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관총이 날아오는 곳을 향해 반격을 가해보려 하지만, 그들의 손에 쥐어진 것은 고작 낡은 소총 몇 자루와 돌멩이 뿐. 그렇게 기나긴 하루해가 저물어갈 무렵, 천막들 사이로 역한 기름 냄새와 함께 불길이 치솟아 오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내 사나운 소용돌이로 변한 불길은 열한 명의 아이들과 두 어머니들의 목숨을 집어 삼켜 버립니다.
방금 묘사한 이 사건은, 지금으로부터 약 백 여 년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1914년 4월 20일 미국 중부 콜로라도 주의 러들로우(Ludlow)라는 작은 탄광촌에서 발생한 일입니다. 당시 스탠더드 오일이라는 거대 석유회사의 소유주였던 록펠러가 자신이 운영하던 광산에서 약 천 이백여 명의 노동자와 그 가족들이 천막을 치고 몇 달 째 파업을 벌이자 주 방위군과 민병대를 동원해 무참히 파업 대오를 짓밟아버린 사건이지요.
그 비극의 발단은 광산 노동자들의 ‘터무니없는’ 요구에서 비롯됩니다. 1달러 68센트에 불과하던 일급을 20센트 올려줄 것과 그 일급을 회사 소유 상점에서만 쓸 수 있는 쿠폰이 아닌 현금으로 지급해 줄 것, 노동조합을 인정할 것, 그리고 회사가 노동법을 준수할 것 등이었지요. 그러나 ‘감히’ 그런 요구를 한 대가로 노동자들에게 돌아온 건, 불에 타거나 총에 맞은 파업 노동자들 여섯 명과 열세 명의 아이들과 여성들의 주검뿐이었습니다. 당대 프랑스의 정치 사상가였던 알렉시스 토크빌이 “민주주의의 꽃”이라며 감탄해마지 않았던 바로 그 미국에서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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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4년 농성장 앞에 선 러들로우 광산 노동자들 |
오늘날 미국에서도 이 ‘러들로우 학살’을 가르치는 학교는 그리 많지 않다고 합니다. 차마 아이들에게 가르치기에는 너무나 끔찍하고 부끄러운 역사여서 일까요, 아니면 세계에서 가장 산업화되고 힘센 나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그깟 가난뱅이 몇 명 죽은 게 무슨 대단한 일이라고 하는 심정에서 일까요. 아무튼 러들로우의 노동자와 그 가족들은 점차 역사 속에서 잊혀진 존재가 되었고, 그와 반대로 그 날의 학살을 지시했던 록펠러는 이른바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했던 대표적인 기업인으로 아직까지 많은 미국인들과 세계인들에게 기억되고 있습니다.
지난 8월 5일 아침, 중무장한 경찰 특공대원들이 평택의 쌍용자동차 공장 옥상을 장악하는 모습을 인터넷으로 지켜보면서 저는 러들로우 학살을 떠올렸습니다. 백여 년 전 그 날, 천막을 향해 방아쇠를 당기던 이름 모를 병사도 분명 어느 시골 순박한 대장장이나 농부의 아들이었을 터이듯, 백여 년의 세월이 흐른 대한민국의 평택에서 노동자들을 곤봉과 방패로 내리찍고 발길질을 해대던 그 특공대원도 역시나 평범한 어느 서민의 아들이겠지요.
또, 쌍용차 공장 앞에서 파업 노동자들과 연대하기 위해 달려온 시민들을 향해 욕설과 주먹을 휘두르던 사측 노동자들이 실은 몇 달 전까지 파업 노동자들과 같이 기계를 돌리고 밥을 먹고 족구를 하던 동료였듯이, 러들로우의 가난한 광부들의 파업을 깨기 위해 동원된 이들도 광부들만큼이나 가난하고 억압받던 이민자 출신 광부들이었다지요.
불현듯 두려움이 고개를 듭니다. 백여 년이라는 시간과 공간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세계 곳곳에서 변함없이 되풀이되는 이런 현실들을 지켜보며 과연 우리 아이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하고 말입니다. 그래, 약자들의 희생만 끊임없이 요구하고 똑같은 약자들끼리 서로 싸우게 만드는 이런 사회경제구조를 바꿔야 해 라고 생각할까요. 아니면, 저런 꼴 안 당하려면 나는 어떻게 해서든 돈 많고 힘 있는 사람이 되어야지 할까요.
아니, 보충수업에다 강제자율학습에 과외, 입시학원 쫓아다니기도 바쁜 아이들이 동시대에 벌어진 가슴 아픈 현실에 대해 관심을 가질 여유가 있기라도 한 걸까요. 그들에게 오늘 평택에서, 내일은 지구상 그 어딘가에서 또 다시 반복될 이런 모순과 억압이 바로 너희들 중 대다수가 미래에 똑같이 겪게 될 현실이라는 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오늘날 우리가 타고 있는 사회라는 배는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풍랑 속을 뚫고 힘겨운 항해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배에는 극소수의 부자들이 전망 좋고 널찍한 특등 선실을 차지하고서 매일같이 샴페인과 진수성찬을 차려놓고 파티를 벌이고 있습니다. 그러다 파도가 조금만 거세져 배가 심하게 흔들린다 싶으면 비좁은 2등실, 3등실에서 빵조각으로 겨우겨우 버티면서도 묵묵히 노를 젓던 사람들에게 배에서 뛰어내리라고 강요합니다. 하다못해 낡은 구명조끼 하나 주지 않은 채 말이지요.
더욱 답답한 노릇은, 누가 봐도 말도 안 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2등실, 3등실 사람들끼리 서로 바다로 뛰어내리라고 등을 떠밀고 있는 현실입니다. 그와 동시에, 모두들 자기 아이들만큼은 어떻게 해서든지 몇 장 안 되는 특등 선실 티켓을 차지하도록 남의 등을 떠밀고 혼자 살아남을 수 있는 법을 가르치는 게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한다는 겁니다.
그러나 배가 심하게 흔들리고 조금 가라앉았다고 그 때마다 사람들을 바다에 빠뜨려 무게를 줄이는 게 능사는 아닙니다. 끊임없이 누군가의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해서 겨우겨우 지탱하는 배가 어떻게 그 넓은 바다를 건널 수 있을까요. 언제 누가 나의 등을 떠밀지 몰라 불안해하며 서로 싸우느라 항로를 벗어난 배는 망망대해를 떠돌다 결국 가라앉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배에 탄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의외로 그리 복잡하지 않을 지도 모릅니다. 소수가 윗칸을 차지하고 아래 칸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음으로 해서 발생하는 기울임을 바로 잡는 것, 욕심 때문에 끌어안고 있던 불필요한 짐들을 먼저 바다로 던져버리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가 탄 배가 어떤 항로로 나아가야할 지 그 해답을 찾기 위해 지혜를 모으는 것이겠지요.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이 결국 점거 농성을 풀고 공장 문을 나선 지 며칠이 지났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공장 한 켠의 컨테이너에 커다랗게 써놓았던 문구는 아직 제 뇌리에서 쉽게 지워지지 않습니다. “꼭 죽여야 되겠는가. 살고 싶다. 가족들 사랑해.”
::글 _ 까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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