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사 아닌 ‘타살’ 가능성 제기됐지만…
사건 직후 실족사라고 발표했던 인천남동경찰서는 5일 국립과학수사연수원으로부터 김씨가 둔기로 머리를 수차례 맞아 과다 출혈로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는 부검 결과를 4일 통보 받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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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과수는 살해 가능성을 제기했지만 열여덟 시간이나 방치된 그의 죽음 뒤엔 집배원들의 열악한 노동환경도 있었다. 타살 가능성이 알려지기 전, 장례식장을 찾은 집배원들은 ‘살인적인 노동 강도’가 김씨를 죽음으로 몰았을 거라 한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그 속에서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는 자신들의 삶을 이야기했다.
집배원 노동자들 조문 줄이어...“남 일 같지 않다”
4일 장례식장은 많은 사람들의 발길로 붐볐다. 홀어머니를 모시고 성실하게 살아왔던 고인의 안타까운 죽음이 다수의 언론을 통해 전해지며 간간이 정치인들이 빈소를 찾았지만 대부분의 조문객은 고인의 얼굴도, 이름도 잘 모르는 타 우체국 집배원들이었다. 그들은 불콰하게 취한 얼굴로 “가슴이 너무 아프다”고 말했다. “우리도 언제 그렇게 될지 모르는, 똑같은 고통을 겪고 있다. 그래서 여기 올 수밖에 없었다.”
14~15시간, 집배원들의 하루 평균 노동시간이다. 보통 새벽 7시부터 일과가 시작돼 밤 9시, 10시까지 일한다. 단독주택 자리에 아파트나 오피스텔이 들어서 세대수가 증가하고, 등기와 택배가 늘면서 일의 양도 폭발적으로 늘었다.
본래 택배는 위탁업체에서 배달해야 하지만, 수익성을 생각하는 우체국은 비용 문제 때문에 위탁 직원보다 수수료를 주지 않아도 되는 집배원들을 활용하려 든다. 때문에 택배 물량이 늘수록 집배원들에게 할당되는 택배 양도 같이 늘어난다. 작은 오토바이에 20kg 쌀이니 과일상자 등이 한정 없이 얹어진다. 집배원들은 아파트의 경우 꼭대기 층까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계단으로 한 층 한 층 내려오며 배달하는데, 택배와 우편물이 눈높이까지 쌓인 상태면 계단이 보이지 않는다.
배달 물량이 많은 날은 밤 12시, 새벽 1시까지도 돌린다. 토요일 근무도 다반사다. 배달해야 하는 우편물이 항상 있으니 쉴 수도 없다. 어쩌다 급한 일이 생기거나 심지어 몸이 아파도 마찬가지다. 회사에서는 필요하면 연가를 쓰라고 하지만 내가 빠지면 대체인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내 일을 동료들이 해야 하는데 그랬다가는 이미 노동의 한계치에 도달해있는 동료들에게 ‘역적’이 되기 십상이다. 다음 주 아들을 군대에 보낸다는 한 집배원은 “입대하는 날 아이를 춘천까지 데려다 줘야 하는데 지금 눈치만 보고 있다. 하필 또 화요일이다”라고 말을 꺼냈다. 화요일은 일주일 중에서도 택배가 많은 날이란다.
하루 14시간 노동으로 다리에 경련이 오고 허리가 끊어질 것 같아도 참아야 한다. 심지어 사고가 나면 집배원 책임이다. 사고는 우체국 ‘경영평가’에서 감점요인이기 때문이다. 경영평가에서 더 좋은 순위를 얻어 실적을 내려는 관리자들은 노동자들의 안전과 건강에는 관심이 없다.
비정규직 집배원, 개인적 또는 사회적 타살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집배원들의 이런 근로조건은 다르지 않다. 하지만 집배원들은 “그래도 비정규직이라 더 힘들었을 것”이라고 하나같이 말한다. 정규직이 되려면 관리자로부터 성실하다는 평가를 받아야 하는 만큼 할당된 물량을 소화하기 위해 “아파도 아프다 소리 못하고 악으로 깡으로 버틴다”는 것.
김씨 역시 정규직이 되려는 준비를 하고 있었다. 평소 자기 이야기를 잘 안하는 김씨이지만 이번 설에 가족들을 만났을 때는 정규직이 되기 위해 컴퓨터 자격증이나 면접을 준비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내비췄다. 그리고 누구보다 성실하게 일했다. 가족들은 그가 새벽 6시도 되기 전에 집을 나서 밤 12시가 돼서야 들어오는 날이 많았다고 말했다. 휴일도 없었다. 고인의 동생은 “어쩌다 휴일에 연락해서 뭐 하냐 물으면 일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자주 했다. 바쁘니까 너도 와서 도우라고 하더라”고 말했다.
김씨는 그렇게 비정규직 3년을 꽉 채워 일했다. 하지만 그와 같은 남인천우체국에서 일했던 집배원들은 그가 정규직이 되려면 최소 2~3년은 더 걸렸을 것이라고 말한다. “집배원 노동환경이 이렇게 열악해도 증원은커녕 더 줄이려고만 하는 추세라 채용 인원이 많지 않다. 1년에 4~5명을 채 안 뽑는다. 우리 남인천우체국 집배원 190명 중에 50명이 비정규직인데, 대개는 연차가 오래된 순서로 정규직이 된다. 이 친구 위로도 한 15명쯤 있었으니까 장담은 못하지만 정규직 되기까지 2~3년 이상은 걸렸을 거다.” 인천 계양우체국에서 4년 만에 정규직이 됐다는 집배원이 덧붙였다. “그렇게 정규직이 되도 사실 변하는 건 별로 없다. 전에는 아파도 아프다는 말 못했는데 이제 아프다는 말 할 수 있게 된다는 정도밖에는.”
“가족들과 저녁 좀 먹게 해주십쇼.”
남궁민 우정사업본부장이 장례식장에 들어서자 여기저기서 집배원들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남 본부장은 이 자리에서 인력 충원을 약속했다. 이날 집배원들은 밤새 술잔을 기울이며 자신들을 향한 언론의 집중과 정치인들의 애도가 ‘한 편의 쇼’가 아니길 간절히 바랐다.
그로부터 하루 뒤인 5일 오전, 경찰은 타살 가능성을 제기했다. 어쩌면 이 사건은 누군가에 의한 고의적인 살인으로 결론날 수도 있다. 하지만 집배원들의 살인적 노동 현실이 변하지 않는 한 비극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고인이 된 집배원이 ‘비정규직’이라는 사실과, 집배원들의 열악한 노동조건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여기, 이 죽음 위로 개인적 타살과 사회적 타살이 교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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