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위, 인권 발전의 견인차이자 걸림돌”

세련된 국가권력기구에 불과.. 인권위의 인권적 통제는 인권단체의 몫?

“내가 국가인권위원회라면...”

“머리에 꽃을 달고 미친 척 춤을”, “한국군 이라크 파병에 반대해 직원들 파업을 선동하겠다”, “반인권적 국가의 본질을 폭로하며, 스스로 해체하겠다”, “진정 들어오기를 기다리지만 않고, 직접 현장을 찾아다니겠다”...

전국인권활동가대회에 참석한 인권활동가들이 ‘내가 국가인권위원회라면..’이라는 질문에 쏟아낸 답변들은 다양했다. 인권위를 인권운동의 ‘주적’으로 규정하는 활동가에서부터 적극적인 ‘활용론’을 펼치는 활동가까지 인권활동가들마다 제각기 다른 시각으로 인권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전국인권활동가대회 둘째 날 열린 ‘인권위, 제대로 거들떠보기’ 프로그램은 인권위를 바라보는 인권활동가 내부의 시각차를 짚어보고, 인권위와 인권단체들 간 바람직한 관계설정에 대한 상을 모색하는 자리로 마련되었다.

발제를 맡은 최은아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는 “다양하게 등장하는 인권행위자 중 특히 인권위 활약은 인권 정세를 가름하는 분수령이 되고 있다”며 “인권위의 권고는 미흡했지만, 어쨌건 인권정세를 이끌고 정부를 압박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1기 인권위가 인권침해 구제기능을 통해 자신의 위치를 지었다면, 2기 인권위는 사전적인 예방기능을 강화하고자는 맥락에서 정책권고에 방점을 찍고 활동해왔다”며 “인권위가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 권고차 차별금지법과 같은 굵직한 사안에 대해 정책역량을 쏟는 것은 긍정적”이라며 인권위 활동에 대해 전반적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내놨다.

그러나 최은아 활동가는 “인권위는 인권의 보호와 향상만을 전담하는 설립목적에 따라 기본적으로 인권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하지만, 동시에 국가기관의 견제에 순응하여 자신의 권고를 실현가능한 수준으로 낮추는 시점부터 인권발전의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며 인권위의 이중적 속성을 지적했다.

“인권위를 인권적으로 통제할 몫은 인권단체의 태생적 수임”

최은아 활동가는 국가기구로서 인권위가 가지는 이중적 속성에도 불구하고 인권위의 설립이 인권단체들의 '투쟁‘의 결과물임을 강조했다. 그는 “1998년부터 2001년까지 두 번의 단식까지 불사하며 인권사회단체들은 올바른 인권위를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했다”며 “그런 의미에서 인권위는 다른 국가기구와는 다른 탄생의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같은 인권위의 ’탄생의 역사적 배경‘에 따라 “인권위를 인권적으로 통제할 몫은 인권단체의 태생적 수임”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최은아 활동가는 “인권단체는 제도 안에 갇히려는 인권을 끊임없이 비판하며 재해석하는 가운데 인권위를 견인할 수밖에 없는 위치에 있다”며 인권단체들에 의한 인권위 ‘견인’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최은아 활동가는 인권단체들이 인권위에 대한 대응을 도구나 필요적 차원으로 한정짓는 것에 대해서도 "인권위 대응에 관한 전체적인 그림을 그리지 못하는 상황에서 그 대응 역시 파편화될 수밖에 없다”며 “진정 등 인권위를 압박하고, 사후 구제에 방점을 찍기보다는 인권위가 사전예방 기능을 강화하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은아 활동가는 이날 자리에서 인권위에 대한 인권단체들의 적극적인 개입을 주장했지만, 어떻게, 어떤식으로 개입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여지를 남겨뒀다.

“인권위, 인권단체들의 성과만을 가져가려 한다”

전체발제에 이어진 모듬별 토론에서 인권활동가들은 인권위 개입의 필요성에 전반적으로 동의하면서도, 국가기로서 인권위가 가지고 있는 관료적·행정적 속성, 인권감수성이 떨어지는 내부 구성원들의 행태에 거부감을 들어내기도 했다.

지난 9일 인권위가 발표한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 권고안 성적소수자 부문 작성에 참여한 한국레즈비언상담소에 케이 씨는 “성적소수자단체들이 열심히 성적소수자 관련 권고안을 작성해 제출했는데, 정작 그 내용들이 제대로 반영되지도 않았다”며 “인권위는 실제로 인권내용을 담보하기보다는 그동안 인권단체가 이뤄낸 성과만을 가져가려고 한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활동가는 “헌법재판소가 87년 민주항쟁의 결과물로 만들어졌지만, 알다시피 현재는 많이 보수화됐다”며 “인권위를 통해서 과연 인권운동을 얘기할 수 있을까에 대해 회의적”이라고 밝혔다.

모듬별 토론 결과 발표에서 한 모듬(‘홍어조’)은 “인권위는 세련된 국가권력기구에 불과하다”며 “인권운동의 성과들을 최종적으로 체제내화한 것에 불과하다”며 인권위의 근본적 속성을 신랄하게 비판하했다. 그러나 ‘홍어조’는 인권위가 가지고 있는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인권위에 대해 무관심하더라도 공동의 입장은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인권위 협력담당관, “인권단체들과의 관계설정은 인권위의 존재 이유”


한편, 3일 동안 진행된 인권활동가대회에는 인권위 측에서 신홍주 홍보협력팀 협력담당관이 참석했다. 이날 ‘인권위, 제대로 거들떠보기’ 프로그램에도 자리를 함께 한 신홍주 담당관은 참세상과의 인터뷰에서 “현재 인권위가 있었던 것은 인권단체들의 피와 눈물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점에 공감한다”며 “현재 인권위가 인권단체들과 관계설정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일정정도 갈등이 표출되고 있지만, 개인적으로 인권단체들과의 관계설정은 인권위의 존재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신홍주 담당관은 이날 ‘인권위, 제대로 거들떠보기’에서 쏟아진 인권단체들의 여러 지적에 대해 “인권단체들이 국가기관으로서 인권위의 한계성을 지적하는 반면, 다른 국가기관으로부터는 정반대의 평가와 비판을 받기도 한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권위가 인권에 대한 사회적 영역 확대, 담론확대에 대한 일정부분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향후 더욱 많은 인권단체들과의 교류를 통해 현장의 요구와 비판을 가감없이 듣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며 “그 일환으로 오는 24일 1시 30분에 잡혀 있는 인권단체들과의 정책간담회는 요식행사가 아니라 주요 인권의제들에 대한 인권단체의 의견을 듣고 이를 토대로 인권위의 사업방향과 기조를 잡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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