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리베가스', 가리봉 사람 선화의 하루

김선민 감독을 만나다

'가리베가스'는 가리봉을 떠나는 선화의 하루를 그린 작품이다. ‘가리봉’과 ‘라스베가스’의 합성어인 ‘가리베가스’는 가리봉에 살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떠도는 말이라고 한다. 고향을 떠나 가리봉에서 삶을 꾸린 노동자들의 아련한 꿈과 사연들이 그 안에 담긴 듯 하다.

  독립영화 관객을 만나다 열 두 번째 상영작 <가리베가스>

오는 6월 4일(일)까지 민중언론 참세상 온라인 독립영화 상영관, ‘독립영화 관객을 만나다’에서는 김선민 감독의 '가리베가스'를 상영한다. 가리봉을 떠나는 선화의 사연은 무엇인지, 가리봉은 어떤 곳인지, 김선민 감독에게 그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소리 없이 밀려난 노동자들, 그리고 슬픔

“오랜만에 가리봉에 갔었어요. 멈칫 했죠.”

'가리베가스'는 우연히 가리봉을 찾은 김선민 감독의 정서적 충격에서 시작된 영화다.

“가리봉 시장 초입에 늘어선 중국식 간판들이 너무 생경했어요. 그러다 문득 하늘을 보니 공장형 굴뚝을 밀어버린 거대한 고공 크레인이 괴물처럼 저를 내려다보고 있었어요. 낯선 가리봉의 풍경에 정서적 충격을 받았죠. 그리고 문득 ‘여기서 일하던 노동자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모두 소리 없이 밀려난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니 울컥 슬픔이 밀려왔어요.”

70~80년대 산업화의 메카였던 구로공단과 노동자들의 문화공간이었던 가리봉 시장에는 조선족타운이 형성되었고 이주 노동자들이 그 공간을 메우고 있다. 대부분의 공장들은 지방이나 해외로 옮겨갔고, 가리봉은 ‘가산디지털단지’로 이름을 바꾸었다.

  선화가 바라보는 가리봉의 풍경. 김선민 감독이 느꼈던 생경한 모습 그대로다.

가리봉 쪽방에 살던 선화는 공장 이전으로 가리봉을 떠나고, 선화의 쪽방에는 이주 노동자들이 이사를 온다. 마지막까지 방을 닦던 선화는 이주 노동자들에게 편지를 쓴다. ‘꿈을 꼭 이루라고’

“70~80년대 산업 역군이라고 불리던 노동자들은 소리 없이 밀려나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만 ‘꿈’이 없다면 더 억울할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촌스러울지 몰라도 그렇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두 달간의 쪽방 생활, 그리고 리얼리티

“가리베가스는 공간에 대한 영화이고 그 안에 사는 사람들에 관한 영화에요. 선화의 쪽방은 애정과 꿈이 있는 공간이기도 하죠. 그래서 제가 낯설어 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김선민 감독은 영화에 나오는 쪽방에서 두 달 동안 살았었다. 배우와 스텝들도 촬영 전부터 아침저녁으로 드나들며 얘기도 하고 회의도 하면서 익숙한 공간으로 만들었다.

  선화가 떠난 가리봉 쪽방에는 이주 노동자들이 이사를 온다.

영화에 나오는 건물에는 1층과 2층을 합해 38가구가 살고 있는데, 2~3가구를 제외하고는 모두 이주 노동자들이 살고 있었다고 한다.

“제가 그 방에 들어갈 당시 이주 노동자 단속이 심할 때였어요. 그 방은 단속으로 잡혀간 사람이 살던 방이었죠. 처음 그 방에 들어갔을 때 급하게 나간 흔적들이 남아 있었고 쾌쾌한 냄새도 났었는데 1달 정도 살고 나니 사람 냄새나는 방이 되더군요.”

김선민 감독의 경험들은 '가리베가스' 안에서 소소한 이야기들을 타고 섬세하고도 조용한 호흡으로 다가온다.

“역사라는 긴 공간에서 선화로 대변되는 리얼리티를 살리고 싶었어요.”

'가리베가스'는 선화의 감정을 조용히 쫓아간다. 더 다가가지도 더 떨어지지도 않는다. “나를 찍듯. 선화의 심장과 가까운 곳에서 숨죽여 차분하게 찍고 싶었죠.”

  가리봉을 바라보는 선화. 영화는 선화의 감정을 조용하고 차분하게 따라간다.

하지만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한 일들은 만만치 않았다. 더운 여름, 쪽방에서 10명 가까운 스텝들이 촬영을 하느라 온통 땀 냄새가 진동을 했고, 열흘 가까이 카메라를 들었던 촬영 감독의 팔이 마비되기도 했다.

“영화 전체를 핸드핼드로 촬영했었어요. 그런데 하루는 촬영하던 친구가 갑자기 카메라를 들어달라고 소리를 지르는데, 알고 봤더니 한쪽 팔이 마비된 거였어요. 며칠 동안 무거운 16미리 카메라를 들고 찍었으니 마비가 될 만 했죠. 그 뒤로는 시간 날 때 마다 스텝들이 팔을 주물러주며 겨우 촬영을 마쳤어요.”

여름에 시작한 촬영을 시작한 '가리베가스'는 겨울에 편집을 마쳤다. 1년 가까운 시간을 쏟은 영화 속에서 김선민 감독이 가장 애정을 갖는 장면은 어떤 것일까? 대답은 의외였다. 영화에서 단 몇 초밖에 나오지 않는 장면이기 때문이다.

“아래층 아주머니가 제사상을 차리는 장면을 좋아해요. 미처 다 차리지 못한 제사상과 아저씨의 영정 사진을 촬영한 화면을 보고 있는데 울컥했어요. 시나리오 단계부터 다 설정을 해놨었는데도 ‘저 아저씨는 왜 죽었을까’를 다시 생각하니 슬픔이 밀려왔죠.”

'가리베가스'는 버릴 장면이 하나도 없는 영화이다. 소품 하나하나, 대사 하나하나에 사연들이 담겨있다.

“장롱은 선화의 꿈이기도 해요. 꿈을 가지고 가리봉에 들어간 선화는 결국 부서져서 나가게 되죠. 잘 나가지지도 않고요. 어떻게 보면 선화의 상처이기도 하죠.”

이삿짐을 옮기다가 선화의 장롱은 부서지고 이삿짐 차에 실린 선화의 짐은 트럭의 반도 채 되지 않는다. “이삿짐에는 그 사람의 삶이나 역사, 가족사가 들어있어요. 트럭의 반도 차지 않은 선화의 이삿짐은 어떻게 보면 보잘 것 없어 보여 슬프기도 해요.”

김선민 감독은 구로에 산다

'가리베가스'는 김선민 감독의 구로에 관한 연작들 중 한편이기도 하다. 이전부터 구로에 살고 있는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섬세한 시선으로 담아내온 김선민 감독은 자신이 살고 있는 공간에서 느껴지는 감정의 결들을 따라 작업해왔다. “구로의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하자고 결심하고 시작한 건 아니었어요. 제가 사는 곳이 바로 구로이기 때문에 그 공간에서 느낀 감정을 영화에 담은 것이라고 할 수 있죠.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작업하고 싶어요.”

  <가리베가스> 김선민 감독


마이클 무어의 다큐멘터리 '로저와 나'를 보고 영화의 힘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던 김선민 감독은 각종 행사 촬영, 인터넷 매체 영상 기자, 영화아카데미를 거치면서 ‘어그적어그적’ 영화를 만들어왔다고 말한다.

“요즘 나오는 다른 영화들처럼 재기발랄하지도, 쇼킹하지도 않은 저의 이 촌스러운 영화가 다른 사람의 감정에 닿는 소통의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힘이었던 것 같아요. 앞으로 마음에 다가가고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영화들을 만들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솔직하고 담백하게 이야기를 풀던 김선민 감독과의 대화는 구로 지역의 생활공동체에 대한 이야기들까지 꼬리에 꼬리를 물며 이어졌다. 그 속에서 김선민 감독의 구로와 그 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애정을 한껏 느낄 수 있었다.

장편을 준비하고 있는 김선민 감독의 차기작을 기다리며, 초여름, 선화와 함께 가리봉에서 하루를 겪으며 잊혀져간 노동자들을 떠올려 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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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영화 , 가리베가스 , 김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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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목록
  • 이야..

    잘 읽었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