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번영의 약속인가 남북FTA의 시작인가

[특별기획 : FTA체제가 열린다](6) - 남북정상선언과 남북FTA

2007 남북정상선언과 곧 구체화될 경협은 북 경제의 '개혁개방'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그것은 차선인가 차악인가. 남북경제공동체 또는 민족경제공동체는 어떤 모습으로 남북 사회구성원들 앞에 펼쳐질 것인가.

  10월 2일 두 정상이 7년 만에 다시 만났다. [출처: 공동취재단]

남북정상선언은 남북간 '긴장'과 '화해'가 포괄적으로 담긴 2007년 남북정세의 압축판이다. 분명한 것은 남과 북의 정치경제 체제와 국제 관계 등에서 이질적이고 대결적인 요소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긴장은 오래된 일이다. 변화의 한 가운데 있긴 하지만 2007 남북정상회담 전후 과정에서도 이 긴장은 하나의 축으로 작동하고 있음이 확인된다. 또한 한반도 비핵화와 관련한 6자회담 회원국 간 정치적 태도에 있어서도 그러하다. 2.13 합의 이후 10월 3일 조건부 중간단계 조치 결정이 이루어지긴 했지만, 북미, 북일 등 관련국간 긴장이 해소된 것은 아니다.

이 '긴장'의 흐름을 헤치고 '화해'의 굵은 선이 그어지는데, 이게 남북경협이고, 특히 남북정상선언 제5항이 그러하다. 개성공단을 잇는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창설 구상은 다시 '화해'에 머무르지 않고 남북 관계와 북 경제체제의 변화를 추동하는 모티프가 될 것으로 평가된다.

이후 북의 '우리식'과 남의 '시장화'가 어떤 식으로 충돌할지 또는 조화를 이룰지, 아니면 또다른 변수에 의해 예상치 못한 새로운 국면으로 치달을 지 지금으로서는 어떤 결론도 단언키 어렵다. 다만 남북정상선언으로 가까운 미래에 남도 북도 커다란 변화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된다. 이 사실만큼은 어느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다.

이와 관련 남북정상선언 이후 크고작은 평가와 전망 토론회가 열리고 있고, 남북 문제 전문가들은 시즌2를 맞아 갖가지 진단과 주장을 내놓았다. 남북정상선언과 후속조치가 북의 개혁개방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를 중심으로 쫓아본다.

  두 정상의 속삭임... 그리고 벽 [출처: 공동취재단]

노무현 대통령이 부딪힌 '벽'

10월 2일 아침, 노무현 대통령은 비장한 표정으로 "평화 정착과 경제 발전을 함께 가져갈 수 있는,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진전을 이루는 데 주력" 하겠다고 말했다. 그날 "남과 북이 가는 길이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틀 후 노무현 대통령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보따리'를 펼쳐 놓았다. "가져갔던 보자기가 조금 작을 만큼, 적어서 짐을 다 싸기가 어려울 만큼 성과가 좋았다"고 말했다. 보따리에 든 것은 '경협'이었고, 보따리는 '남북경제공동체'의 미래를 시사하는 것이었다.

'남북경제공동체'는 상상과 추상의 어디엔가 머물다 어느날 문득 손에 잡힐듯 현실에 불쑥 나타났다. 참여정부식 어법으로 말하자면 평화번영정책의 결실이고, 동북아경제협력체와 동북아경제공동체 구상의 시작이고, 동북아경제통합의 비전을 여는 개념이다. 자본운동으로 보자면 살아있는 노동력 활용과 사회간접자본 투자에 기반한 자본 투자 여건을 개선하는 일이고, 자주민주통일운동의 맥락에서 보자면 분단을 넘어 통일 시대를 성큼 여는 역사적 표현이기도 하다.

노무현 대통령이 10월 4일 밤 대국민보고서에서 "우리 한국 경제, 특히 구조조정 문제에 있어서 일본과 중국의 사이에서 끼어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우리 경제에 새로운 활로를 개척할 수 있는, 열어나갈 수 있는 아주 좋은 계기가 될 것이라고 그렇게 말한 바 있다. 있는데, 이번에 그 기틀을 놓았다"고 말하고, 한국 경제에 좋은 계기가 되리라며 '북방경제'를 거론했다. 섬으로 회자되는 남쪽 땅을 박차고 북진의 돌파구를 마련했다는 자신감이 묻어나왔다.

한편 남북정상회담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벽'을 말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미국을 방문하고 부시를 만날 때도 '벽'을 느끼지는 않았다. 집권 5년동안 조중동이나 보수세력과 빈번하게 부딪힐 때도 짜증을 내기는 했으나 '벽'을 거론한 적은 없었다. 그런 노무현 대통령이 10월 3일 오전 정상회담을 마친 후 오찬 자리에서 외교 관행을 깨면서까지 '벽을 느꼈다'고 토로했다. 그리고 '개혁개방'에 대한 소신을 피력하기까지 하였다.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4일 대국민보고 때는 첫날 김영남 상임위원장을 만난 후 "아, 양측 간에 사고방식의 차이가 엄청나고 너무 벽이 두터워서 정말 무엇을 한 가지 우리가 합의할 수 있을지 사실 눈앞이 좀 캄캄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얼마간이 지난 11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는 "이미 고난의 행군 시대는 지나간 것으로 보인다"고 말하고 "여간해서 쓰러지지도 굴복하지도 않겠구나 그런 느낌을 받았습니다"라고도 말했다.

벽은 이질적인 두 체제와 경제수준,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관련국간 긴장과 해법을 둘러싸고 남북 간에 가로놓인 역사적 실체다. 남의 대통령이 북에서 '벽'을 느낀 건 예정된 일이고, 행여 김정일 위원장이 남으로 건너오더라도 벽을 피해갈 수는 없을 것이다.

  서해갑문을 방문중인 노무현 대통령 일행 [출처: 공동취재단]

경협 자체가 북의 개혁개방 확대 효과

김영윤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10월 9일 통일연구원 주최의 토론회에서 남북경제공동체 형성에 대한 인식으로 "기본적으로는 통일을 실현하기 위한 경제 차원의 필수적이며 제도적인 과정"으로, "경제공동체 형성의 가장 중요한 수단은 남북한 경제협력사업 추진"이라고 짚었다. 김영윤 연구위원은 경제공동체의 개념을 "이질 및 동질적 집단(국가,민족)간 경제교류와 협력을 주요 수단으로 교역.생산.화폐 등의 분야에서 경제적인 결속을 이루고 있는 상태"라고 정의했다.

김영윤 연구위원에 따르면 남북경제공동체 형성을 위한 2007 정상선언의 실천과제에서, 남북경제공동체 형성의 가장 중요한 전제조건은 북 경제의 재건이다. 이를 위해 경협의 최우선적 추진은 북이 당면한 경제난을 탈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생산분야와 연관한 사업을 해야 하고, 생산의 표준화와 생산품의 해외 진출을 위한 공동 노력을 들었다. 나아가 교류협력 효과의 극대화를 꾀할 시장 부문의 수용, 경제특구의 개발효과를 특구 배후지 및 기타 지역으로 파급할 수 있는 경협 추진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김영윤 연구위원은 정책적 고려사항에서 "경제공동체 형성이나 북한 개혁개방은 북한 경제의 발전과 통일을 위한 필수적인 전제조건이나 과정"이라고 보면서도 "그러나 이의 수용을 북한에 요구하는 것은 무리"라고 짚었다. 북은 이를 체제 영향 요인으로 인식, 거부할 가능성이 크고, 경우에 따라서는 남북관계의 진전이 방해받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따라서 경협의 실질적인 진전을 통해 북이 스스로 변화를 감당하는 형태가 되어야 할 것이라고 정리한다.

북의 개혁개방에 대한 이와 같은 태도는 양문수 북한대학원대 교수의 주장에도 묻어난다. 양문수 교수는 경협의 관점에서 본 2차 남북정상회담 평가에서 이번 선언의 핵심을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의 창설로 꼽고, 평화와 경제의 선순환 구조와 관련, 남북 철도, 도로 연결 및 공동이용에 주목했다. 기존의 3대경협과 경공업-지하자원 협력에서 수산업, 중화학공업(조선공업), 골재 채취, 농업, 기반시설, 자원개발 등 분야가 넒어지고, 지리적으로 점이 선, 면으로 확대되는 효과를 확보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양문수 교수는 북의 개혁개방을 조심스럽게 내다봤다. 북의 입장에서 개혁개방은 하나의 목표가 아니라 수단이라는 판단이며, 개혁개방에 대한 딜레마를 안고 있는 상태라는 주장이다. 양문수 교수는 "현재 수준의 남북경협이 북한의 본격적인 개혁개방을 이끌어내기에는 충분치 않다"며 양적, 질적으로 걸음마 단계라고 짚었다.

북의 입장에서 보면 남과의 경협 자체가 대외개방이고, 따라서 흡수통일에 대한 우려도 존재, 다른 나라에 대한 개방보다 더 두려운 개방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 양문수 교수의 설명이다.

그러면서도 7.1경제조치 실시 5년이 경과한 시점에서 7.1조치의 후속조치가 등장하지 않았고, 기조의 후퇴도 없었다는 점에서 개혁적 성격의 조치들이 하나의 큰 흐름으로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이는 북 당국의 의도나 희망과는 상관없는 '물질운동'이라는 판단이다.

양문수 교수는 이에 더해 남북경협이 개혁 억제적 요소를 줄이고 개혁 촉진적 요소를 늘리는 방향으로 추진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남과의 경제협력 창구 자체가 기본적으로 계획경제 영역인 만큼 북으로서는 계획경제를 정상화하고자 하는 바램을 항상 갖고 있기 때문이고, 따라서 경협을 확대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북의 대외개방을 확대하는 효과가 충분하다는 것이다.

김근식 경남대 교수는 9일 통일연구원 주최의 토론회에서 북의 개혁개방의 필연성을 확인했다. 김근식 교수는 이번 정상회담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개혁개방이라는 단어 사용에 거부감을 강력히 표출한 것 자체가 역설적으로 지금 북한이 개혁개방을 할 수밖에 없는 현실임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김근식 교수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전략적 결단'을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보았다. 남측의 요구를 예상보다 많이 수용했다는 판단에서다. 김근식 교수는 "미국과의 관계정상화를 전제로 그렇게 집착했던 핵을 포기하는 것으로 결단했다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남은 것은 북한의 경제를 회생하는 적절한 최선의 방식을 찾는 것"이고, 따라서 남북경협은 포기할 수 없는 전략적 선택이라고 주장했다. 다만 "경협 확대는 전략적으로 받아들이지만 북을 변화시켜 무너뜨리겠다는 전략은 반대한다는 마지노선을 정한 것"이라는 해설이다.

김근식 교수는 또한 정상회담 합의에 따라 당국간 대화가 격상되고 각급 회담이 정례화 될 경우 이는 "낮은 단계의 국가연합 진입이 사실상 가능한 것"으로 보았다. 이 단위들이 초보적 수준의 남북공동기구의 성격을 갖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다. 또한 4일 환송 오찬에 참석한 북측 인사에 당과 군 외에 내각이 포함된 것을 두고 "선군의 체제안정과 정치통합을 중시하면서도 경제적 실리 추구를 포기하지 않는 동시병행의 정책방향을 짐작"했다고도 보았다.

  평화자동차를 방문한 노무현 대통령 일행 [출처: 공동취재단]

개혁개방 필연적이지만 속도는 더딜 것

2002년 실시한 북의 7.1 경제관리개선조치에 대한 평가는 현재진행형이다. 7.1조치의 개혁적 요소와 시장주의 성격이 지속적으로 확대될 것인지, 계획경제의 골격을 유지하면서 실리를 챙기는 우리식 사회주의의 강화발전으로 이어질지는 모를 일이다. 그러나 대체로 북 경제체제의 급격한 변화보다는 점진적인 변화 쪽으로 보는 시각에 무게가 실린다. 2007 남북정상선언과 여기에 담긴 남북경협 내용은 남북경제통합 내지 남북경제공동체를 향한 획기적인 의미가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최수영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지난 7월에 발표한 '7.1조치 이후 5년, 북한경제의 변화와 과제' 글에서 수출산업을 우선 육성하고 외자 유치를 통해 생산기반을 확충함으로써 산업 전반의 생산성 향상을 꾀할 경우, 북은 지금과 같은 저성장 기조에서 벗어나 고도성장으로 나아갈 기반 조성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2006년 북의 대외무역 규모는 30억 달러, 1인당 국민총소득은 1,100달러 규모로 알려졌다. 남은 2002년부터 일본을 제치고 중국에 이어 제2 교역 상대국으로 북 경제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해왔다. 2006년 기준으로 북 총 무역의 31.1%를 남이 차지, 북의 남에 대한 경제 의존성이 증대되어왔다. 북은 민족경제의 관점에서 남과의 경협에 무게를 두고 경제 재건의 시나리오를 만들어가고 있는데, 지금까지 특구 정책에 있어서도 개성공단과 금강산만이 성공 모델로 평가된다.

정형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10월 16일 동북아시대위원회 주최 토론회에서 북 역시 현재의 경제개혁으로는 사회주의 계획경제의 본질적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것으로 보고, 보다 근본적인 경제개혁으로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과거 사회주의 국가들이 개혁사회주의건, 시장사회주의건 모두 사회주의적 경제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형곤 연구위원은 "향후 소위 '우리식 사회주의'라는 구호 아래 개혁과 개방의 범위를 점차 확대해 나갈 것으로 전망"하면서도 "경제적 개혁과 개방의 폭과 속도는 현재 진행 중인 북미관계의 개선속도 및 범위와 연계될 것으로 보이며, 북미 관계의 진전, 특히 체제보장과 관련된 합의를 보지 못할 경우 북한의 개혁개방, 그리고 남북경협의 질적 발전에도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같은 토론회에서 임을출 경남대 교수도 북이 전면적, 포괄적, 즉각적 시장경제체제로의 전환은 어려울 것으로 예상했다. 임을출 교수는 "북한의 경제체제 전환을 위한 급격한 구조조정은 대량의 실업, 인플레, 재정 적자의 확대 등 많은 부작용을 낳을 것으로 예상되고 이는 고용의 안정이나 생산성 제고를 위한 남한의 막대한 재정적 부담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제한적 공간에서 점진적, 단계적인 접근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판단이다.

임을출 교수는 "북한 당국이 현재 추진하는 경제특구 정책이 정치체제의 유지와 경제문제의 해결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유력한 정책대안"이라고 판단하고, "향후 남북 경제통합은 상호 이질적인 체제 유지 -> 경제특구에서의 점진적, 제한적 통합 실험 -> 인적 물적 교류, 법제도, 인프라 등의 공동사용 -> 경제특구의 확산 -> 경제공동체의 완성 -> 경제통합 등의 경로를 추정할 수 있다"고 보았다.

배성인 한신대 교수도 10월 8일 한반도진보네트워크 토론회에서 북이 외부의 효과가 가시화되고 현실화되기 전까지는 선군정치 노선을 계속 밟아 나갈 것이라고 보았다.

배성인 교수는 "북한은 북미관계 정상화와 남북정상회담의 효과를 철저히 ‘내부화’ 시킴으로써 통일과 민족승리 등의 담론을 내부에 유통시킴으로써 저항과 체제적 일탈을 방지할 것"이라고 말하고 "핵을 통한 안보 문제의 해결로 인하여 경제문제에 국가 정책의 강조점을 전환함으로써 아래로부터의 불만과 저항을 잠재우고 체제유지와 통합에 전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배성인 교수는 이러한 북의 선택이 자본의 의도대로 실현될 가능성에 대해서도 당분간은 약할 것으로 판단했다. 배성인 교수는 이의 근거로 "첫째, 북핵문제 해결을 통한 외부 지원, 즉 북미관계 개선을 통한 지원(에너지 지원, 대북경제제재 해제 등), 북일관계 개선을 통한 지원(에너지, 경제제재 해제, 보상금 등), 기타 중국과 러시아의 외채 탕감 및 경제적 지원을 통해 경제재건 추진을 꾀하고, 둘째, 남북경협을 통한 인프라 구축 및 지원, 즉 도로, 철도 등 교통망 구축에 남한의 공적 자금이 대거 투입될 것으로 보인다. 셋째, 외부의 지원은 현금이 아닌 설비, 자재, 기술 등의 지원으로 구성될 것이기 때문에 이를 통한 내부 기술 향상 및 개발을 통해 경제적 회복을 꾀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설명했다. 남북정상회담 선언에도 불구하고 급격한 자본 진출이 이루어지지는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노무현 대통령이 서해갑문 방명록에 남긴 글 [출처: 공동취재단]

민족경제냐 신자유주의 개방경제냐

2007 남북정상선언의 5항을 놓고 다양한 해석이 나오는 것도 이러한 정세를 반영한다.

곽동기 한국민권연구소 연구원은 2007 남북정상선언의 5항(남과 북은 민족경제의 균형적 발전과 공동의 번영을 위해 경제협력사업을 공리공영과 유무상통의 원칙에서 적극 활성화하고 지속적으로 확대발전시켜 나가기로 하였다.)이 6.15공동선언의 4항(남과 북은 경제협력을 통하여 민족경제를 균형적으로 발전시키고 사회, 문화, 체육, 보건, 환경 등 제반 분야의 협력과 교류를 활성화하여 서로 신뢰를 도모한다.)을 보다 구체화한 것으로 독해했다.

곽동기 연구원은 "민족경제의 균형적 발전, 공리공영, 유무상통 등의 내용들은 신자유주의식 개방경제체제를 지향하는 노무현 정부가 선뜻 받아들이기 힘든 내용"이고, 따라서 "경제 분야의 개별적 현안에서는 노무현 정부의 제안이 받아들여졌지만 남북경제협력의 기본원칙에서는 북한 당국이 노무현 정부의 경제관점을 민족경제로 견인하였다"고 평가한다. 남북정상선언의 다양한 경제협력 방안이 남북 간의 단순 교역 증가에 그치는 것이 아니고 자주통일을 견인하는 남북경제공동체를 지향하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곽동기 연구원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노무현 정부는 WTO와 대미 경제관계를 국가경제활동에서 변할 수 없는 중심으로 보면서 민족내부경제를 부차적 요인으로 보았던 반면 북한 당국은 WTO와 대미경제관계를 이득이 될 경우 상황에 따라 적절하게 이용하는 부차적인 요인으로 보면서 민족내부경제를 국가경제의 중심으로 본 것"이라고 해석, 북이 민족경제의 원칙과 실리를 모두 챙겼다며 북에 호의적인 평가를 내렸다.

박경순 한국진보연구소 상임연구위원은 정상회담 이후 언론에 기고한 글에서 "이번 회담에서 밝힌 남북경협의 목표는 민족경제의 균형적 발전과 공동의 번영이며, 원칙은 공리공영과 유무상통이다"라고 짚고 "합의된 남북경협 사업들이 제대로 추진된다면 남북관계는 새로운 협력의 단계로 접어들면서 민족경제공동체 건설에 성큼 앞으로 다가설 것이다. 따라서 이번 ‘2007 정상선언’은 남북경제협력의 청사진을 제시한 공동번영선언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보았다.

박경순 연구위원은 지난 8월 '남북정상회담과 남북경협' 글에서 "남북경협 사업이 이처럼 더디게 추진되고 있는 데에는 여러 가지 요인들이 작용하고 있으며, 거기에는 남측의 요인, 북측의 요인들도 있다. 하지만 가장 핵심적인 요인은 첫째는 남북경제협력에 대한 미국의 반대이며, 둘째는 남북경제협력에 대한 국내 보수 세력들의 비토"라고 지적한 바 있다.

박경순 연구위원은 남측 정부가 이번 정상회담을 남북경협의 질적 도약의 계기로 활용하려는 의지를 실제로 갖고 있다면, 북측의 세 가지 질문 즉 △정경분리의 원칙에서 안정적으로 남북경협을 발전시키겠다는 정책적 태도와 의지의 표현으로서 정경분리의 원칙 구현을 가로막고 있는 NLL문제 등 소위 근본문제 해결전망을 제시(북측은 근본문제 해결 없는 남북경협 확대발전은 기만이며, 기껏해야 흡수통일의 변종으로 보고 있음) △미국의 EAR에 따른 전략물자 반입금지, 바세나르 협약 등 남북경협을 가로막고 있는 각종 경제제재에 대한 해결책은 무엇인지 제시 △새로운 대규모 투자약속에 앞서 개성공단사업의 빠른 진전을 보장하기 위한 대책 제시 등에 대한 해답을 갖고 정상회담에 임해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북이 민족경제의 관점에서 근본문제 요구에 대한 신뢰할 수 있는 태도와 함께 남북경협을 받아들이겠다는 점을 강조하는 대목으로 읽힌다.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은 남북정상회담 이후 심층분석 글을 통해 '민족경제의 균형적 발전과 공동의 번영'에 큰 강조점을 두었다. 이 글에서 한호석 소장은 "노무현 대통령이 추진하려는 자유경제무역거점 창설은 민족경제의 균형적 발전과 공동의 번영을 위한 것도 아니고 공리공영과 유무상통의 원칙을 따르는 것도 아니다"라고 비판하고, "10.4 평양선언이 명시한 남북(북남)경제협력의 원칙은 공리공영과 유무상통의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한호석 소장은 "사회주의강성대국 건설의 혁명적 기치를 들고 경제발전을 추동하는 북측이 자본주의 경제개혁을 단행할 가능성은 보이지 않는다"라고 주장하고 이에 대해서는 남측의 재벌기업들도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호석 소장은 "삼성, 현대, sk, LG 등 4대 재벌기업이 북측에는 아직 자본, 기술집약적 산업에 투자할 조건이 형성되지 않았다고 하면서 남측 정부당국이 제기한 자유경제무역거점 창설에 관심을 두지 않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고 덧붙였다.

  아리랑 공연 장면 [출처: 공동취재단]

이윽고 남북FTA 시대는 오는가

이처럼 남북정상선언을 경과하며 남북경협과 북의 개혁개방의 함수관계를 풀이하는 시각은 다양하다. 그러나 남북경제통합 내지 자본운동의 맥락에서 보는가 민족경제의 관점으로 보는가에 따라 같은 결과를 놓고도 다른 해석의 여지는 곳곳에서 발견된다. 남북정상선언과 남북경협을 바라보는 계급적 인식의 차이라 하겠다.

이번 남북정상선언의 핵심은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창설로 압축된다. 남북정상선언의 내용에 준해 산출한 소요 비용은 정부나 민간연구소에 따라 약 10조, 30조, 60조 원 등으로 의견도 분분하다. 얼마가 들어가든 정부는 공리공영 내지 유무상통의 조건을 이용한 공적 기금 투입과 국제 펀드 조성, 그리고 민간 투자를 유인하기 위한 여러 노력을 기울일 전망이다. 사회간접자본 투자가 이루어지고, 투자 위험요인 제거와 조건이 마련되면 자본의 대북 진출도 이에 비례해서 확대될 것이다. 정부는 앞으로 5년을 놓고 구체적인 계획을 마련 중인 것으로 알려졌고, 한중일FTA 또는 아세안+3 등 동아시아 경제통합 문제도 이 기간 동안 보다 구체화될 것으로 보인다.

참여정부는 동북아시대위원회를 통해 '동북아경제공동체구상'을 제시하고 추진해왔다. 참여정부의 경제공동체 개념은 FTA, 환율, 에너지, 물류 등 역내 공동 현안 해결을 위한 정책 협의 및 공조단계로서의 '동북아경제협력체'와, 통화 통합 등 실질적인 단일시장 형성과 거시경제 및 대외경제정책 등에서 공동정책을 수행하는 단계로서의 '동북아경제공동체'로 구분된다.

이에 따르면 실현 가능하고 용이한 사업부터 추진하는 단계적 접근원칙, 다양한 협력사업과 FTA를 동시에 추진하는 동시병행원칙, 동북아경제협력을 통해 북의 개혁개방을 유도하는 남북경협과의 연계원칙을 추진원칙으로 하고 있다. 시기적으로는 2006-07년 경제협력의 제도적 기반 조성, 2단계(2008-2012년) 경제협력 본격화, 3단계(2013년 이후) 동북아경제공동체 이행기로 설정되어 있다.

이처럼 노무현정부가 구상하는 경제공동체는 북이 강조하는 민족경제의 범위를 넘는, 동북아 시장의 단일화를 기본 속성으로 한다. 정상회담 둘째 날 만찬장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장차 민족 경제공동체가 형성되면, 우리를 중심으로 중국, 러시아, 일본을 비롯한 동북아시아의 큰 시장이 연결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위에서 함께 번영을 누리면서 동북아시아에 협력과 통합의 질서를 만드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한 데 대해 김영남 상임위원장이 "서로의 이해와 믿음에 기초해 민족을 먼저 생각하고 그 외의 모든 것을 지양시켜 나간다면 북남은 더욱 힘있게 진전될 것이며 나라의 통일과 민족의 번영을 앞당길 수 있을 것"이라고 응대한 대목도 이에 준한다.

문제는 FTA, 자유무역협정에 흠뻑 빠진 노무현정부의 동북아경제공동체 구상과 남북경협이 갖는 신자유주의적 위험성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역지사지를 언급하고 개혁개방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말자고는 하나, 노무현 대통령 개인의 의지와 관계없이, 용어 사용과 무관하게 남북경협은 북의 개혁개방을 유도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이번 정상선언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보따리' 타령을 할만큼 흡족해하는 것도 북의 근본문제 해결 요구에 따른 긴장에도 불구하고 경협의 돌파구를 열었다고 보는데 있다.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를 포함한 제5항의 진척 여부는 북의 개혁개방을 추동하는 가늠치가 될 것이고, FTA는 남북간 형식적 체결의 의미를 넘어 이 과정에 자연스럽게 녹아들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 이야기하는 CEPA(경제협력강화약정)도 특별한 고안물이 아니라 이미 손 안에 들어있는 구체적인 방안으로 이해된다. CEPA는 남북기본합의서의 '교류협력에 관한 부속합의서'를 토대로 남북간 상품교역, 서비스교역, 무역/투자관리화 조치 등을 단계적으로 자유화하는 것을 골격으로 한다. 부속합의서에 이미 무관세 제도를 규정하고 있어 남북FTA와 내용적으로 다른 개념은 아닌 셈이다.

자본은 한미FTA 협상 과정에서 차세대 성장동력과 연동된 산업구조의 고도화, 규제의 선진화, 그리고 노동유연화 문제에 집중적인 관심을 보였다. 한미FTA 발효 시점이 2년 후이고, 사회 전 부문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기까지 2-3년이 더 걸린다고 본다면, 자본으로서는 향후 5년간 산업구조의 고도화, 규제의 선진화, 노동유연화를 어떻게 안착시키느냐가 관건이다. 자본에게는 이윤율 경향 저하를 해소할 새로운 시장의 창출이 궁극적인 관심이고, 여건만 갖추어진다면 북의 노동력 활용과 사회간접자본과 천연자원 개발 등 대북 투자를 외면할 이유가 없고, 이미 그 맥락에서 동북아경제협력과 경제공동체 구상을 수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 한미FTA 원산지 분야에서 합의하고 있는 △한반도 비핵화 진전 △남북한 관계에 미치는 영향 △노동.환경 기준 충족 등 세 가지 조건은 북미관계 해결 흐름 속에 정치적으로 판단될 것으로 평가된다. 2.13합의 조치가 완료되고 핵 불능화와 테러지원국 및 적성국 교역법 해제 조치가 이루어진다면 한미FTA의 세 가지 조건은 내용상 충족된다고 볼 수 있다. 즉 한미FTA가 발효되고 한반도OPZ위원회 가동 등으로 한미FTA의 연장위에서 남북경협과 남북FTA를 규정하게 될 경우 남북FTA 흐름은 순방향이 될 전망이다.

우리식 사회주의, 강성대국, 민족경제와 민족 번영의 관점에서 남북정상선언을 해석하는 북, 북이 한미FTA와 남북FTA의 맥락에서 동북아경제공동체 실현의 장도를 가겠다는 남쪽 정부와 자본의 구상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는 좀더 지켜볼 일이다. 개혁개방은 거스를 수 없고 거스를 일도 아니라면, 남는 것은 방법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남북경제공동체 실현을 목표로 남북경협에 돈을 쏟아붓는 남이 '우리민족끼리' '근본문제' 해결을 강조하는 북의 높은 '벽'을 어떻게 넘을 것인지도 예의 관심꺼리가 아닐 수 없다.

분단모순과 계급모순이라는 아주 오래된 이야기가 있었다. 그러나 그동안 세상은 너무 많이 바뀌었고, 분단을 매듭하는 역사의 파노라마와 함께, 한반도는 계급투쟁의 새로운 국면을 눈앞에 펼쳐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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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 남북정상회담 , 정상선언 , 남북F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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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자민

    계세얏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