ‘아젠다 2010’이 자리잡고 있는 것 처럼(그런데 실제로 독일 총선의 향배를 결정짓는 것이 ‘아젠다 2010’에 대한 지지여부인지에 대해선 논란의 여지가 있다) 일본 총선의 화두는 ‘우정산업 민영화’다.

대연정론을 줄기차게 부여잡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은 슈뢰더 독일 총리에 대해서와 마찬가지로 ‘과감한 개혁안을 내놓고 국민의 심판을 받는 고이즈미 총리가 부럽다’고 수차례 언급했다.

일본은 지금이야 많이 바뀌기도 했고 그 본질적 의미가 무엇이냐는 질문과 관계없이 ‘연공서열제, 평생직장제’등 전형적 신자유주의와는 조금 다른 독특한 자본주의 문화를 형성해 온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고이즈미 총리가 민영화 대상으로 내건 우정사업 역시 일본의 독특한 제도 중 하나다.

일본의 우정공사는 한국의 체신청과 비견할 수 있지만 실내용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 일본의 우정사업은 130년 이상 국가로부터 운영됐다. 일본 우정공사는 전국2만4천개의 우체국과 28만명의 직원을 거느리고 있는 한편 340~360조엔(한화 약 3200조원)의 자산을 가지고 있는 일본 최대의 금융기관 이다. 360조엔이라는 일본 우정공사의 수신고(우편저금+우정보험)은 일본내 개인 금융자산의 25%, 민간금융기관 수신고의 60%에 달한다. 한국식으로 따지면 우체국+농협+국책은행의 규모를 거뜬히 넘어서고 있는 셈이다.

중의원 통과 참의원 부결에 의회 해산이라는 승부수 던진 고이즈미


  지난 6일 도쿄 찌요다에서 부재자 투표를 하고 있는 고이즈미 [출처: 아사히 신문]
지난 1993년 우정상으로 취임하자마자 “우정사업을 민영화해야 된다”고 선언한 고이즈미는 1995년과 1998년 두 차례에 걸쳐 ‘우정사업 민영화’를 내걸고 자민당 총재직에 도전했다가 고배를 마신 이력이 증명하듯 ‘우정사업 민영화’를 필생의 정치적 사명으로 인식하고 있는 사람이다. 현재 고이즈미 정부는 우정민영화법, 지주회사법, 우편회사법 등 6개 법안으로 구성된 우정사업 민영화 안을 내놓고 있다. 민영화 안은 일본우정공사를 2007년 4월에 지주회사로 재편 민영화 시키고 산하에 우편, 우체국(창구), 우편저금, 우편보험 등 4개 자회사를 설치한 이후 우편저금과 우편보험 등 금융관련 2개사의 주식은 2017년까지 완전 매각토록하고 있다.

이러한 우정공사 민영화 법안은 지난 7월 5일 일본 중의원(하원 격) 본회의에서 찬성 233표에 반대 228표의 5표 차이로 가결, 참의원으로 넘겨졌다. 그런데 참의원 투표 이전 자민당 내의 반대의견이 만만치 않아 부결조짐이 짙어졌지만 고이즈미 총리는 “(우정민영화는) 내 신념이다. 살해돼도 좋다”고 ‘강고한 의지’를 과시하며 ‘법안 부결시 중의원 해산으로 총선실시’라는 초강수를 던지며 의회를 압박했다. 그러나 8월 8일 참의원(상원 격) 본회의에서는 반대 125명, 찬성 108명, 결석.기권 8명의 결과가 나와 법안이 부결됐다. 여당인 자민당에서 나온 22표의 반란표가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이다.

법안 부결 이후, 자신의 공언대로 중의원을 해산한 고이즈미 총리는 “총선에서 과반을 얻지 못하면 반대세력과 협력하는 일은 없으며 퇴진 할 것”이라고 스스로 마지노선을 그었다. 고이즈미의 독선적 행보가 드디어 암초를 만났다는 관측과 달리 이후 총선(9월 11일)이 가까워 질 수록 고이즈미 총리의 지지율은 상승에 상승을 거듭하고 있다. 지난 8월 22일 일본 민영 후지 TV는 여론조사를 통해 고이즈미의 지지율이 63.6%에 달한다고 보도했다.

수신고 340조엔, 직원 28만명 우정공사 민영화의 명분은

고이즈미 총리는 중의원 해산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국민에게 (우정민영화가) 진짜 필요하지 않은가 묻고싶으며 이번 중의원 해산은 '우정 해산'"이라고 밝힌 바 있다. 결국 우정 민영화를 쟁점으로 삼아 선거전을 '개혁 대 저항'의 구도로 끌고 가겠다는 고이즈미 총리의 의도가 정확하게 맞아 떨어지고 있는 셈이다. 이 정도면 노무현 대통령이 고이즈미 총리를 부러워 할 만하다는 관측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자신의 ‘대연정’이 바로 고이즈미의 ‘우정사업 민영화’와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그런데 일본 정치의 태풍의 눈인 우정산업민영화에 대한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다. 먼저 고이즈미 총리와 일본정부가 주장하고 있는 우정사업민영화의 이점은 만만치 않다.

이들은 우정사업을 민영화하면 △우정공사에 묶여 있는 340조엔에 달하는 금융자산의 효율성을 높여 일본 금융산업의 경쟁력 향상 △전체 국가 공무원의 1/3을 차지하는 우정공무원의 민간인화로 인한 정부 조직 슬림화 △민영화된 우정회사로부터 징수하는 각종 세금등으로 국가 재원 증대 △특정우체국장의 특권 해체로 지역토호와 의회내 ‘우정족’세력의 기득권 박탈을 통해 부패, 파벌정치 구태 일소(일본의 경우 농어촌의 특정우체국장은 공무원신분임에도 불구 세습된다. 대표적 토호집단인 특정우체국장은 선거자금 제공, 선거시 표몰이 등을 통해 의회 내 이른바 ‘우정족’ 의원들을 뒷받침해 기득권을 유지하고 있다) 등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결국 고이즈미 내각이 내걸고 있는 우정사업 민영화의 목표는 ‘민영화, 슬림화, 투명화’로 요약될 수 있다.

민영화 닮은 꼴, 1987년 나카소네의 ‘국철개혁’

그런데 지난 1987년 나카소네 당시 일본 총리(자민당 소속)은 같은 목표를 내걸고 일본 국철을 민영화 시켰다. 1987년의 철도 민영화와 2005년의 우정사업 민영화는 상당한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는 지적이다. 철도 민영화의 결과물을 보면 우정 민영화의 결과도 짐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당시 일본 정부는 민영화라는 단어 대신 ‘국철개혁’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민영화에 나섰다. 거액의 설비의 투자와 보수작업으로 점차 경영이 악화된 국철을 대수술하겠다는 것이 당시 나카소네 내각이 내건 목표였다. 물론 일본 국철은 1964년 최초 적자 발생한 이래 1986년에는 일년 경영수익의 8배에 달하는 27조엔의 누적적자를 짊어지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에 나카소네 내각은 1987년 4월 1일 국철개혁안을 전격 실시, 국철을 국철청산사업단과 민영 JR(Japan Rail: 일본철도)로 분리했다. 청산사업단은 말 그대로 청산을 위한 조직으로 국철의 전체 채무총액 37조엔중 26조에을 짊어지고 JR은 철도정상경영 명목으로 채무의 대부분을 면제받았다.

‘국철개혁’으로 국철노조, 총평, 사회당·공산당 연쇄적으로 붕괴

그런데 국철을 실질적으로 승계한 민영 JR은 27만7천에 달했던 국철 직원 가운데 20만명만을 채용승계했다. 대략 8만명의 직원이 공중으로 떠버린 것이다. 게다가 8만에 달하는 ‘불채용자’의 대부분은 철도민영화 반대 투쟁을 전개했던 ‘국철노조’ 조합원으로 채워졌다. 이 가운데 1047명은 2005년 현재까지 JR에 복직을 요구하며 투쟁을 계속하고 있다.

한편 ‘국철개혁’의 장본인 나카소네 당시 총리는 지난 1996년 일본 주간지 AERA와의 인터뷰에서 국철민영화의 목적을 묻는 질문에 대해 “총평(일본노동조합평의회)을 붕괴시키려고 하였기 때문이다. 국철노조가 붕괴되면, 총평이 붕괴될 것이라고 명확히 의식하면서 실시했다”고 말해 국철 민영화의 또 다른 이유를 9년 만에 드러냈다.

나카소네의 의도가 성공한 것이, 국철개혁으로부터 2년 후 총평은 해산됐고 개량적이고 체제순응적인 렝고(일본노동자연합)가 발족했다. 이와 함께 총평을 주요 지지기반으로 삼았던 사회당과 공산당도 몰락의 길을 걸어 일본 정치는 완전히 보수 일색으로 재편됐다.

철도민영화의 또 다른 그림자, 경쟁 격화로 인한 대형참사

  지난해 효고현에서 발생한 JR사고 모습 [출처: AP통신]
‘국철개혁’에 희생된 노동자들의 투쟁이 2005년까지 지속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국철개혁’ 이 드리운 또 다른 어두운 그림자도 최근까지 드리워지고 있다. 지난 4월 일본 효고현 아마카가사키시 JR다카라쓰카 선 다카라쓰카-도시샤 구간에서 대형 참사가 일어났다. 시속 70Km로 달려야 하는 곡선구간에서 120Km로 과속하던 열차가 급브레이크로 인해 객차 7량중 5량은 탈선, 선두 2량은 탈선후 아파트로 돌진해 90여명의 사망자와 450여명의 부상자를 낳은 것이다.

사고를 낸 철도회사 JR니시시혼은 국철 시절 세계 제1의 정시안전 운행을 자랑했으나 민영화 이후 한큐를 비롯한 여타 민간 전철회사와 경쟁하며 안전운행보다는 노선의 고속화와 연장운행, 열차 경량화, 요금인하 등에 전력을 쏟았다. 경쟁에서 앞서기 위해 JR니시니혼 다카라쓰카선은 러시아워에는 3~4분 간격으로 발착했고, 4월 26일 사고시간대에도 빡빡한 발착 간격을 유지했다. 이러한 경쟁을 통해 JR니시시혼은 다카라쓰카-오사카 구간을 한큐 다카라쓰카선보다 7분 빠른 23분에 주파해 인기를 끌었으나 그 이면에는 살인적 노동통제가 존재했다.

JR니시시혼은 각 정차역의 발차시간을 15초 단위로 규정하며 지연 운행시 “허용속도 범위 내에서 지연시간을 만회”하도록 정하며 지연이 된 경우 기관사에게 가차없는 불이익을 가했다. 사고 열차는 사고 직전 역에서 정차위치를 40m 지나쳐 멈춰 후진한 뒤 정차위치를 바로 잡아 승객을 내려주고 출발해 예정시간 보다 1분 30초 늦게 출발했다. 결국 조금이라도 지연 시간을 줄이려 한 기관사의 무리한 과속이 대형참사로 연결된 것이다. 2003년부터 기관사직을 맡은 사고 기관사는 지연 운행등으로 인해 경고와 13일 재교육등 3차례의 징계를 받았던 사실이 추후 드러나기도 했다.

JR니시시혼의 사고에서 드러났듯이 1987년 국철 민영화 이후 JR은 기존 민영 철도회사들과의 승객 유치 경쟁에서 앞서기 위해 안전설비 투자는 뒷전으로 돌린고 무리한 운행을 거듭했다.

JR에서 제한속도를 넘으면 자동적으로 브레이크가 걸리도록 하는 신형 자동열차정지장치 도입은 지지부진했고 제한속도를 넘지 않도록 속도를 자동조절하는 자동열차제어장치는 선로의 속도제어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도쿄 일부 노선을 제외하고는 거의 도입되지 않았다.

효고현 사고의 피해가 커진 주요 원인 중 하나였던 차체 경량화도 민영화의 산물이었다. 과거 일본 국철의 전동차는 철제였으나 민영화 이후 JR은 민간철도회사와 마찬가지로 전력소모량과 소음이 적고, 재도색이 필요없어 비용이 적게 드는 스테인레스나 알루미늄 차체를 도입했다.

물론 민영화 이후 수익성 제고를 명목으로 인구가 적은 농촌지역의 철도노선이 폐지되거나 운행 횟수 축소 혹은 대폭 운임인상 된 케이스는 손으로 꼽기도 힘들다.

젠로쿄 산하 우정전노협 필두로 한 노동사회단체 외로운 싸움

우정민영화 역시 철도민영화와 같은 길을 걸을 수 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고이즈미 내각이 내놓은 우정민영화 안에는 농촌 지역의 우체국 통폐합, 고령자 위주로 가입되고 있는 우정보험에 대한 과세, 우체국 창구 직원 대폭 축소 등이 포함되어 있다. 현재 젠로쿄(전국노동조합연락협의회- 일본 제3위의 내셔널센터로 렝고 등에 비해 좀 더 급진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산하 우정전노협의 조합원(규모가 아주 큰 전국우정노조는 렝고 산하로 우정민영화 반대 투쟁에 미온적이다)들과 아탁 재팬 등 일본의 사회단체들은 우정민영화 반대 투쟁에 앞장서고 있다.

그러나 우정민영화에 대한 일본 노동 민중 진영의 반대 투쟁이 대중적 영향력이 높지 만은 않다는 지적이다. 일본 현지에서는 고이즈미 내각의 ‘우정민영화 반대=기득권 세력’ 공식이 힘을 얻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워싱턴 포스트·초국적금융자본, “고이즈미 이겨라”

  크로포드 목장에서 부시와 야구공으로 장난치고 있는 고이즈미 [출처: CNN]
한편 지난 달 15일 미국의 워싱턴 포스트는 아주 이례적으로 사설을 통해 고이즈미의 총선 승리를 기원했다. “다음달 11일 일본 총선에서 고이즈미 총리가 승리해 의회 내 다수당을 유지하기를 희망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힌 워싱턴 포스트는 우정사업 민영화를 관철시키기 위한 고이즈미의 결단을 상찬했다.

또한 우정 민영화가 이뤄지면 일본 경제의 효율성이 높아지고 경제회복이 촉진될 것이고 그 결과로 미국으로부터의 수입이 확대돼 미국의 무역적자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 워싱턴 포스트는 민주당등 일본 야당이 고이즈미 총리의 친미적 외교정책을 비판하며 이라크로부터의 철군을 공약했기 때문에 고이즈미의 패배는 미국을 곤혹스럽게 할 것이라 우려하기도 했다.

고이즈미의 승리와 우정사업민영화를 바라는 것은 워싱턴 포스트만이 아니다. 1993년 이래 미국정부가 일본에 매년 제출하는 ‘연례 개혁요구안’은 지속적으로 우정사업 민영화를 요구하고 있다.

최근 일본의 주가는 급등에 급등을 계속하고 있다. 우정사업민영화가 실현되면 350조엔 규모의 수신고 가운데 상당 부분이 증시로 유입될 것이라는 유동성에 대한 기대가 큰 몫을 하기도 했지만 초국적 금융자본이 일본 증시를 떠받치고 있는 것이다.

미국과 유럽의 연기금과 헤지펀드는 중의원 해산 이후 2주일간 1조엔 이상의 주식을 매집했다. 일본의 종합주가지수인 닛케이 지수는 지난 1일에는 12,500을 돌파해 지난 4년 여 만에 최고치를 갱신했다. 중의원 해산 직전과 비교하면 1달도 안되는 기간 동안 무려 7% 가까이 오른 것이다.

이에 대해 UBS증권 재팬의 시라카와 히로미치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현 장세는 경기지표 호전이란 재료가 있지만 외국인, 특히 미국의 기관투자가들이 고이즈미의 분투를 기원하는 '격려 장세'의 성격도 강하다"고 평가했다.

고이즈미의 총선 승리와 우정사업민영화로 손해를 보는 사람은 누구고 이득을 보는 사람은 누구일지 극명하게 드러나는 지점이다.

또한 고이즈미의 승리가 가져올 결과물은 우정사업 민영화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워싱턴 포스트가 친미적 외교정책을 이유로 고이즈미를 응원한 것이 단적으로 보여준다. 일본 보수진영에서 조차 ‘과도하게 친미적인 외교정책’, ‘한국과 중국을 자극하는 반복된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대해 비판을 받고 있는 고이즈미가 총선에 승리할 경우 특유의 외교정책이 강화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UN안보리 진출 실패, 자위대 이라크 파병, 한중과 관계 악화 등 반복된 외교적 악수로 사면초가에 처했던 고이즈미가 총선에 승리할 경우 자신감을 바탕으로 ‘6자회담에서 납북자 문제 제기’, ‘야스쿠니 신사 참배 재개’ 등 초강수를 던질 것이라는 우려가 짙어지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벤치마킹 하려는 독일, 일본의 ‘신자유주의 개혁’ 게재 순서

(1)월급 50만원짜리 일자리 170만개 만든 독일의 ‘아젠다 2010’

(2)노대통령이 부러워한 슈뢰더의 승부수? 그리고 아젠다 2010
갈현숙(독일 베를린 자유대 사회학과 박사과정)

(3)우정사업민영화, 340조엔의 우편저축액은 어디로?

(4)민영화 법안은 폐기되었다
요코 아끼모토 ‘ATTAC 일본’ 사무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