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꺼내든 개헌 카드가 기만인 이유는 두 가지다. 노무현 개혁분파는 민주주의와 진보를 왜곡, 은폐한 채 원포인트만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대선 국면의 주도권을 얻기 위한 정략으로 삼고 있다. 그래서 노무현 대통령이 추진하는 개헌은 불쾌하다.
87년헌법에는 반독재 민주화 열망이 담겨있다. 그러나 87년헌법은 지난 20여 년간 반공-발전주의에 기반한 자본축적 구조에서 신자유주의적 자본축적구조로 확장하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정치적으로는 형식적 민주화의 일부를 보장했을지 몰라도, 경제적으로는 시장주의 정신을 핵심으로 삼아왔다. 87년헌법은 신자유주의 축적체제의 발전과 동일한 궤적을 그리며 현실 계급투쟁 과정 전반에 폭넓게 개입하고 작동했다. 이처럼 87년헌법은 87년체제로 회자되는 신자유주의지배체제의 근간을 구성한다.
따라서 개헌을 이야기하는 한 지난 20여 년간 87년헌법이 우리 사회 구성원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쳐왔고, 지금 어느 위치에 자리잡고 있는지에 대한 계급적 통찰과 함께 거론해야 마땅하다. 그래야 앞으로 우리 사회구성원이 어떤 헌법을 가져야 하고 어떤 헌정체제를 가질 수 있는가 라는 과제를 온전하게 받아 안을 수 있다.
한미FTA가 통과되면 고쳐야 할 법률이 수백 가지가 넘는다는 주장이 나왔다. 주지하듯 87년체제 막바지, 지배세력은 한미FTA 추진에 혈안이 되어 있다. 한국과 미국 (초국적)자본의 이해에 따라, 보수세력, 개혁세력 할 것 없이 87년체제, 그 신자유주의적 완성을 위한 가공할 공작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냥 두는 한 87년헌법은 한미FTA 협상과 함께 재해석될 것이고, 따라서 87년헌법은 신자유주의체제를 고착하는 공화국의 이념이자 정신으로 재무장되는 게 불가피할 것이다. 신자유주의 수장 노무현 발 개헌 논의를 반신자유주의 정치논쟁으로 확장해야 하는 필연성이 여기에 있다.
신자유주의지배체제로서의 87년체제, 그 종언과 새로운 사회체제에 대한 급진적인 논의는 더욱 활성화 되어야 한다. 이는 07년 대통령선거를 염두에 두고 볼 일만은 아니다. 민주연립정부 수립을 직접적인 목표로 한다고 해서 직접적인 체제의 전환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관건은 '반신자유주의'를 넘는 급진적 대안 논의와 체제에 저항하는 사회구성원의 다양한 저항의 흐름, 그 폭과 깊이를 얼마나 확장하느냐에 있다. 가깝게는 2-3년, 멀리는 10년을 두고 좌파적 비전을 그리는 일이다. 가령 민주주의, 인권, 평등, 사회연대, 생태, 여성주의, 평화, 다문화 등 좌파의 가치를 품고, 자유로운 인간들의 수평적 공동체, 반자본,비자본의 생태적 경제사회, 여성주의적 사고에 근거한 양성평등사회, 전쟁과 폭력을 거부하는 평화사회라는 좌파가 추구하는 사회 만들기 구상을 구체화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런 점에서 개헌 논의는 제헌의 긴장과 유리될 이유가 없다. 아울러 우리 사회구성원의 삶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조항 하나하나에 대한 심도있는 개헌 논의를 피할 이유도 없다. 그러나 보다 중요하게는 특정 조항의 문구 개정 차원을 넘어 87년체제를 넘기 위한, 반신자유주의 대안 사회 질서를 고민하는 사회구성원 모두의 동의를 형성하기 위한 정치토론으로 접근하는 일이다. 이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개헌 논의의 진보적 진정성이 가름될 것이다.
노무현 발 개헌 논의를 반신자유주의 정치논쟁의 계기로 삼고자, 약간의 기획을 마련했다. 민중언론참세상 특별기획 '개헌, 반신자유주의 정치논쟁으로'를 통해 독자와 만난다. 이 기획이 앞에서 언급한 모든 기대에 부응하기에는 턱없이 모자라겠지만, 오늘날 신자유주의와 한미FTA 따위로 일그러지고 왜곡되어가는 우리 사회 체제 문제를 진지하게 되돌아보고, 좌파의 비전을 그려보는 좋은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특별기획] 개헌, 반신자유주의 정치논쟁으로
[1회차] 급진화와 개헌 논의
[2회차] 대선과 개헌 논의의 정략
[3회차] 사법개혁과 개헌 논의
[4회차] 87년헌법의 한계
[5회차] 영토조항-평화체제
[6회차] 토지와 주택
[7회차] 기본권1
[8회차] 기본권2
[9회차] 사회화-경제체제
[10회차] 헌법과 여성주의
[11회차] 87년체제를 넘기 위하여
(* 연재는 필자의 사정에 따라 조정될 수 있으며, 관심있는 활동가,연구자의 기고를 기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