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이 맞나?’ 대학로 한복판 5층짜리 건물, 알려준 대로 왔다고 생각했는데 온갖 비디오방, 노래방 간판만 즐비할 뿐 ‘여성문화이론연구소’라는 문패가 눈에 띄지 않았다. ‘이곳이 아닌가 보다’며 돌아서려는데, 비디오방 문패 아래쪽 가장 눈에 띄지 않는 지점에 ‘여성문화이론연구소’라고 붙여놓은 것이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아마도 비디오방 및 노래방에서 문패를 너무 크게 달아 붙일 자리가 없긴 없었나보다.
그 건물 5층에 자리 잡은 여성문화이론연구소(여이연)까지 험난한 길에서 최신 정보(?)들을 얻을 수 있었는데, 요즘 ‘박수칠때 떠나라’와 ‘역도산’이 신작비디오 주간 순위 1,2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연말 가요대상을 휩쓸었던 김종국의 노래가 아직까지 인기순위에 올라있다. ‘그래도 나는 뭐니뭐니해도 김건모의 아름다운 이별^^’
이렇게 여이연까지의 고된 길을 오르면서 얼마 전에 벌어졌던 헤프닝이 떠올랐다. 참세상에 ‘행페이야기’라는 고정칼럼을 쓰고 있는 너부리에게 기자가 여이연에 대한 껄끄러운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오해를 샀던 일이다. 결국 중간에 낀 유영주 편집장의 어눌한 사실전달과 너부리의 판단미스, 추측 등에 의한 오해였던 것으로 결론이 나면서 억울한(?) 오해는 풀렸지만 당시 너부리가 유영주 편집장을 비롯한 기자에게 소개한 여이연에 대한 정보는 때마침 유용했다.
A4 한 장 분량의 여이연에 대한 너부리의 짧다면 짧은, 길다면 긴 소개 중 유달리 마음에 와닿았던 것, ‘가난한 자들의 이상한 풍성함, 그 풍성함이 지닌 또 달리 이상한 가난함, 전혀 일사불란하지 않지만 느리게 느리게 무언가를 하는 알 수 없는 힘들’
네모테이블 토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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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런 궁금증, 4층에서 5층까지는 정말 단숨에 올랐다. 또한 15분 가량 이미 늦은 상황. 10평 남짓한 공간, 문패만큼이나 소담한 공간, 또 그만한 크기의 네모테이블, 그리고 20여명의 여성들, 여이연은 이날의 토론회를 일명 ‘네모테이블 토론’이라고 설명했다. 기자가 찾은 1월 20일, 이날은 ‘성노동: 성·자본·권력’의 마지막 시간인 ‘성노동/성매매 다시 생각하기’ 시간으로 이희영(가명) 민주성노동자연대(민성노련) 위원장이 강사로 초청되었다.
“성노동인지 성매매인지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회피합니다만 저를 포함한 민성노련은 성노동이라는 용어를 매우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어떤 분들은 뭐 좋은 직업이라고 용어에 큰 의미를 두느냐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탈성노동이 되는 또 다른 내일이 1년 후가 될지 2년 후가 될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서있는 오늘 이 자리에서는 더 이상 오명과 낙인을 받고 살 수 없습니다. 성노동이란 말은 우리들이 인간임을 선언하는 최소한의 몸짓입니다”
지난해 뜨거운 감자였던 성노동/성매매 논쟁은 여이연 안에서도 뜨겁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강좌는 강사가 일방적으로 설명하는 방식이라기보다 성노동에 대한 여러 쟁점을 다시 검토하는 시간이라고나 할까.
이름 짓고 부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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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심스럽다. 저마다 다른 기준,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여성들, 게다가 기자와 같은 ‘일반인’이라면 오히려 익숙했을 세상화된 용어들이 여러모로 지적받고, 수정된다. 기자가 얼토당토않게 성매매 혹은 성노동자를 총칭하며 사용했던 ‘언니들’이라는 용어도 ‘타자화된 개념’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이주노동자’가 ‘불법체류자’가 아니었던 것처럼, 이날의 토론은 “더디고, 느리게 그러나 무언가 알 수 없는 힘”으로 그녀들의 이름 짓고 부르기로 시작되고 있었다.
다음은 이번 여이연 겨울강좌를 기획한 문은미 여이연 사무국 활동가와의 인터뷰 전문이다.
여이연은 어떤 단체?
설명하기 힘든데요. 일단 연구소 관련 공식적인 소개는 홈페이지에 나와 있듯이 “여성들의 역사를 다시 쓰고 대안문화를 만들며 여성주의적 시각에서 새로운 시대의 이론적 패러다임을 만들어 보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여성연구자들의 모임여성연구자들의 모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성연구자라고해서 특별한 조건이 있는 것은 아니고 그냥 연구소에 관심 있고 여성주의에 관심 있는 ‘여성’이며 누구든지 상관없습니다. 주로 세미나, 페미니즘/문화/이론 강좌, 반년간지 <여/성이론>를 출간하고 있습니다.
2006년 여이연 스무번째 겨울강좌 컨셉(?)이 있다면?
연구소에서는 계절별로 강좌를 열고 있기는 하지만 특별히 컨셉을 가지고 진행되지는 않습니다. 중심은 연구소 세미나팀인데, 세미나팀이 그동안 연구한 과제나 성과를 중심으로 기획을 합니다. 또 개인 연구자도 자신의 연구 과제를 가지고 강좌를 개설할 수도 있습니다. 그 외에는 시기별로 이론, 사회적 이슈를 고려해 강좌를 기획합니다.
올해는 연구소 세미나팀인 정신분석팀과 성노동연구팀이 강좌를 개설했고, 가족은 각각 ‘가족’를 주제로 공부하는 연구자들 중심으로 강좌를 구성했구요, <국가와 법과 젠더> 강좌는 임옥희 선생님께서 그동안 준비하신 내용으로 아마도 이후 단행본 출판으로 이어질 것 같습니다. 그리고 <페미니즘 이론> 강좌는 연구소에서 페미니즘에 관심있는 이들을 위한 기초강좌 형태로 여름/ 겨울 강좌마다 진행하고 있는 강좌입니다.
이런 질문 웃기지만 강좌의 목적?
학교가 아닌 곳에서도 여성학/여성주의를 접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자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목적이기는 합니다. 이미 대학에서의 여성학은 제도화되고 대학이라고 공간에 갇혀 아주 제한적인 학문 영역이 되어 가고 있기 때문이지요. 그러기 위해 일차적으로는 연구소 연구원들이 자신의 관심과 일정에 따라 연구를 진행하고 다른 이들과 공유할 수 있는 공간으로 ‘강좌’가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처음에는 강좌를 듣는 입장이었지만 강좌를 통해 연구소에 들어와서 지금은 강좌에서 강의를 하고 있는 분들도 많습니다. 글쓰기를 통해서 세상과 만나기도 하지만 강좌는 훨씬 더 직접적으로 세상과 만나는 통로가 되고 있습니다. 강좌를 통해 연구소에 관심가지고 계신 분들이 연구소를 더 가까이 느끼게 되고, 그래서 연구소의 문턱이 더 낮아지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강좌입니다.
강좌 어떤 이들이 함께 했나?(구체적이지는 않아도, 어느단체, 직업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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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좌를 듣고 난 후 반응?(수강생들의 평가)
어렵다는 반응부터 너무 기초적인 얘기라는 반응까지 다양합니다. 고민을 많이 하고 강좌 준비를 많이 하면 확실히 좋은 평가가 나오죠. 예를 들어 이번 <성노동> 강좌 경우는 성노동에 대한 개념을 다시 고민하는 계기가 되었고, 현장 활동가분들도 계셨는데, (이후 상담소에서 일하실분들) 성매매여성들이 위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고민하게 되었다는 평가도 있었습니다. 늘 강좌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어떤 지식을 얻기 위한 곳이라기보다는 여성들이 자기 고민을 진지하게 나누고 말하는 공간이 거의 없고 연구소 강좌가 그런 역할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루 도강한 저의 느낌은 이쪽 분야에 조예가 있거나, 전공을 하거나 하는 등 전문적인 여성들을 중심으로 수강한 느낌이었다. 그러므로 이쪽에 무지한, 또는 여성이지만 현실에서 성인지적 마인드가 없는 여성이 접근하기 어려운 것 같은....오해일지도 모르겠으나 그만큼 벽이 높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여이연 강좌에서 이런 벽을 낮춰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데 어떤가?
늘 그런 생각을 합니다. 강좌 후 그런 평가를 내리기는 하지만 결국 현재 우리 수준이라는 거죠. 세미나를 충실히 한 팀에서 강좌를 진행하면 아무리 어려운 주제와 내용이라도 쉽게 전달되고 내용도 있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는 어려워집니다. 일정한 강좌의 질을 어떻게 담보할 것인가가 늘 고민입니다.
그리고 한 강의만 들어서 그렇게 느끼실 수도 있답니다.^^ 처음부터 강좌를 함께 듣기 시작하면 용어나 강의 내용에 대한 맥락, 감정적인 교류와 약간의 신뢰가 생겨 나중에는 말하기도 듣기도 쉬워지죠^^.
'성노동: 성·자본·권력'이라는 주제의 한 꼭지가 끝났다. 여이연에서 이 term에서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꼭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다기보다는 사회적 이슈가 된 ‘성노동’에 대한 이런저런 주제들을 주의 깊게 들여다보고 논의해볼 필요가 있다는 문제의식에서였습니다. 실천과 운동의 영역에서뿐만 아니라 이론과 학문의 영역에서까지도 진지한 논의가 계속 이어져야 한다는 거죠. 그리고 ‘성노동자운동’에 공감하는 이들부터 ‘의심’하고 있는 이들까지 소박하지만 다락방에 모여 소통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보자는 취지이기도 하고..
개인적으로 아쉬원 점, 평가한다면?
연구소의 성노동 연구팀이 강좌 전에 모여 논의를 하기는 했지만 좀 부족한 점이 있었습니다. 미묘한 문제인 만큼 성노동자운동에 대해서도 강사들의 입장 역시 그 결이 조금씩 다릅니다. 그 차이가 드러나고 그러한 차이의 맥락을 수강생들에게 잘 전달이 되었을까 하는 걱정이 있기도 하죠.
그리고 공간의 문제인데, 공간이 좁고 불편해 수강생들에게 늘 미안합니다. 연구소 사정을 오히려 이해해주는 수강생들 분들에게 감사하죠.
다음 강좌 소개
23일- 27일 각각 오후3, 7시에 열리는 <페미니즘 이론>과 <처음 만나는 정신분석> 강좌인데, 모두 기초 강좌로 기획되었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로 페미니즘/여성주의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 생각을 정리하는 공간이기도 하고 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다른 공간에서 활동하는 ‘친구’들을 만나는 공간이기도 하죠. 그리고 2월 6일-10일 <국가와 법과 젠더> 강의가 있습니다.
페미니즘 이론
가끔 이론이 뭔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페미니즘 이론 강좌는 더욱 그렇다. 가장 현실적이고 실천적인 문제에서 파생되는 여러 고민들과 의문들을 한 “큐”에 해결할 그 무엇인가를 지향하지만 늘 2%로 부족하다. 2%로는 함께 고민하는 이들의 몫이다.
1강. 여성주의 철학: 주체성과 행위성에 관한 논쟁들
2강. 섹슈얼리티: 욕망과 권력 관계에 대한 성찰.
3강. 감정과 성의 정치학: 여성성과 의존성
4강. ‘가족’의 재구성: 돌봄 노동의 사회적 확장에 대한 고찰
5강. 생명공학과 신체거래: 기증과 매매
일시: 2006년 1월 23일-1월 27일 오후 3시
강사: 노성숙( 이화여대 강사), 서지영(한국학중앙연구원 연구교수), 성미라(여성문화이론연구소), 큰쇼(여성문화이론연구소)
처음 만나는 정신분석
아무도 친절하게 설명해주지 않았다. 그러나 정신분석 용어들은 난감하게도 여기저기서 난무하고 있었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남근선망, 매저키즘, 패티시, 히스테리, 여성성, 나르시시즘 등, 너무나 귀에 익은 용어이지만, 딱 꼬집어 뭐라고 설명할 수 없었던 개념들을 이번 겨울에 정리해 보자. 프로이트의 기본개념들을 중심으로 정신분석과 처음으로 정식대면하는 시간 <처음 만나는 정신분석>
1강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 남근선망
2강 매저키즘과 패티시
3강 히스테리
4강 여성성
5강 나르시시즘
강사: 구번일(여성문화이론연구소), 배수경(여성문화이론연구소), 성미라(여성문화이론연구소), 심혜경(중앙대 강사), 조현순(경희대 강사)
일시 : 2006년 1월 23(월) - 1월 27일(금) 오후 7시
국가와 법과 젠더
여성의 관점에서도 보호와 개입을 요청할 만큼 국가는 중립적인 매개자이며 절대 선인가? 국가의 호명과 아버지의 법에 불응하는 것이 가능한가. 이상한 애국심으로 넘쳐나는 수상쩍은 사랑의 풍경을 연출하는 한국사회에서 국가/아버지의 부르심에 원천적으로 실패한 타자들이 보여주는 정치성이 있을 수 있는가. 이번 강좌에서는 국가와 법이 어떻게 젠더화에 따른 호명으로 복종을 재생산하는가에 주목하고자 한다.
1강. 양심이 우리 모두를 주체로 만든다: 섹스/젠더/주체성
2강. 젠더 수행성과 조롱의 독법
3강. 혐오발화: 성매매, 포르노그래피, 군대에서의 동성애
4강. 불확실한 삶: 폭력과 애도의 정치학
5강. 국가와 법과 여성
일시: 2006년 2월 6일-10일 오후 7시
강사: 임옥희 (여성문화이론연구소)
여성에게 노동이란?
‘어떻게 살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지금은 생존의 차원의 문제이지만. 평생 평등하게 노동할 수 있는 권리는 멀고 불가능해 보여도 그것이 가능해지는 사회를 만들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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