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염인 인권과 국민건강권, 진정 다른 길일까?

에이즈예방법 개정 앞두고 쟁점토론회 열려


후천성면역결핍증예방법(에이즈예방법) 개정이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가운데 지난 4일 국회 의원회관에서는 '모두를 위한 에이즈 예방, 어떻게 가능한가' 제목의 쟁점토론회가 개최되었다. 현재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는 보건복지부와 현애자 민주노동당 의원이 제출한 두 개의 개정안이 각각 상정되어있다.

현애자 의원이 제출한 개정안은 HIV/AIDS인권연대 나누리+ 등으로 구성된 HIV/AIDS감염인인권증진을위한에이즈예방법대응공동행동(에이즈예방법공동행동)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법안이다. 그간 공동행동은 '감염인 인권 증진이 최선의 예방'이라는 원칙 아래 기존 감염인 감시·통제 중심의 에이즈예방법의 전면적 개정을 요구해왔다.

현애자 의원실 주최로 열린 이날 토론회에는 정은경 보건복지부 질병정책팀장, 변진옥 에이즈예방법공동행동 활동가가 주발표를 맡았고, 정영선 국가인권위원회 인권연구팀장, 김점자 질병관리본부 에이즈결핵관리팀장, 엄중식 한림대 감염내과 교수, 강석주 KANOS 사무국장 등이 토론자로 참석했다.

"익명검사 뿐만 아니라, 보고신고체계도 익명으로 이뤄져야"

우선 검사와 보고체계에서의 익명성 보장 문제와 관련해 변진옥 에이즈예방법공동행동 활동가는 "정부안은 실명신고와 보고 체계를 유지하는 전제 하에 익명검사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였다"며 "그 익명은 단지 정부의 관리, 통제 시스템으로 유도하는 명목상의 익명이며, 항상 실명을 수반하는 익명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보건복지부의 개정안은 감염인들이 익명으로 검사를 받을 수 있는 ‘익명검진’ 조항을 신설했으나, 검사 후 양성판정이 날 경우 의료기관이 보건당국에 신고해야할 구체적 내용과 범위가 적시되지 않아 사실상 실명보고체계 유지라는 지적이 제기돼왔다.

이에 대해 정은경 보건복지부 질병정책팀장은 "익명검사에 의해 확인된 감염인에 대해서는 익명으로 관리하는 익명보고체계를 별도로 운영할 계획"이라고 밝혔으나, 익명보고·신고와 관련된 사항을 명문화해 개정안에 반영할지 여부는 명시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다.

"전파 차단·관리 위해 역학조사 필요" vs "자발성·익명성 보장 전제돼야"

개정안의 '역학조사' 관련 조항을 두고서도 입장이 나뉘었다. 정부가 제출한 개정안은 감염인 뿐만 아니라 '감염되기 쉬운 환경에 있는 자' 등에 대해 전파경로 등의 역학조사를 실시토록 하고 있다. 역학조사 대상에는 감염인 뿐만 아니라 배우자 및 동거가족도 포함되어 있다. 특히 정부안은 역학조사 불응 시 벌칙 규정을 두고 있어 그간 논란을 빚어 왔다.

보건복지부 측은 "에이즈의 전파 차단 및 관리를 위해 감염인의 감염경로와 추가 감염자 파악을 위한 역학조사는 필요하다"며 "다만, 개인정보가 침해되지 않도록 비밀보장과 최소한의 정보를 요구할 수 있도록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변진옥 활동가는 "역학조사가 자료로서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정확한 사실에 기반해야 한다"며 "그러기 위해서는 조사대상의 동의와 자발성이 담보되어야 하고, 역명성 보장이 필수적"이라고 재차 '익명성 보장'을 강조했다.

엄중식 한림대 교수는 "현재 이뤄지고 있는 역학조사의 항목들은 전문적인 연구에 의한 결과물들이 아니라 정부기관의 담당자들이 필요로 하는 정보들을 모아 놓은 것"이라며 "오히려 민간단체에서 진행되고 있는 연구결과들이 훨씬 도움이 될 것"이라고 역학조사의 신뢰도에 문제를 제기했다.

"예방적 차원에서 강제검진 필요" vs "강제검진 실효성 없어"

인권침해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는 에이즈 강제검진과 관련해서도 정은경 팀장은 "의학적으로 에이즈의 전파나 감염은 성접촉에 의한 것이 대다수로 보고되는 것을 감안할 때 예방적 차원에서 관리되어야 할 대상은 감염인의 배우자, 감염인과 성접촉이 우려되는 자, 집단생활자(입영대상자, 교정시설 입소자 등) 등"이라며 "이들에 대한 강제검진이 필요하다"고 강제검진 조항 존치 입장을 밝혔다.

반면, 엄중식 교수는 이 같은 보건복지부의 입장에 대해 "한국과 같이 아직 유병률이 낮은 나라의 경우 특정인구집단의 강제 검진을 통한 감염인의 발견 가능성이 매우 희박하고, 실제로 강제검진을 통한 감염인의 발견 보고가 매우 드문 상황에서 비용효과라는 측면만으로도 삭제되어야 할 조항"이라고 반박했다.

엄중식 교수는 특히 "감염에 취약한 인구집단을 강제검진 대상으로 정한다면, 매일 환자들과 접촉하는 나 역시 대상이 된다"며 "전혀 논리적인 접근이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변진옥 활동가는 "건강권은 자유를 포함하는 것이라는 점을 상기한다면 검사나 치료 등의 의료행위는 어떤 이유로도 강제적으로 행해져서는 안 된다"며 "심지어 의학적인 기준에서 강제적인 검사나 치료가 필요한 경우가 있더라도 의료윤리나 인권적 관점에서의 검토는 필수적"이라고 지적했다.

"감염인 강제퇴거 주권적 입법재량" vs "강제출국 당하는데 누가 검진받겠냐"

외국인 감염인에 대한 강제퇴거 조치와 관련해서도 양측의 입장은 엇갈렸다. 정부의 개정안은 장기체류 외국인에 대해 에이즈검사음성확인서 제시 또는 강제검진을 규정하고 있다. 또 현재 출입국관리법은 HIV에 감염된 외국인에 대해 강제퇴거 명령을 내리도록 정하고 있다.

정은경 팀장은 "외국인 입국허가 및 강제출국에 관한 사항은 전적으로 개별국가의 주권적 입법재량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 국제법상 원칙"이라며 "내국인의 건강을 해치는 질병, 불치병 또는 전염병에 관련된 자의 강제퇴거제도 폐지는 부적절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에 대해 변진옥 활동가는 "양성판정이 나면 바로 출국되는 상황에서 누가 자발적인 검진을 받겠는가"라고 반문하며 "HIV 감염 사실만을 기준으로 행해지는 외국인에 대한 입국금지, 강제퇴거는 공중보건이라는 명분으로 정당화될 수 없으며, 외국인 감염인은 내국인과 동일한 권리와 치료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외국인 감염인에 대한 강제퇴거제도 폐지를 강력 주장했다.

감염인 인권 증진과 국민건강권 보호는 배치되나?

인권위로부터 개선권고를 받아서인지.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 관계자들은 기존 입장보다 다소 유연해진 모습이었다. 그러나 핵심 쟁점과 '에이즈예방'을 바라보는 시각은 토론 참석자들 간에 근본적인 차이가 존재했다.

한쪽은 익명성 보장 등을 통한 감염인 인권 증진이 에이즈 예방을 위한 최선책이라고 주장했다면, 다른 한쪽은 '균형', '조화' 등의 수식어를 붙였지만 내심 '국민건강권'을 강조하고 싶은 분위기였다.

변진옥 활동가는 "상식적으로 감염인이 자신을 드러내고, 에이즈도 예방하는 것이 참으로 어렵다"며 "견고한 익명성의 보장과 감염인 인권 보장이 에이즈 예방의 해답"이라고 강조했다.

정영선 인권위 인권연구팀장은 "감염인들의 인권 보장책을 쓰는 게 전체 국민들의 건강권을 훼손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며 "왜곡된 진리이자, 왜곡된 타협점을 찾으려고 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반면, 정은경 팀장은 "에이즈 감염인의 인권보호 필요성에는 동의하지만, 국민건강권 보호를 위한 조치와 적절한 조화와 균형을 이루는 것이 필요하다"고 에둘러갔지만, 달리 해석하면 '감염인 인권 보호가 국민건강권을 위협할 수 있다'고 읽힐 수 있는 대목이다.

이에 대해 강석주 KANOS 사무국장은 "정부는 계속 감염인 인권과 국민 건강권이 배치되는 것으로 홍보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며 "감염인들이 음성화되고, 검진을 기피한다면 더욱 예방은 힘들어지게 된다. 유엔도 차별과 편견에 맞서 싸우는 것만이 에이즈를 이기는 길이라고 얘기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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