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BC 경기가 진행되는 동안 이러한 한국팀의 승전보는 평택 대추리의 강제집행 소식은 물론 이해찬 총리의 사퇴 등 모든 뉴스를 잠재우며 각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그렇다면 개혁언론인 한겨레의 보도는 어떠했을까?
미국전과 일본전에 특별한 관심을 보이는 까닭은?
한국팀의 첫 번째 경기는 3일 대만전이었다. 당시만해도 WBC에 대한 관심은 저조한 편이었다. 여론이며 언론의 관심이 고조된 것은 5일 일본과의 예선전. 이날 한겨레신문은 무려 7꼭지의 자사 자체 기사를 쏟아낸다. 이는 통신사인 연합뉴스 기사로 대체했던 3일과 4일 대만, 중국전 보도와는 대조를 이루는 것. 또한 14일 미국전도 마찬가지다. 미국전에 앞선 멕시코와의 8강전 기사는 고작 2꼭지인데 반해 미국과의 8강전 경기는 당일만 무려 9꼭지, 이와 같은 보도는 다음날인 15일까지도 이어진다.
강호 일본과 미국을 꺾을 때마다 지상파 3사의 대표적 뉴스프로그램의 헤드를 무려 15분 이상씩 할애했던 한국의 승전보에 대해 개혁언론 한겨레도 못지 않은 관심을 보였다. 그러나 왜 하필 일본과 미국일까?
이렇듯 국가 간의 기사량에서부터 차이가 나는 것은 일본과 미국에 대한 한국적 특수성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일 터. 한국에 있어서 미국과 일본 이 두 나라의 영향력이 지대한 만큼 스포츠에서의 승리 소식은 그야말로 국민들의 목마름을 해소하는데 아주 적절한 요소로 작용했다. 이러한 까닭에 일본과 미국은 다소간 국민의 맹목적 국가주의나 애국주의를 조장하기에 충분한 요소를 지니고 있다. 특히 “일본에게는 패배할 수 없다”는 식의 보도나 “미국의 4강 진출 여부가 한국의 손에 달렸다”는 내용의 기사는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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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FTA 등 외교문제에 있어 굴욕적 협상을 했다는 기사들이 보도되고 있는 가운데 국가 간 대항전에서의 승리 소식은 현실과 다른 극적인 요소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변형된 애국주의 및 맹목적 국가주의는 국민을 무비판적으로 국가주의적 동원체제에 투입하고 집단의 전제주의적 욕망을 부추기는데 매우 효과적이므로 앞선 보도 형태는 지양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KBS 기자 피랍 사건, 총리사퇴 문제, 평택 대추리 강제집행 소식 등 국민적 알권리라는 가치면에서 전혀 뒤지지 않는 뉴스는 제대로 된 분석기사도 내지 못하면서 이러한 스포츠는 생중계하듯 지면을 할애하는 것도 지적할 점이다.
예선전에서는 8강을, 8강전에서는 4강을
이러한 스포츠 보도에 있어 또 하나의 문제점은 지나치게 결과에 치중한다는 점이다. 이미 여러 차례 지적된 바 있지만 지나치게 성적에만 몰두하는 보도, 즉 승리를 거둘때 마다 보도의 수위가 높아지는 보도는 사회전체적으로 결과지상주의나 성과주의를 부추기는데 유용한 요소로 작용한다.
일본과의 예선전에서 승리한 지난 5일 한겨레신문은 ‘아시아 1위 한국 4강? 꿈만은 아냐’라는 제하의 기사를 내보냈다. 이 기사에서 아시아 예선에서 강호 일본을 물리친 한국팀이 8강에 진출한데 이어 최종 목표였던 4강에까지 한 발짝 다가섰다고 기사화했다. 또한 8강에서는 4강을, 4강에서는 우승에 대한 기대를 비쳤다.
이미 황우석 사태에서 교훈으로 얻은 바, 성과주의나 결과지상주의는 내부적 민주주의를 역행하는 요소가 되거나, 효율성을 강조한 상업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잠재되어 있다. 이번 WBC 제시된 당근은 '병역특례' 혜택, 결국 목표를 달성하면서 11명의 선수에게 병역특례 혜택이 돌아갔지만, 이에 대한 진단 및 분석적인 보도를 찾아볼 수 없었던 것도 유감이다.
야구만이 아니야
앞선 지적은 WBC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이미 지난 2002년 월드컵에서도 나타났듯이 스포츠 보도는 맹목적 국가주의, 결과지상주의로 흐르게 될 소지가 농후하다. 이 밖에도 스포츠 보도의 문제점은 또 있다.
지난 겨울 스포츠 영웅으로 떠오른 하인스 워드나 최근 주니어 피켜스케이트에서 피겨의 요정으로 등극한 김연아에 대한 보도 역시 짚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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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지난해 사회적 영웅이었던 황우석의 빈자리를 메우며 언론에 등장, 또 하나의 영웅이 되었다. 이들의 등장은 언론이 만들어내는 영웅주의의 일각으로 지친 일상의 활력으로 존재하기 보다는 소수에 의존한 현실도치적 요소가 다분하다. 특히 이러한 영웅주의는 소수의 지배이데올로기에 통제되는 나약한 일반대중을 애국주의와 맞물려 동원, 희생을 요구하면서 대중의 변혁적, 개혁적인 힘을 무력화시키는데 효과적이라는 것에서 우려스럽다 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지난 2002년에 이어 2006년 월드컵에 대한 열기가 벌써부터 달아오르고 있는 가운데, 시청 앞 광장 등에서 벌어지는 거리응원에 대한 문제제기도 이어지고 있다. 이는 시민의 자발적 참여에 의한 열광의 공간이었다는 점에서 유의미하다 하겠으나 이러한 거리응원이 이윤추구에만 눈이 먼 자본 및 국가와 결합, 지나치게 상업화되면서 자발적 시민 참여라는 의미보다 오히려 국가에 의해 동원되는 것으로 오도되고 있다는 점도 지적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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