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억울한 범죄, 민주노조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4) 서울일반노조 한화개발분회

절도죄에 있어 억울한 이의 대명사는 빵 하나를 훔친 죄로 19년 동안 감옥살이를 한 장발장(소설 <레미제라블>의 주인공)일 것이다. 작년, 우연히 인터넷 기사에서 억울하기가 장발장 못지않은 인물을 보았다. 자신이 만든 간장 한 병을 훔쳤다는 혐의를 받고 경찰에 고발당한 사람이었다.

2009년 6월18일 한화그룹 호텔앤드리조트 소속 조리사 박율봉 씨는 자신의 근무지인 연세대 동문회관 연회장에서 연행되었다. 절도죄 혐의였다. 같은 업장 주방장이 그를 고소한 것이다. 고소 내용은 간장 900ml를 훔쳤다는 것이다. 주방장은 박율봉 씨의 개인 사물함에 있던 간장을 증거로 내밀었다.

요리사가 뭐 하러 간장을 훔쳤단 말인가? 수백 년 묵은 명품 간장이기라도 했단 말인가? 사건을 담당한 형사마저 헛웃음을 쳤다.

박율봉씨의 주장은 이러했다. 그가 훔쳤다는 간장은 육회 소스를 만들기 위한 테스트용 소스였다. 유통기한을 알아보기 위해 일부러 숙성시킨 간장을 주방에 둘 수 없어 자신의 사물함에 넣어둔 것이다. 이미 주방장에게 보고한 일이며 ‘테스트용’이라는 서식도 붙여 놓았다고 했다.

그러나 주방장은 모르쇠로 일관했다. 회사 노무팀 직원까지 경찰서로 찾아와 ‘강력하고 빠른 집행을 해달라’고 요구했다. 참 웃긴 일도 있다 싶었는데, 박율봉 씨의 또 다른 직함을 보니 냄새가 났다.

그는 서울일반노조 한화개발분회 조합원이었다.

민주노조 인정 싸움만 7년

한화개발분회 노동조합(이하 분회)은 2004년에 만들어졌다. 7년 역사를 가진 노동조합이지만 조합원 수는 겨우 다섯이다. 회사와 맺은 단체협약도 하나 없다. 노동조합의 탄생부터 싸움의 시작이었다.

한화개발 외식사업부의 주 수익원이었던 새마을 무궁화 열차의 식당 사업이 2004년 고속열차 KTX 개통을 앞두고 축소되었다. 경영위기를 이유로 열차 식당에서 근무하던 직원 대부분이 명예퇴직을 요구받았다. 명예퇴직은 3차례에 거쳐 진행되고 외식사업부 300여 명 중 절반이 회사를 그만두었다. 그 자리에 계약직과 아르바이트생이 들어왔다. 기존의 노사협의회로는 정리해고의 위협을 막아낼 수 없다는 생각이 젊은 직원들 사이에 퍼졌다. 명예퇴직을 거부한다는 이유로 이대정 씨가 홀로 정리해고된 사건을 계기로 노동조합이 만들어지게 된다.

그러나 회사는 이미 한화개발 소속 프라자호텔에 노동조합이 있다며 분회를 인정하지 않았다.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정리해고를 정당화시키기 위해서 한화개발에는 프라자호텔 노조만 있을 뿐, 외식사업부 노조는 없다고 주장하던 회사였다. 회사는 있지도 않은 프라자호텔 노조 외식사업부 분회를 내세워 이대정 씨와 젊은 직원들이 만든 민주노조를 인정하지 않는다. 한편으로는 직원들에게 회사가 만든 유령 노조에 가입할 것을 종용했다.

당시 어떤 노조에도 가입하지 않았던 박율봉 씨는 회사의 태도에 부당함을 느꼈다.

“노동조합이라는 것이 노사협의회보다 큰 집이라고 생각했는데, 집에 들어가는 데 그 집에 방이 몇 개인지, 보일러는 들어오는지, 몇 평인지 아무 것도 이야기 해주지 않은 거랑 같았어요. 그래서 당신네들이 계약서에 싸인만 하라 그러는데 나는 못 하겠다고 했죠.”

그는 분회에 가입했다. 민주노조에 가입을 한 데는 이전부터 지닌 회사에 지니고 있던 불만 또한 이유가 되었다.

“하루 26시간을 근무해도 수고했다고 한 마디 하고는 수당도 뭐도 없는 거예요. 전당대회 같은 행사 도시락을 주문받으면 1만개를 싸야 해요. 재료 준비하는 데만 하루가 넘게 걸리는 거예요. 이상하다. 원래 근무는 8시간인데. 타임펀치기가 있지만 우리는 출근만 찍고 퇴근할 땐 안 찍어요. 방침이 그래요. 근무시간도 불규칙해서 어느 때는 내일 근무시간을 오늘 알려줘요. 쉬는 날인 비번도 일주일에 하루가 딱 정해져 있어야 하는데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어느 때는 열흘 씩 보름 씩 쉬는 날 하나 없이 근무하다가 일이 한가해지면 열흘 씩 보름씩 쉬는 거예요. 너무 잘 못 된 거죠.”

그러나 노동조합에 가입한 후, 시련의 나날이었다. 노동조합을 인정받기 위한 법정 투쟁이 꼬박 4년 동안 이어졌다. 생전 요리 밖에 모르던 중년 사내들이 빨간 노동조합 조끼를 입고 길바닥에 주저앉아 집회도 했다.

싸움이 힘든 게 아니었다. 조합원들에게는 일상적인 근무가 고통이었다. 늘 감시와 회유가 따라다녔다. 하루에 열 시간 넘게 있는 회사에서 마음 한번 놓을 수 없었다. 이 과정에서 28명이었던 조합원은 5명으로 줄었다.

또한 회사는 분회 조합원들에게 혹독한 인사평가로 응징을 했다.

“저 같은 경우 퍼스트(부주방장 바로 아래 직책)만 12년이에요. 보통 3,4년이면 승진이 되요. 제 후배들이 다 주방장이죠. 분회장님도 동기들은 다 과장이지만 자신만 부주방장이에요. 얼마 전에 막내가 입사를 했는데 주방장 타이틀이 없으니까 저를 형이라고 불러요. 나랑 스무 살 넘게 차이가 나요. 걔는 16살이야. 우리 애는 22살인데. 너는 나한테 아빠라고 불러. 농담으로 그랬어요. 그럴 때, 호칭이나 이런 거.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아요. 회사에 승진에서 탈락한 이유를 물으면 네 상사가 점수를 안 줬다. 평가가 안 좋았다 라는 말이 돌아와요. 평가 항목을 달라, 내가 부족하다면 채우겠다 라고 하면, 회사에서는 고유권한이다 못 보여 준다 그래요. 분회 가입을 하게 되면 진급은 못한다고 봐야죠.”

회사는 분회에 가입한 이들을 눈엣가시처럼 여겼다. 그리고 사건이 터졌다. 바로 ‘간장 사건’이었다. 사건이 있은 직후 박율봉 씨는 1달간 대기발령을 받았다. 서소문 본사 한 평 짜리 유리벽 안에서였다.

“요만해요. 테이블 하나 놓고. 첫날 갔더니 바깥에 붙은 문구가 ‘접근 금지’더라고요.”

그가 항의하자 다음날은 문구가 바뀌었다. ‘관계자외 출입 금지’

징계가 서러운 게 아니었다. 증거 불충분으로 사건은 무마되었지만 그때 회사가 보여주었던 배신과 냉대는 가슴에 깊이 남았다.

“그 일이 있고 우리 애를 데리고 회사에 간 적이 있었어요. 월급 명세서를 받으러 간 거였는데, 아무도 아는 척을 하지 않는 거예요. 저는 밥도 혼자 먹었어요. 나 하고 같이 밥 먹다가 날 고발한 친구(주방장)한테 혼나고. 이건 너무 한 거 아니냐? 제가 그때만 해도 서열 2위에요. 아무도 인사를 안 해. 그래서 후배한테 얘길 했어요. 딴 거 모르겠고 하루에 두 번, 갈 때 올 때 내가 먼저 인사할 테니 받아만 줘라. 그랬더니 그제야 죄송합니다, 위에서 말도 하지 말라고 해서요 그러더라고요.”

그것만이 아니었다. 종종 박율봉 씨의 집에 찾아와 술 한 잔 하던 회사 동료가 경찰서로 찾아와 그를‘강력하고 빠르게’처벌해 줄 것을 요청했다.

박율봉 씨는 한 달 동안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했다. 가만 있어도 분노가 치밀었다. 요리를 위해 들고 있는 칼이 무서웠다. 사람을 찌를 것만 같았다. 병원에 가니 초기 우울증이라고 했다. 이야기를 하던 도중 그는 울컥 감정을 드러냈다.

“온 길을 후회하는 건 아니고요. 내가 좀 답답해요. 내가 왜 이렇게 살까. 내가 그렇게 잘못된 걸까.”

독수리 8형제

노동조합을 만들었을 뿐이다. 법에도 보장된 노동자의 단결권이 왜 이리 쉽게 무시당하는 걸까. 그는 민주노총에서 나온 노동법 책만 4번을 보았다고 했다. 그래도 그는 남아 있는 5명의 조합원만 믿고 있다며, 자신들을 ‘독수리 5형제’라 칭했다.

그리고 9월14일, 한화개발분회는 독수리 8형제가 되어 연세대 동문회관 정문에서 집회를 가졌다. 조합원 3명이 새로 가입한 것이다. 새 조합원들을 소개하자 우렁찬 박수가 터져나왔다.

  지난 9월14일 연세대 동문회관 앞에서 열린 서울일반노조 한화개발분회 집회.

그러나 8개월 만에 이 자리를 다시 찾은 조합원들의 표정이 씁쓸했다. 2009년 매주 집회를 하자 연세대 동문회관이 주요 수익원인 회사는 성실교섭을 할 테니 재계약까지만 집회를 자제해 달라고 분회에 요청했다. 2008년 4월 중앙노동위원회로부터 교섭을 성실히 이행하라는 판결을 받아냈지만, 회사는 교섭 자리만 지킬 뿐 불성실한 태도를 보이고 있던 때였다. 노동조합은 마지막으로 회사를 믿기로 했다. 그 사이 교섭 횟수만 늘어 70회를 넘어섰다. 재계약이 성사되자 한화개발은 다시 이전의 태도로 돌아왔다. 단체교섭은 하지만 단체협약은 할 수 없다는 법을 농간하는 말만 돌아왔다.

회사의 배신에 맞서 다시 싸움을 시작하기로 한 첫날이었다. 분회장은 발언에 앞서 “웃음 밖에 안 나온다”며 착잡한 심정을 전했다.

이날 사회를 본 박율봉 씨는 스스로에게 다짐을 하듯 외쳤다.

“7년 전 싸움을 시작했던 그 마음으로 다시 싸우자.”

조합원이 살아가는 이유

간장 사건이 있은 후, 수원중소기업지원센터 연회장으로 발령받았던 박율봉 씨는 현재 다시 서울로 올라와 본사 개발팀에서 근무하고 있다. 회사 생활은 여전하다.

“발령 받고 수원으로 갔는데, 토요일 일요일에는 연회가 있으니까 많이 바빠요. 그런데 저는 토, 일 쉬었어요. 근무를 안 시키더라고요. 조합원들은 오바타임 수당을 챙겨주어야 하니까요. 제일 바쁠 때 일을 해줘야 한다는 생각에 제가 나가겠다고 하니까 업장이 ‘너는 원래 T/O에 없던 사람이니까 그냥 쉬어라’ 하는 거예요. 제가 필요 없는 사람이라는 것처럼 들리죠.”

그에게 물었다.

“개인적으로 노동조합에서 무얼 바꾸었으면 좋겠어요?”

“일주일에 하루 정도는 고정적으로 비번을 두게 하고 싶어요.”

쉬는 날을 정해두고 쉬는 것. 너무나 당연한 요구다. 노동조합은 막무가내로 부림을 당하지는 않겠다는 최후의 보루일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노동조합이 그 존재를 인정받기 위한 투쟁만 7년째다.

그만두고 싶은 적이 참 많았을 것 같다고 묻자 그는 “인간인데 당연하죠.” 그런다. 그럼에도 조합원으로 살아가는 이유를 간략하게 말한다.

“아닌 거는, 객관적으로 봐서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해야 바뀐다고 생각해요. 뒤에서 아니라고 말만 하면 그건 불만이에요. 앞에서 대놓고 아니라고 말하면 그건 바꿔야 하는 것이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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