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데타라 부르지 못한다면 오바마인들 무슨 소용

한치 앞도 내다보기 힘든 혼돈 속의 온두라스 사태

오늘은 아주 쉬운 문제 하나로 글을 시작해보자. 이른 새벽, 한 무리의 군인들이 대통령 관저에 들이닥쳤다. 단잠에 빠져 있던 대통령과 영부인은 총부리를 겨눈 군인들에 이끌려 공항으로 끌려간다. 그리고 대기하고 있던 군용기가 그 둘을 태워 이웃나라에 떨어뜨려 놓는다. 두 사람은 잠옷 바람 그대로였다. 한편 그 날 오전, 텔레비전 뉴스에는 난데없이 국회의장이 등장해 여러분이 대통령으로 알고 있던 자가 감히 헌법을 위반하는 죄를 저질렀으니 이제부터 자신이 대통령직을 맡겠다고 선언한다. 자, 이 상황을 한 단어로 요약해보면? 1번 쿠데타, 2번 예외 없는 법질서 확립, 3번 대통령 휴가보내기 대작전.

이 문제의 답을 맞히기 위해 굳이 앞뒤 정황을 자세히 알 필요는 없다. 아무리 대통령이 헌법을 위반했다 하더라도 정당한 법 절차를 거치지 않고 새벽에 잠옷 바람으로 끌어내 외국으로 쫓아버리는 건 분명 납치요, 다른 누군가가 그 틈을 타서 역시나 아무런 절차도 없이 ‘이제부터 내가 대통령, 이상 끝’하고 선언해버리는 건 누가 봐도 쿠데타이기 때문이다.

하루아침에 망명객이 되어버린 대통령

이는 대략 석 달 전인 6월 28일, 중앙아메리카에 위치한 온두라스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이다. 아닌 밤중에 날벼락을 맞은 마누엘 셀라야 대통령은 그 날부터 코스타리카, 니카라과, 미국, 브라질 등 외국을 떠돌아다니며 자신의 귀국과 대통령직 복귀를 위한 지원을 호소하고 다니는 신세가 되었다. 역시나 자신들이 투표로 선출한 대통령의 얼굴을 하루아침에 외국 뉴스에서나 접하게 된 국민들은 그 날부터 거리로 쏟아져 나와 ‘셀라야, 대통령’을 외치기 시작했다. 교사, 트럭운전사, 공장 노동자들은 전국에서 무기한 파업을 시작했고, 농민들은 농사일을 접고 수도인 테구시갈파로 몰려들었으며, 학생들은 수업을 거부했다. 그와 동시에, 인근 국가들과 국제사회의 발걸음도 바빠졌다. 베네수엘라, 에콰도르, 브라질 등을 필두로 각국은 속속 자국 대사를 소환하고 온두라스 대사를 추방했으며, 경제제재 조치를 취하는 등으로 쿠데타 세력을 압박했다. 또한, 쿠데타가 발생한 지 이틀 만에 유엔 총회는 셀라야 대통령의 복귀를 요구하는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했으며, 아메리카 대륙의 35개 나라가 가입된 미주기구(OAS)도 7월 4일 온두라스의 회원국 자격을 정지시켰다. 특히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미국 정부가 쿠데타 직후에 보인 반응은 쿠데타 세력에게 있어 큰 충격을 주는 카운터펀치였다. 쿠데타 다음 날, 오바마 대통령이 “우리는 쿠데타가 불법이며, 셀라야 대통령이 여전히 온두라스의 대통령이라고 믿는다”라고 대놓고 선언한 것이다.

이 무렵만 해도, 쿠데타 세력이 오래지 않아 결국 꼬리를 내릴 거라 예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왜냐하면, 1973년의 칠레나 1991년과 2004년의 아이티, 2002년의 베네수엘라 등 그동안 라틴아메리카에서 좌파나 개혁성향의 정부를 상대로 일어났던 우파 군사쿠데타의 배후에는 어김없이 미국이 있었고, 그것은 바꿔 말해 미국이 등을 돌린 우파 쿠데타는 결국 불발로 그치게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었다.

법을 어긴 놈들이 되레 ‘법대로’를 외치는 나라

그러나 온두라스 군부와 우파 세력들의 맷집은 예상보다 강했다. 헌정질서를 문란케 한 것은 오히려 셀라야 대통령이었으며, 자신들의 행위는 법과 질서, 정의의 회복을 위한 구국의 결단이라고 우겼다(이는 한국 국민들에게도 아직 기억에 생생한 레퍼토리일 것이다). 그리고 군대와 경찰을 동원해 거리의 시민들을 싹쓸이하기 시작했다. 수천 명의 시민들이 재판도 없이 감옥에 갇혔고, 수십 명이 민병대원들의 테러와 군의 발포로 숨졌다. 보안군이 시위 여성들을 상대로 성폭행을 저질렀다는 국제인권단체들의 구체적인 보고도 흘러 나왔다. <라디오 글로보(Globo Radio)>와 <촐루삿 수르(Cholusat Sur)> TV를 비롯해 쿠데타에 비판적인 언론들에 대해서는 강제 폐쇄나 정간 조치를 내렸다. 그와 동시에 미국 정부와 의회에게는 민주당과 공화당 출신의 로비스트들과 기업인들을 고용해 ‘우리가 남이가’라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보냈다. 특히 쿠데타 세력이 고용한 로비스트 중에는 힐러리 클린턴 현 국무장관의 고문이었던 래니 데이비스도 포함되어 있었다. 한 편으로는 주먹, 다른 한 편으로는 이념과 돈, 인맥에 기대 분위기 반전을 시도한 것이다.

그러자, 다급해지기 시작한 쪽은 셀라야 대통령과 그 지지자들이었다. 비행기와 육로를 이용한 두 차례의 귀환 시도가 쿠데타 군의 저지로 실패로 돌아간 뒤, 셀라야 대통령은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오스카 아리아스 코스타리카 대통령의 중재로 마련된 이른바 ‘산 호세 협정’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사실 협정안은 문제의 해결이나 정의의 회복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말 그대로의 ‘타협안’이었다. 셀라야 대통령이 다시 온두라스로 돌아와 올 11월에 있을 대통령 선거 때까지 대통령직을 맡는 대신, 쿠데타에 연루된 군인과 기업인, 언론인들에 대해서는 어떠한 처벌도 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쿠데타 세력을 이끄는 로베트토 미첼레티 자칭 임시대통령은 그마저도 완강히 거부했다. 무조건 셀라야는 피의자 신분으로 돌아와 법적인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한 것이다. 방구 뀐 놈이 성낸다는 말이 이 경우에 딱 들어맞을 것이다.

미국, 그럼 그렇지

그러는 사이, 미국 정부가 서서히 ‘제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사태 초기, 분명하고 단호하게 온두라스 사태를 ‘쿠데타’라 칭함으로써 “역시 오바마는 부시와 달라”라는 평가를 받았던 오바마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관리들은 더 이상 그 단어를 입에 담지 않았다.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도 “온두라스 사태의 평화적 해결과 헌법 질서의 회복”을 촉구하면서도 그것이 셀라야 대통령의 복귀를 의미하느냐는 질문에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동시에, 셀라야 대통령의 복귀 시도를 “경솔한 짓”이라 몰아 붙였다.

이러한 미국의 태도 변화는 어쩌면 이미 예상된 것일지 모른다. 왜냐하면, 마누엘 셀라야 대통령이 쫓겨난 표면적인 이유는 그가 1982년에 만들어진 지금의 헌법을 개정하기 위한 시도(실제 절차에 착수한 것도 아니고, 헌법개정을 위한 국민투표를 벌이는 데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국민 여론조사를 실시하려고 했을 뿐이었다)를 했다는 것이었지만, 그 이면에는 셀라야 대통령이 그를 지지했던 기업인들과 부유층의 기대를 저버리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개혁정책을 폈다는 데 있기 때문이다. 그 자신이 부유한 대농장주의 아들로서 기득권 세력의 지지를 받았던 셀라야 대통령은, 그러나 대통령이 된 뒤로는 노동자들의 법정 최저임금을 하루 6달러에서 9달러 60센트로 60% 인상하고, 다국적기업과 대기업의 특권과 착취를 금지하는 한편 미국식 신자유주의 정책의 수정을 추진했으며, 여성들의 피임을 허용하는 등의 남녀평등 정책을 도입했다. 이는, 그렇지 않아도 좌파 개혁정권의 바람이 10년째 불고 있는 라틴 아메리카에서 미국의 영향력이 더욱 더 쪼그라드는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었기에 미국 정부와 보수 기독교계, 기업인들에게는 당혹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온두라스 쿠데타 세력의 주축을 이루는 군인들은 미국이 과거 라틴아메리카의 우파 군부 독재자들을 훈련시키고 양성했던 ‘스쿨 오브 아메리카’ 출신의 이른바 “워싱턴의 아이들”이 아니었던가.

현재 마누엘 셀라야 대통령과 그 부인은 온두라스 국내에 들어와 있다. 지난 9월 21일 지지자 네 명과 함께 몰래 국경을 넘어 자동차와 육로를 이용해 수도 테구시갈파의 브라질 대사관에 입성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그 직후, 수천 명의 시민들이 자신들의 대통령을 지키기 위해 대사관 주변을 에워싸기 시작했고, 군경은 최루탄과 총으로 시위대를 해산시키려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온두라스의 10월은 이렇게 긴장과 폭력으로 시작되었고, 온두라스의 민주주의는 갈림길에 서 있다. 그와 동시에, 미국 오바마 정부의 ‘정의와 국제사회의 합의에 기초한 스마트 외교’의 실체도 시험대에 올라 있다.

글 : 까밀로(경계를넘어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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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 , 온두라스 , 쿠데타 , 오바마 , 셀라야 , 미첼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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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qnseksrmrqhr

    쿠데타[coup dE'tat]:비합법적인 ...기습적인 정치행위. 민주여 자유여 평등이여 정의여 영원하라.

  • 그렇군요. 쿠데타가 발발했다는 기사는 접했지만 워낙 먼나라 얘기니 흘려들었는데 사정이 그렇게 돌아가고 있는 거군요. 후속 기사도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