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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김용욱 기자 |
이날 토론회는 공공미디어연구소, 문화연대, 미디어행동 ‘신자유주의반대공영방송수호행동’, 프레시안이 공동 주최하고, 경향신문과 민중언론참세상이 후원을 했다. 민중언론참세상은 토론회 생중계와 함께 토론회 참가자의 발제와 토론을 녹취하여 가급적 전문을 게재하기로 했다. 일부 참가자의 토론은 누락되었음을 밝히며, 옮기는 과정에 뜻이 정확히 전달되지 않은 부분은 양해와 함께 덧글을 부탁드린다. 공영방송의 발전과 미디어공공성 전략 논의에 많은 참고가 되길 바란다. - [편집자 주]
내 관심은 왜 촛불시위대가 마포대교를 넘었는가에서 비롯된다. 촛불시위는 쇠고기 수입과 관련한 문제제기, 건강에 대한 위협에서 시작되었는데 그 시위대는 급기야 KBS, MBC로 가서 공영방송 사수를 외쳤다. 그런 면에서 우리 사회의 여러 가지 위협적인 요소에 대해 공영방송이 지켜야할 원칙, 사회와 소통되어야 할 원칙이 훼손되고 있고 그런 것들에 대한 촛불시위의 대응이 아닌가 한다. 우리의 미디어, 우리의 소통 구조가 어떤 방식으로 변화되어 가고 있고 그러한 상황 속에서 우리 공공미디어의 위기 현실을 어떻게 진단해야 하는가를 이야기해보겠다.
한국 사회를 여러 가지로 표현할 수 있겠지만 우리 사회는 가장 위험한 사회다. 냉면집에 가서 냉면을 먹을 때조치 광우병을 걱정해야 하는 사회, 그것이 위험사회다.
위험사회 이론으로는 올리 뱍이 ‘현대사회는 위험사회다’ 라고 이야기하고 있고, 근대사회는 기본적으로 위험을 수반하고 있다. 위험 사회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자연적 위험조차도 사회적으로 강화되고 피해가 많아지는 사회가 현대사회다. 스촨성 지진도 그렇고 카트리나도 그렇고 자연적이고 사회적인 재난이다. 현대인은 물질적 풍요 속에서 엄청난 불안을 느끼고 있다. 그리고 이 불안의 해소에 어느 정도 방송 미디어가 기여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엠비정부 이후 한국 사회는 위험의 정도가 훨씬 더 높아지는 사회로 치닫고 있다. 촛불시위는 위험으로 치닫는 한국 사회에 대한 정면 비판이다. 삼풍백화점, 지구온난화, 광우병 이슈에다가 한반도 운하, 의료민영화, 수도사업 민영화, 공공미디어 체제의 붕괴 등 엠비정권은 사회를 위험으로 치닫게 하는 핵심 정책을 편다. 앰비정부는 위험정부다.
이제 우리는 서구사회에서는 위험 산업사회에서 벗어나서 이제 생명평화사회를 모색하고자 수없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엠비정부 이후에 우리 사회 큰 흐름은 어쩌면 60-70년대에 있었음직한 그런 개발 독재의 위험 사회로 퇴행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위험사회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고, 공공미디어는 어떤 기여를 할 수 있을까 질문을 던져야 한다.
표를 보면 왼쪽 빨간 사이클과 오른쪽 녹색 사이클이 보인다. 왼쪽은 상업미디어가 만들어내는 무한 생산과 소비와 무한 욕구의 악순환이고, 공공미디어는 개발주의를 감시하고 소비자의 욕구를 적정한 수준으로 제어하고, 지속가능한 사회, 경제, 정치구조를 만드는 것을 핵심으로 본다.
6월 10일 거리에 몇 십만이 참여했는데, 그때 프라자호텔에서는 레스터 브라운이라는 사람이 나와서 강연을 했다. 이날 사회를 봤는데, 이분이 재미있는 이야기를 했다. ‘현대자본주의의 가장 큰 위협은 생태적 위기를 자본 스스로 관리하지 못하는 데서 비롯될 것이다. 그래서 국가적인 총동원체제로 생태적 위기를 관리하지 못하는 자본을 정치적으로 관리해내지 않으면 우리 문명은 붕괴될 것이다’ 라는 주장이다. 이런 점에서 현대 사회 광우병, 이명박 정부의 대운하 이런 모든 것들이 우리 사회를 붕괴로 끌고가는 것이다.
PD저널리즘의 핵이라 할 수 있는 MBC ‘PD수첩’은 아주 훌륭한 역할을 했다. 지난번 황우석 사태에 이어서 우리 주변의 생활세계에 있는 위험의 요소 생명의 가치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다. 이것은 우리 시민들이 현존하는 우리 사회 위험에 대해대중적 각성을 한 하나의 이벤트였다. 늘 값싸고 양 많은 것을 구해왔는데, 쇠고기부페는 10년 전 우리 사회 중요한 한 현상이었는데, 지금은 맘껏 먹기보다는 깨끗하고 건강이 유지될 수 있는 고기를 원하는 것, 이런 것들이 광우병 이슈에 대한 사회적 아젠다로 설정되는 사회가 되었다.
미국 쇠고기 유해론, 검역주권 등의 아젠다를 만들어낸 공영방송에 대해 조중동은 무책임한 TV의 선동자였고 미국 쇠고기는 무해하다는 프레임을 만들었다. '무책임한 방송, 피디 광우병 도를 넘었다'고 했다. 광우병 괴담, 보수신문의 아젠다 기획은 실질적으로 촛불시위대에 의해서 여지없이 깨지고 만다. 조중동이 이제껏 견지해오지 못했던 생명중심적인 가치 이런 것들이 요번 국면에서 제대로 보여지는 게 아닌가.
결국 조중동은 괴담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고, 조중도의 촛불시위 보도에 대해 시민은 광고주 압박을 통해 조중동을 압박하고 있다. 그러나 조중동은 법적으로 소송을 통해 끝없이 시민단체들을 억압하는데, 더군다나 조중동은 정부의 서포트를 받아가며 진행하고 있다.
공공미디어라 할 수 있는 MBC 방송을 중심으로 한 아젠다 세팅과 폭발은 인터넷 공간을 통해 이루어졌다. 참여공증이라 할 수 있다. 다음아고라의 부상은 신문방송의 일방적인 소통체제를 극복하고 참여자들의 의사소통을 통한 사회적 합의를 이뤄낸, 한국적 사이버 공론장으로서의 몫을 단단히 했다. 촛불은 환경 변화에 생물적 적응을 하고 있고, 미디어를 찾아냈고 동의하는 미디어와 동의하지 않는 미디어를 선별해서 타격하고, 막힌 곳은 돌아가고 라는 명제처럼 자기가 소통하는 채널을 확보해나가고 있다.
보수신문은 엄청난 위기를 갖고 있다. ‘조중동 찌라시, 조중동 아웃’이라고 하는 촛불시위대 모습은 어쩌면 보수신문이 성공적으로 해왔던 일반 시민의 대중적 아젠다 세팅의 기능을 서서히 약화시키는 국면을 보여준다. 디지털 소통을 아나로그 마인드로 극복하지 못하는 한계를 보이는 것이기도 하다.
공영방송에 대한 평가이다. 공공방송은 ‘PD수첩’과 관련해서 우리 사회 아젠다 설정에 성공적인 역할을 했다고 평가 할 수 있다. 시민들은 MBC와 KBS에 가서 사장을 지키고 프로그램을 지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방송미디어가 갖는 여러 가지 특성을 현재의 KBS와 MBC는 성공적으로 활용해서 촛불시위를 보도했는가. 그렇지 않다. 연일 계속되는 촛불시위와 6월 10일 밤 조치 공영방송은 시민의 행동을 중계방송 하는 데 게을리 했다. 마지막 뉴스에서 몇 꼭지 뉴스 아이텀을 집어넣었지만, 수십만 명이 대통령 하야를 외치며 명박장벽에 맞서는 국면을 현장중계하지 않았다. 현장중계가 생명인 공영방송, YTN도 있지만 모두가 스스로 방기했고, 그러한 공영방송의 직무유기는 아프리카 방송이라는 또다른 채널을 촛불시위대가 확보하는 것으로 결론지어졌다. 다시 말해 공영방송은 시민들에게 정치적 지지는 받았지만 공영방송에 대한 미디어의 의존은 약화되었다. 공공미디어에 대한 성찰과 자성이 앞설 수밖에 없다.
현재 미디어는 신문은 보수신문의 위기, 방송은 방송의 본질적인 속보성과 현장성과 중계성을 방기했다는 점에서 현장성, 공정성 신뢰의 위기를 가져오고 있다. 하나의 송신자가 다수의 수신자에게 전달되는 ‘1대 다’의 대중적 소통의 시스템은 이날 이후로 악화일로를 걸을 것이고, 어쩌면 한 개인이 또 다른 개인과 네트워크로 연결되는 새로운 시대가 각광받는 게 아닐까 한다.
촛불시위가 이렇게 불거진 것은 시위 현장에서 디지털 카메라와 웹캠을 가진 1인미디어들이 서울대 여학생이 군홧발에 짓밟히는 장면, 전경 버스 위에서 깃대를 들고 있는 남학생을 살수차로 쏘는 장면을 인터넷을 통해 대중적으로 알리면서이다. 9시뉴스 방영도 의미가 있었다. 시간과 공간을 넘는 디저털 소통 방식, 새로운 디지털 시민이 탄생하는 것 아닌가. 우리 정부가 지난 수십 년 동안 추진해온 아이티강국이 거리에서 실현된 것이다. 그런데 정부 차원에서는 아직도 전경버스, 컨테이너로 막는 모습을 연출했다.
공공미디어 엄청난 위기다. 우리의 위기는 엄청난데, 첫째 현재 이명박 정부의 방송통신정책을 보면 탈규제, 다시 말해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이야기할 수 있다, 초일류 방송통신정책을 이야기하면서 탈규제를 이야기한다.
결국 이들이 추구하는 것은 산업적 디-레규레이션이지만 그래서 방송 산업의 민영화, 공공채널의 통폐합, 중간광고 허용, 결국 1공영다민영 체제를 구축하고자 하는, 그래서 보수적인 NHK 모델로 가는 것이지만, 그러 면에서 탈규제를 목적으로 하지만...
두 번째로는 정치적으로 방통계 인사를 자기 캠프 사람으로 채우고, 실질적으로 보수 우익이 공영방송을 압박하고, 이사장을 사퇴시키고, 이런 것들은 직접적인 정치적 규제다. 신권위주의다. 매스미디어는 사회책임만 강조하면 된다고 알았는데, 이제는 신자유주의, 신권위주의의 위협에 봉착하고 있다.
특보방송사 사장의 탄생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것은 공공적 미디어의 기본적 기반을 해체시킨다.
다음의 댓글을 다음에서 삭제했다고 한다. 이제는 방송과 통신이 결합해서 방송은 컨텐츠 레규레이션, 내용 규제를 강화했고, 통신은 구조적 규제로 내용적 규제를 약화시켜왔던 것이 선례인데, 오히려 방송의 내용규제 논리가 통신으로까지 확대되는 국면이다. 인터넷 소통공간의 엄청난 장벽으로 나타날 것이다.
미디어에 대한 촛불의 대응, 촛불은 생명체다. 생명이 유해화학물이 있으면 피해가는 것이 본능이듯이 시민들은 미디어에 대해 본능적인 반응을 하고 있다. 우호적 신문에 광고 해주기, 구독 해주기. 적대 신문에 대한 광고주 압박, 구독 철회, 검찰에 자수 등의 실천을 펼친다.
이와 같이 조중동 광고주에 직접 압력이 시행되고, 이는 법의 문제가 아니라 시민의 정서상의 문제로, 시민들은 보수신문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그런데 재미난 것은 이러한 보수신문, 광고주, 시민의 문제에 정부가 간여하고 있다는 점이다.
농식품부가 PD수첩을 고소했다. 아프리카 대표가 구속되었다. 공권력에 대한 언론자유, 인터넷 공간에 대한 위협이다. 지난 10년, 20년간 추구해왔던 민주화와 언론자유의 기본적인 가치가 이렇게 훼손되어도 되는가.
사회적 소통이 안 되고 있다. 대통령과 보수언론 할 것 없이 소통의 기본은 상대방의 의견을 듣는 건데 그게 안 되고 있다. 촛불시위가 진행되고 사과문이 발표되는 그 시점에도 정부는 언론사에 자기 사람 심기 행위를 계속 했다.
언론장악을 위한 신권위주의이다. 언론 장악을 위한 신권위주의, 언론통제의 신권위주의의 부활이다. 이거야말로 정치적 통제의 부활, 우리 사회가 20년 전으로 퇴행하는 단면이다.
신권위주의와 함께 우리 사회에는 불행하게도 공공성 부재의 신자유주의의 현상이 담겨 있다.
현재 미디어 지형의 변화 방향은 공공성 훼손으로 가고 있다. 더 많은 상업주의, 더 많은 정치적 통제, 더 많은 국가기구의 동원, 더 적은 표현의 자유, 더 적은 문화적 다양성.. 그러나 촛불시위에 나선 시민들은 더 많은 민주주의를 원한다. 촛불시위의 기본적인 국민적 정서를 동의하고 소통하려면 국민적 정서를 이해하고 공공성 훼손을 결과하는 다양한 조치를 철회해야 마땅하다.
마지막으로 위험사회를 벗어나는 미디어 아젠다, 그걸 공공미디어가 만들어내야 하고,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아젠다를 공공미디어가 만들어내야 한다.
왼쪽은 원자열 발전소 사진이고, 오른쪽은 푸른 초록이 있다. 시민들은 위험사회에서 벗어나고 싶어한다. 공공미디어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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