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보다 노동계와 정치권 일각에선 이미 한국노총이 타임오프와 복수노조 2개 의제 중심으로 협상 마지노선을 비공개로 여야 정치권에 전달했다는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이럴 경우 민주노총이 그 동안 강하게 요구한 나머지 6개 의제는 뒤로 밀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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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5일 양대노총 좌담회가 끝나고 김영훈 민주노총 위원장(왼쪽)과 이용득 한국노총 위원장이 담소를 나누고 있다. |
한국노총은 여야 정치권에 전임자 문제와 복수노조 문제를 놓고 노조법 개정을 위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환노위 위원장, 여야 간사, 양대 노총, 경영계 2, 노동부, 노사정위가 참여하는 9자 특별위원회 구성을 요구한 상황이다. 이렇게 특위가 구성되고 협상이 진행 되면 양대노총이 공식적으로 주장해온 노조법 전면 재개정이 아닌 ‘근로시간면제심의위원회’에서 타임오프 한도를 일부 조정하거나 복수노조 추가 유예 등의 현실 타협안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노총의 한 관계자는 이런 가능성에 대해 “한국노총이 이중플레이를 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한국노총 생리상 노조법 재개정 협상의 마지노선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인정 한다”며 “한국노총은 협상에 들어가면 어떤 협상안을 가져갈 것인가 고민할 수밖에 없다”고 우회적으로 밝혔다. 이 관계자는 “한국노총이 이번 좌담회 과정을 통해 민주노총의 더 깊은 고민을 이해하게 됐다”고도 덧붙였다.
민주노총 관계자도 “우리도 한국노총에 그런 흐름이 있다는 사실을 어느 정도 파악했고 민주노총 내부에서도 한국노총과 입장이 다른 지점이 있지 않느냐는 내부 논란도 있다”며 “한국노총이 다른 마지노선을 가지고 있다면 민주노총이 난감하게 된 것은 사실”이라고 밝혔다.
지난 3월 28일 민주노총이 야5당과 함께 지난해부터 논의해 온 노조법 개정 8개 의제 일괄 발의 기자회견이 민주당의 ‘급한 현안부터 처리하자’는 입장과 충돌하면서 4.27 재보궐선거 이후로 미뤄진바 있다.
민주노총이 요구한 노조법 8개 의제 개정안의 주요내용은 △타임오프 폐지 및 전임자 임금지급 노사자율 △복수노조 도입에 따른 자율교섭 보장 △산별교섭 법제화 △노조설립 절차 개선(노동자 개념 확장) △단체협약 일방해지권 제한 △사용자 개념 확장 △노조활동에 대한 손배가압류 제한 △필수유지업무 폐지 등이다.
4.27 재보선 앞두고 민주당-민주노총 갈등표출
애초 민주당은 ‘민주노총-야5당 노동대책회의’ 시작 때부터 민주노총이 요구한 8개 개정 의제에 대해 떨떠름한 태도를 보여 왔다. 홍영표 민주당 의원은 대책회의에서 “국민 정서를 고려해, 일단 시급한 전임자 임금지급과 복수노조 두 개 현안에 대해서만 우선 대응하자”는 입장을 강력히 주장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민주당의 ‘전임자문제와 복수노조 2개 의제 우선 처리’ 입장과 진보양당의 ‘8개 의제 일괄 처리’ 입장이 충돌하며 애초 3월28일로 예정됐던 노조법 전면 재개정안 입법발의 기자회견이 당일 오전에 취소됐다. 이후 노동대책회의는 한 달이 지났지만 이 쟁점에 갇혀 이렇다 할 진전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4.27 재보선을 앞두고 민주노총 강원본부가 ‘민주당-민주노동당 후보단일화 거부 기자회견’을 열고, 운수노조가 전북버스파업 해결을 촉구하며 분당 상경투쟁을 결의하자, 민주당이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민주당은 민주노총에 ‘이런 상황에서 노조법 재개정 공동 입법발의가 가능하겠느냐’며 두 사태에 대해 격렬히 항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홍영표 의원이 김영훈 민주노총 위원장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강하게 항의 표시를 했다는 후문이다. 이런 민주당의 태도를 놓고 민주노총의 다른 관계자는 “민주당이 ‘노조법 재개정’을 볼모로 삼아 민주노총을 대하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민주노총이 ‘8개 노조법 의제 일괄 입법발의’를 강력히 주장하고 있는 이유는 이 의제들이 선후를 가릴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한 노동현안과 긴밀히 연관돼 있기 때문이다.
김영훈 위원장, “8개 의제 발의 늦추더라도 진정성 가지고”
김영훈 위원장은 25일 양노총 좌담회에서 양대노총 공동투쟁이 조직 이기주의로 오인 받을 가능성이 있지 않느냐는 질문에 대해 “민주노총은 특수고용 노동자 문제나 손해배상 청구 문제, 일방 단협해지 문제 등 여러 가지 나머지 현안들을 가지고 8개 법안을 동시에 발의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는데 민주당이 2개만 먼저 했으면 좋겠다는 입장이 있어서 저는 그렇게는 못하겠다 했다”며 “선후 차이의 문제를 따지더라도 정규직의 문제도 중요하지만 특수고용노동자들의 문제도 대단히 중요하다. 같이 싸워나가야 한다는 입장들을 계속 견지해 나가고 그래서 발의를 늦추더라도 진정성을 갖고 해나갈 것”이라고 강하게 밝힌 바 있다.
김영훈 위원장이 강조한 대로 민주노총은 다른 의제인 산별교섭 법제화와 필수유지업무 폐지를 놓고는 ‘복수노조’ 문제와 함께 논의되지 않을 경우 자칫 민주노총 내부의 분열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복수노조-교섭창구 단일화 강제방안에 따라 가장 위협받게 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산별교섭’이기 때문이다.
또 필수유지업무 폐지는 ‘복수노조 자율교섭’이 ‘파업권 보장’과 짝을 이루지 않는 경우 아무런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는 점에서 공공부문 노동자들에게는 사활을 걸어야 할 문제다.
노동자성 확대 문제는 특수고용 노동자의 노동기본권 쟁취의 측면에서, 사용자성 인정 문제는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투쟁과 같은 간접고용 노동자 투쟁의 돌파구를 열기 위한 원청 사용자성 인정과 관련된 내용이란 점에서 비정규직에겐 타임오프와 복수노조만큼 중요한 ‘주요 현안’이다.
이외에도 운수-건설-전교조-공무원노조 등의 설립신고증을 둘러싼 정부의 재량권 남용을 제재하는 노조 설립절차 개선이나 손배-가압류와 단체협약 일방해지가 최근 가장 유행하는 노조탄압 수단인 상황 때문에 ‘덜 중요하다’는 이유로 뺄 수 없다고 강조해 왔다.
때문에 민주노총은 현재로선 ‘8개 의제 일괄 입법발의’ 입장을 바꿀 수 없다. 지난 3월 28일 전후로 협상을 담당했던 민주노총 담당자도 “민주당이 8개 의제를 당론으로 동시 입법 발의가 어렵다면 우선 2개를 발의하고 나머지 6개 의제는 당론채택 시기를 못 박기로 했는데 그것 마저도 어렵다는 입장을 보여 재논의 할 수밖에 없다”고 밝힌바 있다.
3월 28일 2개 법안 우선 발의 기자회견을 반대했던 진보신당의 한 관계자도 “간접 고용문제 등 비정규직 문제를 빼고 2개 법안 중심으로 먼저 가는 것에 진보신당이 같이 할 지는 논의를 더 해봐야 할 문제”라고 밝혀 야5당 공조 체제도 무너질 수 있다.
한국노총이 민주당 손들어주면 민주노총 곤란한 상황 직면
양 노총 위원장은 25일 좌담회에서 ‘4월29일 입법발의’를 예고해 재보궐 선거가 끝나는 28일 께 8개 법안 공동 입법발의 문제를 다시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날도 민주당이 ‘전임자-복수노조 우선 발의’ 입장을 꺾지 않고, 협상 기준을 마련한 한국노총이 민주당 입장에 손을 들어준다면 민주노총은 좌담회 며칠 만에 곤란한 상황에 직면할 가능성도 있다. 또 민주노총 요구대로 입법발의가 8개 의제 모두를 포함한다 하더라도, 이후 여당과 정부까지 포함한 9자 논의기구에 올릴 의제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다시 논란이 불거질 수도 있다.
민주노총 내에선 9자 논의기구가 구성될 시점이 되면, 한국노총이 지금처럼 민주노총과의 공조에 무게를 실을지 의문을 갖는 이들도 많다. 한국노총이 과거 협상에서 보인 실리 위주의 후퇴교섭 전술을 택할 여지도 높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양 노총 공조의 시발점인 좌담회가 시작부터 위태로워 보인다는 목소리가 줄지 않고 있다. 김영훈 위원장은 이날 좌담회에서 한국노총에 진정성과 실효성 있는 투쟁을 강조했다. 이용득 위원장 취임이후 강하게 공조 복원을 요구해 온 한국노총이 이후 어떤 행보를 보일지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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