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합차'에서 겨울나는 행신동 철거민

철거민 김혜자 씨, "천막·컨테이너 철거돼 이젠 '견인' 걱정"

경제위기 속에 철거민들이 어느 때 보다 추운 겨울을 맞고 있다.
4일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행신동 'SK뷰' 3차 아파트 건설 현장 앞, 한 대의 승합차에 철거민 김혜자 씨가 몸을 움츠린 채 앉아 있다. 차량 외부에는 시행사인 대명건설과 시공사인 SK건설을 규탄하는 내용의 피켓이 붙어 있다. 얼핏 여느 철거민 단체의 방송차량처럼 보이나, 이 승합차는 김혜자 씨와 두 아이들이 실제 사는 '집'이다.

  김혜자 씨가 지난 달 부터 거주하고 있는 '집'으로 들어가고 있다

차량 내부 한 쪽에 이불과 침낭이 쌓여져 있고, 가스버너 등 가재도구도 보였다. 김 씨는 "잠은 이곳에서 아이들과 함께 자고, 씻는 것은 주변의 교회를 이용한다"고 말했다.

김 씨를 만난 지난 4일 오후 서울과 수도권에 한파주의보가 내려 기온이 뚝 떨어졌다. "엄동설한에 이런 곳에서 생활이 가능하냐"고 묻자, 그는 "나도 이런 데서 '사람이 살 수 있을까'하고 생각을 했는데, 막상 닥치게 되니 이렇게라도 살아지더라"고 했다.

"밤에 가끔 차 안에 있으면, 주민들이 오가며 '여기서 실제로 살지는 않고, 시위만 할 것'이라고 얘기해요. 일일이 그 사람들에게 설명할 필요가 없어서 그냥 듣고 있는데, 이렇게 살고 있는 게 현실인걸요"

김혜자 씨 가족, 비닐천막·컨테이너·승합차 전전

김혜자 씨 가족은 지난 2005년부터 3년 째 빈집, 천막, 컨테이너 등을 전전하며 살고 있다. 이번이 이들 가족이 거리에서 맞는 세 번째 겨울인 셈이다. 김 씨 가족은 2005년부터 행신동에 'SK뷰' 건설 공사가 시작되면서, 살던 집에서 쫓겨났다. 당시 김 씨 가족은 보증금 1천만 원에 월 30만 원짜리 월세 집에 살고 있었다.

당장 갈 곳이 없어진 이들은 시행사인 대명건설 측에 임대아파트 등 주거 대책을 요구했다. 그러나 건설회사가 이들의 요구를 쉽게 들어줄 리 만무했다. 그렇게 김 씨 가족의 '투쟁'은 시작됐지만, 이처럼 길고 힘겨운 여정이 될 줄은 몰랐다고 한다.

김 씨는 "처음에는 나도 여기 사는 주민이니, 아파트가 지어지더라도 세입자에 대한 주거대책을 요구하면 쉽게 해결될 줄 알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녹녹치 않았다.

"그게 아니더군요. 살던 집에서 쫓겨난 후 주변에 철거가 안 된 빈집에서 생활했는데, 얼마 못 가 철거가 됐어요. 그래서 2006년부터 건설현장 앞에 비닐 천막을 치고 살았어요. 그런데 그것도 수차례 철거를 당했죠. 최근에는 컨테이너에서 살았는데, 지난 10월 이것마저도 철거를 하더군요"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서, 함께 '투쟁'하던 세입자들도 하나 둘 떠났다. "2005년에는 한 20세대가 주거대책을 요구하며, 함께 싸웠어요. 그런데 폭력적인 강제 철거를 직접 경험보고, 각종 벌금을 맞다 보니, 버틸 수가 없었죠. 하나 둘 떠나고 이제 저희 가족만 남았어요"

한편, 지난 달에는 남편인 김철규 씨마저 집시법 위반으로 구속되면서, 이들 가족의 상황은 더욱 어려워졌다. 두 부부는 '철거투쟁'을 하며 집시법 위반 등으로 수차례 구속됐다.

  고양시 행신동에 건설되고 있는 SK뷰 3차 아파트. 김혜자 씨 가족은 마무리 공사가 한창인 이곳 바로 앞에서 생활하고 있다

고양시청 "세입자 주거대책? 법적으로 안 해도 된다"

김 씨 가족의 요구는 3년 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작더라도 좋으니 거주 가능한 임대주택을 마련해달라"는 것.

"시행사나 구청에서는 마치 저희가 무슨 큰 보상을 받기 위해서 이렇게 싸우는 것처럼 얘기를 해요. 저희가 '큰 돈을 요구했다'는 등의 소문도 많이 들었어요. 말도 안 되는 소리에요. 오직 임대주택 등 우리 형편으로 거주할 수 있는 집이 필요할 뿐이에요. 세입자에게도 주거의 권리가 있는 것 아닌가요?"

그러나 김 씨 가족의 소망은 현실과는 동떨어진 얘기일 뿐이다. 'SK뷰'는 민간이 주도하는 아파트 건설 사업이기 때문에 주택재개발사업 등과 달리 법적으로 세입자들이 주거대책을 보장받을 방법이 전혀 없다.

고양시청 주택과 관계자는 "'SK뷰'의 경우 흔히 얘기하는 재개발사업이 아닌, 민간건설회사(대명건설)가 땅을 매입해 진행하는 일반 아파트 분양 사업이기 때문에 법적으로 시행사가 세입자들에게 주거대책을 마련해 줄 의무가 전혀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보상 등을 안 해도 되지만, 그 분들이 불쌍해서 위로금이라도 지급하라고 (우리가) 대명건설 측과 중재를 서봤지만, 건설회사에서 거부하는 데 우리로서도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원론적인 답변을 내놨다.

빈곤단체 "개발사업, '원거주민 주거권 보장' 근본적 개선 필요"

현재 주택재개발사업, 주거환경개선사업 등 공공개발사업은 실제 이행 여부를 차치하더라도 '공익사업을위한토지등의취득및보상에관한법률'(토지보상법) 등 관련 법률로 세입자들에 대한 이주대책 보장을 규정하고 있다.

조승화 빈곤사회연대 활동가는 "흔히 말하는 주택재개발사업 등 공공개발사업도 법으로 명시한 세입자 주거대책의 내용이 지켜지지 않는다"며 "그런 점에서 민간개발사업과 공공개발사업이나 현실에서 세입자들이 겪게 되는 어려움은 별 차이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민간개발사업은 최소한의 세입자 권리보장 자체를 법적으로 부정하는 것"이라며 "지주나 개발업자들만이 이익을 보는 것이 아니라, 원 거주민들이 주거권을 보장받도록 근본적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인터뷰를 마칠 무렵 중학교에 다니는 김혜자 씨의 아들 김 모 군이 '집'으로 돌아왔다. 사진을 한 장 찍고 싶었지만, 김 군은 "창피하다"며 도망치 듯 '집'을 나섰다. 그러는 사이 구청의 주정차 단속 차량이 견인차를 이끌고 김 씨의 승합차량 앞에 나타났다.

지금껏 수차례 강제철거를 당해 온 김혜자 씨 가족은 이제 집이 '견인'되지 않기 위해 '투쟁'해야 하는 세 번째 겨울을 맞고 있다.

  구청의 주정차 단속차량이 김혜자 씨 가족의 '집'을 '견인'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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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거 , 재개발 , 고양시 , 세입자 , SK건설 , 대명건설 , 행신동 , SK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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