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승 눈에는 인간이 보이지 않는다

삼성이 사라져야 우리가 산다

얼마나 더 죽여야 할까. 국가는 천안함 사고로 수십 명을 바다 속에 생매장시키고 자본은 노동자들이고 어민이고 모두 죽이고 있다. 게다가 국가와 자본은 짬짜미 하며 자연을 죽이고 있다. 대체 얼마나 사람을 더 죽여야 속이 풀린단 말인가. 지난 해 초 용산 4구역 멀쩡한 시민들을 국가가 나서서 죽이고 삼성 자본은 태안앞바다에서 굴양식 하던 이모 씨를 자살에 이르게 하는가 하면, 삼성반도체 노동자 중 22명이 백혈병에 걸려 그 중 9명이 숨졌다. 암으로 죽은 노동자까지 합치면 몇 명인지도 모른다.

국가와 자본이 서슴없이 사람을 죽이고도 유유 자작하는 세상. 이런 세상은 사람들이 사는 세상이 아니라 짐승들이 사는 세상이다. 이제는 그것도 모자라 국가와 자본이 한 통속이 되어 4대강을 죽이고 있다. 언제까지 우리는 노동자 농민 어민 시민들의 ‘사회적 죽음’을 애통해 하며 위령제만 올려야 한다는 말인가.

삼성 해체를 주장하니 삼성 가문 일가와 가신그룹을 삼성 전체와 엮어 싸잡아 비판하지 말자고 한다. 그러나 삼성 일가의 영달을 위해 사람들을 이렇게 수도 없이 죽이고도 버젓이 경영 일선에 복귀해 ‘주인은 나다’라는 깃발을 꽂겠다는 파렴치한 태도에 삼성 해체라는 격분이 절로 나올 수밖에 없다. 얼마 되지 않은 돈으로 200조 이상의 자산 가치를 가진 삼성을 먹은 그 돈이 순환 출자 등으로 이미 삼성 전체를 굴비 엮듯이 엮어 놓았는데 삼성 전체와 삼성 일가를 분리해 삼성 일가와 그 가신 그룹만 비판하자니, 이게 말이 되는 소린가.

삼성 해체가 먼저 이루어져야 삼성 일가가 삼성을 넝쿨처럼 엮어 놓은 그 더러운 돈이 소멸되고 그래야 삼성 일가가 해체될 것 아닌가. 삼성 전체가 의도적인 공범은 아닐지라도 삼성 일가가 삼성 전체에 부어 놓은 먹물로부터 아무도 자유로울 수 없다. 기업이 정상성을 회복하고 국가가 정의를 회복하면 문제가 해결된다는 순진무구한 발상을 할 수 있는가. 국가와 자본은 시혜는 베풀지언정 자신들의 속은 절대 내놓지 않는다. 그것도 호경기에는 뭔가를 베푸는 척 하지만 불경기에는 모든 것을 거두어들인다. 최근 모든 일자리 빗장 문을 꼭꼭 잠근 재벌들의 행태를 보라.

딱히 삼성 불매 운동 외에 묘안이 떠오르지 않아 답답할 뿐이지 삼성은 사라져야 한다. 그래야 최소한 노동자들이 백혈병으로 각종 암으로 죽어나가지 않는다. 삼성 중공업의 행태에 격노한 어민이 자살을 선택하지 않는다. 그러나 삼성도 얼마 남지 않았다. 모델을 추격해 1등 신화를 만들었던 삼성에게도 선택지가 얼마 남지 않았다. 미국은 그린자본주의로 선두권을 확보했고 GNR 혁명을 앞질러 나가고 있다. 제조업만으로 삼성이 살아남을 길은 끊겼다. 이참에 삼성의 목줄을 더 쥐어야 한다. 삼성 제품 불매 운동이 그 답이다.

삼성이 유전자혁명(G)을 주도하겠는가, 나노 혁명(N)을 주도하겠는가, 아니면 로봇 혁명(R)을 주도하겠는가. 유비쿼터스 혁명을 삼성이 미국, 일본과 나란히 어깨를 걸고 주도해 나가겠는가. 삼성 전체가 일명 ‘실’로 통하는 구조본의 지시대로 움직이는 삼성에게는 세계 산업 전체를 혁신시킬 능력이 없다. 이미 산업은 미, 일 주도로 혁신되고 있다. 이건희 일가와 그 가신 그룹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애초에 초법적인 굴비전략으로 쌍아 놓은 금고 관리뿐이다. 그 막대한 지분 유지 하려고 경영 일선에 복귀한 것 아닌가.

백혈병으로 노동자들을 죽이고도 돈벌레로 생명 부지하려는 삼성이 기업의 정상성을 회복한다는 것은 기대 난망이다. 온갖 회유와 협박, 발뺌으로 일관하는 삼성에게 산재 요구가 먹혀 들 리 없다. 이건희 회장을 단독 사면시켜 준 이명박 정권은 4대강 사업에서 재벌들에게 돈을 몰아주고 있다. ‘국가가 나한테 해 준 게 뭐가 있냐’만이 아니다. ‘자본은 노동자에게 무엇을 해 주었느냐’ 말이다.

노동력에 대한 보답이 아직도 논쟁 중인 사안이라니. 지금 생산요소 따지는 경제학 이야기를 하자는 것도 아니고 노동가치설 이야기하자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삼성 해체 구호 앞에서 쌩뚱 맞은 경제학 이야기를 할 때가 아니다. 자본주의 하에서이니 자본이 노동을 생산 요소로 생각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그런 주장을 하기 이전에, 자본이 노동에 적절한 보상을 해주면 되는 것 아니냐는 교과서적인 이야기를 하기 전에, 삼성의 실체를 제대로 보고 이야기했으면 한다. 그렇다면 그러한 자본(주의)를 넘어설 생각은 왜 추호도 하지 않는가.

그리고 삼성은 제발 사람이나 죽이지 마라. 인지과학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사람은 자기와 비슷하게 생긴 생명체의 죽음에는 슬픔을 느끼지만 그렇지 않은 생명체의 죽음에는 무감각하다고 한다. 삼성이 그렇다. 삼성의 눈에는 각종 암과 백혈병으로 죽어나가는 노동자들이, 울화통이 터져 자살한 어민이 인간으로 보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삼성은 인간들의 집단이 아니라 짐승들의 소굴이기 때문이다. 그런 짐승들에게 인간이 자기와 유사한 생명체로 보일 수는 없는 것이다.

개나리를 뜯어도 뭐라 하는 세상에서 사람들을 이렇게 죽이다니. 언제나 짐승들의 소굴에서 벗어날까. 삼성은 박지연을 산재 보상하라, 아니면 살려 내라! 그리고 제발 사람 좀 그만 잡아라! 난 노동자이기 이전에 너희들이 인지할 수 없는 인간이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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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 백혈병 , 박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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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반한나라당투쟁행동조장

    자본중심의 사회를 까부셔뜨려버리자!
    노동자,어민,농민,평범한 화목가정을 파괴하는 자본분자인간들의 모가지를 모조리 따 버리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