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형 시인의 <절정의 노래>

"어서 빨리 분단의 장벽 걷었으면"

1980년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재야 민주화 통일운동에 참여하였으며, 1989년 시집 『지리산』 필화사건으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받고 대법원에서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 확정 판결을 받았던 이기형 시인이 ‘절정의 노래’(들꽃발행/ 172면)라는 시집을 냈다.

정수남 소설가는 “이 시집을 통해서 지금까지 그 험한 가시밭길을 묵묵히 걸어오신 혁명가다운 선생의 발자국을 읽을 수 있었다는 것은 축복이 아닐 수 없었다. 바람처럼, 번개처럼, 산자락을 타고 다니며 포효하는 그가 우리 곁에 있기 때문에 우리는 오늘도 여전히 행복한 꿈을 꿀 수 있는 것이다”라고 시집을 소개했다.

그 역시 유신정권때 '분지(糞地)'로 필화를 겪었던 남정현 소설가는 “이기형 시인은 우리에게 고통을 가하는 조국 분단의 그 두터운 장벽을 어서 걷어냈으면 싶은 열망으로 늘 들떠있다. 때문에 그분은 백수를 눈앞에 두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시에 대한 열정과 그 믿음의 끈을 놓치않고 있다. 그 분은 언제나 현역이고 야심찬 신인이다”라고 시인의 열정을 소개했다.

송용구 문학평론가는 “‘돌아온 들에 봄은 왜 오지 않는가’라는 시 속에서 이기형은 정치와 경제의 대미(對美) 종속이 문화적 종속과 어떤 연관성이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총체적 외세종속의 구조가 자주통일을 가로막는 최대의 걸림돌임을 비판하는 것은 두 말할 필요조차 없다”고 해설하기도 했다.

시를 소개하는 이들의 말처럼 시인은 평생 혁명가 처럼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고 살았다. 이기형 시인은 1917년 함경남도 함주에서 태어나 함흥고보를 졸업하고 도쿄 일본대학 예술부 창작과에서 2년간 공부했다. 1947년 ‘민주조선’지에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인은 자신이 정신적 지도자로 모셔온 몽양 여운형 선생 서거 이후 33년간 일체의 공적인 사회 활동을 중단하고 칩거 생활을 했다. 이어 1980년 시인 신경림, 문학평론가 백낙청, 시인 이시영 등을 만나 분단 조국하에서 시를 쓰지 않겠다던 생각을 바꿔 다시 시작활동을 결심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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