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침체된 부동산 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해 8.29 부동산 대책을 내놓았다. 강남3구를 제외한 비투기지역에서 총부채상환비율(DTI)을 한시적으로 폐지하고 보금자리주택 공급계획을 조정하는 `실수요 주택거래 정상화와 서민ㆍ중산층 주거안정 지원 방안`을 29일 발표했다.
이번 대책의 핵심은 DTI 적용을 사실상 폐지하고 금융회사 자율에 맡긴 점이다. 무주택자나 1가구 1주택자가 서울 강남3구를 제외한 비투기지역에서 9억원 이하 주택을 구입하는 경우 DTI 적용을 받지 않고 주택담보인정비율(LTV) 한도에서 대출 규모를 금융회사가 정하게 했다.
또, 보금자리주택 사전예약과 민영주택 공급물량도 조정했다. 오는 10월 3차지구 사전예약 물량을 80%에서 50% 이하로 줄이고, 4차지구 사전예약 물량과 시기는 상황에 따라 조정하기로 했다. 대신 보금자리주택지구 내 민영주택은 공급비율이 현행 25%보다 높아지고 85㎡ 이하를 짓는 것도 허용된다.
부동산 관련 세제 지원도 강화했다. 연말에 종료되는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세 유예제도를 2년 연장해 2012년 말까지 일반세율(6~35%)이 적용된다. 주택 취득ㆍ등록세 50% 감면 시한도 2011년까지 1년 연장될 예정이다.
저소득층의 주택담보대출 애로 해소를 위해 현재 5천만원까지의 대출금액에 대해 소득증빙을 면제하는 것을 1억원까지 확대하는 방안이 포함되었다.
4.23 대책을 보완한 8.29 대책
이번 8.29 대책은 전체적으로 건설사 미분양 대책에 중점을 둔 지난 4.23대책의 연장선에서 이를 보완했다는 지적이다.
지난 4.23 대책은 핵심적으로 정부와 민간이 미분양 아파트 4만호에 대해서 정부가 2만1천호를 직접 매입하고 나머지 2만호는 미분양 펀드와 세제감면, 건설사 자구노력 등으로 충당한다는 조치를 담고 있었다. 또한, 입주예정자의 기존 주택(6억원, 85㎡이하)을 매입할 경우에 한해 DTI 특례를 인정하는 등 DTI 일부 규제를 완화했다.
8.29 대책은 정부의 4.23 대책에도 불구하고 LH공사의 부채 누적에 따른 부실화 우려, 부동산 시장의 장기침체로 미분양 아파트 해소가 원활히 진행되지 못하고, 일부 건설사 퇴출 및 구조조정 등의 계획에도 불구하고 건설사 위기가 지속되고 있다는 점에 있다.
따라서 이번 대책은 건설사의 주장을 대폭 수용하여 DTI 규제를 사실상 철폐했으며, 미분양 아파트의 책임을 보금자리 주택에 묻고 이를 축소시키는데 중점을 두었다.
“분양가 상한제가 폐지되지 않아서 유감”?
정부는 미분양 아파트 문제가 민영 건설사의 높은 분양가 때문이라는 비판에는 눈을 감고 상대적으로 분양가가 싼 보금자리 주택 때문이라는 건설사의 주장을 받아 들였다. 심지어 일각에서는 이번 대책에 “분양가 상한제가 폐지되지 않아서 유감”이라는 목소리까지 나올 정도다. 때문에 정부의 8.29 부동산 대책이 건설사 대책이라는 비판에 직면하고 있다.
미분양 아파트 4만호 대책에도 불구하고 지방의 미분양 아파트는 크게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오히려 최근에는 수도권 미분양 아파트가 다시 증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보금자리 주택공급을 점진적으로 축소하고 사전예약제를 무력화하는 조치와 함께 보금자리 아파트에 민영 아파트 공급 비율을 늘려 건설사 지원방안을 대폭 확대했다.
여기에 지난 대책에도 일부 포함되었던 채권담보부증권(CBO)의 발행 규모를 더 늘였다. 4.23 대책에서 1조원 규모의 CBO를 3조원 규모로 발행해 건설사에 대한 유동성 지원을 확대해 주기로 하였다. 다만 업종편중에 따른 위험을 완화하기 위해 비건설업을 50% 포함키로 했다.
또, 미분양 주택 매입 조건도 완화했다. 대한주택보증의 환매조건부 매입대상은 공정률 50%에서 30% 이상으로 완화하고, 업체별 매입한도도 1500억에서 2000억원으로 높였다.
주거안정은 뒷전, 주택가격 안정화가 목표
정부는 이번 대책에서 실수요 주택거래 정상화에 목표를 두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현재 금융기관의 가계대출 규모는 740조원 이고, 이 중 주택담보대출은 50%에 가까운 342조 원에 달한다. 이런 상화에서 DTI가 폐지된다고 해도 주택을 구입하기 위해 누가 무리하게 대출을 받을 것인가 하는 의문이 있다.
서민 주거안정이라는 말이 무색하게도 이번 대책은 소득 분위 3,4분위 이상의 고소득 중산층에 목표를 두고 있다는 사실이다.
가계부채 비율이 지나치게 높고 경제위기인 상황에서도 DTI규제를 완화하고 강부자 논란까지 일었던 다주택 소유자의 양도세 중과세를 폐지를 2년 간 더 유예하는 등 부동산 세제지원 혜택을 연장키로 한 것도 중산층의 주택거래 활성화가 이번 대책의 목표임을 나타낸다.
정은보 금융위원회 금융정책국장은 8.29 대책 설명에서 “연소득이 5000만원 수준인 중산층을 기준으로 한다면 6억원 주택을 살 경우 현재보다 대출을 1000만원 더 받을 수 있다. 7억원 주택에 대해선 2000만원, 8억원 주택은 1억1000만원, 9억원 주택은 1억6000만원의 증가효과가 있다”고 밝혔다.
DTI 규제 완화로 중산층이 더 비싼 주택을 사도록 더 많은 대출을 해주겠다는 설명이다.
DTI 완화, 저소득층에는 독
문제는 가처분 소득대비 부채비율이 낮은 중산층 이상의 가계에 대해서는 DTI규제 완화가 크게 문제되지 않을 수 있지만 저소득층에는 DTI규제가 ‘독’이 될 것이라는 점이다.
금융연구원은 지난 27일 연구보고서를 내고 금리 상승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당국이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를 완화하면 저소득층의 살림이 나빠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금융연구원은 “소득이 적은 1분위(연소득 1,180만원 이하) 계층의 주택 소유자 가운데 총부채가 소득의 3배를 넘는 가구의 비중이 절반에 이른다”고 지적했다. 부채에서 자산을 뺀 순부채도 1분위는 가처분 소득의 5배에 이르지만, 4분위는 1.6배, 5분위는 1.5배로 고소득층에 비해 저소득층의 부채 구조가 상대적으로 더 취약하다고 밝혔다.
연구원은 보고서를 통해 “DTI 규제 완화는 저소득층이 빚을 더 늘리게 해 가계수지를 악화시키는 부작용이 있으므로 바람직하지 않다”며 “DTI 완화 대신 부채 구조조정이나 서민금융 활성화 등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이한구 한나라당 국회의원은 30일 <열린 세상, 오늘>과의 인터뷰에서 “소득을 5분위로 구분을 해서 사람들을 구분해보면 맨 밑 계층에 있는 사람들 중에 주택 소유한 사람들이 DTI 비율이 이미 한도를 찼다”며 가처분 소득 대비 부채 비율이 3배에 이르러 더 이상 추가적인 대출이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출구전략 어쩌고...금리 더 오르면?
부동산 시장에 대한 정책당국의 목표는 서민 주거안정이 아니다. 정부의 정책목표는 건설사의 미분양 아파트를 조속히 처리하고, 여기에 추락하는 부동산 가격을 완만히 끌어올리기 위해 부동산 시장 거래 활성화를 도모하는 것이다.
그러나 8.29 대책에도 불구하고 이런 정책목표의 달성은 매우 어려워 보인다. 주택가격이 하락하고 있고 자산 디플레의 우려도 상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출이 된다하더라도 선뜻 부동산 구매에 나설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다.
정부는 지난달 9일 기준금리를 0.25%인상했다. 그럼에도 확장적 기조를 유지한다고 발표했지만 시중 유동성을 축소시키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한국은 2008년 경제위기 이후 OECD 국가 중에서 공적자금을 가장 많이 투여한 국가다. 언젠가는 금리를 올려야 한다는 얘기다.
금융연구원은 앞선 보고서에서 “소득이 적은 1분위 계층의 주택 소유자 가운데 총부채가 소득의 3배를 넘는 가구의 비중이 절반에 이른다”며 “금리가 2%포인트 오르면 저소득층에서, 3%포인트 오르면 고소득층에서도 적자 가구 비중이 커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번 정부대책은 재정부채 증가를 우려해서 정부의 자금투여가 많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대신 가계와 은행에 많은 부담을 지우고 있다. 결국 DTI 철폐로 가계대출이 증가하면 경기가 상승되지 않는 한 고스란히 그 부담은 가계가 떠안아야 할 형국이다. 가계가 부실해지면 바로 은행 부실로 연결된다.
정부의 이번 대책이 폭풍우가 몰아치는 벼랑 끝에 줄을 묶고 타는 위험한 줄타기와 같아 보이는 것은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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