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침해 근절하겠다더니, 강제철거에 경찰 동원?

빈민사회단체, 행정대집행법·질서위반행위규제법 저지 대국회투쟁 돌입

정기국회 회기가 얼마 남지 않은 가운데 여의도 국회 앞은 어느새 거대한 천막촌이 형성되어 있다. 5일 그 한가운데 또 하나의 천막이 들어섰다. 이번에는 노점상, 철거민 등 도시빈민들이 주축이 됐다. 47개 노동·빈민·사회단체로 구성된 ‘민중생존권 침해하는 행정대집행법 개악, 질서위반행위규제법안 입법 저지를 위한 공동대책위’(공대위)는 5일 기자회견을 열어 최근 국회에 계류 중인 행정대집행법 개악과 질서위반행위규제법 입법 철회를 촉구하고, 국회 앞 천막농성에 돌입했다.


행정대집행법 = 강제철거법?

행정대집행이란 건축물 철거 및 원상복구 명령 등 행정상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관할 행정청 등이 의무자 대신 그 의무를 이행하거나 또는 제 3자로 하여금 이를 이행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설명해서는 행정대집행법이라는 말 자체가 쉽게 이해가지 않는다.

지난 8월 부천역 앞에서는 장애인 노점상 부부가 차량에 불을 지르고, 자살을 시도했다. 다행히 미수에 그쳤지만, 이들은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통해 부천시청과 관할 원미구청의 폭력적인 단속과 노점상 강제철거에 항의하고자 했다. 부천시청과 원미구청은 노점상들의 반발을 무력하기 위해 새벽 3시 경 기습적으로 용역철거반원들을 투입하고, 강제철거를 실시했다. 그런데 당시 관할 행정청들이 부천역 주변 노점상들을 강제철거할 때 근거로 들이밀었던 법이 바로 행정대집행법이다.

또 지난 4월 무리한 철거를 진행해 용역철거반원의 죽음을 부른 오산 수청동 사건 때 역시 관할 행정청들은 행정대집행법을 빌어 철거민들과 이들의 터전을 강제철거하려 했다. 특히 당시 경찰은 정확히 확인도 하지 않은 채 철거민들을 범죄자들로 몰아갔고, 결국 ‘특공대’를 투입해 관할 행정기관들의 철거를 도왔다. 노점상들과 철거민 등 도시빈민들은 이런 이유로 행정대집행법을 강제철거법이라 부르는 데 망설임이 없다.

제정된 지 50년이 지나가는 행정대집행법은 그 오랜 세월 동안 불과 단 한 차례의 개정이 됐다. 때문에 이번에 개정안을 낸 행자부도 “제도와 현실 간에 괴리가 발생함에 따라 이를 해소하고, 행정상 의무이행 강제시스템으로서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대집행을 행할 때의 주의의무를 규정하고 대집행 후 남은 물건의 처리방법을 개선하는 등 현행 제도의 운영상 나타난 일부 문제점을 개선·보완하려한다”고 밝히고 있다. 그간 지속적으로 문제가 되어왔던 강제철거와 관련해 현행 행정대집행법을 고쳐 인권침해 소지를 개선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행자부의 설명과 다르게 빈민단체들은 행정대집행법 개정안이 오히려 강제철거를 강화하고,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 수정된 개악안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5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공대위는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행정대집행법 개정안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비판했다.

행정대집행법 개정안, 강제철거에 공권력 동원과 비용 부담 의무자에게

이들은 우선 이번 개정안이 행정대집행 시 공권력의 개입 여지를 이전 보다 열어 놓고 있고, 특히 행정대집행 과정에서 발생한 비용을 당사자(의무자)들에게 부과하는 조항을 더욱 강력하게 구체화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행정대집행법 개정안 제 8조는 ‘관할 행정청이 대집행 시 의무자의 저항행위가 명백히 예견되고, 저항행위로 인해 대집행이 현저히 곤란하다고 판단될 경우 경찰기관의 장에게 행정응원을 요청할 수 있도록’ 해 사전적으로 강제철거에 공권력이 개입할 여지를 열어 놓았다. 이에 대해 공대위는 “개정안은 경찰권 행사 범위를 넓혀 중립을 지켜야 할 경찰기관이 지자체 등 관할 행정청의 입장에서 공권력을 행사하게 만들고 있다”며 “경찰국가를 만들고 부당한 공권력 행사를 조장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개정안은 제 9조(‘대집행 비용의 징수’)에서 ‘관할 행정청은 대집행이 종료된 후 대집행에 소요된 비용을 산정하고 대집행이 종료된 날부터 10일 이내에 그 비용의 납부고지서를 의무자에게 발부하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미 현행 행정대집행법에도 대집행 비용의 징수가 적시되어 있지만, 이번 개정안은 징수의 편의를 높이는 방향으로 구체화되었다. 실제로 지난 2003년 말 종로구청은 청진동 철거민대책위에 대집행 시 소요된 용역비용 7억 5천만 원을 청구한 바 있었고, 2004년 초 동작구청은 상동2동 철거민대책위에 원금 1억 1천만 원에 이자까지 포함해 총 3억 원을 청구해 철거민들의 큰 반발을 샀다.

공대위는 이처럼 행정대집행 비용을 의무자들에게 강제하는 행정대집행법에 대해 “현실적으로 대책이 없이 노점상, 철거민 등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국민의 생존권과 주거권을 보장할 책임이 있는 지자체 등 관할 행정청이 빈민들에게 대집행 비용을 청구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이는 정부의 책임을 개인에게 떠넘기는 것이며, 가난한 민중을 더욱 더 가난으로 내모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개정안, 말로만 국민 기본권 보장”

한편, 행자부는 이번 개정안이 ‘위법부당한 대집행에 대한 신속한 권리구제를 위해 행정심판 청구와는 별도로 관할 행정청에 이의신청을 할 수 있다’는 ‘이의신청’(제10조 1항) 조항을 두고 있어 “국민 기본권 보장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행정부의 ‘배려’에 대해 공대위는 “‘이의신청’ 조항이 실질적으로 전혀 효력을 발휘할 수 없다”는 다른 견해를 내놓고 있다. 이들은 “행자부가 10조 1항에 이의신청 조항을 만들었다고 하지만, 바로 뒤이어 10조 2항에서는 ‘이의신청은 처분의 효력이나 그 집행 또는 절차의 속행에 영향을 주지 아니한다’고 명시하고 있고, 이의신청 기간도 10일 이내로 설정하고 있어 국민의 기본권 보호에 어떠한 이바지도 하지 못 한다”고 밝혔다.

이외에도 공대위는 △절차 없이 대집행을 할 수 있도록 한 도로법 등 개별법의 특례조항 개정 △야간/동절기 강제철거, 주거에서의 퇴거 등에 대한 금지 조치 △당사자에 대한 실력행사 제한 등의 내용이 담겨지지 않아 개정안이 현행 행정대집행법이 가지고 있는 인권침해 소지를 근절시킬 수 없다고 주장했다.

“노무현 정권, 빈민을 더욱 더 벼랑으로 내몰고 있어”

한편, 공대위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행정대집행법 개정안과 함께 국회에 계류중인 질서위반행위규제법 제정안에 대해서도 “과태료 체납자 문제를 해결하겠다면서 제시한 이 법에 의하면 과태료 체납자를 강제로 구금하고 추가과태료를 청구하고 신분공개 등 온갖 불이익을 가할 수 있게 했다”며 “이는 경찰국가, 군부독재 시대에나 가능한 발상”이라고 강력 비판했다.

법무부가 발의한 질서행위규제법안은 이미 여러 차례 그 문제점이 지적되어 왔다. 이미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 8월 △과태료 상한액 3천만 규정 △과태료 부과 징수 위한 조사권 부여 △조사불응에 대한 추과 과태료 부과 △과태료 체납자에 대해 관허사업 제한과 신용정보 제공 등의 내용을 포함하는 법무부의 질서행위규제법안이 “과태료 부과·징수 절차의 효율성에만 치중되어 있어 국민의 기본권을 과도하게 제한할 우려가 있어 전면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한 바 있다.

공대위는 기자회견문을 통해 “행정대집행법을 통해 공식적으로 경찰, 관, 용역깡패가 한통속이 되려하고 있고, 질서위반행위규제법으로 과태료 체납자들에게 온갖 불이익을 가하려고 하고 있다”며 “노무현 정권과 보수정치권은 행정대집행법과 질서위반행위규제법을 통해 빈민을 더욱 더 벼랑으로 내몰고 있다”고 단속, 강제철거 관련 법률들을 추진하고 있는 정부를 규탄했다. 한편, 공대위는 이후 강제철거 피해자 증언대회, 빈곤악법 공청회, 대규모 집회 등을 진행하는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해 행정대집행법과 질서위반행위규제법 국회 통과를 저지한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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