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년 그 이후 20년.. 시민운동, 위기를 말한다

6월 민주 항쟁 20년 기념 학술 토론회①

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 20년. 민중운동과 시민사회 운동의 성장, 정권 창출의 흐름까지 이어졌던 시작점을 두고 한국사회를 조명하는 자리가, 6월의 시작과 함께 봇물 터지고 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와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 학술단체협의회는 6월 4일과 5일 ‘6월 민주 항쟁 20년 기념 학술 대토론회’를 갖고 한국 사회 진단과 미래에 대한 토론을 진행한다.

87년 6월 항쟁 이후, 반독재 민주화 운동 및 민중 운동의 투쟁 과정을 통해 획득된 공간에서 가장 큰 수혜자로 급속히 성장한 시민운동. 87년 7,8,9 노동자 대투쟁으로 이어지는 과정 속에서도 한국 사회의 민중운동과 시민운동이 사실상 다른 길을 걸어왔다는 것이 2007년 6월의 진단이다.

87년 이후 한국 운동 진영이 급속한 확대 됐지만, 오히려 ‘형식적 민주주의’의 틀에 갇혀 더 많은 민주주의의 좌절을 낳고 있는 2007년. ‘민주화, 세계화 이후 한국 시민운동의 전개와 평가’ 토론 세션에서는 시민운동에 대한 ‘위기’ 진단에서부터 앞으로의 방향에 대한 날선 토론이 진행됐다.

시민운동과 민중운동의 간극에서

한국 시민사회운동의 효시라는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그리고 현재의 시민운동을 대표하는 참여연대. 그들의 활동과 정책 개입에 대한 평가에서 부터 태생적 한계와 신자유주의에 포획된 시민운동 진영에 대한 ‘자성’을 촉구는 상황의 간극만큼, 토론자와 발제자간 4대 1의 접점을 형성했다.

김정훈 성공회대 교수는 “시민(사회)운동은 87년 체제의 산물임과 동시에 87년 체제의 한계를 돌파하려는 운동”이라며 “시민운동은 민중운동이 포괄하지 못한 환경, 여성, 평화와 같은 신사회운동의 가치 추구 운동으로 발전하며 기존의 민주주의 포괄하지 못한 영역을 담아내면서 시민사회의 민주화에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대표적인 예로 2000년 낙천낙선 운동까지 이어지는 흐름에서 시민운동의 개입과 활동은 ‘민중운동’과 다른 유효함을 보여줬다고 덧붙였다.

반면 배성인 한신대 교수는 “시민운동은 정치적으로 중도, 이념적으로는 자유주의를 지향하면서 중간층의 사회의식을 반영하고, 사회구성원 전체의 이익을 반영한 초계급적 운동으로 인식하고 있는 반면, 민중운동은 자신들의 협소한 계급적 특수이익을 추구하는 집단이기주의적 운동으로 폄하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정책 의제로는 개혁주의에 기반을 그리고 소부르주아지층에 기반을 둔 운동”으로 ‘시민운동’을 규정했다. '시민운동'과 '민중운동'을 구분하는, 또한 태생적 한계를 지적하는 시각차는 분명했다.

그러나 94년 출범한 참여연대가 사실상 민중운동과 시민운동의 분화를 촉발했다는 평가는 동일했다. 김정훈 교수는 “참여연대는 진보적 시민운동을 표방하면서 민중운동과 시민운동의 이분법적 대립구도를 넘어서려고 시도했지만, 그 의도와 상관없이 시민운동과 민중운동이 분화하는데 현실적으로 기여한 것”으로 평가했다.

여기서 나아가 배성인 교수는 "참여연대가 ‘민중운동의 자유주의화, 탈계급화 부르주아적 시민화’를 지향하면서, 공익을 추구하는 단체로서의 동질성을 부각시키며 계급 운동을 이익집단 운동으로 주변화 시키고 우리 사회의 구조적이고 체제적인 문제를 특정한 정책과 그것의 담당자 문제로 왜곡 시켰다“고 평가했다.

이후 시민운동이 87년 이후 분화되고, 민중운동 진영과 분리된 형태로 독자 진영을 구축하면서 정치 개입과 정권 창출의 근간을 이뤄 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7년 현재 '시민운동이 왜 위기를 맞고 있는가'에 토론의 초점이 맞춰졌다.

시민운동, 위기를 말하다

위기 진단에 배성인 교수는 “시민운동의 태생적 한계이자, 본질이며, 이의 연장선상에서 신자유주의에 의해 포획돼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배성인 교수는 “87년 이후 자유주의 정권의 잇따른 집권에 따라 합법 공간의 확대가 이루어 졌고, 그에 따른 대중 운동의 제도화가 확산 됐고, 대중운동이 양적으로 확대 됐음에도 (시민운동이) 연대를 통한 사회변화를 촉구하기보다 실리주의적으로 대응을 제한했기 때문”이라고 위기를 진단했다.

그 예로 재벌개혁과 투명성 강화, 소액 주주 운동은 금융개방을 요구했던 해외 초국적 자본의 이해와 정확히 일치하는 운동 내지는, 탄핵 국면에서는 노무현 정권 구하기에 여념이 없었고, 17대 총선에서 총선연대는 이라크 파병, 새만금 문제, 부안 핵폐기장 문제, 비정규직 문제 등 핵심적인 정책 의제를 제외시키고 부패청산과 탄핵찬성을 기준으로 낙선 운동을 했던 과정들을 들었다.

배성인 교수는 “시민운동 진영이 신자유주의 지배세력의 협력자, 조력자로서 주류적 시민운동은 점차 정부기관이 되고 있으며 한국 사회 지배세력으로 사회적 갈등을 봉합하고 관리하는 주체로 남아 있다"며 태생적인 한계와 모순적인 활동 과정이 시민운동의 위기를 몰아오고 있다고 분석했다.

반면 김정훈 교수는 “87년 체제에서 시작된 사회운동은 이제 그 생명을 다 하고 있고, 그런 의미에서 시민운동의 위기라 할 수 있다”고 전제했다.

김정훈 교수는 시민운동 진영이 운동의 목표와 사회운동의 영역의 분화 등에 따른 분화의 과정을 겪는 과정에 있고, 민주/반민주 구도의 공통적인 이슈가 2004년을 기점으로 해체됐다는 내용을 기반으로 시민운동의 2차 분화를 촉진하는 상황에서 386 이후 세대들의 운동 경험 차이 등 '위기' 보다는 '시민운동의 분화 과정'에 나타나는 현상에 무게를 실었다.

토론자로 참석한 박병옥 경실련 사무총장은 “취약한 정당 정치의 구조 속에서 시민운동 진영이 시민들의 바램과 달리 대의대행자 역할을 맡게 되면서 사실상 정치와 선을 긋지 못한 모순적인 긴장관계가 형성됐고, 이것이 시민단체를 어렵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원인을 진단했다.

김기식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위기론을 적극적으로 해석했다. 김기식 사무처장도 “국가적 의제가 변한 상황에서 시민운동이 대처한 자기 정체성과 마인드가 부재했다"는 공통적인 원인을 지적하면도, 오히려 “시민운동만이 위기가 아니라, 전체 진보, 민중운동이 직면한 위기"임을 전제하고, "정당구조가 분화되지 못한 상황에서 시민운동이, 기득권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의 운동으로 제한된 운동을 한 것이 아니라, 기득권을 침해하는 운동, 정치적으로 기득권을 공격하는 운동으로 발전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시민운동, 어떻게 나가야 할 것인가

시민운동을 바라보는 기본적인 시각차이, 시민운동의 위기 진단의 차이만큼이나 해법 또한 제 각각 이었다.

배병옥 사무총장은 “특성화, 다원화 되면서 횡적인 연대 활동을 강화하고, 국정에 영향을 미치는 시민단체 책임성 문제와 주장형 운동 보다 시민과 직접적인 커뮤니케이션을 지향하는 활동"으로 "시민운동의 질적 수준을 높이는 것이 필요하다"고 방안 모색에 무게를 실었다.

김기식 사무총장은 "당면 문제에 여러 고민이 필요하다"고 전제하며 "시민운동이 더욱 정치화해야 하고, 계급, 계층 투쟁 등을 더욱 가능하게 하기 위해 어떤 경로를 통해 갈 것인가가 문제"라고 고민을 던졌다.

반면 배성인 교수는 “민중운동과 시민운동의 영역구분이 모호해 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접촉면들이 확대되어야 하는데 현실을 그렇지 않음”을 지적하며, “시민운동은 민중운동과의 거리두기를 적극적으로 극복하고, 연대와 협력을 모색할 뿐만 아니라 스스로의자유주의적 한계를 넘어서는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아가 ”신자유주의 질서의 완성과 이에 따른 민중들의 생존권 투쟁, 전반적인 민주주의 후퇴에 맞서서 적극적인 엄호와 연대를 실현해 나가자“며 시민운동 진영의 발상의 전환과 치열한 삶의 진전성을 촉구했다.
태그

민주주의 , 시민운동 , 민주화 , 6월항쟁 , 민중운동 , 학술단체협의회 , 87년 ,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 반독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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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다가

    위에는 박병옥, 아래는 배병옥. 모두 박병옥으로 고쳐 주세요.

  • 라은영

    참 비슷한 이름이다 라고 생각하면서 썼는데 여지 없이 오타의 족적을 남기는 군요...어떻게 해야 이런 난독증을 극복 할 수 있을 런지.. 지적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