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에 시를 걸어 자본의 암흑을 깬다

백기완 선생 벽시 운동 전개, “진보적 감성으로 세상을 채울 것”


1998년 6월 통일문제연구소 채원희 간사는 옥살이를 하고 있었다. 그는 통일문제연구소에 출근을 하기로 했지만 연구소에 오기로 한 첫날 출근도 전에 국가보안법으로 잡혀갔다. 그런 그에게 백기완 선생(통일문제연구소 소장)은 ‘한 발자욱만 더’라는 시를 편지로 보냈다.

한 발자욱만 더 (백기완)

한 발자욱만 더
한 발자욱만 더
밀어내 보다가 죽어도 죽자

한 발자욱이 안 되면
단 한치
단 한치만이라도 더
밀어내 보다가 쓰러져도 쓰러지자

아, 어이타 이놈의 세상은
밀어낼수록 캄캄한 수렁

하지만 여기서 주저앉는다는 건
패배보다 더 끔찍한 타락이라

밤이사 칭칭 드세지만
한 발자욱만 더
한 발자욱만 더



이 시는 백기완 선생이 98년 6월 서울 혜화동 통일문제 연구소 대문에 처음 내건 시다. 채원희 간사는 “선생님께선 연구소에 혼자 계시면서 이 시를 처음으로 벽시운동을 시작했지만 경찰의 탄압과 누군가 시에 가래침을 밷는 등 무관심으로 2006년에 그만 두셨다”며 이 시를 읊었다. 벽시는 벽화처럼 벽에 쓴 시다.

첫 시를 걸었던 날과 끝낸 날을 백기완 선생도 생생히 기억했다. 백기완 선생은 “98년 6월에 우리 연구소가 문을 닫게 생겼어. 그래서 내가 여기다 벽시를 걸었어. 야이 개새끼들아 이렇게 외치고 싶지만 그러면 점잖지 못하다고 해서 시를 걸었어. 그러다 자꾸 가래침을 뱉고 빨갱이라고 자꾸 칠판을 괴롭혀서 뜯어 팽개쳤어”라고 지난 벽시운동 과정을 설명했다.

그렇게 중단됐던 벽시 운동이 2010년 3월 16일 다시 시작됐다. 노나메기재단 설립추진위원회(준)는 통일문제연구소 앞에서 백기완 선생과 함께 '벽시 걸기 행사'를 열고 다시 벽시를 걸었다. 첫 시는 시인이자 국어교사였던 전 이수호 민주노총 위원장이 썼다.


다시 벽 앞에서(이수호)

슬픔이더냐
네게 기대어 한없이 울리라
그리움이더냐
너를 부등켜안고 담쟁이처럼 기어오르리라
아픔이더냐
너를 뚫어 문을 내리라
절망이더냐
너를 허물어 길을 만들리라


벽시 운동은 공동체의 아픔에 조응해 함께 깊이 앓는 문학이 보이지 않고, 더불어 살아가는 이들의 절규에 답하는 연대의 문학이 보이지 않는 시대에 문학이 가진 본래의 사회성에 주목하고 참여와 연대의 정신을 바로 세우겠다는 취지다. 시뿐 아니라 벽에 그림도 그리면서 방방곡곡을 진보적인 감수성으로 채워 세상을 바꿔 나가자는 문화예술운동이다.

백기완 선생은 “자본주의 문명은 ‘막패’문명이다. ‘막패’라는 말은 암흑이라는 말이다. 암흑은 앞을 빼앗겼다는 말”이라며 “‘막패’를 뒤 집어 엎으려면 변혁적인 몸부림이 있어야 하는데 그 가운데 예술이 앞장섰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늘 했다. 그런데 요즘 우리가 만나고 부대끼는 예술은 스스로 타는 빛이 없다. ‘막패’를 갈라내는 소리도 없다. 우리 문학에 그게 없다. 그래서 벽시, 벽화운동이 일어나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고 벽시 운동의 의미를 설명했다.

백 선생은 “옛날에 글깨나 하는 사람은 시를 썼다. 글을 못하는 사람은 시를 중얼거리지 못했느냐 아니야, 바위에 그림을 그리고 담에 그림을 그리고 모래밭에 시를 쓰고 그림을 그렸다. 이게 민중문화의 핵심이다. 벽시와 벽화운동은 하나다. ‘막패’의 자본주의 문명을 갈라 치는 소리를 적어놓고 그림을 그리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세균 노나메기 재단 설립 추진위 상임대표는 “노나메기 운동의 시작은 벽시 운동”이라며 “지금은 조그맣게 시작하지만 방방곡곡의 동네 문화가 되고 벽화운동이 되어 변혁세력의 힘과 진보적 감성의 세계로 자리 잡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심경림 시인은 “현실과 동떨어진 시를 써야만 평가받는 것이 평가를 현대시의 풍조”라며 “감동은 현실에 깊이 뿌리박아야 하는데 벽시가 바로잡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당부햇다. 또 “시인은 그 시대 언어의 정수고 국어에 대한 책임을 진다. 오늘의 시는 이 시대의 우리말을 담당한다는 생각이 전혀 없고 오히려 훼손하고 있다. 그런 언어를 바로잡았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벽시 운동은 백기완 선생의 통일문제연구소 작은 벽으로부터 시작해 비정규직, 철거민, 농민 등 민중의 처절한 생존권 투쟁 현장으로 찾아가고 인터넷 벽시 운동으로도 나아갈 계획이다. 매주 1회 벽시를 게재하고 4월부터 본격적인 대중적인 벽시운동을 전개해 나간다. 올해 말께는 벽시 모음집을 출간하고 현장문학제도 기획하고 있다.

벽시 편집동인은 이수호 전 민주노총 위원장, 도종환 시인, 이학영 YMCA무총장, 시인이기도 한 한도숙 전 전농 의장, 송경동 시인, 임동확 시인 등이 참가하고 있다. 이날 벽시행사엔 민중 미술가인 임옥상 화백과 신학철 화백도 참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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