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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노총은 8일 오전 서울 정동 민주노총 앞에서 87년 6월 의문사 이후 23년만에 민주화 운동으로 인정 받은 ‘노동해방열사 정경식 동지 전국노동자장’을 치렀다. 유골이 발견 된 지 23년 만에 장례를 치르는 열사의 어머니는 영결식 내내 눈물을 흘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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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년 동안 내내 울었을 김을선 어머니는 아들의 장례식장에서도 끝없이 눈물을 쏟아냈다. 조사를 듣다가도 눈물이 쏟아졌고, 조가가 울려퍼지는 데도 눈물이 흘렀다. 영결식장에 모인 노동자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할 때도 눈물은 멈추질 않았다. 국화꽃을 든 노동자들의 손이 아들의 영정 앞에 다다를 때도 눈물은 계속 쏟아졌다. “마지막 가는 길 꽃이라도 많이 놓아주시오”라며 눈물을 훔치며 외친 어머니 목소리엔 한이 담겼다. 어머니는 “23년만에 고향에 가서 장례식을 하게 돼서 너무 고맙고 감사하다”고 노동자들에게 말을 전했다.
민주노총은 8일 오전 서울 정동 민주노총 앞에서 87년 6월 의문사 이후 23년만에 민주화 운동으로 인정 받은 ‘노동해방열사 정경식 동지 전국노동자장’을 치렀다.
민주노조 건설 과정 의문사, 실종 9개월 만에 유골로 돌아 온 아들
타살 흔적 곳곳에 보였지만 경찰 자살로 결론
23년 만에 장례를 치룬 정경식 열사는 1984년 5월 9일 경남 창원시 소재 대우중공업 창원공장에 입사하여 2공장 대형가공조에서 선반공으로 근무했다. 그는 86년 5월께 작업 도중 오른쪽 팔이 드릴에 말려들어가는 산재사고로 인해 창원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다 같은 회사 노동조합 활동가 김효영을 알게 된다. 그 후 그는 민주노조 활동에 적극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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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죽음은 87년 노동자 대투쟁의 연장선에 있었다. 민주노조 운동이 한창이던 87년 5월 대우중공업도 민주노조 운동의 열망이 타올랐다. 대우중공업 노동조합 대의원선거와 지부장선거에서 정경식은 민주노조를 지향하는 후보의 당선을 위해 활동하던 중 87년 5월 28일 저녁 회사 쪽 후보를 지지하던 이동석과 시비가 붙는 폭행사건이 발생했다. 그리고 열사는 87년 6월 8일 오전 9시께 폭행사건의 합의를 위해 이동석을 만난다며 회사에서 외출한 후 실종되었다. 실종 후 8개월 만에 정경식 열사는 싸늘한 유골로 발견 된다. 이듬해 3월 2일 경남 창원시 소재 불모산에서 발생한 산불을 진화하던 중 유골로 발견된 것이다. 이렇게 발견 된 정경식 열사의 죽음을 두고 경찰은 자살로 결론 지었다.
그러나 당시 유족과 노동자들은 당시 열사의 시신이 밤나무 가지에 목을 맨 것으로 위장이 되어 있었으나 여러 가지 풀리지 않는 의문점이 많았다고 주장했다. 목을 맨 밤나무 가지가 열사의 체중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점을 문제 제기 하자 나중에 그 가지는 누군가에 의해서 잘려졌다. 산불에 옷가지가 탔는데도 비닐로 만들어진 회사출입증은 멀쩡했다. 이는 발견 당시 유골만 남아 있어 정경식임을 확인키 위해 의도적으로 산불을 내고 출입증은 멀쩡한 것 아니냐는 의문으로 남았다. 87년엔 쉘마라는 강력한 대형 태풍이 지나갔는데도 들고 나간 우산이 유골 옆에 꼿꼿이 서있다는 점도 의문이었다. 이런 여러 가지 의혹들을 제기했지만 경찰과 검찰은 자살로 내사 종결을 했다.
2002년 6월 8일 의문사위원회에서 김을선 어머니 발언
…… 오늘이 6월8일 경식이의 기일(忌日)입니다. 제가 오늘 민주열사 합동추모제에 참석하기 위해서 어젯밤에 마산역에서 밤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오면서 “서울에 있는 경식이를 보러 올라오면 얼마나 좋겠노”하는 생각이 간절했습니다. 그동안 제가 십 여 년 동안 생선가게를 하면서 우리 자식 경식이와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의문사한 다른 아버지, 어머니들의 자식들 의문사 진상규명을 위해서 수 십 차례 상경을 하였는데, 진동에서 생선 장사를 하면서도 몸은 서울에 있는 것과 마찬가지였습니다.
…… 저의 생각은 우리 경식이 사건 뿐만아니라 다른 의문사 사건을 해결하려면 많은 힘이 있어야하는데, 강제로 조사를 할 수도 없고, 거짓말을 해도 어떻게 방도가 없으니 답답할 뿐입니다. …… 무엇보다도 저는 이제라도 우리 경식이를 해친 사람이 양심선언을 한다면 죽은 경식이가 살아오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만 된다면 경식이의 영혼도 위로해주고, 편안하게 장례도 치러줬으면 하는 것이 가장 큰 바람입니다.
경식이를 해친 사람이 나타나기만 하면 저는 그 사람을 처벌하기 보다는 이제는 그 사람하고도 화해하고 싶고, 모든 것을 용서해 주고 싶습니다. 저의 바람은 하루속히 모든 진상규명이 이루어져서 경식이가 편안하게 눈을 감고 쉴 수 있었으면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경식이를 사랑하는 이 어미의 마지막 소원입니다.
10여년이 지나서 소위 민주화가 됐다는 시대의 의문사위원회나 진실화해위원회도 진상을 끝내 규명하지 못했다. 두 기관은 유골이 발견된 토양에 사체 부패 이후 발생하는 변화상이 발견되지 않았고, 목을 매었다는 끈에서 혈흔반응이 없었다는 점 등을 확인해 타살이라는 결론을 냈다. 그러나 열사의 실종 당일 이동석의 행적이 확인되지 않았고, 노조 지부장선거 및 이동석과의 폭행사건 등에 회사와 기관이 개입하였는지 여부를 확인하지 못했다. 유골발견현장 정황으로 볼 때 사체가 유기되었을 가능성은 있으나 사체가 유기된 추가증거를 확보하지 못해 ‘진상규명불능’으로 결정한 것이다.
그리고 지난 8월 23일 민주화운동보상심의위원회는 ‘정경식을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사망했다는 것은 인정했지만 입을 다문 권력과 자본이 저질렀을 것으로 의심되는 진상을 규명하지 못했고 범인도 찾아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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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시대는 당신을 죽인 그 권력을 처벌하지 않고 있다“
이날 전국민주노동자장에 참가한 김영훈 민주노총 위원장은 조사를 통해 “그날 산불이 아니었다면 권력과 자본은 끝끝내 당신의 실종을 모른다 했겠지요. 권력은 ‘너 하나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이는 건 일도 아니라’며 살인에도 뻔뻔했는데 아직도 시대는 그 권력을 제대로 처벌하지 않고 있다”고 비통해 했다. 김 위원장은 “정경식 열사는 민주화운동, 노동운동의 주인입니다. 앞서간 당신의 길, 산자들이 따르겠습니다. 수많은 당신이 죽어 살려낸 민주노동운동을 반드시 산자들의 손으로 지켜낼 것”이라고 다짐했다.
박유기 금속노조 위원장도 “수 십년이 지났지만 지금 노동현실은 당시와 별반 다르지 않다”며 “차별과 억압속이 비적규직 노동자들, 금속노조만 아니라면 다 들어주겠다는 각종 회유와 협박까지, 그럼에도 ‘노동해방’이란 최종목표를 잊은 채 타협과 이기심으로 살아왔던 것은 아닌지 반성한다”고 밝혔다.
대우중공업 노조 위원장을 지냈던 전재환 민주노총 인천본부장은 “우리는 23년이라는 기나긴 시간동안 열사를 우리 곁에 묶어 두었습니다. 이젠 죄송한 마음 담아 그대를 보냅니다”라며 “우리는 열사가 왜 죽었는지 아직도 우리는 잘 모릅니다. 누가 죽였는지 우리는 알고 있지만 말 못하는 벙어리 들입니다. 진실을 알기위해 87년 당신의 사진을 들고 내 아들을 찾아달라는 어머니는 우리의 스승입니다. 열사의 뜻 따라 남겨진 산자의 길을 가겠습니다”고 마지막 길을 위로했다.
이날 전국노동자장은 민주노총 앞 영결식을 마치고 오후 3시 열사의 고향인 경남 창원 마산합포구 진동면 진동리에서 노제를 지낸다. 열사의 유골은 오후 현장 퇴근시간에 맞춰 두산 DST후문을 들러 경남 양산 솔밭산 열사묘역에 묻힌다.
정경식 열사 실종에서 장례까지의 진행경과
1987. 5. 26. 민주후보 김효영을 지지하면서 대의원에 당선된 홍근식과 배성현이 회사측 후보인 서석교에게 투표하여 민주파의 선거패배. 이후 김효영 후보측에서 회사의 선거개입 여부를 확인하고 재선거를 요구하기 위해 활동
1987. 5. 28. 정경식, 당시 민주파 활동가 이춘일, 김종민 등과 함께 홍근식을 만나는 과정에서 이동석과의 폭행사건 발생
1987. 5. 29. 이동석, 정경식을 창원경찰서에 고소, 폭행사건을 계기로 민주파의 선거자금을 비롯해 뿌리를 뽑겠다며 합의 거부
1987. 5.-6. 민주파 김효영 후보 등이 이동석을 만나 폭행사건 합의를 시도하였으나 실패
1987. 6. 8. 대우중공업 2공장 특생부에서 근무하던 중, 이동석을 만나러 간다며 외출한 뒤 실종
1987. 6. 정경식 실종 직후, 동네 주민들과 회사 항의방문
대통령, 내무장관, 검찰총장, 치안본부장, 도경국장, 창원경찰서장 등 각계에 진정서, 탄원서 접수
1988. 2. 14. ‘대우중공업 정경식실종사건 진상규명대책위원회(위원장 김석좌 신부)’ 구성, 진상규명 활동
1988. 2. 5. 민통련, 정경식 행불사건 관련 기자회견
1988. 2. 7. 평민당, 정경식 사건관련 조사위원회 구성 발표
1988. 2. 10. 평민당 조사위원회, 대우중공업 창원공장 방문 현지조사 활동
1988. 3. 2. 창원 불모산에서 산불 발생, 정경식 유골 발견
1988. 3. 5. 정경식진상규명대책위, 성명발표(변사사건의 의문점)
1988. 3. 16. 정경식진상규명대책위, 기자회견(자살 아니다)
1988. 3. 19. 정경식진상규명대책위, 은폐조작 폭로대회 개최
1988. 5. 15. MBC-TV 인간시대「내 아들 경식아」 전국방영
1988. 5. 19. 창원병원 영안실에 안치되어 있던 정경식의 유골 인도
1988. 6. 16. 통일민주당 조사위원회, 대우중공업 창원공장 현지조사 활동
1988. 8. 19. 마산지검 최광태 검사, 정경식사건 ‘자살’로 사건종결 발표
1988. 12. 8. 회사측, 유가협과 어머니를 업무방해 등으로 고소제기(마산지검)
1989. 4. 26. MBC-TV 「의문사, 자살인가 타살인가」 전국방영
1989. 7. 26. 어머니, 회사 측의 고소로 마산교도소에 구속, 수감
1999. -2000. 어머니, 의문사법 제정을 위해 여의도 국회 앞에서 천막농성
2000. 12.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진정 접수
2002. 9. 16. 1기 의문사위원회, ‘진상규명 불능’ 결정
2004. 6. 24. 2기 의문사위원회, ‘진상규명 불능’ 결정
2004. 12. 31. 의문사위원회 기관 폐지
2005. 12. 1. 진실화해위원회 출범
2006. 3. 14. 진실화해위원회 신청 접수
2010. 6. 30. 진실화해위원회, ‘진실규명불능’ 결정
2010. 7. 19. 민주화운동보상심의위원회, 관련자분과위 전원일치 ‘인정’ 의결
2010. 8. 23. 민주화운동보상심의위원회, 「민주화운동관련자」로 ‘인정’ 결정









![[영상] 현대기아차비정규직 농성..](http://www.newscham.net/data/coolmedia/0/KakaoTalk_20180411_120413041_copy.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