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편집이 한창이었다. 16일 금요일 시사회를 앞두고 배경음악 선정 작업이며 나레이션을 배치하는 작업이며 남겨둘 장면과 버릴 장면을 고르고 자르는 작업 등이 그것이다. 관찰자로서는 최종 마무리 작업이 한창인 그 바쁜 틈을 타 말을 건네야 하는 면구한 상황이었던 것. 딱히 관심을 가져주는 이도 없이 차츰 소외감에 지쳐가고 있을 즈음 한 켠에서 “찍는 것은 재밌었는데 편집은 정말 뚜껑열리네”라는 감탄사가 가슴을 쳤다. 그야말로 머리 뚜껑열리고 김나는 작업이라는 것을 가슴으로 머리로 팍팍 느끼면서 기자는, 꼬리를 내렸다. ‘우선 지켜보자’ 사실 기웃거림, 심하게 말해 훔쳐보는 것이었다.
#2. 네~박자 쿵!짝! 우리네 사연을 담는 울고 웃는 인생사
수강생들은 노숙인당사자모임에 소속된 이들로 쉼터에 있는 여성을 포함하여 총 8명, 그날은 6명이었다. 강사 1인으로는 역부족인 관계로 활동가 2~3명이 자원하여 개별적인 교육을 진행하고 있었다. 어느 팀은 컴퓨터 켜고 클릭하는 방법부터 반복 교육이 진행되는 반면 벌써 완성된 영상을 보며 감상 및 평가가 무르익은 팀도 있었다. 이 같은 상황인 만큼 개별교육은 필수불가결이었던 것.
![]() |
박희봉 씨의 작품은 자기고백 다큐멘터리이다. 마무리 단계에서 마침 배경음악을 선정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 배경음악이라는 것은 송대관님의 ‘네박자’, “쿵짝쿵짝 쿵짜라 쿵짝~우리네 사연을 담는 울고 웃는 인생사”
‘네박자’의 가사가 자신의 작품과 꽤나 잘 맞아 떨어지는 지 박희봉 씨는 만족스런 얼굴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주변의 반응도 상당했다.
반면 배경음악이 따로 필요 없는 작품도 있었다. 이 작품의 경우 감독이 영상을 찍으면서 노래도 부르고 나레이션도 넣는 일종의 동시녹음 기법을 도입, 어부지리로 편집과정까지 간소화되는 효과도 본 셈이다. 다른 이들이 편집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동안 싱글벙글, 여유만만이었던 것이 연륜 때문 만은 아니었던 것. 또한 그는 노숙자당사자모임에서 봉고차로 이동하면서 찍는, 이른바 최첨단 이동식 촬영기법을 사용한 센스는 단연 돋보이는 부분이었다. 그의 작품은 쉴 새 없이 배경이 바뀌고 이에 맞춰 꺾이고 늘어지고 땡겨주는 감독의 노래도 감상할 수 있다.
"성함이" “내 이름? 서경북! 서경북이야” 그는 서경북 감독이다.
#3. 역전 떨꺼둥이, 감독 데뷔하다
“내가 노숙하지 않았으면 이런데 와서 카메라 잡았겠어!” 아이러니다. 그러나 한편 시리도록 공감이 가는 부분이다. 성역화된 미디어가 자신의 철옹성을 더 공고히 쌓아가고 있는 동안 미디어 주권은 누군가에 의해 수급 받는 방식으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우리의 절대다수는 마이너리티다.
“얼마 전 SBS에서 노숙인당사자모임과 사전 작업 하여 한 시사다큐 프로그램을 제작했다. 노숙인 당사자분들은 나름대로 본인들의 목소리가 제대로 전달될 것이라고 기대했는데 왜곡되어서 방송이 나가면서 본인들이 직접 나서야겠다는 문제의식과 맞물려 좋은 기획이 되었다. 이제는 주류미디어에서 다루지 않는 소수의 목소리, 여성, 장애인, 농민 등 그들이 직접 카메라를 잡고 자신의 얘기를 해야 한다. 앞으로 전업주부, 일본위안부 할머니, 레즈비언 등의 미디어교육을 기획중이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노숙인미디어교육이다” 영상미디어센터의 미디어교육실 실원이면서 노숙인미디어교육 자원활동가로 활동 중인 홍교훈 활동가의 설명이다.
그 시사프로그램에 노숙인당사자로 결합한 이가 바로 송주상 감독이다.
미디어교육을 받게 된 이유와 계기는?
![]() |
나는 어찌 보면 선택받은 것이다. 현재 문화연대에서 노숙인들을 대상으로 마술, 사진, 음악, 미술 등 교육 및 행사를 진행 중이다. 나는 그 중 미술 빼고 모두 다 참여하고 있는데 미디액트(영상미디어센터)에서 하는 미디어교육까지 받게 되었다.
작품의 내용은 어떤 것인가?
송주상 감독)나의 이야기이다. 또 내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이다. 몇 주 전까지 나는 노숙을 하다 일을 시작했다. 리어카를 끌면서 폐지를 모으는 일이 바로 그것이다. 요즘은 ‘노숙인복지와인권을실천하는사람들’ 대표의 트럭을 이용하여 폐지를 모으고 있어 더 수월해졌다. 그리고 남대문시장에 가서 폐지를 파는 등 노숙인 몇 명이 이렇게 살아가는 이야기들을 카메라에 담았다. 우리뿐만 아니라 이렇게 살아가는 노숙인들 굉장히 많다.
미디어교육을 받고, 직접 촬영하면서 어려운 점이나 에피소드는?
송주상 감독) 지금 하는 작업(편집)이 가장 어렵다. 정말 뚜껑 열린다. 다른 것들은 재밌고 또 기회가 된다면 계속하고 싶다. 앞으로도 담고 싶은 영상이 있다면 영상미디어센터에서 장비 대여해서라도 찍을 생각이다.
촬영 중 어려움은 없었다. 뿌듯했던 적이 있다면 새벽에 돌아다니면서 촬영을 해야 할 경우가 많았는데 새벽길 어스름한데 아무도 없이 우리만 있을 때, 굉장히 뿌듯했다. 노숙하고 있으면서 새벽에 나와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일을 하면서 새벽길을 걷는 것이라 더욱 그랬던 것 같다.
#4. 영화제를 꿈꾸며..
![]() |
독립영화 감독이자 노숙인미디어교육의 강사로 참여한 이현규 감독에게 ‘영화제 출품 가능성’에 대해 질문을 하면서 너무 성과에 연연한 질문이 아닌가 살짝 고민했었다.
“꿈 꾸는데도 용기가 필요하다”고 ‘영화제’에 괜한 용기까지 들먹이며 또한 그것을 ‘꿈’이라고 전제한 질문이었음을 자백한다. 그래서 “두 작품 정도는 영화제에 출품할 가능성이 엿보인다”라는 이현규 감독의 답변에 ‘기대이상’이라고 느꼈던 것이 주류 미디어가 만들어낸 신기루, ‘영화제’에 대한 환상에서 비롯된 것임을 다음의 대답을 듣고서야 알았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작품을 완성한 것으로 충분히 기쁘고 벅차다”
영화제, 그것은 ‘꿈’이 아니라 ‘뻥’이다.
노숙인미디어교육의 커리큘럼은 어떻게 되는가?
![]() |
커리큘럼을 진행 중 어려운 점이나 에피소드는 없었나?
이현규 감독) 기획안대로 진행하게끔 하기 위해 기획안 작성을 요구했다. 일종의 나침반 같은 것이다. 근데 한글에 서툰 분도 있었다.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으나, 수강생 사이에 편차가 아주 심해서 그 평균을 맞추기가 가장 어려웠다.
에피소드라면 너무 열정적이라서 벌어진 사건이다. 컷을 나누기 위해 즉, 장면을 구분하기 위해 나뉘는 부분에 손을 찍어두고 다음 장면을 찍으라고 했는데, 어떤 분은 ‘손’을 찍어왔었다. 조명까지 넣는다며 가로등 앞에서 자신의 손을 찍어온 경우다. 그 밖에는 상투적인 대답일지 모르겠으나 내가 오히려 배웠다.
작품은 어떤 내용들이 있는가?
이현규 감독)자기고백적 내용도 있고, 주변 노숙인들의 모습, 그것은 자신을 포함한 주변분들을 찍어오는 경우였다. 또 그냥 자신의 주변물체들을 찍어온 영상도 있었다. 부담은 없었다. 그냥 찍어오는 것이었고 그 중에는 기대되는 작품도 있다. 완성하는데 초점을 맞추자는 것이 처음 시작할 때 마음이었는데 작품들을 보니 기대 이상이다. 아직 많이 영상을 찍어본 분들이 촬영한 것이 아니라서 엉성할 수 있다. 그러나 수준급 작품들도 꽤 있다.
지금 1기 감독들이 탄생했는데 앞으로 2기, 3기도 가능한것인가?
이현규 감독) 여건만 주어진다면 그렇게 하고 싶다. 현재 1기 감독들이 탄생하면 간단한 평가회의를 거쳐 커리큘럼 중 부족했던 것, 더욱 보충해야 하는 부분 등을 세밀히 검토해서 이후 계획을 세울 것이다. 그러나 개인의 바람은 지속적으로 이런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것이다.
#5. 시사회에 초대합니다
‘역전 떨꺼둥이, 미디어 반란을 일으키다’
장소 : 광화문 일민미술관 5층 미디액트
시간 : 2005년 9월 16일 금요일 늦은 7시








![[영상] 현대기아차비정규직 농성..](http://www.newscham.net/data/coolmedia/0/KakaoTalk_20180411_120413041_copy.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