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증권, 보험의 무한도전

[특별기획 : FTA체제가 열린다](4) - 자본시장통합법이 추동하는 금융빅뱅

자산운용 중심의 ‘동북아 금융허브’ 계획이 전체 밑그림 이라면 자본시장통합법(자통법)과 한미FTA는 그 그림을 맞추기 위한 퍼즐이다. 자산운용업을 육성하기 위한 노력은 세계 각국에서 계속돼 왔다. 정책의 시기만 본다면 ‘늦었다’는 정부의 주장이 맞다.

그러나 ‘늦었으니 뛰어가자’고 하기에는 정책 실패의 부담이 너무 높다. 그 많은 나라들이 노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계적으로 성공한 사례는 영국과 미국 등 손에 꼽힐 정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과연 우리에게 ‘차세대 성장산업’으로의 금융업이 어느 정도 유효한가에 대한 객관적인 진단이 필요하다.

참세상 ‘FTA체제가 열린다’ 4번째 기획은 금융허브와 투기자본의 유형 분석을 기반으로 한 자통법의 세부 내용과 자통법이 추동하고 있는 국내 금융지형에 대한 경고를 담고 있다. 투자와 투기가 뒤섞인 한국 사회에서 과연 자본시장통합법이 만들어 낼 미래는, 그 시대를 살아가는 민중들에게 얼마나 득이 될 수 있을까. 같이 고민할 수 있기를 바란다.
-편집자 주

코스피지수가 2,000포인트의 정점을 찍던 주식 열풍은 대학가에도 이어졌다. 전국적으로 80~90여개에 이르는 대학 주식투자 동아리의 절반가량이 올해 생길 정도로, 그 열기는 대단했다. 당일 ‘단타’ 거래를 하는 대학생들은 문자 메시지로 전해오는 종목 정보를 수시로 확인하고, 증권사로부터 자금을 빌려 매매를 하거나, 대학 등록금까지 쏟아 부어가며 주식시장에 뛰어들기도 했다.

미국발 서브프라임 사태로 증시가 폭락했던 지난 8월 전 세계가 충격여파에 휩싸였다. 물론 한국 증권시장도 그 파장을 피해갈 순 없었다. 그러나 이후 과거 냄비 증시와 분위기가 달라졌다는 평가가 우세했다. 안전성과 위험성의 경고와 외국인들의 매도가 계속되는 상황에서도 한국 증시를 지켜냈던 것은 기관투자뿐만 아니라 주식시장의 개미들이었다는 진단이었다.

시중은행들이 연 4%대 이자로 증권사의 종합자산관리계좌(CMA)로 빠져나가는 자금을 붙잡기 위해 고금리 월급통장을 속속 내놓고 있다. 또한 은행권에 투자은행(IB) 업무를 강화하기 위한 조직개편도 한창이다.

은행에 적금을 드는 것 보다 적립식 펀드에 투자하는 것이, 은행 계좌 보다는 이자율이 높은 CMA를 활용하는 것이 이제 당연해진 다이내믹 한국의 현실이다. 자본시장이 전 사회의 소득-분배-소비를 결정하는 사회로 이행하고 있는 그 경향에 가속도를 더하는 것이 바로 올해 임시국회를 통과한 자본시장통합법(자통법)이다.

허브를 통한 자본의 무한경쟁

이미 전 세계는 자본시장을 확대, 강화하는 무한 경쟁 상태에 있다. 체질과 역사적 조건이 다른 상황임을 차치하고, 년도나 경험으로 따진다면 한국은 후발주자임이 확실하다. 한국 금융허브의 모델이 되고 있는 영국의 금융 빅뱅의 경우, 이미 1986년에 진행됐다.

영국은 금융자유화를 위해 런던을 국제금융센터로 정하고, 진입장벽완화, 퇴출기준 엄정 적용, 적극적 외자유치, 국제적 M&A 활성화, 금융서비스법 제정, 통합감독기구 출범 등 금융장벽을 허물고 무한 자유를 보장하는 빅뱅을 시도했다. 물론 지금의 '런던'은 세계적인 금융시장으로 성장했지만 정작 영국 내 금융 산업이 대규모 해외 자본에게 인수되는 ‘윔블던 효과’를 낳는 등 부작용도 적지 않다.

미국의 경우 1999년 ‘글래스 스티걸법’을 폐지해 은행, 보험, 증권의 장벽을 허물고 금융회사의 대형화 겸업화를 유도했다. 일본도 1997년 금융상품 거래법을 제정해 10년에 걸친 빅뱅을 준비해 왔고, 2006년 금융상품거래법을 제정해 일본의 동경 증시를 국제금융센터로 육성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한국의 경우 IMF 외환 금융위기 이후 은행 중심의 구조조정이 진행됐다. 1997년 33개 이던 은행을 2007년 18개로 축소 됐지만, 은행들의 자산 규모는 크게 증가했고, 국민은행, 신한지주, 우리지주, 하나은행의 4두 체제를 형성했다. 그리고 2003년 ‘자산운용중심의 동북아 금융허브’정책을 제기, 한미FTA 협상과 더불어 지난 7월 임시국회 본회의를 통과, 2009년 1월부터 시행에 들어갈 예정이다.

자통법, 법 이상의 파장을 일으킬 것

자통법은 은행법, 보험업법, 서민금융관련법 등을 제외한, 자본시장을 규율하는 16개의 모든 법률 중 6개 법률을 통합하고 나머지는 관련 규정을 정비하는 것이 골자이다.

예를 들어 유가증권의 경우 국채, 지방채, 특수채, 사채, 주식, 출자증권, 수익증권, 주식연계증권(ELS) 등 21개로 열거하고 있는 현행 자본시장 관련 금융법을 ‘투자성(원본손실 가능성)’이라는 특징을 갖는 모든 금융상품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금융투자상품’을 정의하고, 열거하지 않는 '포괄주의 규율체제'로 전환한다.

또한 현행 증권회사, 선물회사, 자산운용회사, 부동산투자회사, 선박운용회사 등 금융회사별로 각기 다른 법률 체계와 영위할 수 있는 금융업무가 달랐던 기관별 규율 체제(Institutional regulation)에서 ‘경제적 실질이 동일한 금융기능’을 ‘동일하게 규율’하는 기능별 규율체제(Functional regulation)로 전환했다.

그리고 투자매매, 투자중개, 집합투자, 투자자문, 투자일임, 신탁업의 6개 금융투자업의 상호간 겸영을 허용 했고, 투자매매(인수), 투자중개, 집합투자, 투자자문, 신탁업 등 모든 금융투자업을 종합 영위하는 ‘금융투자회사’ 의 설립을 허용했다.

  통합법 제정에 따른 금융투자업의 업무 영역 변화 [진보금융네트워크]

자통법의 핵심 쟁점이었던 지급결제기능의 경우, 증권계좌를 통해 투자(위탁매매, 수익증권), 결제(신용카드, 지로납부, 자동이체 등), 송금(계좌이체), 수시 입출금(CD/ATM) 등 종합 금융서비스를 제공하는 증권종합계좌(CMA)의 운영이 불가능했던 내용에서 ‘금융투자회사가 결제, 송금, 수시입출금 등 부가서비스 제공이 가능’하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외국환거래법령상 ‘외국환업무 취급기관’으로서의 외국환 업무 범위에 포함해 별도의 절차를 거치지 않고 모두 허용했고, 아울러 고유재산의 자산운용(헷지, 투자)을 위해 행하는 외국환 거래는 외국환거래법령상 자본거래 절차를 준수하는 한 허용 하기로 했다.

또한 보험모집인과 유사한 투자권유대행자(Introducing Broker)제도를 도입했고, 이들은 투자권유대행자는 금융투자회사의 위탁을 받아 금융투자상품 판매의 사실상 중개 업무를 수행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집합투자 대상 자산을 열거하지 않고 지적재산권과 같이‘재산적 가치가 있는 모든 재산’을 집합투자 대상자산으로 정의해 자산의 범위를 확대했고, 현행 7종류의 펀드구분을 4종류로 재분류하고, 펀드 종류별 운용대상 자산의 제한을 없앰으로써 MMF를 제외한 모든 펀드가 다양한 투자대상에 운용할 수 있도록 했다.

금융투자회사가 설립된다면 소매금융의 경우 고령화에 대비한 개인의 자산관리 인식 변화 및 모바일 뱅킹, 인터넷 뱅킹 등 금융생활의 일상화 경향이 가속화될 가능성이나, 금융상품 스토아, 대형마트-백화점의 금융상품코너 설치 등 판매채널의 지속적 확대될 가능성도 높다.

또한 고령화에 대비한 장기투자에는 예금보다 주식, 채권 등의 자본시장 상품을 택하거나, 증권회사에 대한 자금이체업무 허용으로 급여 등 생활자금의 일부도 자본시장으로 이동할 것으로 전망된다. 당연히 ‘재테크’의 유행처럼 개인의 자산보유형태 또한 예금 중심에서 간접투자 등 포트폴리오 구성을 통한 자산 배분으로 변화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

결론적으로 자통법 국회 통과로 인해, 지급결제 기능을 가진 ‘금융투자회사’가 생기고, 신종 금융상품 설계 및 제공뿐만 아니라 자신의 수익구조대로 겸업화와 대형화가 가능해 졌고, 새로운 비정규직 직군이 생겼고, 투자자이며 소비자인 민중들은 어디서든 기상천외 한 금융상품을 만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개미 예금 보다 펀드 투자형으로.. 금융의 사회적 기능과 목적이 바뀐다

핵심은 자통법 뿐만 아니라 한미FTA와 금융허브와 연결되는 모든 흐름이 만들어 낼 빅뱅이다. 물론 예상만큼 시장의 반응이 뜨겁지 않은 상황이다. 그러니 정부가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관련 정책들을 쏟아놓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지만 보험 대리점 처럼 판매회사를 준비하거나 은행들의 IB업무를 강화, 은행 이용자들의 이동은 본격화 되고 있다.

자통법이 몰고올 빅뱅의 핵심 축은 두가지 이다. 하나는 자본시장 내에서 이뤄지는, 증권사가 금융투자회사가 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대형화, 겸업화 그리고 전문화에 따른 업계 내 구조조정. 그리고 다른 하나는 은행이 가진 지급결제 기능이 금융투자회사에 허용되기 때문에 발생하는 보험, 은행등 금융권별 업무 장벽이 허물어지면서 생기는 '금융 산업'내의 구조 재편이다.

은행의 고유의 기능은 지급결제 기능이다. 은행들은 이미 펀드 상품판매와 방카슈랑스에 따라 보험 상품을 취급하고 있다. 자통법에 의해 일단 금융투자회사가 지급결제 기능을 가지게 되면서, 보험업계의 '어슈어뱅크'(은행을 자회사로 두거나 은행상품을 판매하는 보험사)의 요구 또한 현실화 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현재 보험업법과 관련해 지급결제기능과 보험지부회사 형태를 허용하라는 요구가 높다. 지급결제 기능을 가진 보험지주회사가 탄생한다면 자통법으로 탄생할 금융투자회사, 은행지주회사들 간의 경쟁은 가중 될 수밖에 없다. 특히 올해 생명보험사들의 상장 허용은 보험사의 영업력 및 구조조정의 강력한 재원으로 작용할 상황이다.

이런 구조 변화는 은행을 갖고 싶었던 재벌의 꿈과도 맞물려 있다. 현재 정부는 삼성과 같은 대기업이 은행을 소유하지 못하도록 정책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김재율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정책국장은“예를 들어 자본시장통합법 이후 현대증권이 금융투자회사을 만들고, 삼성증권과 삼성생명이 지주회사가 돼서 그룹 임직원들의 계좌를 ‘헤쳐 모여’해서 이동 하게 한다면 과연 산업자본의 금융자본 통제를 막겠다는 금산분리의 원칙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를 반문한다. 은행의 고유 영역도, 금융권별 업무의 장벽도 사실상 무의미해 지고 있는 상황이다.

빅뱅을 예고 하듯 이미 많은 은행이용자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난 10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상반기 중 은행수신 동향’에 따르면 지난 1∼6월까지 은행의 요구불예금과 저축예금은 각각 4조 9000억원, 8조 6000억 원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하반기 16조 7000억 원 증가했던 것에 비교할 때 약 4분의 1수준으로 줄어든 것이다. 반면 증권사의 올해 상반기 CMA수신액은 10조 7720억 원에 이른다. 지난해 하반기 증가액 5조 8900억 원으로 두 배 수준으로 증가해 그래프가 엇갈리고 있는 현상을 보여준다.

금융기관, 자금중계자 역할에서 투자처를 찾는 자기 증식 과정에 돌입했다

자통법의 금융투자회사의 상품과 영업 영역은 무한대이다. 취급 상품 뿐만 아니라 업무의 영역도 확장 됐다.

지금까지 금융산업이 단순하게 자금중개의 기능을 맡아 왔다면 자통법 이후의 금융산업은 M&A 등의 IB부문 확대를 거쳐 자기투자(PI)로 고도화 되면서 금융회사 스스로 독자적인 투자기회를 개척하고 부를 축적해 명실상부한 금융자본으로 발돋움 할 수 있게 된다.

기업 자체를 거래대상으로 하는 M&A, 신용파생상품, 탄소배출권 시장 등 금융수요에 부응하고 금융수요를 창출하는 이 분위기는 국내 뿐만 아니라 중국, 인도, 러시아 등 해외로 그 영역이 확대되고 있다.

이한진 전국사무금융연맹 정책국장은 “국가적 차원에서 자산을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가 금융의 역할"임을 강조한다. 한 국가의 경제, 전 세계적인 차원에서 자금을 효율적으로 분배할 것인가가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금융은 본연의 역할보다는 자산운용을 통한 '수익 창출'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지적이다. 그는 "정부가 투기를 정책적으로 조장할 것이 아니라, 자본시장의 공공성, 모험 자본들을 실물투자로 직접 연결시킬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대화의 주제는 수익률이 되고, 후생복지 차원에서 임단협 협상을 통해 사주를 받는 2007년 대한민국에서는 월급을 꼬박꼬박 은행에 저축하는 사람이 시대에 뒤쳐지는 구닥다리가 되고 있다.

Death Bond라는 상품이 있다. 노년의 '가'씨가 젊은 시절 종신 보험을 들었는데, 수입이 부족해 자신의 보험 채권을 팔고, 그 회사는 '가'씨에게 채권에 해당하는 생활비를 지급하는 상품이다. '가'씨가 빨리 죽어야 회사가 더 많은 수익을 남길 수 있으니 죽기를 바라는 그런 상품, 한국도 역시 이전에는 없었던 다양한 금융의 시대를 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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