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중권 “상상력이 생산력이 되는 미래”

87년 노동자대투쟁 기념 강연회 열려

87년 노동자대투쟁 기념사업추진위원회에서 주최한 진중권 교수 초청강연회가 8월 31일 오후 7시 삼산 근로자복지회관에서 100여 명의 청중이 모인 가운데 열렸다. 진 교수는 시종일관 열정적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갔고 청중들 역시 때론 웃으며 진지하게 경청했다. 강연이 끝난 후 행사장 입구에서는 많은 청중들이 진 교수로부터 싸인을 받거나 함께 사진을 촬영하기도 했다.

  2007년 8월 31일, 진중권 교수 강연회가 삼산 근로자복지회관에서 열렸다.

진중권 교수는 이미지의 시대가 텍스트의 근대 시대로 이행했고 또 다시 이미지의 시대로 이행하고 있다며 문화의 변화를 설명했다. 즉 세계와 인간의 관계가 ‘텍스트=세계’가 아닌 시절이 되면서 이미지의 시대가 다시 도래했다. 하지만 그 이미지의 시대는 근대 이전, 즉 회화가 주된 예술 장르였던 시대의 이미지와는 다른 이미지라고 설명한다.

차원이 다른 이미지의 시대

진 교수에 따르면 현재의 이미지는 주로 컴퓨터에 기반하고 있다. “처음 컴퓨터를 나왔을 때를 떠올려봐라. 공학자들한테는 계산기였고 인문학자들한테는 타자기였다. 하지만 컴퓨터가 인터넷과 연결되면서 통신수단이 되었고 지금은 영상수단이 되었다. 디시인사이드(DCinside)와 같은 동호회가 인터넷 문화를 주도하는 것 역시 그러한 변화를 반영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이미지는 회화와 같은 이미지와는 다르다. 결국 컴퓨터그래픽(CG, Computer Graphic)이다. 조각은 3차원이다. 그 다음 시대의 그림(회화)은 2차원이다. 근대를 지배했던 텍스트, 즉 문자문화는 1차원이다. 하지만 지금 시대의 컴퓨터그래픽은 결국 점, 즉 픽셀을 단위로 한다는 점에서 0차원이다. 차원이 다른 이미지의 시대다”

그에 따르면 과거의 이미지와 현재의 이미지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원작 이미지에서 복제 이미지로 그리고 다시 생성 이미지로의 이행 과정이 있었다는 것이다. “옛날에 이미지라는 것은 직접 그렸다. ‘원작 이미지’다. 또 하나는 사진이다. 기계가 찍는다. ‘복제 이미지’다. 실물하고 똑같다. 하지만 반드시 피사체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 시대에 우리가 보고 있는 이미지는 ‘생성 이미지’다. 컴퓨터 CG라는 건 문자를 가지고 그리는 거다. 그런데 사실처럼 나타난다. 그래서 아마 미래에는 사진이 증거물로 인정이 안 될 수도 있다. 점점 비현실이 현실이 되어버리고 현실을 압도한다. 영화 속의 킹콩이나 봉준호 감독의 괴물이 다 그러한 생성이미지이다.”

문자 문화가 전제되어야 더 풍부한 이미지 시대가 열린다

진 교수는 무조건 이미지의 시대를 강조하는 것을 경계했다. 그에 따르면 문자 문화적인 전통이 전제되지 않는 이미지란 얼빠진 것이 될 수 있다.

“우리나라는 문자 문화가 너무 약했다. 그래서 영상으로 넘어갈 때 문자문화의 전통이 너무 약하기 때문에 확 넘어갔지만 서구의 경우에는 영상문화로 넘어갈 때 문자문화의 저항이 심했다” “문자 문화가 갖고 있는 합리성이 있다. 헝가리의 한 예술가가 이렇게 말했다. ‘미래의 문맹자는 글자를 모르는 사람이 아니다. 미래의 문맹자는 그림을 못 읽는 사람이다’ 한마디로 텍스트를 가지고 영상을 만들 수 있어야 하고 영상을 텍스트적으로 읽어낼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바로 그가 문맹자다.” “데모하는 사진을 조선일보와 한겨레신문이 다 같이 싣는다. 그걸 보고 그 이미지 배후의 신문사 의도를 읽어낼 수 있을 정도의 문자 문화적 소양이 있어야 한다.”

진 교수는 한국의 문화적 상태를 진단했다. “한국은 1945년 해방 당시 문맹율이 90%에 이르렀지만 빠르게 극복했다. 하지만 글자를 읽을 수 있다는 것과 문자 문화적 합리성을 갖췄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컴퓨터라는 것이 원래 뭐냐? 디자인의 도구, 설계의 도구, 프로그래밍의 도구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오락기로 사용한다. 남이 만든 것을 소비만 한다. 스타크래프트를 외국에서 만들면 1등 하는 건 우리나라다. IT의 강국이 아니라 소비의 강국일 뿐인 거다.”

황우석 전 교수와 심형래 감독

진중권 교수는 한국의 문자 문화, 텍스트 문화의 결핍의 사례로 황우석 전 교수와 심형래 감독을 꼽는다. “황우석에게 없는 것이 무엇이었나? 그에게 없는 것은 논문(텍스트)이다. 황우석에게 있는 것은 이미지(사진)다. 황우석이 보여준 건 줄기세포로 개를 치유한 필름이다. 근데 그 필름은 누가 만들었나? 황우석이 만들었다. 아메리카 홈 비디오 수준이다. 줄기세포 사진은 뭘로 만들었나? 포토샵이다. 근데 논문은 없다” “디시인사이드와 브릭(Bric, 생물학연구정보센터)과 같은 네티즌들이 그의 논문이 조작이라는 것을 밝혀냈다.”

그가 보기에 그런 점은 심형래 감독 역시 마찬가지이다. “헐리우드 아동물이라고 해도 결코 서사가 허술하지 않다. 디즈니만 해도 서사가 탄탄하다” “디워가 뜨는 배경에는 국가, 민족, 아리랑, 애국 코드 밖에 없다. 이걸 또 언론이 받아서 부풀렸다.” “가장 토대가 되어야 하는 건 비평 문화다. 가장 발달된 취향을 가진 층이 평론가다. 예술이 발달하기 위해서는 그 층이 두터워야 한다. 근데 고생했다고 봐주고 외국 나간다고 봐주고 관객의 압도적인 숫자가 별 다섯 개씩 주면 한국영화 수준이 어떻게 되나?” “토스터기 하나 수출할 때도 그냥 수출하지 않는다. 하자 있으면 안 된다. 가혹하게 비평해줄 필요가 있다.”

1930년대 나찌 파시즘과 한국의 시장 파시즘

진 교수는 황우석 박사와 심형래 감독에 대한 대중적 열망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어디선가 본 듯한 느낌을 받는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내게 말한다. 너는 왜 박정하냐. 대중들은 환상을 필요로 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현실에서 충분히 지겨울 만큼 좌절을 겪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이해해준 것은 히틀러였다.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은 시장 파시즘이다” “왜 이런 게 벌어지느냐. 텍스트 문화 없이 이미지 문화로 가니까 그런 거다. 386세대만 해도 비판의식이라는 것이 있었다. 지금의 대중들은 그렇지 않다. 자꾸 영웅담을 쓰려고 한다. 세계를 바꾸는 것이 자기라는 생각을 못하고 누군가를 찾는다. 영웅을 찾아서 영웅을 해하려는 사람을 자기가 가서 대신 막아주려고 한다. 구술문화시대 주체성을 상실한 시대의 모습이다”

진중권 교수에 따르면 이러한 파시즘적 판타지, 우익적 판타지는 ‘허구, 드라마화, 영웅담화, 신화화’의 형태로 나타나는데 그때 대중은 이런 판타지를 현실로 치환하고 배후의 문자를 읽어내지 못하면서 매트릭스의 주민이 된다고 한다. “히틀러는 ‘나의 표상이 너의 세계다’라고 말했다. 내가 꿈꾸는 것이 너희의 세상이라는 말이다. 거기서의 ‘나’는 황우석 같은 과학자일 수도 있고 광고를 하는 기업일 수도 있다.”

  위는 진 교수가 시장 파시즘의 위험한 징후로 든 삼족오 소년소녀 스카우트단. 2006년 11월의 모습. 아래는 히틀러 유겐트(Hitler Jugend)의 모습.

진 교수는 한국에서의 그런 징후로 드라마 ‘주몽’을 든다. “주몽의 의상은 역사고증을 거친 것이 아니라 게임 캐릭터의 의상에 가깝다. 판타지 코드다. 그로부터 ‘세계로 뻗어나가는 한국’이라는 망상이 나온다” “삼족오 소년소녀 스카우트단이 있다. 창단식하는 사진을 보면 유니폼이 히틀러 유겐트와 똑같다. 빨강색 완장에 검정색 삼족오를 박아놨다” “나찌가 나쁜 놈들이 아니다. 오히려 괴벨스 같은 경우를 보면 모범적인 가장이었다. 한나 아렌트의 말마따나 ‘악의 평범성’이다. 평범한 대중이 파시즘을 만든 거다.”

상상력이 생산력이 되는 미래

진중권 교수는 한편으로는 우리 사회의 미래를 낙관한다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장기적으로는 대중들이 비판하고 판단하고 평가할 능력을 가지고 자기의 매트릭스의 건축가(아키텍트)가 되는 길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산업의 변화와 시대의 변화를 잘 감안해야 한다고 말한다. “한국은 인터넷 인프라가 발전해 있다. 여기에 텍스트적 합리성이 뒷받침되면 훌륭해질 수 있다. 창의력은 결국 텍스트에서 나오는 거다” “지금 대중들에게는 죽은 박정희에 대한 향수가 강한데 이명박 얘기처럼 7% 성장하려면 간단하다. 대한민국 경제를 일거에 중국 수준으로 돌리면 된다. 불가능하다. 외형적 성장이 아니라 내포적 성장을 해야 한다.”

그는 상상력을 강조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이제 미래는 창의력의 시대고 상상력의 시대다. 상상력이 생산력이 되는 시대다. 미래의 생산력은 상상력에서 나오는데 톱니바퀴처럼 만들어 놓으면 뭐가 나오겠나?”

  진중권 교수 강연회에 모인 100여 명의 청중들은 때론 웃으며 진지하게 경청했다.

진 교수는 노동운동과 이 시대 진보의 가치 역시 시대의 변화에 맞게 조응해 가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우리는 산업시대가 아니라 정보화시대를 살고 있다. 물질화된 노동에서 비물질화로 갔다가 다시 재물질화되는 시대다. 노동의 과제도, 노동운동의 과제도 달라질 것이고 진보진영이 싸워야 할 주제도 달라질 것이다. 1987년을 생각해보면 그때처럼 또 한 번의 패러다임이 변할 시기가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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