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연맹 혁신의 화두는 '사회운동'

[연속기고](2) 민주노총 차기 지도부에 바란다

총연맹 선거가 이제 막바지에 이르렀다. 시작부터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한국의 노동운동가라면 총연맹을 중심으로 민주노조 운동을 지켜내야 한다는 대의에 이견이 있을 수는 없다. 민주노총은 여전히 노동자운동의 중심이자, 한국 민주주의를 지키는 첫 번째 파수꾼이다. 28일 대의원 대회가 중요한 이유다.

이번 총연맹 임원 선거의 핵심 쟁점은 “어떻게 민주노총을 혁신할 것인가”였다. 쌍용차 공장에 대한 공권력 투입, 전교조 공무원노조에 대한 노골적 탄압, 철도 발전과 같은 공공부문에서 자행되는 노조 와해 공작 등 정권은 하루가 멀다 하고 노조 말살 책동을 펴고 있지만 민주노총은 무기력하기만 하다. 앞으로도 몇 년간 계속될 이명박 정권의 반노조 정책을 생각할 때, 민주노총을 어떻게 혁신하느냐는 한국 민주노조운동의 생존 여부를 가를 것이다.

그러나 민주노총 혁신 관련 논의는 그것 자체가 혁신되어야 한다는 우스갯말이 있을 정도로 관성화 되어 있다. 새로운 집행부가 들어설 때마다 수많은 혁신위원회가 들어섰지만 소소한 직무 개편 외에 큰 변화는 없었다. 99년 혁신위에서는 총연맹 직선제 안을 만들기도 했지만 이마저도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공약’ 수준에서 맴돌고 있다.

이런 점에서 이제 민주노총 혁신과 관련한 논의는 지켜지지도 않을 공약 잔치가 아니라 어떠한 노동운동을 복원하겠다는 것인지 부터 다시 시작할 필요가 있다. 민주노총의 강화가 이런저런 총연맹 제도를 바꾸어 이뤄질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총연맹이 제도를 바꾸었다고 해도 조합원에 대해 가할 수 있는 제재는 고작 해야 조합원 자격 박탈이다. 국가의 제도가 공권력을 동반한 강제에 기초하고 있다면, 노동조합의 제도는 조합원들의 참여와 운동에 기초한다. 조합원들의 참여와 운동이 없는데 제도만 이러쿵 저러쿵 해봐야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총연맹 지도부가 조합원들에게 어떠한 운동을 어떻게 해나가자고 제안하고 조직해나가느냐일 수밖에 없다.

진보정당통합과 민주당 연대가 세력화? 노동조합을 노동자 학교로 만드는 것이 정치세력화!

민주노총 혁신과 강화의 첫 번째 쟁점은 정치세력화에 관련된 것일 것이다. 2008년 이후 민주노총 지도부는 진보정당 재통합을 강하게 추진해 왔고, 6.2 지방선거를 앞두고는 반MB민주연대 같은 선거연합 논의가 이야기 중이다. 지난 십여 년 간 민주노총 다수파를 이뤘던 세력은 특히 진보정당통합과 민주당까지를 포함한 반MB연대를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진보신당과 민주노동당 재통합이 무조건 필요하다는 식의 생각은 근거가 없어 보인다. 분당이 진보정당의 힘을 많이 빼놓은 것은 사실이지만, 이제 와서 두 당이 합친다고 시너지 효과가 있을 것 같지도 않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분당 사태의 원인이 여러 문제들은 전혀 해결되고 있지 못하다.

이제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진보신당/민주노동당의 통합이나 지방선거 국회의원 선거에서 후보 당락 문제가 아니다. 지난 20여 년 간 한국 노동운동의 신성불가침 전략이었던 산별노조-진보정당 건설 강화론 자체를 다시 생각해 볼 때가 되었다. 정열적으로 산별노조 건설 운동을 해온 금속노조는 몇 년째 조직 편제 문제, 비정규직 조직화 문제에서 정체되어 앞으로 나가고 있지 못하다. 6년째 산별중앙교섭을 진행했던 보건의료노조는 사용자단체 해산으로 2009년 중앙교섭이 끝내 무산되었다. 2004년 반짝 상승 이후에 5% 내외 지지율에서 머무는 진보정당의 한계는 더욱 명확하다. 민주노동당은 2012년에서, 2017년으로, 그리고 다시 2022년으로, 대통령 선거가 한 번 끝나면 5년씩 해 수를 더해 집권 전략을 발표하지만 대중적 웃음거리만 되고 있다.

그렇다면 산별-정당 전략은 왜 한계에 봉착했는가?

이는 이 운동을 추진했던 주체의 문제만은 아니다. 오히려 정세 문제가 더 크다. 서구의 산별노조-진보정당은 2차 대전 이후 세계 자본주의가 고속 성장을 하며, 이른바 자본주의 황금 시대에 안정화된 체계이다. 복지와 성장, 노사정협조와 노동권 증진, 노동당 집권과 교섭 안정화 등 산별노조-진보정당 운동은 이 시기에 별문제 없이 성장할 수 있었다. 하지만 1970년대 이후 상황은 변했다. 자본주의는 성장하지 못했고, 자본가들은 더는 노동조합과 적당히 타협할 수 없었다. 산별교섭은 지속적으로 분권화되었다. 산별노조와 노동당(사민당)은 정치적으로 멀어졌다. 한국 산별노조-진보정당 운동의 모델이기도 했던 독일 금속노조가 작년 총선에서 독일사민당에 대한 지지보다 오히려 메르켈 정부와 협조했던 것은 유럽에서조차 이 모델이 완전히 무너지고 있다는 상징적 사건이었다.

노동자운동의 목적은 노동자들의 자주적 단결을 통해 노동해방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산별-정당은 그 목적을 위한 수단 중 하나이다. 하지만 금과옥조로 여겨져 왔던 이 전략은 투기와 수탈의 시대인 21세기 자본주의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오히려 이 시대 노동자운동의 전략은 교섭과 정치진출의 제도적 방안을 찾는 것이 아니라 총연맹을 중심으로 정세적 투쟁 전선을 효과적으로 만들어 내고, 노조가 잃어버린 자신의 역할, 노동조합은 노동자의 학교라는 역할을 찾는 것이어야 한다. 몸으로 부대끼는 노동자들의 연대의식부터 왜 노동자가 단결해야 하는지에 관한 교육에 이르기까지 노동자가 노동해방에 관해 배울 수 있는 유일한 학교는 노조이다. 얼핏 너무 당연한 이야기라고 볼 수도 있다. 그렇지만 내 진지도 지키지 못하며, 으스대고 적과 싸워 온 것은 아닌지 오히려 되돌아 봐야 한다. 노동자 단결에 관심이 없는 조합원들을 상대로 산별노조와 진보정당을 세운들, 그것은 사상누각에 불과하다.

6.2 지방선거는 선거 공학보다 2010년 민주노조 사수, 노동기본권 쟁취 투쟁을 위한 긴 호흡 속에서 치러야 한다. 현존하는 진보정당들이 반목 대립하는 것보다는 함께 선거를 치르는 것이 보다 도움이 될 것이다. 지방선거이기는 하지만 지자체 수준에서 발굴할 수 있는 지역 최저 임금, 양질의 공공 일자리와 같은 노동 의제들이 이슈가 될 수 있다면 여러모로 투쟁 전선에 도움이 될 것이다. 단, 민주당과의 선거연합은 있을 수 없다. 이이제이도 내가 힘이 있을 때 쓸 수 있지, 잘 못 사용했다가는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꼴이 되기 십상이다. 더군다나 민주당과의 연대는 87년 이후 비판적 지지론에서부터 김대중-노무현 10년간 사회적합의주의에 이르기까지 지긋지긋하게 민주노조 운동을 갉아먹어 왔던 역사적 과오였다. 이제 벗어나야 한다. 현재와 상황이 비슷했던 1995년 지방 선거 경험을 떠올려보아도 그러하다. 당시 김영삼 정권의 한통노조 탄압이 거세게 몰아치는 가운데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민주노조 운동 진영은 약속했던 파업도 미루며 간접적으로 민주당 승리를 도왔으나 서울시 민주당 집행부는 약속했던 서울지하철 해고자 문제도 미뤘고, 선거 이후 정권의 노조탄압에도 침묵했었다. 1995년 민주당은 이겼으나 노조는 깨졌다.

페미니즘은 있으면 좋은 혁신의 액세서리가 아니라 사활을 걸어야 할 노동자단결의 핵심!

다음으로 민주노총 혁신의 쟁점은 단연코 페미니즘이다. 2009년 벌어진 민주노총 간부 성폭력 사건은 한 개인의 문제만이 아니었다. 사건 자체도 끔찍한 것이었지만 그 처리 과정에서 민주노총 임원들이 보인 행동과 내부 시스템 역시 형편없었다.

성폭력과 여성 차별적·배제적인 조직 문화는 여성들이 민주노총 운동의 주체가 되는 것을 가로막고, 민주노총의 페미니즘적 혁신을 지체시키는 심각한 문제다. 발생한 사건을 처리하는 것으로 갇히지 않는, 민주노총 조합원들의 여성에 대한 인식과 문화를 바꾸는 발본적인 여성운동을 시작해야 한다. 민주노총 내에 성폭력과 그 바탕에 놓인 여성 차별, 억압, 배제의 문제에 대한 인식을 확산하고 이를 바꿔야 한다는 합의를 만들어야 한다.

민주노총이 노동해방, 대안세계를 지향하는 이념을 확립하고 노동자 내부의 단결 강화라는 과제를 이루는 데 역시 페미니즘적 혁신은 필수적인 요소다. 가족 내 재생산 노동의 책임자이자 노동시장에서 저임금 노동력으로서 여성에 대한 이중적 착취를 종식하고 동시에 여성억압을 구조화한 가족관계와 남녀 관계를 변혁하는 것은 자본주의를 넘어 대안세계로 나아가는 데 필수적이다. 따라서 민주노총이 노동자계급의 완전한 해방을 향한 투쟁의 구심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여성해방의 이념을 받아들여야 한다.

분리직군, 무기계약, 사회서비스 일자리, 유연근무제도 등 최근 여성들의 일자리를 둘러싼 다양한 조치들은 노동 신축화 경향을 가속시키기 위한 정권과 자본의 공세다. 그 일차적 대상은 가장 조직이 안 되어 있고 힘이 없는 여성노동자들이지만, 결국 전체 노동자가 대상이다. 비정규직 확대, 임금과 노동조건에서의 노동자 집단 간 격차의 확대라는 조건에서 민주노총은 노동신축화에 맞서고 노동자 내부의 단결을 강화해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이런 점에서 민주노총이 여성들을 유연한 저임금 노동에 고착시키는 여러 정책과 제도에 대응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비정규직 노동자는 피상적 조직화 대상이 아니라 노동자 단결을 위한 핵심 주체

비정규직 문제는 전 세계적으로 21세기 노동운동의 중요한 관심사 중 하나이다. 그런데 비정규직 문제는 몇몇 제도를 개선하는 수준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에 곤란함이 있다. 기술 혁신을 멈춘 자본주의가 택한 이윤 증대의 방법은 노동을 극단적 수준까지 유연하게 만들어 내는 것이었다. 그리고 자본가들은 이 이윤을 자본 축적을 통한 생산성의 증대가 아니라 금융적 투기로 이용하였다. 노동자들의 바닥을 향한 경쟁과 자본가들의 금융투기 놀음판이 병존하는 아수라장이 바로 현재 자본주의다. 비정규직 문제는 차별이라는 도덕적 문제 이상이며, 21세기 자본주의를 유지해주는 핵심이다.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전망 없이 비정규직 문제를 몇 가지 제도를 수정하는 것으로 가두는 것은 미봉책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비정규직 문제는 노동해방 세상을 만드는 문제와 직결되는 만큼 비정규직 노동자의 처우 개선이 아니라 노동자의 단결력 회복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세상을 뒤엎을 힘, 자본주의에 위협이 되는 운동 없이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은 공상에 불과하다. 단결을 높여내는 전술은 다양할 수 있다. 금속노조와 같은 1사 1조직 운동에서부터, 지역일반노조운동, 비정규직 노조의 민주노총 내 대표성 강화, 비정규직 조직화 사업에 대한 재정 인력 집중 등 여러 가지다. 단, 정규직 노조 운동, 비정규직 노조 운동 식의 구별은 양자 모두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은 지적해두자. 목표는 단결이지 구별짓기가 아니다. 어차피 단결하지 못하면 양자 모두 패배할 수밖에 없다.

총연맹의 비정규직 사업은 전략조직화로 대표되는 비정규직 조합원 확보 사업만이 아니라 비정규직 노동자를 대표하여 싸울 수 있는 투쟁을 만들어야 한다. 대표적으로는 최저임금투쟁이 있다. 민주노총이 임금 문제와 관련하여 전노동자를 대표하여 정부와 교섭할 수 있는 핵심적 투쟁이다. 작년에 국민 임투로 까지 부르며 의미부여를 했지만 정작 투쟁은 별로 없었다. 최임위 개선 방향부터 총연맹이 전력을 투자하고, 국민적 관심을 촉발해야 한다.

총연맹 혁신의 화두, “사회운동”

위에서 민주노총 혁신의 과제 중 당면 정세의 쟁점이라 할 수 있는 정치세력화, 페미니즘,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에 대해서는 수많은 이야기가 있었고, 여러 혁신의 시도들도 있었다. 이 짧은 글에서 그 모든 이야기와 사례들을 검토할 수는 없었다. 본 글에서 주장한 것은 어떻게 보면 너무나 간단한 이야기이다. 다종다기한 복잡한 문제들을 처리함에 있어 원칙은 바로 ‘사회운동’이라는 것이다.

사회운동은 대중들이 주체가 되어, 체제를 넘어서기 위한 행동을, 자주적 조직을 통해 하는 것이다. 노동자정치세력화를 논함에 있어 산별-정당이라는 고정된 모델에 대중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체제의 모순에 맞서는 대중들의 운동에 조직을 맞추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조직 내 성평등을 논함에 있어 몇 가지 규약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여성들이 주체로 민주노총 운동을 할 수 있는 조직 내외적 준비를 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비정규직 문제를 논함에 있어 민주노총의 정당성 확보를 위한 조직화의 모델이 아니라, 자본주의를 넘어 노동해방 세상을 만들기 위한 노동자 단결의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의미이다.

1월 28일 대의원 대회가 이제 코 앞이다. 대의원들의 현명한 선택이 올바른 지도부를, 그리고 그 지도부를 중심으로 일치단결된 투쟁을 만들어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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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목록
  • 신새벽

    노조운동의 ABC도 모르고 떠들지 말아라.

  • 황혼녘부엉이

    ABC를 모를수는 있어도 틀린 말은 없는 듯.

  • 심야행

    훌륭한 글입니다.

  • 노동자

    페미니즘을 말하고 있는데.. 무슨 페미니즘인지 내용이 없네.
    페미니즘 종류가 얼마나 많은지 모르진 않을텐데..
    글을 분명하게 써야 하지 않을른지
    bg페미, 급진페미, 자유페미, 사회페미, 맑스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