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여의도, 짐승의 시간, 짐승의 공간

[3신 15:10] 여의도 문화마당 노제 마치고 하관 위해 이동중

고 전용철, 홍덕표 열사의 범국민장, 마지막 장례식 순서인 하관식을 앞두고 여의도 문화마당에서 노제가 열렸다.
  고 전용철, 홍덕표 농민의 장례식이 열렸다. 전용철 농민의 영정을 들고 국회앞을 돌아 노제를 지내고 있다.(사진 왼쪽) 광화문 열린시민공원에서 합동영결식을 마친 고 홍덕표 농민의 대형 영정이 광화문 정부청사를 지나 여의도로 향하고 있다(사진 오른쪽)



‘쌀협상 국회비준 저지 전국농민대회’가 열렸던 지난달 15일 여의도는 그 지난날의 “짐승의 시간”, “짐승의 공간”은 언제였냐는 듯, 한 해 마지막날을 즐기는 인파들로 북적였다.

수척해진 모습의 강기갑 민주노동당 의원은 추모사에서 “한 뼘의 땅이라도 놀리면 천벌 받는 마음으로 살아온 우리 농민의 시름, 고통 두분 동지들과 함께 가기를 바란다”며 “자식 같은 경찰들 손에 돌아가셨지만 개방농정 선진화로 가려는 이 정권과 WTO 세계화의 바람에 맞아 돌아가신 것”이라고 낮게 말했다.

또한 강기갑 의원은 “경찰 총수는 사퇴할 사안이 아니라는 망언을 했다”며 “두 분은 이 망언까지 용서하시고 흙으로 돌아가소서. 여기 함께 한 사람들의 다짐과 결의를 가는 두 농민에게 드린다”고 전했다.

노제는 전재환 민주노총 비상대책위원장과 강춘성 장례위원장의 추모사와 청보리 사랑의 추모곡 등으로 30여분 만에 마무리되었다.

한편 지난 29일 진행된 범대위 비상 대표자회의 결과에 따라 ‘고 전용철,홍덕표 농민 공동장례’가 31일 진행된 것이며 30일로 예정되었던 4차 범국민대회를 하루 미뤄 전용철 홍덕표 열사 공동 장례식으로 변경된 것.

31일 오전 7시 김제 새만금 장례식장에서 고 홍덕표 열사의 발인을 시작으로 오전 9시 고 전용철 열사의 발인이 서울대 병원에서 있었으며, 이제 하관식만을 남겨두고 있다.

노제를 마친 장례식 참석자들은 3시 현재 마석으로 이동 중이며, 김제 장지에서는 고 홍덕표 열사의 하관식이 진행될 예정이다. 또한 고 전용철 열사는 마석 모란공원 민주열사묘역에 안치된다.




장례식 순서

발인
고 홍덕표 열사 오전 7시 김제 새만금 장례식장
고 전용철 열사 오전 9시 서울대병원 영안실

합동영결식
오전 11시 광화문 열린시민공원

노제
오후 1시 30분 여의도 문화공원

하관식
고 전용철 열사 오후 4시 마석모란공원민주열사묘역
고 홍덕표 열사 오후 4시 30분 김제 장지

"아버지, 거기서는 아프지 마시고 편히 계세요"
[2신 13:30] 농민열사 범국민장 엄숙하게 진행, 한편 노제 위해 여의도로 집결


열사여! 척박한 땅 한 번도 맘 놓고 씨 뿌리지 못한 땅, 뿌리면서 희망으로 세워 내지 못한 땅, 수탈의 땅, 우리는 그 곳에 태를 묻고 뼈를 묻기만 바래 오천년 긴 세월을 버텨냈다. 빼앗겨도 짓밟혀도 그게 사는 거라 믿고 추워도 배고파도 괄시받고 천대받아도 그게 천직이라 믿었고 희망이라 믿었다. 우린 그렇게 씨를 뿌렸다. - 강물이되어 흐르소서 (‘고 전용철, 홍덕표 열사의 영전에 바쳐’ 중)

‘농민’이라는 호칭이 ‘열사’로 바뀌었다. 31일 '농민열사 고 전용철, 고 홍덕표 열사 범국민장'이 열리고 있다. 서울대병원에서 발인을 마치고 11시 광화문 열린마당에서 합동영결식이 진행됐다.

합동영결식은 전국공무원노조, 보건의료노조, 민주택시노조, 빈민해방철거민연합 등 노동계를 비롯해 민주노동당,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농민회 등 총 2000여명이 모인 가운데 조용하고 엄숙하게 치러졌다. 때때로 범대위 대표단이 읊는 ‘조사’에 동의를 표하는 농민의 외침이나 입을 틀어막으며 어깨를 들썩이는 유가족의 울음소리가 새어나올 뿐이었다.


그렇더라도 변함없이 광화문 일대에는 20여대의 경찰버스가 운집해있었으며, 방패를 든 경찰병력은 영결식과 상관없다는 듯 광화문에 들어서 있는 정부부처 및 미국대사관 등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평생 흙에서..또다시 흙으로”


이날 영결식에는 정광훈 범대위 공동대표를 비롯, 오종렬 범대위 공동대표, 권영길 범대위 공동대표, 이강실 범대위 공동대표 등 범대위 공동대표단들의 조사가 이어졌다.

정광훈 공동대표는 조사에서 “희망을 만들려다 먼저 가셨다”며 “동지들의 꿈은 세계 민중들의 반란으로만 이루어진다. 동지들의 염원대로 WTO 박살내고 농민세상 민중세상 만들어 가겠다. 맡겨두고 편히 가시라”고 읊었다.

권영길 공동대표는 “대통령도 사과하고 경찰청장도 사퇴하였지만 당신들의 빈자리는 너무 크기만 하다”며 “동지들의 고통과 한을 잊지 않고 반드시 동지들의 꿈과 희망을 이루어내겠다”고 말했다.

  왼쪽 '전용철 열사' 형 '전용직' 유가족, 오른쪽 '홍덕표 열사' 첫째 아들 '홍승기' 유가족
‘고 홍덕표 열사’ 첫 번째 아들인 홍승기 유가족은 “얼마나 아프셨는지 팔과 다리를 주무르지 않으면 주무시지를 못하셨다”며 눈물을 훔치고 “평생 흙에서 살아오셨는데 가실 때도 흙으로 돌아가신다. 거기서는 아프지 말고 편히 계시길 바란다”고 말을 이었다.

한편 합동영결식은 문경식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의 호상인사와 헌화를 마지막으로 마무리되었다. 영결식이 끝난 후 참석자들은 고 전용철, 고 홍덕표 열사의 활동 장소였던 여의도 문화마당으로 이동했다.

1시 30분 현재 속속 모여든 가운데 예정된 시간보다 다소 늦게 노제가 진행될 예정이다.




"고이 고이 가소서"
[1신 10:50] 서울대병원을 출발한 운구차량 광화문 열린마당 집결



“일년 내내 씨뿌리고 뼈빠지게 거두어서 보리농사 망하고 고추농사 조지고 남은 것은 빚 더미 뿐 이 세상에 지어먹을 농사가 하나 있어”

유가족들의 억눌린 울음소리, 청보리사랑의 ‘아스팔트농사’가 고 전용철 농민 시신을 운구하는 사람들의 낮은 목소리로 깔리는 가운데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진행된 고 전용철, 홍덕표 농민의 발인이 9시 50분 즈음 마무리됐다.

9시부터 시작된 발인은 전국농민회총연맹을 비롯한 범대위, 민주노동당, 전국빈민총연합 등 1000여명이 모인 가운데 진행되었다. 발인제에서 이상구 보령농민회 회장은 “전용철 농민 및 홍덕표 농민이 오늘에야 땅에 묻히게 되었다”며 “너무나 야속하게 추운 날씨 속에 부디 좋은 곳에 고이 묻히시길 바란다”고 밝혔다.

또한 이병훈 전농 주교면지회 총무는 “우리쌀을 지키기 위해 투쟁하다 먼저 동지에게 너무 죄스럽다”며 “기필코 우리쌀 지켜내겠다”고 끝맺고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문병수 보령시청 부시장과 보령시 공무원들이 참석해 발인제에 참석해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한편 10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을 출발한 운구차량은 10시 50분 현재 광화문 열린마당에 집결해 고 전용철, 고 홍덕표 농민 합동영결식을 준비중이다. 합동영결식은 11시부터 진행될 예정이며 1시에는 여의도로 이동, 노제를 진행한다.

이후 고 전용철 농민의 하관식은 4시 마석모란공원민주열사묘역에서, 고 홍덕표 농민 하관식은 김제 장지에서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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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용철 , 홍덕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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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나가다가

    떠나가시는 열사들이여,, 부디폭력이없는세상에서 고이잠드소서

  • 은종복

    가슴이 미어진다. 세상을 살리기 위해, 보잘것없고 가난한 이들이 잘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한 목숨 살다 가신 두 분을 생각하니 슬픔이 북받쳐 입이 있어도 말을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를 못한다. 하지만 마음을 추스르고 고인들이 바랐던 세상, 땀 흘려 일하는 사람들이 평화롭게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한 발 한 발 내딛어야지. 어느 시인은 "슬픔만한 거름이 어디 있느냐"고 했고 또 어느 시인은 "슬픔도 힘이 된다"고 했다. 어둠이 깊으면 새벽이 빨리 오듯이 이렇게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을 모아 살아 있는 것을 아끼고 섬기는 삶을 살아야지. 그 길에 같이 든 동지들 어깨를 감싸 주면 뚜벅뚜벅 걸어야지. 천천히 하지만 쉼 없이.

    2006년 1월 1일 지율 스님이 살아나기를 두 손 모아 빌며 풀무질 일꾼 은종복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